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61)
61 화 프리디야.
프리디야.
의존?
내가 의존하고 있다고?
스승님이 말하고 있는 의존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내 의존의 대상은 어머니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안 보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는 자신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한참 스승님과 수련을 하던 시기에는 스승님 말씀대로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무척이나 희미해졌었으니까.
사실, 무엇이 어머니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한 지 오래였다.
어머니에 대한 의존심은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죽었을 부상을 입을 때마다 심해졌다. 즉, 내가 죽음에서 되돌아올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의존이 더욱 심화 되었다.
하지만 그걸 알아챘다고 해서 몸을 무작정 사릴 수는 없었다. 여태까지 내가 겪어온 일들은 내 몸을 사리면서 행동했다간 다른 이들이 죽을 게 분명한 상황들이 너무나 많았다. 정작 내 스스로가 어머니에 대한 의존이 커지는 걸 부정적으로 여기지도 않았고.
“제자야. 내 하나뿐인 제자야.”
어느새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은 프리디야 스승님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새하얀 손가락이 내 목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내 목에 묻어 있던 핏방울을 닦아낸 스승님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네 얼굴을 보니, 넌 이미 스스로가 ‘무엇’에 그리도 집착하고 있는지도, 어째서 그렇게 집착하게 됐는지도 이미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구나.”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새파란 두 눈이 내 얼굴을 새초롬하게 바라보았다.
“솔직히 이 스승님은 너와 검을 맞부딪히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단다. 내가 찾고자 하는 걸 운 좋게 찾아냈으니까. 하지만 너와 검을 맞부딪히는 순간, 그 살랑대던 기분이 팍 식어버렸단다. 어째서인지 알겠니?”
“제가 ‘달인’의 경지와 멀어져서 그렇습니까?”
슬쩍 한 걸음 물러난 스승님이 자신의 도톰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달인’의 경지라는 건, 쉽게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란다. 어쩌면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 같아 보이다가도 실상 깨닫고 보면 딱 한 걸음 내디디면 닿는 곳에 있을 수도 있는 거란다. 이 스승님이 기분이 나빠진 이유는 사실 조금 아이 같은 이유지. 네게 말하기 조금 부끄러워질 정도로.”
시리도록 푸른 눈이 내 얼굴을 한가득 담았다.
“내가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다만, 이게 혹시 어머니의 마음이란 걸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이 스승님이 느끼는 감정은 기껏 열심히 키운 내 아들을 그 누구보다도 최단 거리로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길 위에 올려놨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불여우 같은 여자가 내 아들을 채간 것만 같은 느낌이란다.”
“되게 구체적이시군요. 스승님답지 않게요.”
“그만큼이나 지금 내가 억울한 거겠지.”
스승님은 한숨을 폭하고 내쉬었다.
“그거 아니? 제자야? 너도 나중에 ‘달인’되어 보면 알겠지만, 서로의 무기가 맞부딪힌다는 건 서로의 ‘마음’이 맞부딪힌다는 거란다. 그 감정의 교류를 통해 두 대적자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지. 물론, 이해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달려있긴 하지만.”
검을 쥐지 않은 내 손에 따뜻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내 한 손을 양손으로 꼭 쥔 프리디야 스승님이 내게 말했다.
“어차피 네가 의존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이든 이미 아주 깊이 의존하고 있는 이상, 너와 그것의 사이를 억지로 떼어내 봤자 너는 날 미워하게 될 뿐이겠지.”
스승님은 내 손을 천천히 이끌어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댔다. 스승님의 볼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푸른 두 눈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나는 네게 미움받기는 싫으니,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지 않을 거란다. 다만, 이걸 챙겨 두렴.”
딱딱하고 동그란 무언가가 내 왼손 검지 손가락에 끼워졌다. 스승님이 내 손가락에 끼워준 건 새하얀 반지였다. 스승님은 내게 끼워준 것과 똑같이 생긴 검은 반지를 자신의 왼손 검지에 끼웠다.
“이건…?”
“내가 본단에서 챙겨나온 고대 유물이란다. 검은 반지를 낀 사람은 하얀 반지를 낀 사람이 어디쯤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단다.”
스승님은 새카만 반지를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네 상태가 이런 줄 알았더라면 여왕의 의뢰를 받지 않았겠지만, 이미 의뢰를 받아버린 이상 약속은 지켜야만 하는 것이니 빠르게 여왕의 의뢰부터 끝마치고 네게 찾아갈 생각이란다. 그러려면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위치추적용 유물이라는 거네. 내가 새하얀 반지를 매만지자 스승님이 냉큼 말했다.
“항상 끼고 다니렴. 네가 어디 있든 이 스승님이 한달음에 찾아갈 수 있게. 똑똑한 우리 제자는 그 반지가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도 빨리 눈치챘으리라 믿는단다.”
“예.”
굳이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이 반지 모양 유물이 바로 날 그냥 놓아주는 조건이겠지.
내 대답을 들은 프리디야 스승님은 흙바닥 위에 털썩 주저앉고는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오랜만에 어깨 안마나 해주렴. 잠깐 떠나기 전에 네게 해줄 말이 있단다.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도 좋고.”
“알겠습니다.”
내가 스승님의 어깨를 꾹꾹 누르기 시작하자 스승님은 두 눈을 꼭 감고 내 안마에 몸을 맡겨왔다.
“연아.”
나직이 불린 내 본명. 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제대로 된 관계라는 건, ‘의존’이라는 감정에 뿌리를 두고서 출발하지 않는단다. 지나친 ‘의존’은 본질을 보는 눈을 어둡게 하지. 그러니 항상 의식적으로 무언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걸 경계하거라. 아주 조금씩이라도 네가 의식하고자 노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단다. 너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니까 잘해낼 수 있을 거란다. 이 스승님이 보장하마.”
스승님이 조심스럽게 꺼내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진한 걱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 염려들에 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물어도 괜찮습니까?”
“물어보렴.”
“스승님 말씀대로라면 ‘달인’이란 건, 제 마음을 온전히 타인으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고 하셨는데,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달인이시면서 사제이실 수 있는 겁니까? 마음을 타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신앙’은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까?”
푸른 머리가 살랑였다.
“공존은 가능하단다. 하지만 달인들은 대개 ‘신앙’이라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마련이지. 달인들은 ‘신’조차도 하나의 객체로서 본단다. 따라서 달인들은 신들이 우리에게 맹목적으로 심어놓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지. 그 신성 덩어리 괴물을 상대할 때, 네가 악신의 신성을 전신에서 피워내는 걸 똑똑히 봤음에도 내가 여전히 널 어여쁜 제자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네?”
그걸 봤다고? 다른 달인을 상대하고 와중에?
스승님은 흥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너도 잘 알겠지만, 어떤 신을 모시는 사제가 된다는 건 딱히 깊은 ‘신앙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란다. 그저 신이 자신의 권능을 떠안겨 줬기 때문이지. 나는 일단 권능을 쓰라고 주길래 쓰고 있는 것뿐이란다. 거기, 거길 좀 더 꾹꾹 눌러주렴. 아주 시원하구나.”
나는 스승님이 시키는 대로 어깨를 꾹꾹 눌러드렸다. 스승님은 내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나직이 말했다.
“그렇기에 너는 반드시 ‘달인’이 되어야만 한단다. 내가 널 그렇게 만들 거고. 네가 ‘달인’이 되는 순간, 네 마음속에 있는 감정들 중 어디까지가 진정으로 ‘네 것’이고, 어디까지가 네가 모시는 신이 네게 ‘심어둔’ 마음인지 깨닫게 될 거란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스승님의 말에 대답했다.
“제가 악신의 숭배자인 걸 알고 계셨군요.”
“대충 짐작은 했단다.”
“제 의존의 대상이 ‘신’인 것도 알고 있으셨고요.”
“이 자상하고 이해심 깊은 스승님은 바보가 아니란다.”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스승님의 푸른 눈이 다시 한 번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러렴. 그리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더 물어봐도 괜찮단다.”
나는 잠깐 말을 조금 골랐다. 고르고 골라 마침내 하나의 질문을 완성했다.
“스승님은 어째서 제게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그냥 번거로운 저보다 말 잘 듣고 똘똘한 제자 하나를 더 들이는 게 나으실 텐데요.”
스승님이 싱긋 웃었다.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길래 어려운 걸 물을 줄 알았더니 무척이나 쉬운 질문을 묻는 구나. 솔직하게 대답해 줄 테니, 듣고 웃지는 말렴. 네가 웃으면 이 스승님은 너무 부끄러워서 한동안 얼굴이 새빨개져 있을 게 분명하단다.”
“절대 안 웃겠습니다.”
새하얀 손이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내 손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스승님은 나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성화교의 검으로 길러진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주위에 사람을 둔 적이 없었단다. 멋도 모르는 어린 시절엔 맹목적인 훈련을 받느라 사람을 둘 수 없었고, 훈련을 끝나 검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 손에 피를 듬뿍 적시고 다니느라 사람을 두지 못했지.”
푸른 두 눈은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지만, 스승님의 두 눈이 바라보고 있는 건, 아득한 과거의 어느 날이었다.
“‘달인’이 된 후에 나는 직접 이 두 손으로 자유를 얻어냈지만, 나는 더 이상 타인의 명령에 따라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를 원했을 뿐. ‘자유’를 바랐던 건 아니란다. 그래서 나는 성물고지기로서 조용히 잊혀지기를 선택했지. 뭐, 어떻게 알아냈는지 가끔 나를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의 청을 들어주기도 했지만, 내 곁에 사람을 두지는 않았단다. 누군가를 곁에 둬본 적이 없으니 내가 혼자였음을 알지도 못했단다.”
과거를 보던 스승님의 두 눈이 내 얼굴을 담았다. 잔뜩 담았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너’를 만난 거란다. 그때 그 빨래터에서 말이지. 너와 같이 지낸 3년 동안 느꼈던 행복은, 내 지난 삶의 모든 행복을 합한 것보다 더 컸단다. 아주아주 아득하게 컸단다. 그리고 네가 사라지고서 홀로 집에 우두커니 앉았던 내가 느꼈던 상실감은 정말이지 지독하리만큼 쓰렸지.”
부드러운 손길이 내 뺨을 더듬었다. 스승님은 노래하듯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모른 채 홀로 지냈던 그 시절의 나로는 이젠 되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거지. 이 스승님은 네가 필요하고 또 소중하단다. 너와 함께 있으면 무척이나 행복해서.”
새파란 두 눈이 달빛을 품고 반짝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니?”
나는 빙그레 웃었다.
“듣는 제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군요.”
“웃지는 마렴. 당장에 도망치고 싶어지니까. 그리고 내가 잠깐 떠나있는 동안 항상 몸조심하고. 기껏 널 만나러 왔는데, 네가 다쳐있으면 조금 화가 날 거 같구나.”
“노력해보겠습니다.”
“꼭 그러렴.”
프리디야 스승님은 그 말을 끝으로 여왕이 맡긴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떠났다. 그날 밤, 나는 스승님 앞에서 침묵을 지키던 어머니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는 그래도 어머니를 믿습니다.”
‘살해.’
언제나처럼 짧은 한마디였지만, 온갖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던 탓에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가 하고자 하는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침울함 속에 진득하니 묻어있는 미안함이라는 감정 하나.
나는 그저 조용히 어머니의 손을 토닥여 드렸다. 날이 밝을 때까지.
‘살해!’
다음날, 어머니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지난밤에 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던 건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살해…?’
하지만 어머니는 지난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시지 못했다. 기이하게도.
***
다음날, 다키아와 나는 악마가 건네준 고대 유적의 열쇠에 적힌 좌표로 향해 여행을 떠났다.
지도상으로 확인해본 결과, 고대 유적이 잠들어 있는 곳은 수도에서 닷새는 꼬박 걸어야 도착할 거리에 있는 산속이었다.
드디어 성물의 봉인을 풀고 얻은 신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힘을 얻을 차례였다. 덤으로 고대 유물도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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