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55)
55 화 재등장!!!
재등장!!!
잘린 단면에서 튀어나온 수백 가닥의 투명한 실들이 누더기 거인의 잘려나간 머리를 향해 뻗어 나갔다.
엔시스 발타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직 그의 등 뒤엔, 열심히 도망치고 있는 카르멘과 사지타가 있었기에. 그는 그저 묵묵히 누더기 거인과 카르멘 사이에 버티고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악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 훔쳐간 거 어디에 숨겼냐고 물었잖아!!!
지극히 두꺼운 몸통과 길게 뻗은 파충류의 꼬리. 몸은 거대한 뱀을 닮은 형상이었지만, 머리는 달랐다. 족히 수십은 되는 수많은 뱀의 머리가 뱀의 몸뚱이 위에 달려있었다.
수십 개의 뱀 머리가 누더기 괴물의 몸을 향해 달려들었다.
– 내놔!!!
머리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뱀들의 머리통이 누더기 괴물의 몸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누더기 거인의 몸을 이루는 수백의 입들이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 끼에에에에엑!!!
콰앙!
거대한 누더기 괴물의 손이 달려드는 뱀의 머리들을 쳐냈다. 단둘 뿐인 거인의 손으로는 당연히 수십 개의 머리를 전부 쳐내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날카로운 뱀 이빨들은 누더기 거인의 몸을 파고들지 못했다. 아니, 파고들지 않았다. 누더기 거인을 공격하기 직전에 멈춰선 버둥대는 호기심이 울분을 터뜨렸다.
– 어디 숨겼느냐고!!!
수십 개의 뱀머리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누더기 거인을 노려보았다. 저딴 조잡한 신성 덩어리 괴물 따위야 당장에 집어삼킬 수 있었다.
문제는 저 빌어먹을 도둑놈이 훔쳐간 물건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쉽사리 공격할 수가 없다는 것. 혹시나 자신의 눈먼 이빨에 그 ‘물건’이 부서질까 봐.
– 기에에에에엑!!!
누더기 거인은 쉽게 공격하지 못하는 악마의 사정을 비웃듯이 괴성을 지르며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누더기 거인의 주먹을 얻어맞은 뱀 머리 하나가 뭉개졌다. 버둥대는 호기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울분을 참으며 최대한 누더기 거인을 상처입히지 않은 채로 제압하려고 시도했다.
당연히 무리였지만.
그리고 그때.
카르멘과 사지타가 충분히 멀어졌다. 그 사실을 확인한 엔시스 발타스가 칠흑빛 면갑을 눌러썼다.
천천히 한 걸음. 그보다 아주 조금 빠르게 한 걸음.
걸음걸음이 더해질수록 흑기사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윽고 엔시스는 하나의 선이 되었다.
닿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하나의 선이.
쾅!
검은 선이 바닥에서 솟구쳤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에 쥔 무식하리만치 거대한 대검, ‘어금니’를 휘둘렀다. 애초에 대검 ‘어금니’는 이런 종류의 거대한 괴물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인간이 제련한 폭력의 정수가 검은 선이 되어 누더기 거인의 머리통을 다시 한 번 날려버리기 위해 나아갔다. 이번에는 단순히 머리만 잘라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자르고 또 자르고 또 잘라내서 괴물의 ‘근원’을 베어낼 작정이었다. 마침내 검은 늑대의 ‘어금니’가 자신을 가로막는 살점 덩어리를 베어냈다.
서걱.
여덟이 넘는 거대한 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악마는 신음을 삼킨 채 고성을 토해냈다.
– 건드리지 마!!! 건드리지 말라고!!!
흑기사의 어두운 눈구멍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악마를 바라보았다. 악마를 바라보는 엔시스의 두 눈동자는 공들여 만들어낸 유리알처럼 지극히 투명했다. 그 투명한 두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악마가 경고를 하던, 부탁을 하던, 애원을 하던 그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그는 이곳 북부 왕국을 지키는 한 자루의 검. 검은 오롯이 적을 베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어금니’가 다시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공격은 종료된 뒤였지만, 생물로서 한계를 초월한 ‘달인’의 몸뚱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그의 허리에서부터 시작된 억지 회전이 어깨를 지나 손목을 거쳐 ‘어금니’의 검 끝에서 폭발했다.
– 하지 말라고!!!
서걱.
악마가 몸으로 막아내기 전에 누더기 거인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가볍게 누더기 거인의 어깨 위에 착지한 엔시스의 왼손이 흐릿해졌다. 칠흑색 롱소드, ‘송곳니’가 잘려나간 거인의 머리를 헤집었다.
잘려나간 거인의 머리는 추락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고기조각들이 되어 비산했다.
– 꺄아아아악!!!
악마는 절규하는 한편 안도했다. 적어도 누더기 거인의 머리에는 자신이 찾는 물건이 없었다.
엔시스는 묵묵히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이번엔 거인의 몸뚱이를 반으로 가를 차례였다. 거대한 대검, ‘어금니’가 다시 한 번 먹이를 노리기 위해 떠올랐다.
– 이 밥통아!!! 그만하라고!!!
쾅!!!!
거대한 뱀의 머리통과 엔시스의 ‘어금니’가 충돌했다. 비산하는 살점과 피들. 그건 전부 악마의 것이었다. 악마는 혹시나 누더기 거인의 몸뚱이가 훼손될까 봐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제발. 제발. 빨리 좀 와줘.’
악마는 자신의 머리들을 엔시스를 향해 모조리 밀어 넣었다. 검은 늑대 엔시스가 두 개의 이빨을 휘두를 때마다 거대한 뱀의 머리통이 하나씩 차곡차곡 잘려나갔다.
쿵! 쿵! 쿵!
계속해서 떨어져 나가는 머리. 엔시스는 악마의 육탄 공세를 막아내면서도 자신을 집어삼키기 위해 발밑에서 올라오는 투명한 실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방어. 그는 호흡 하나 흩뜨리지 않은 채 묵묵히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마침내 악마는 자신의 다른 머리들이 모조리 잘려나갔음을 깨달았다. 수십에 달했던 뱀의 머리들이 딱딱하게 굳어 전부 땅바닥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 젠장!!!
저 빌어먹을 검은 늑대만 없었어도 누더기 거인을 제압하고서 자신의 ‘물건’을 되찾을 수 있었을 텐데.
곧 있으면 여왕의 기사들과 병력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게 분명했다. 그가 애타게 불렀던 남자는 그녀의 기대를 배신하듯 오지 않았다.
결국 악마는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포기해야함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거대한 뱀의 머리가 한 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린 그때.
누더기 거인의 몸을 두 동강 내기 위해서 ‘어금니’를 치켜든 엔시스를 향해 한줄기 푸른 선이 달려들었다. 끔찍한 살기.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엔시스가 반사적으로 ‘송곳니’를 휘둘러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참격을 막아냈다.
까앙!
흑색 검날과 시리도록 푸른 검날이 맞부딪혔다.
극도로 증폭된 오감 속에서 엔시스는 자신을 공격한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흩날리는 푸른 머리와 일렁이는 푸른 눈.
그 여인은 얼마 전 여왕을 알현했던 성화교 청염의 사제 프리디야였다. 여인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공세를 이어나갔다. 평온한 얼굴과 달리, 그녀의 검은 지독한 살기를 품고서 엔시스의 목을 노려왔다.
엔시스는 ‘어금니’를 내던졌다. 기형적으로 거대한 대검은 애초에 대인전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어금니’가 거인의 몸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왼손에 쥔 ‘송곳니’를 휘둘렀다.
까앙!
오롯이 방어를 위한 검격. 프리디야의 일검을 막아낸 엔시스가 그 힘을 이용해 뒤로 튕겨나며 검을 쥔 손을 바꿔 들었다. 가볍게 거인의 어깨 위에 착지한 프리디야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엔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까앙! 까앙! 까앙! 까앙!
단 한 호흡 사이에 두 ‘달인’은 수십 차례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까앙!
또 한 번의 충돌. 그리고 드러나는 아주 미약한 빈틈. 지금 이 단 한 순간을 위해 프리디야는 모든 검격을 차곡차곡 쌓아왔었다.
그녀는 빈틈을 향해 거침없이 자신의 발을 밀어 넣었다.
쾅!!!
프리디야의 발길질에 흑기사의 금속 갑옷이 찌그러지며 엔시스의 몸뚱이가 누더기 거인의 몸에서 떨어져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추락한 흑기사는 재빨리 자세를 갖추고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졸지에 일격을 허용한 엔시스는 재빨리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갑옷이 찌그러진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애초에 저 여인의 발길질에 담긴 의도도 자신을 저 거인의 몸뚱이에서 떼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툭.
거인의 어깨 위에서 뛰어내린 프리디야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과묵한 흑기사의 무거운 입이 떨어졌다.
“어째서 이러시는 겁니까?”
지극히 정중한 꾸짖음. 프리디야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이 시대 북부 최고의 검이 궁금해서···?”
“그게 전부라면 이번 일이 끝나고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푸른 두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마침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죠?”
엔시스는 프리디야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비키십시오. 저는 수도를 지켜야 합니다.”
프리디야는 조용히 푸른 검을 치켜들며 빙그레 웃었다.
“이 시대 북부 최강의 검은 세 치 혀가 주무기인가 봐요?”
더한 대화는 불요(不要).
쾅!
자리를 박찬 엔시스가 한 줄기 검은 선이 되어 프리디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프리디야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푸른 검을 휘둘렀다.
웃는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살기.
까앙! 까앙! 까앙!
연이은 공방 속에서 엔시스가 느낀 인상은 단 하나였다.
여인의 검술은 정말 지독하리만치 끔찍한 살기를 품은 검술이라는 것.
검이 아무리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도 이 정도로 지독한 살의를 검술에 담을 필요가 있는가?
빗발치는 살의 속에서 엔시스는 침착하게 검을 내질렀다. 누군가를 ‘지켜내기’ 위해 만들어진 발타스 가의 검술 이념을 담아서.
상반되는 의지가 담긴 두 검이 거칠게 맞부딪혔다.
까앙!
그 선명한 충돌음 속에서 악마가 환희가 깃든 탄성을 토해냈다.
– 왔구나!!!
발가벗은 웃통. 얼굴 위에 눌러쓴 검은 하키마스크와 대충 챙겨 입은 바지.
인간도살자가 소리쳤다.
“뭘 하면 됩니까!!!”
***
혹시나 얼굴 팔릴까 봐 가면까지 쓰고 달려왔다. 괜히 내가 마르낙인 걸 들켰다간 지금 상황에선 빼도 박도 못하게 악마와 내통한 혐의로 왕국의 수배자가 되어서 다시 비루한 일일을 보내야만 할 테니까.
덕분에 도살자를 쓰는 것도 불가능.
내 무기는 오는 길에 대충 챙겨 든 검 한 자루가 전부였다.
슬쩍 고개를 돌려 스승님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두 ‘달인’이 진짜배기로 살벌한 검격들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나누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절대 스승님의 화를 돋우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차라리 몰래 도망쳤으면 도망쳤지.
펄쩍 뛰어오른 나는 검을 내질러 누더기 거인의 몸뚱이에 박아넣었다.
푹!
– 끼에에에에에엑!!!
누더기 거인의 몸을 이루는 수십 개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나는 검을 축으로 용수철처럼 몸을 튕겨서 거인의 어깨 위에 착지했다.
나는 버둥대는 호기심을 향해 힘차게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빨리 말해주십시오!!!”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버둥대는 호기심이 환히 웃으며 소리쳤다.
– ‘성물’!!!! 그 누더기 거인의 몸 어딘가에 저 놈들이 착각하고 훔쳐간 ‘성물’이 하나 있을 거야!!! 그걸 찾아줘! 그 성물 안에 내 ‘딸’이 내게 준 선물이 들어있어!!!
성물?
재빨리 고개를 내려 누더기 거인의 몸뚱이를 바라보았지만, 온갖 신성들이 뒤섞여서 꿈틀대는 거대한 몸뚱이에서 성물의 위치를 특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걱.
나는 달려드는 손들을 베어내며 소리쳤다.
“성물만 콕 집어서 찾아내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 아니, 할 수 있어! 너는 할 수 있다고!!!
내가 어떻게···?
내가 막연한 막막함 속에 푹 잠기던 그 순간, 드디어 할 게 생겨서 한껏 콧대가 드높아진 목소리 하나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살해!!!’
‘내가!!! 내가 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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