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76)
76 화 테르지오와 디스펜스.
테르지오와 디스펜스.
쿵. 쿵.
인간의 두 배 크기의 금속 기사는 잔뜩 좀 먹은 붉은 망토를 나풀거리며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나와 다키아는 그 기사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내 옆에 다가온 다키아가 살짝 신이 난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제 마…”
습관적으로 내 이름을 부르려던 그녀는 쟈멜이 이곳에 있음을 깨닫고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마… 무리를 하고 이곳을 진짜 떠날 수 있겠네요. 여기에 나타났던 금속 기계들이 전부 ‘인간도살자’의 것이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건 가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그 후계자라는 지위가 생각보다 별거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대답은 앞장서서 걸어가던 자칭 세 번째 기사 테르지오에게서 나왔다.
–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후계자님께선 이 연구소의 모든 것들의 주인이십니다. 후계자님께서 바라시기만 한다면 저희는 그 어떤 명령이라도 따를 겁니다.
지극히 헌신적인 말투에 나는 살짝 마음에 부담이 갔지만, 가면 뒤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잘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따라온 쟈멜은 걷는 내내 나와 다키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침내 조용히 있던 그녀가 우리에게 물었다.
“이제… 전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실, 나도 고민 중이었다. 쟈멜을 죽이자니 죄책감이 가슴 꾹꾹 찔러댔고, 살려두자니 뒤처리가 또 문제였다.
‘살해!’
어머니께서는 연신 그냥 슥하고 처리해버리자고 내게 속삭여왔다. 그건 쟈멜이 싫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쟈멜을 처리해버리면 아까 챙겨간 이모탈리움 병기의 팔을 그녀의 몫으로 주지 않아도 되어서인듯했다.
다키아는 쟈멜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당신과 같이 온 악신의 숭배자들에게 돌아가고 싶으시죠? 원하신다면 풀어드릴게요.”
쟈멜은 데굴 눈을 굴려서 내 눈치를 보곤 잽싸게 대답했다.
“저, 저는 이미 지젤과 쟈른을 다 잊어버렸어요!!! 누, 누군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다키아가 내게 속삭였다.
“이게 안 걸리네요. 아쉽게요.”
뭐가 아쉽다는 걸까. 나는 그 궁금증을 꾹꾹 밀어 넣고 말했다.
“마냥 놓아줄 수도 그렇다고 무작정 죽일 수도 없으니, 아무래도 한동안은 데리고 다니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본인 입으로 잡일도 잘한다고 했으니 잡일이라도 맡겨서 말입니다. 게다가 그녀에게 물어볼 것도 아직 조금 남았기도 하고요.”
다키아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날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
한 번 멈칫한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같이 다닐 거면 사제님의 이름을 말해도 괜찮겠죠?”
“예.”
이김에 자기소개를 해두는 편도 괜찮겠지. 나는 가시투성이 가면을 벗고는 쟈멜을 쳐다보았다. 내 얼굴을 본 쟈멜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마, 마르낙 사제!!! 당신이 바로 마르낙 사제였군요!!!”
“저를 아십니까?”
쟈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쪽이 조직의 일에 아주 큰 엿을 먹인 게 몇 번인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죠! 그쪽 얼굴은 초상화로 만들어서 진작에 다 뿌려졌어요! 으으으. 호, 혹시 저한테서 정보를 다 캐내면 다, 다른 악신의 숭배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저도 가차 없이 죽여버리실 건가요…?”
“아직까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만…”
헐레벌떡 다가온 쟈멜이 내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졌다.
“저, 저 진짜 잘할게요!!! 진짜 뭐든 잘할 테니까!!! 죽이지만 말아줘요!!!”
대체 내 소문이 어떻게 났길래 이러는 거지. 쟈멜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내 바짓가랑이가 마치 자신의 생명줄이라고 여기는 건지 무작정 그녀를 떼어내려다간 바지가 벗겨질 거 같아서 떼어낼 수가 없었다.
“알았으니까. 제발 이것 좀 놓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 진짜 안 죽이실 거예요…?”
“아까부터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금은 죽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에 한동안 감시하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놓아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진짜죠?”
“네.”
혹시나 우리를 향한 적의를 숨기고 있는 거면 단숨에 죽여버릴 생각도 있었고.
나는 쟈멜을 겨우 달래서 떼어냈다. 쟈멜은 나를 올려다보며 힘차게 외쳤다.
“살려만 주시면 무조건 충성할게요!!!”
“예예. 쟈멜의 마음은 잘 알겠으니 일단 가던 길이나 마저 가도록 하죠.”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자 거대한 문앞에서 테르지오가 멈춰 섰다.
– 다 왔습니다. 후계자님.
거대한 문이 기다렸다는 듯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통제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기계 눈.
여기저기 부서지고 망가진 통제실 중앙에는 천장에서부터 연결되어 내려온 거대한 기계 눈이 우리 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 시선은 어딘가 조금 엇나가 있었다.
거대한 기계 눈 위로 새겨진 선명한 검흔 때문에 제대로 앞이 보이질 않는 듯했다.
금속 기사 테르지오가 금속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 디스펜스. 내가 후계자님을 데리고 왔다.
디스펜스라 불린 거대한 기계 눈은 테르지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바라보고서 기계음을 토해냈다.
– 후계자님? 그분이 오셨다고? 어디에?
– 지금 바로 내 옆에 서 계시다.
– 오오오오.
기쁨이 잔뜩 실린 기계음이 감탄을 토해냈다. 뒤이어 이 유적의 관리자, 디스펜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 후계자님. 진실로 거기 계신다면 이리로, 이리로 와서 제게 후계자의 증명을 제 몸에 가져다 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 시각 센서가 손상된 탓에 저는 이 통제실 안을 볼 수가 없습니다.
디스펜스가 말하는 후계자의 증명이란 건 아무래도 실론의 1번 작품이 분명하겠지. 나는 거대한 기계 눈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내 오른팔의 갑옷은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금속 선들을 뿜어내서 디스펜스의 눈안으로 파고들었다.
– 아아아. 역시나 ‘어머니’께선 저희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군요!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어머니’께서 저희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을. 후계자님. 후계자님께 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전에 할 말이 있었다.
“혹시 지금 이 유적 내부에 진입해있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총 24명의 침입자가 유적 내부에 진입해 있지요. 침입자들은 총 두 무리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은 둘뿐이고 나머지는 쪽은 22명이 모여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들 저항이 거센 터라 망가진 ‘병사’들로는 처리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거기다 네 ‘기사’들 중 남아있는 것이라곤 테르지오 혼자뿐인지라…
“일단 스물두 명이 모인 쪽은 한 명도 죽이지 말고 그냥 내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디스펜스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후계자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럼 나머지 2명이 남아 있는 쪽에 모든 전력을 투입해서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쟈멜이 내 옷깃을 잡아당겨 왔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달달 떨면서도 할 말을 했다.
“지, 지젤이랑 쟈른도 그, 그냥 내보내 주시면 안될까요…? 제,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진짜요!!!”
쟈멜이 내보인 동료애는 내게 무척이나 기꺼운 종류의 것임과 동시에 내가 그녀를 아주 조금이나마 더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디스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쪽 말대로 해주시겠습니까? 다만, 그 2명이 나가는 출구는 22명이 빠져나가는 출구와는 달랐으면 좋겠군요.”
디스펜스는 망가진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내게 물어왔다.
– 그럼 22명의 경우는 조금 전 후계자님께서 탈출하도록 도와주신 무리쪽으로 내보내고 저 2명은 그 반대쪽으로 출구를 만들어서 내보내겠습니다.
일 잘하는데…? 나는 속으로 작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계자님께선 이걸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오래전 ‘어머니’께서 이곳에 남겨두고 가신 물건입니다.
천장에서 튀어나온 기계 손이 흑색 하반신 갑옷을 내밀었다. 내 오른팔의 갑옷은 기다렸다는 듯이 금속 선들을 뿜어내서 하반신 갑옷을 집어삼켰다.
오른손등에 나타난 디스플레이에 ‘2’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검은 하반신 갑옷이 2번 작품인가.
화면 위로 간단한 그림이 나타났다. 발바닥과 다리 주변에서 불꽃이 분사되는 모양. 아무래도 2번 작품의 기능은 간단한 부스터가 튀어나와 도약과 행동에 가속을 해주는 기능인 듯했다.
나는 디스펜스를 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주신 물건은 잘 쓰겠습니다.”
– 원래 후계자님의 것이니 제게 감사를 표하시지는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저 그쪽 작품에 담겨져있던 ‘어머니’의 말씀대로 후계자님에게 물건을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전부 후계자님의 것입니다.
‘살해!!!’
완전 계 탔다며 어머니께선 황금빛 꿈에 푹 젖으셨다. 아마 금화들 속에서 수영하는 상상이라도 하시는 듯했다.
검에 베인 기계 눈이 초점을 잡지 못하고 연신 이리저리 흔들려댔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서 디스펜스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본 병사들도 그렇고, 내 옆에 서 있는 테르지오도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투성이에다 병사들은 심한 경우에 신체의 일부가 없어져 있었다.
“그런데 다들 몸이 온전치 않아 보이시는군요. 어째서 그런 건지 혹시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금속 눈이 몇 번 끔벅거리더니 나를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 후계자님의 물음에 답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상처 입은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의 상처는 전부 ‘어머니’를 노리고 이곳을 습격한 ‘달인’들로 구성된 부대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의 전투로 테르지오를 제외한 다른 기사들은 모조리 완파 당하고, 보유한 ‘병사’들의 99퍼센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여파로 하나 남은 기사 테르지오 조차 온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파괴당하시지 않은 걸 보면 승리하신 겁니까? 달인들의 부대에게?”
– ‘승리’했다기보다는 그들을 이곳에 가두고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서 ‘아사’시켰습니다. 달인들도 결국 생명이기에 무언가를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다른 생명들 보다 안 먹고 안 자고 오래 버틸 수 있긴 합니다만. 저희는 달인들의 그 약점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이곳에서 고립된 채 굶어 죽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승리’라는 표현이 적당하긴 합니다만, 싸워서 이겼다고 말씀드리기엔 조금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하나도 아닌 부대를 이루고서 쳐들어온 달인들을 고립시킨 채 아사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내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디스펜스가 다시 말을 꺼냈다.
– 후계자님.
“네.”
– 제가 후계자님에게 간곡히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 ‘어머니’께선 자신의 사망을 위장하신 뒤에 이곳을 떠나시고 단 한 번 이곳으로 되돌아오셨었습니다. 제가 후계자님께 드린 그 갑옷의 하반신을 맡기기 위해서 말입니다. 제가 그때 어머니께 간곡히 부탁 드렸지만 어머니께서는 단호히 거절하셨죠. 하지만 후계자님께선 혹시 생각이 다르실 수 있으시기에 조심스럽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말해보시지요.”
차가운 금속질 기계눈이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 부디 제게 이 연구소의 ‘재건’을 허락해주십시오. 제가 네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다른 ‘병기’들을 전부 다시 만들어내 후계자님을 보필해 보이겠습니다. ‘어머니’께선 저희가 잠들어 있는 것이 옳다고 거절하셨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애초에 ‘병기’란 것은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 지가 중요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대로 망가진 채 있기보다 어떻게든 후계자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고대 병기의 ‘재건’을 허락해달라라.
나는 기계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제 뜻에 복종하실 겁니까?”
기계 눈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 저는 ‘헌신’할 대상을 항상 기다려왔습니다. 저를 전적으로 믿어주십시오. 후계자님. 만약 후계자님이 이 세계를 원하신다면 저는 이 세상을 당신의 발아래에 꿇려보겠습니다.
기계로 이루어진 군세라…
온 세계가 언제든 내 적이 될 수 있는 마당에 거절할 이유는 없지.
“좋습니다. ‘재건’을 허락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후계자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격한 감사에 오히려 내가 무안해졌다.
“그런데 그 재건은 얼마나 걸립니까?”
디스펜스가 힘차게 대답했다.
– 최대 전력이던 시기를 말씀하시는 거면 대충 100년 정도면 충분합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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