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78)
78 화 출발.
출발.
새카만 로브를 눌러 쓴 사내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발!!!”
그는 그림자들로 꽁꽁 묶인 사내가 절규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새카만 동굴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붉은 로브가 빙그레 웃었다.
“뭐해? 어서 먹이 주고 가자고.”
검은 로브의 사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바닥에서 일어난 그림자들이 절규하는 사내를 포박한 채로 동굴 안으로 뻗어 나갔다. 묶인 남자는 버둥대며 절규했다.
“제발! 제발!!!”
붉은 로브는 절규하는 사내를 보곤 피식 웃었다.
“아주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나 몰라.”
그 미소가 채가시기도 전에 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뼈째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붉은 로브는 두 눈을 감고 손가락을 까딱이며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파육음을 감미로운 음악을 듣듯이 음미했다.
잠시 후. 다시금 적막이 내려앉자 붉은 로브는 조금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저 안에 있던 게 한땐, ‘신’이었다니. 진짜 우습지 않아? 이런 거 보면 신도 별거 아니란 생각이 자주 든단 말이야.”
검은 로브의 사내는 붉은 로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성모독이다.”
붉은 로브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충 대꾸했다.
“진짜 신성모독은 내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우리가 저 드높은 천상의 신을 ‘추락’시킨 짓이겠지. 그런데 ‘저걸’ 아직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짐승에 가깝다고 보는데.”
검은 로브는 어둠이 자리 잡은 동굴 안쪽을 힐끔 보고는 대답했다.
“저것은 아직 ‘신’이다. 저 몸뚱이에 깃든 이토록 강렬한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느껴지지. 암. 느껴지고 말고. 그런데 신이 품고 있는 힘이 강하다고 되는 거면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약간 실망인데? 자고로 신이라면, 내가 모시는 분처럼 ‘품위’가 있어야지. 저런 야만적인 생물은 내 기준에선 ‘신’이 아냐.”
붉은 로브가 키득키득 웃는 와중, 검은 로브가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각 교단들이 자신의 전사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아, 그거? 하긴, 너는 여기 틀어박혀서 ‘저것’을 관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느라 정보를 못 들었겠네. 걔네 모여서 말살성전단(抹殺聖戰團)인가 뭔가 하는 소꿉장난을 하려나 보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기로 결정됐나?”
“어쩌긴. 무시하는 거지. 그 녀석들은 ‘성물’을 이용하는 방법조차 모르잖아? 우리는 그냥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성물을 찾고. 신을 추락시키고…”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날카로운 괴성이 동굴에서 튀어나오자, 검은 로브의 사내가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버둥대는 새로운 희생자가 그림자에 붙들려 끌려왔다. 검은 로브의 사내는 기계적으로 희생자를 동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동굴 안에서 새어 나오던 비명이 멎었다.
붉은 로브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점점 주기가 빨라지네? 이거 기분 탓이 아니지?”
검은 로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하고 있는 거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 완성될 듯하군. 완전하진 않겠지만.”
“이야. 그럼 시험 상대가 필요하겠네?”
“시험 투입 지역은 이미 결정됐다. 조금 전에.”
“거기가 어딘데? 이 징그러운 짐승이 날뛰게 될 장소는?”
검은 로브의 사내는 그림자를 이용해 또 하나의 희생자를 끌어오며 대답했다.
“북부왕국.”
***
붉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날개를 펼친 네 번째 별이 말살의 성전사들을 보며 큰소리를 외쳤다.
인간의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거센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첫 원 정 은 내 가 너 희 를 이 끌 기 로 결 정 됐 다 !
떨어진 네 별 중, 네 번째 별은 새빨간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성전사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 모 두 들 어 라 !
화염으로 이루어진 창날이 뻗어 나가 북쪽을 가리켰다.
– 우 리 는 북 부 왕 국 으 로 간 다 ! 우 리 는 그 곳 에 서 추 락 한 신 을 말 살 한 다 ! 알 겠 나 ? 신 의 전 사 들 이 여 ! 성 전 이 우 리 를 기 다 린 다 !
네 번째 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말살성전단에 모인 일천의 성전사들이 북부왕국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성전(聖戰)을 치르기 위해.
***
“와후! 완전 이제 완전 생생해졌어! 진짜 너무 고마워! 마르낙! 내가 진짜 믿고 있었다니까!”
“감사합니다.”
내가 어머니의 손을 이용해서 남아있던 신성을 제거하자, 카르멘과 사지타는 수복교의 사제를 불러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고 바로 병상에서 일어났다.
카르멘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뒤에 있는 분들을 소개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나를 따라온 테르지오와 쟈멜이 조금 멀리 떨어져서 서 있었다. 나는 손짓으로 그 둘을 불렀다. 내 부름에 둘은 냉큼 발을 놀려 내 옆에 다가와 섰다.
내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쟈멜이 힘차게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쟈멜! 요리는 어느 정도 하고! 잡일도 어느 정도 해요!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성실성 하나만큼은 누구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맡겨만 주세요!!!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왈왈!!!”
마지막 왈왈 짖는 소리에 카르멘은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쟈멜이라는 분, 혹시 마르낙 너한테 죄지은 거 있어? 아니면 원래 저런 분이야?”
“죄, 죄라뇨!”
잽싸게 튀어나온 쟈멜이 빠르게 입을 놀렸다.
“저는 그저 마르낙 사제님이라는 황금 동앗… 아니. 마르낙 사제님의 온화한 성품과 관대한 자비심에 감화되어서 여러분들을 보필하고 싶어서 지원한 거예요!!! 아, 그리고 혹시 돈 될만한 일이라면 뭐든 살짝 귀띔만 해주시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며칠 지낸 동안 알게 된 사실인데, 쟈멜은 무척이나 돈을 좋아했다. 왜 상인이 아니라 악신의 숭배자가 된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카르멘은 여전히 살짝 얼떨떨한 눈빛으로 쟈멜을 보고서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릴게요. 쟈멜 양. 저는 카르멘 발타스라고 해요.”
“말씀 편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카르멘 발타스님!!!”
“어, 응…”
쟈멜이 사지타와도 인사를 끝마치고 나자, 묵묵히 서서 기다리고 있던 테르지오가 눌러쓴 로브의 모자를 벗으면서 기계음을 토해냈다.
–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후계자님의 동료분들. 저는 후계자님을 보필하는 세 번째 기사 테르지오라고 합니다.
짧고 굵은 인사에 카르멘은 내게 물어왔다.
“금인족 분이시야?”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테르지오가 금인족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 들통 날 게 뻔했으니, 카르멘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금인족 분은 아니십니다. 대충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저랑 공녀님이 고대제국의 유적을 하나 공략했는데 거기서 얻은 고대 제국의 유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하.”
카르멘은 빙그레 웃으며 테르지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테르지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 저도 쟈멜 양에게 하신 것처럼 말을 놓아주셔도 됩니다. 카르멘 발타스님은 후계자님의 동료분이시니까요.
“어, 음. 그럴게.”
뒤이어 사지타와 테르지오가 인사를 나누던 와중, 사지타는 테르지오를 보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테르지오와 악수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나중에 시간 날 때, 한 판 붙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그 물음에 테르지오는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 그건 후계자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할 듯싶습니다. 그리고 사지타님도 제게 반말해 주시는 편이 조금 더 편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분이 서로 대련하겠다는 데, 제가 굳이 막을 이유도 없지요. 편하신대로 하시면 됩니다.”
테르지오는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로브를 눌러썼다. 그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는 내 명령을 아주 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 후계자님께서도 허락하셨으니, 시간이 나는 대로 실력을 겨뤄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지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표정이 없는 테르지오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듯해 보였으니, 아무래도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을 보낼 듯싶었다.
새로운 동료의 소개가 끝나자, 내 옆에 서 있던 카르멘이 다키아를 향해 물었다.
“그럼 이르멜가의 영지인 베아투스로는 언제쯤 다시 출발하는 편이 좋겠습니까?”
다키아는 카르멘과 사지타를 번갈아 보고는 싱긋 미소 짓고서 대답했다.
“두 분이 괜찮아지시는 대로 떠날까 싶은데, 따로 조금 더 할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카르멘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큰일들은 대충 다 처리해둬서 남겨둔 일은 없습니다. 하루 이틀 내로 떠나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사지타. 너는 어때?”
“저는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공녀님.”
다키아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나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모레 수도를 떠날까 하는데, 어떠세요? 마르낙 사제님?”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렇게 우리는 이틀 뒤에 북부왕국의 수도 프루이나를 떠났다.
***
수도를 떠나고서 일주일 뒤.
여관 의자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다키아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진짜 수상하네요. 마르낙 사제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대답했다.
“확실히 뭔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하군요.”
수도를 떠나 수도에서 남쪽에 위치한 베아투스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괴상한 소문들을 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차례.
다키아는 물이 든 컵은 매만지며 말했다.
“베아투스 주변 영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다니. 대체 제 오빠는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건 차차 알아봐야 할 듯싶습니다. 아직 베아투스까진 조금 거리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베아투스까진 적어도 빠르면 2주, 늦으면 3주 정도는 꼬박 더 걸어가야만 했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걸음걸이가 훨씬 빠른 우리들의 기준으로도.
나는 조용히 미소 짓고서 다키아에게 말했다.
“비단 공녀님의 오빠 분이 아니어도 베아투스에는 미소공(微笑公) 칼토 이르멜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이 알아서 잘 대처하실 테니,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버지요…?”
다키아는 조금 침울해진 눈으로 일행을 둘러 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들, 어차피 저랑 같이 베아투스로 가면 알게 될 사실이니 미리 말씀드릴게요. 아무래도 굉장히 민감한 사항인 데다, 마땅히 말할 기회가 없어서 여태 말을 안했는데 말이에요…”
잠깐 뜸을 들인 다키아가 아주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아버지, 미소공(微笑公) 칼토 이르멜은… 지금 노망(老妄)이 나신 상태예요… 그래서 제정신이 아닌 채로 방안에 틀어박혀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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