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77)
77 화 복귀
복귀.
100년? 100년이나 걸린다고?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로 내가 달인이 되는데 30년쯤 걸린다고 했으니, 100년이란 시간은 내가 달인이 3번은 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족히 강산이 열 번은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기도 하고.
나는 디스펜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조금 규모를 줄여서 더 빨리 복구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최소 1년 안에 어느 정도 전투가 가능하게요.”
망가진 기계 눈이 나를 보며 깜빡였다.
– 후계자님. 혹시 성함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 이름은 마르낙입니다.”
– 예. 마르낙 후계자님. 후계자님께서 말씀하시는 소규모라는 게 어느 정도의 소규모를 말씀하시는 건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제국’의 사분지 일을 정복할 정도의 부대면 소규모입니까? 아니면 제국의 팔분지 일을 정복할 정도면 소규모입니까?
아무래도 이 불쌍한 기계들은 여기 연구소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탓에 고대 제국이 멸망한 것도 모르는 듯했다.
“제국은 망했습니다.”
디스펜스가 더욱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사분오열한 제국의 잔당들이라! 이거 정복이 더욱 쉽겠군요! 그렇다면 조금 규모를 줄여서 50년 내로 복구해내보이겠습니다!
“1년 내로는 무리입니까?”
– 1년 말씀이십니까?
천장에서 튀어나온 금속 집게가 디스펜스의 눈을 긁적였다.
– 후계자님. 저도 마음 같아선 후계자님께 당장 모든 군세를 만들어드리고 싶지만, 이게 대규모 생산이라는 것은 그 ‘원료’와 ‘생산설비’가 필요한 법입니다. 생산에 필요한 연료는 자연스러운 덤이고요. 이 주변의 자원분포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는 이상, 저는 생산설비를 완비하고 필요한 자원들과 연료를 채취하는데 적어도 20년에서 30년의 기간이 걸릴 거라 보고 있습니다.
당장은 별 쓸모가 없는 건가 그럼. 내가 고민하는 사이, 천장에서 튀어나온 금속 손들이 빠르게 디스펜스의 눈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디스펜스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 드디어 시각 센서를 복구했군요! 이 얼마 만에 보는 통제실인지!
금속 눈이 고민하고 있는 날 보더니 빠른 속도로 깜박였다.
– 그렇게나 빠른 시일 내로 군대를 준비해야 할 만큼 혹시 후계자님을 위협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겁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악신의 숭배자들도 그렇고 사제들도 그렇고 언제든 내게 적의를 드러낼 수 있었으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금속 눈이 들썩거렸다. 누가 봐도 그 힘찬 몸짓엔 기쁨이 한가득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적! 적이 존재하시는 거군요! 제가 적들을 모조리 말살하고 후계자님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드릴 군대를 만들어내겠습니다! 1년이라! 이거 엄청 바쁘게 움직여야겠군요! 좋습니다! 후계자님! 이 디스펜스가 정말정말 극히 일부의 군대를 1년내에 복구해내 보이겠습니다! 후계님께선 이 연구소 안에서 딱 1년만 편히 쉬시고 계십시오!
디스펜스는 뭔갈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저 들썩이는 기계 눈의 착각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저는 이곳에 머무르지 않을 겁니다. 해야할 일이 이미 한가득이거든요.”
커다란 기계 눈이 움찔하더니 제자리에 멈춰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서, 설마 후계자님도 저희를 떠나시는 겁니까…? 밖은 위험합니다! 저 디스펜스가 후계자님에게 최대한의 안락함을 선사해드릴 테니 후계자님은 이곳에서 푹 쉬셔주셨으면 합니다! 후, 후계자님이 1년 안에 만들라는 군대도 어떻게든 쥐어짜서 11개월! 11개월로 줄여 보이겠습니다!
‘살해살해?’
겨우 11개월이면 이곳에 숨어 있다가 기계들의 군대와 함께 성물을 찾으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냐는 물음.
확실히 안정적인 측면에서는 그게 옳았다. 하지만 나는 한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늘 그렇듯이.
바로 메인퀘스트의 존재. 요즘 연이어 벌어지는 대규모 악신의 숭배자들의 활동이 메인퀘스트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쟈멜이 내게 토해냈던 고백들 중에서 한가지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신 하나를 ‘추락’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그 말이.
뭔가 이대로 이곳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디스펜스를 향해 손짓했다.
“잠시 이리 와보십시오.”
– 네.
끼릭거리면서 움직인 기계 눈이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손을 뻗어 기계 눈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저는 제 것을 잘 안 버립니다. 얻을 수 있는 것을 굳이 포기하지도 않고요. 그러니 혹시 이렇게나 멋진 유산을 제가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절대 당신들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기계 눈이 부르르 떨렸다.
– 후, 후계자님…!
격한 감동에 파들파들 진동하는 그 모습이 꼭 누군가를 닮아있었다. 디스펜스는 눈을 아래로 꾸벅 숙이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이 디스펜스! 후계자님을 믿겠습니다! 후계자님께선 마음껏 대륙을 주유하십시오! 이 디스펜스는 그동안 이 대륙을, 아니 이 차원 전체를 후계자님께 바칠 군세를 만들어서 후계자님을 보필하겠습니다!!!
‘살해…?’
저 기계 너무 쉬운 성격인 거 아니냐는 물음. 나는 어머니도 딱 저 정도로 순둥이라고 말씀드리려다 당장 날뛸 게 분명해서 참았다.
– 그래도 후계자님 혼자 보내드리기엔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니, 부디 후계자님께서는 테르지오를 데리고 가셔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남은 자원들을 이용해서 테르지오를 최대한 수리해보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 무섭게 금속 기사는 내 옆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 부디 제게 후계자님을 보필할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 주시길.
4미터 금속 기사는 데리고 다니기엔 너무 눈에 띄는데, 일단 다른 종족들에게는 금인족이라 우길 수도 있겠지만. 진짜 금인족이 테르지오를 본 순간, 그가 금인족이 아님을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건 너무 눈에 띄어서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테르지오가 잽싸게 대답했다.
– 그건 아무 문제도 안 됩니다!
그 말과 동시에 테르지오가 순식간에 줄어들며 손에 들고 움직일 수 있는 장난감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자그마해진 테르지오가 힘차게 외쳤다.
– 저를 주머니에 넣어주십시오! 후계자님! 저는 후계자님이 필요하실 때 한 명의 기사가 되어 후계자님의 검이 되겠습니다!
‘살(殺)!!!’
주머니는 자신의 자리이며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강렬한 주장. 마르낙에 주머니에 탈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혼자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혹시 평범한 사람 크기도 가능하시겠습니까?”
– 가능합니다!
천천히 늘어난 테르지오는 이내 2미터 크기의 금속 기사가 되었다. 금인족으로 우기기도 딱 적당하고, 설령 금인족과 마주친다면 고대 유적에서 얻은 고대 유물이라고 말하면 될듯했다. 2미터 크기라면 4미터 때와 달리, 로브를 뒤집어씌워서 적당히 정체를 숨길 수도 있었다.
이모탈리움으로 이루어진 기사라. 이거 진짜 든든한 조력자가 생겼네.
“좋습니다. 테르지오는 저와 동행해 주십시오.”
– 영광입니다!!!
그 외침과 동시에 천장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집게가 테르지오를 잡아채서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디스펜스는 외눈을 끔벅이며 신나서 말했다.
– 당장 테르지오의 수리에 들어가겠습니다! 대충 3시간 정도면 응급처치가 끝날 테니 후계자님께선 기다려주시길!
“예. 그러겠습니다.”
‘살해!’
이제 완전 부자라는 어머니의 기쁜 외침. 여기 남아 있는 이모탈리움 병사들만 팔아도 황금으로 산을 쌓을 수 있을 테니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여태 내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쟈멜이 두 눈을 반짝이며 혼자서 ‘이, 이건 화, 황금 동앗줄이다…!’라며 중얼거렸다.
“마르낙 사제님.”
“예.”
내 옆에 다가온 다키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완전 축하드려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축하드려요!”
아, 포소리나의 이야기를 못 들었으니 다키아는 잘 모를 수도 있겠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덕담을 나누고 있던 와중 바삐 움직이던 디스펜스가 내게 말했다.
– 아, 후계자님. 후계자님이 보내주셨던 무리에게서 이모탈리움을 회수해뒀습니다.
그 머리가 탄 금속 병사를? 뭐, 어차피 포소리나가 가지고 나가나 디스펜스가 가지나 거기서 거기이니 별 상관 없었다.
“잘하셨습니다.”
‘살해!’
유적에서 나갈 때, 그건 달라고 하자는 어머니의 외침. 나는 디스펜스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나갈 때 그 금속 병사를 챙겨가도 괜찮겠습니까?”
– 어째서인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직접 말하기 살짝 쑥스러웠지만,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말을 꺼냈다.
“팔아서 돈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 혹시 후계자님께선 가난하십니까?
도박장에서 번 돈도 있고, 가난까지는 아니었다. 완전 부유한 것도 아니었지만.
“평범합니다.”
– 평범하다니! 후계자님의 재정상태가 무척이나 걱정되는군요! 그럼 이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 이모탈리움은 중요한 전략자원이니 밖의 세력에게 파는 것보다 연구소 안에 두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대신, 제가 다른 자원들을 채취할 때 황금과 보석의 채취 비율을 조금 높이겠습니다. 당장은 어느 정도 생활할 돈이 있으신다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디스펜스가 이 대륙의 모든 재화를 후계자님께 쓸어모아서 바치겠습니다!!!
‘살해…?!’
디스펜스가 너무나 유능한 탓에 어머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살해살해!’
왠지 위치를 위협당하는 듯한 원인 모를 불안감이 몰려온다며 투덜대는 어머니를 토닥이며 나는 쓰게 웃었다.
“대륙의 모든 재화까지는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후계자님과의 대화는 제게 있어 빛과 소금과도 같습니다! 아, 둘 다 제겐 필요가 없긴합니다만. 관용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디스펜스에게 질문을 꺼냈다.
“아까부터 뭔가 채취한다고 자꾸 말씀해주셨는데, 그건 마치 이 연구소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듯이 들리는군요.”
금속 눈이 세차게 끄덕였다.
– 맞습니다! 후계자님! 이 연구소는 수륙양용인 동시에 하늘까지도 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살짝 작아진 기계음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물론, 지금 현재는 너무 망가진 탓에 대부분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지하로 움직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설을 복구한 다음 복원에 필요한 자원들을 채취하러 갈 생각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축된 자원을 모조리 투입해서 복구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하로 움직이는 연구소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대단하군요.”
– 칭찬 감사합니다!
기계 외눈이 들썩이며 기쁨을 표했다.
***
3시간 뒤, 푸른 망토를 휘날리며 말끔해진 테르지오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디스펜스는 흥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 달인이 아닌 이상, 응급처치를 한 테르지오를 일 대 일로 대적할 수 있는 상대는 없을 겁니다! 시간과 자원만 충분했다면 테르지오를 ‘달인’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복구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그렇게 제가 만들어 드릴 테니 후계자님께서는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디스펜스는 저 혼자 계속 말을 이어갔다.
– 테르지오에게 저와 통신할 수 있는 단말을 넣어뒀으니 저와 연락하고 싶거든 언제든 테르지오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금속 외눈이 나를 바라보며 끔벅였다.
– 그럼 이제 잠시 작별이군요. 후계자님. 이 디스펜스는 항상 후계자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자그마한 부탁을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던지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말씀해보십시오.”
– 굳이 그래 주실 필요는 없지만… 가끔 내키시거든 테르지오를 통해 제게 연락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설마 디스펜스는 실론처럼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건가. 나는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기계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후계자님!!! 이 디스펜스가 반드시 이 세계를 후계자님 앞에 무릎 꿇려 보이겠습니다!!! 후계자님께선 저를 전적으로 믿어주십시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여기서 잔뜩 기뻐하는 디스펜스의 기를 죽이기도 뭐했다.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포소리나와 악신의 숭배자들과는 다른 출구를 통해 유적에서 빠져나왔다.
***
며칠 후.
“드디어 돌아왔군요. 길었습니다.”
내 말에 다키아가 저 멀리 보이는 수도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왠지 돌아오는 데, 엄청 오래 걸린 기분이에요. 따지고 보면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죠. 이거 전부 기분 탓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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