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59)
59 화 눈물.
눈물.
“영차. 자, 여기!”
버둥대는 호기심이 커다란 보따리를 내게 건넸다. 나는 가볍게 보따리를 받아들고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응. 아까 먹었던 과자만 넣었다고 하면 정 없게 느껴질까 봐 다른 과자도 섞어서 넣었으니까 네 동료들이랑 같이 나눠 먹어.”
“예.”
악마가 조용히 미소 짓자, 내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어머니가 악마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정말 아주 작게. 그리곤 냉큼 내 품에 안겨들어서 손으로 변했다. 나는 품속에 어머니의 손을 집어넣고 악마를 향해 마주 웃어주었다.
“어머니도 감사하시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키득키득 웃은 버둥대는 호기심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작별의 악수.”
내가 그 손을 마주 잡자 악마의 새카만 두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런데 저는 수도에서 조금 더 머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키아를 습격한 무리의 뒷조사도 조금 해봐야 했고, 곧 나를 찾아올 스승님과도 담판을 지어야만 했다.
버둥대는 호기심은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탁한 눈동자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는 대충 정리하고 내가 한동안 수도를 떠날 예정이거든. 요거 회복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한쪽 눈으로만 생활하면 거리 감각이 틀어져서 조금 불편하거든.”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럼 이 악수가 정말 작별 인사가 되겠군요.”
“뭐, 인연이 닿는다면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 생각엔 분명 머지않아 또 볼 수 있을 거 같지만.”
“그렇습니까?”
“응. 그나저나 작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해줄게. 괜찮아?”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새카맣게 빛나는 악마의 멀쩡한 눈동자 위로 내 얼굴이 담겼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당부했다.
“부패의 어머니한테 잘해줘. 물론, 지금도 아주 잘하고 있으니까 여기서 굳이 뭘 더 하란 건 아냐. 그냥 딱 지금처럼. 지금처럼만 해줘. 부패의 어머니가 계속 방긋방긋 웃으면서 다닐 수 있게.”
“부탁하지 않으셔도 그럴 생각입니다.”
‘살해…!’
어머니가 감동의 여운에 푹 빠진 사이 악마가 진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너도 항상 웃으면서 즐겨. 인생이란 항상 너무 짧은 법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안녕! 잘 가!”
나는 손을 흔드는 악마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의 은신처를 떠났다. 어두운 골목으로 빠져나오자 내 품속에서 어머니의 손이 작게 꿈틀댔다.
‘살해.’
다 마음에 안 들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조금 마음에 든다는 한마디.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십니까? 저는 어머니가 나날이 어른스러워지시는 것 같아 무척이나 기쁘군요. 오늘 매력이 족히 백배는 증가하셨습니다.”
‘살해!’
내일은 천 배 넘게 증가해 보일 테니 아주 똑똑히 지켜보라는 호언장담을 들으며 나는 가슴주머니를 토닥대고는 다시 걸음을 뗐다.
다키아가 기다리고 있을 숙소를 향해.
***
버둥대는 호기심은 부패의 아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자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악마는 부패의 아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주 자그마한 거짓말을.
그녀는 사실, 그에게 건넨 ‘열쇠’로 들어갈 수 있는 유적 속에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가 들고 있던 6번 작품이 잠든 유적의 ‘열쇠’를 발타스가로 자연스럽게 흘린 것도 그녀 자신이었기에.
부패의 아들은 분명 유적에서 자신의 딸이 남긴 ‘작품’을 찾아낼 게 분명했다.
자신의 딸이 만들어낸 ‘작품’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졌지만, 유일하게 만들어진 순서와 다르게 숫자가 붙은 물건이자, 실론이 만들어낸 모든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매개체인 ‘1번’ 작품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난 적 없었던 그 물건은 부패의 아들이 다른 부패의 신성이 봉인된 성물들을 모으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 결과, 정말정말 가능성이 낮은 경우의 수이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부패의 어머니’가 온전한 신성을 되찾게 된다면 저 드높은 천상의 신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크나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리라.
감히 자신의 딸이 준 선물을 탐했던 ‘기워붙이는 바늘’ 또한 마찬가지로.
악마는 조용히 웃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내 복수에 이용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지만, 부패의 아들에게도 퍽 나쁘지 않은 조건이니까. 큰 상관은 없겠지. 뭐, 나중에 엄청 화나 있으면 내가 직접 이 몸으로 달래주면 되는 거고! 이제 그럼 슬슬 뒤처리를 하고 짐을 싸볼까.”
그녀는 그렇게 수도를 떠날 준비를 차근차근했다. 더불어 ‘기워붙이는 바늘’을 섬기는 이들이 속해 있는 악신의 숭배자들의 조직, ‘리베라티오’에게 아주 큰 엿을 먹일 그림을 조금씩 그려나가면서.
***
“오셨어요?”
로브를 푹 눌러쓴 채 1층에 구석에 앉아있던 다키아는 내가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서 여관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날듯이 뛰어와 내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악마가 토벌당했다고 하던데 가셨던 일을 잘 해결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 보따리는 뭐예요?”
마음이 급한 나머지 한 번에 세 가지를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법에 나는 다키아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대답했다.
“일단 진정하시지요. 저 어디 안 갑니다.”
“흡. 하.”
짧게 심호흡한 다키아가 다시 황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어왔다.
“다치신 데는 없죠?”
“예. 완전 건강합니다.”
“가셨던 일은요?”
“그것도 아주 잘 해결됐습니다.”
“그럼 이 보따리는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보따리를 살짝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과자를 조금 받아왔습니다. 듣기로는 무척 맛있다고 하니, 조금 나눠드리겠습니다.”
“과자를 받아올 정도면 일이 완전 잘 해결된 거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럼 이제 제가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녀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나는 여관 1층을 훑어보았다. 식사를 나누고 있는 시민들은 모두 오늘 있었던 악마의 등장에 관한 이야기를 저마다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와중,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프리디야 스승님이 절 찾아오셨습니까?”
부탁을 하면서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의 위치를 알려드렸으니, 스승님은 분명 일 처리가 끝낸 다음, 날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올 게 분명했다.
다키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마르낙 사제님의 스승님은 아직 안 오셨어요.”
먼저 와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일이 생기셨나? 잠깐 스승님의 안위를 걱정했지만, 프리디야 스승님을 위험에 처하게 할만한 존재를 상상해내기가 힘들어서 일단 의문을 집어넣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스승님 말고 혹시 카르멘이나 사지타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습니까?”
그 둘이 있던 장소에서 누더기 거인과 악마가 싸운 만큼 혹시나 둘이 심하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둘의 실력으로 보건대 그럴 확률은 무척이나 낮았지만.
다키아는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식이 오긴 왔어요. 안 그래도 그 짐만 올려놓으시면 바로 이야기하려고도 했고요.”
나는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둘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
“둘이 많이 다쳤답니까?”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는데, 카르멘이 보낸 전령이 말하기론 치료에 조금 난항을 겪고 있는 거 같아요. 특히 사지타의 치료에요.”
다키아의 말이 끝나고,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짐을 풀고 오겠습니다. 바로 찾아가 보도록 하죠.”
“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카르멘과 사지타가 묵고 있는 병실로 들어서자, 우리를 본 카르멘이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 마르낙 왔어? 다키아 공녀님도 오셨군요! ”
카르멘의 옆자리에 앉아 그를 간호하고 있던 그의 정인, 아라스 그라타와 사지타도 우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카르멘은 머리만 빼놓고 전신을 붕대로 둘둘 감고 있었다. 그의 몸에선 미약한 신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일단 목소리는 여전히 활기차서 참 다행입니다.”
“하하하! 그래? 몸 좀 아프다고 계속 축 처져있으면 발타스의 이름이 울지. 그리고 나는 그렇게 안 심해. 그냥 여기저기 조금 뼈가 부서지고 타박상이 심한 정도?”
확실히 전신 골절과 타박상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수복교(修復敎)의 사제를 불러서 치유의 권능으로 치료하면 그만일 뿐인 이야기였으니까.
수복교의 사제가 도착하는 대로 치료를 받고 며칠만 지나면 바로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카르멘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진짜 문제는 사지타쪽이야. 그게 말이지 사지타가 싸우다가 발목을···.”
“저는 괜찮습니다.”
단호한 대답. 나는 고개를 돌려 맞은 편에 누워있는 사지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도 역시나 은은한 신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르멘보다도 훨씬 진하게.
“잠깐 발목 좀 보겠습니다.”
이불을 들추자, 실체화한 신성 덩어리 바늘이 사지타의 발목을 꿰뚫은 채로 은은한 신성을 흘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늘 속에는 온갖 신성이 어지럽게 뒤얽혀 있었다.
나는 이 둘이 왜 아직도 수복교 사제의 치료를 받지 않고 기초적인 처치만 한 채 침상에 누워있는지를 깨달았다.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악신의 신성이 수복교 사제의 권능 행사를 방해했으리라.
나는 가슴을 툭툭 두드려 어머니에게 신호를 보냈다. 내 신호의 의미를 찰떡같이 파악한 어머니가 짧게 대답했다.
‘살해!’
악마에게 받은 성물의 봉인을 풀면 저 정도야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명백해졌다.
내 표정을 본 카르멘이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 왔다 가신 사제님의 말로는 우리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악신의 신성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중이랬어. 다 없어지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하긴 했지만.”
“그분 말씀으로는 얼마나 걸릴 것 같으시답니까?”
“그게···.”
카르멘이 살짝 뜸을 들이는 사이, 그의 정인인 아라스 그라타가 냉큼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상처에 남은 신성이 온전히 사라지려면 최소 몇 달에서, 길면 몇 년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것도 카르멘의 경우에 한정 지어서요. 저쪽 누워계신 분은 그보다 더 오래 걸리고요. 그래도 일단 악신의 신성을 중화해주실 수 있는 사제 분을 수배해놓기는 했으니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요.”
카르멘은 머쓱하게 웃으며 다키아를 바라보았다.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저와 사지타가 공녀님의 호위를 당장 계속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진짜 악신의 신성만 아니었다면 일주일 내로 다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부상인데 말이죠.”
다키아는 싱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제 걱정은 마시고 두 분 다 치료에 전념해주세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나는 카르멘과 사지타를 보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다키아 공녀님과 함께 며칠 수도를 떠나 어디를 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마침 두 분의 몸에 깃든 신성을 없애버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네?”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에 다키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키아에게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관으로 돌아가서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고대유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마침 악마가 건넨 고대유적의 열쇠가 가리키는 좌표도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단절된 공간인 고대유적 속에서라면 아무도 모르게 성물에 봉인된 어머니의 신성을 흡수할 수 있었다.
덤으로 버둥대는 호기심의 딸이 만든 새로운 유물도 얻고.
내 갑작스러운 선언에 두 눈을 끔벅대던 카르멘이 빙그레 웃으면서 내게 손짓했다.
“역시 마르낙이네! 그런데 잠깐만 이리 와 볼래? 너한테만 해줄 이야기가 있어.”
그가 눈짓하자 아라스가 병실 밖으로 다키아를 슬쩍 데리고 갔다.
병실에는 나와 카르멘, 그리고 사지타 셋만이 남았다.
카르멘은 어느 때보다 진중한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마르낙.”
“예.”
그의 어두운 갈색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내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감돌았다.
“내가 장담하건대, 다키아 공녀님만큼 ‘마음’이 넓고 착한 여자는 드무니까 이번 기회에 잘해봐! 내가 보니까 다키아 공녀님도 너한테 마음이 꽤 있는 거 같더라고!”
‘살해?!’
병상 위에 묵묵히 앉아 있던 사지타가 말을 꺼냈다.
“제가 알기론 두 분은 이미 연인 관계이신 걸로 압니다만…?”
“뭐?!”
‘살햇?!’
카르멘과 어머니가 동시에 경악했다. 카르멘은 자신의 손을 뻗어 날 붙잡으려다 고통으로 눈살을 찌푸리고는 소리쳤다.
“뭐야! 나만 몰랐던 거야? 응? 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살해살해!!!’
어떻게 된 일인지 당장 설명하라는 어머니의 외침. 계속 나랑 같이 있으셨으면서 대체 뭘 설명하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이 오해에 대해서 해명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저랑 다키아 공녀님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사지타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더욱 아니고요.”
“뭐야? 그래? 나는 또 나만 모르고 있는 줄 알았잖아. 그럼 이번 기회에 잘해볼 생각은 있는 거지?”
“그럴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이거 굉장히 아쉽네… 너도 그렇지 사지타?”
카르멘의 물음에 사지타가 내 눈치를 슬쩍 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나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내가 다녀올 때까지 별문제는 없겠네.
“두 분 다 제가 다녀올 때까지 몸조리나 잘하고 있으십시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카르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어차피 병실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되니까, 너무 급하게 갔다 오려다가 다치지 마. 뭐, 마르낙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진심이 담긴 염려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감사합니다.”
***
병동을 떠난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키아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끝마쳤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다키아는 흔쾌히 내 계획에 동의했고.
원래는 넷이서 다 같이 고대유적에 갈 생각이었지만, 다키아와 단둘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다른 이들의 눈치를 안 보고 부패의 권능을 펑펑 쓸 수 있었으니까.
숙소에 도착한 우리를 반긴 건, 여관 1층에 앉아 물을 홀짝이고 있던 프리디야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꽤 늦었네? 제자야? 이 스승님은 네가 돌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렸단다. 자자, 여기 앉으렴.”
엉덩이를 살짝 옆으로 옮긴 스승님이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다. 나는 스승님의 말을 따르는 대신, 다키아와 함께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생각보다 늦으셨군요.”
스승님의 푸른 눈동자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잠깐 궁전에 들렀다 왔단다. 북부왕국의 여왕이 내게 부탁할 일이 있다고 하길래 말이야. 수도 북쪽에 있는 도시인 ‘이길레르’에서 악신의 숭배자들이 날뛰고 있다지 뭐니, 정중하게 토벌을 부탁하길래 특별히 알겠다고 했단다. 그러니 짐 싸렴. 제자야. 나랑 같이 북쪽으로 가자꾸나.”
이르멜 가문의 영지는 수도에서 남쪽. 당연히 스승님의 말을 따를 순 없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대답해야 할 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저는 같이 안 갑니다. 스승님. 제가 직접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나랑 같이 안 떠나겠다고? 이 스승님이 하나뿐인 제자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온갖 역경과 모욕을 겪었는데도…?”
스승님의 가느다란 푸른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니?”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예. 똑바로 잘 들으셨습니다.”
“너무해…”
또르르.
투명한 눈물방울 하나가 새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려, 딱딱한 여관 바닥 위로 떨어졌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이 스승님은 하나뿐인 제자를 위해서 정말이지 노력했는데…”
또 한 방울의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나는 스승님의 눈을 보며 똑바로 말했다.
“마음대로 안 되면 우는 척하는 건 그만두시지요. 제가 그 눈물에 속아 넘어간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제 안 속습니다.”
프리디야 스승님은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배시시 웃었다.
“원래 여자의 눈물은 무기란다. 제자야. 그나저나 진짜 나랑 같이 안 갈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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