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80)
80 화 대화.
대화.
‘살해.’
어머니는 나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불쾌한지, 내 다리 위에 걸터앉아서 다리를 꼰 채로 다키아를 째려보았다.
‘살해살해.’
쟤는 고민이 있으면 혼자 열심히 고민해서 답을 내지 뭐하러 여기까지 왔냐는 차가운 말. 나는 투덜대는 어머니의 머리를 꾹꾹 눌러서 마사지해드렸다. 어머니는 두 눈을 꼭 감고 내 두피 마사지에 집중했다.
‘ㅅ…ㅏ…ㄹ….’
어머니가 헤실헤실 웃는 틈을 타서 나는 다키아에게 물었다.
“고민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다키아가 할 고민이란 건 보지 않아도 뻔했지만. 분명, 가문과 관련된 고민이겠지.
“하아.”
폭하고 한숨을 내쉰 다키아가 내 눈을 힐끔 보고는 내 옆으로 와서 침대에 기대앉았다. 그녀는 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벽을 보고 독백하듯이 말하기로 결정한 듯싶었다.
나는 내게 기댄 어머니의 두피를 꾹꾹 눌러드리며 다키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똑한 콧날과 아름답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눈. 씻은 지 얼마 안 된 은발은 아직 조금 덜 말라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따뜻한 물로 상기된 뺨을 톡톡 두드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요…”
“예.”
다키아는 벽을 보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갔다.
“언제나 저를 ‘마법사’라고 일단 꺼리고 보는 이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주고 싶었어요.”
이거 살짝 찔리는 데. 나도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다키아가 마법사란 이유로 그녀와 거리를 뒀으니까.
“그래서 저는 항상 열심히 노력했어요. 마법을 쓰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억누르고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어요. 틈틈이 검술도 열심히 익히고요. 사실, 그 저변에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없다고는 말을 못 하겠네요. 마르낙 사제님도 소문으로 들으셨다시피 제 아버지인 미소공께서는 그다지 자식들에게 살가운 분이 아니셨거든요. 그분은 자신의 자식들을 대하기를 딱 자신의 신하를 대하는 정도로만 대했어요.”
다키아는 옛날 일을 떠올리는 그녀의 입에선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나 오빠나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아왔죠. 같이 아둥바둥 대는 처지면서도 오빠는 절 항상 무척이나 싫어했어요.”
“어째서입니까?”
그녀는 쓰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어머니가 절 낳으면서 돌아가셨거든요. 어머니께선 살 기회가 있으셨지만, 저와 당신의 생명 중에 저를 택하시고는 돌아가셨어요. 덕분에 오빠는 항상 저를 보면서 어머니를 잡아먹고 태어난 괴물이라고 불렀어요. 뭐 따지고 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니었죠.”
어머니를 잡아먹고서 마법사로 태어난 공녀라. 그건 태어난 순간부터 귀족 가문에서 사랑받기 힘든 조건들을 잔뜩 갖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공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바라서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요. 공녀님이 어떻게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다키아는 잠깐 두 눈을 끔벅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마르낙 사제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해주실 것 같았어요. 하여튼 저는 오빠에게도 미움받고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컸어요. 가문의 하인들은 저를 알게 모르게 기피했고요. 마치 저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처럼 여긴 거죠. 어린 시절 저는 이르멜가를 이어받고 싶었어요. 누구 보다도 현명한 가주가 되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모조리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발가락을 꼬물대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노망이 나시고, 마틴 경이 실권을 잡자, 제 오빠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어요. 제 오빠는 무능하다기보다는 유능한 쪽에 무척이나 가까운 사람이거든요. 오빠는 어린 시절부터 제가 감히 어떠한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게 견제하면서 자신의 기반을 단단히 했어요.”
다키아는 잠깐 뜸을 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마 제가 당장 이르멜가로 되돌아가더라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제 혼약은 이르멜가의 대다수 가신들이 동의한 덕에 성립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혼약이 무효로 될 때까지 잠깐 잠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이야기가 점점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혼약을 거부할 수 없게 되자 다키아가 가문에서 수도로 가출한 건가. 그리고 다키아는 가출한 상태에서 납치된 거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납치된 그녀를 구할 때, 분명 그녀는 이르멜가의 마차를 타고 있었다.
“그때 제가 보았던 마차는 다키아 공녀님께서 탔던 물건이 아니었겠군요.”
다키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마차는 제가 몰고 나온 물건이 맞긴 해요. 다만, 가문을 나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퀴가 고장 나는 바람에 수리할 줄을 몰라서 버렸지만요. 길가에 버려둔 걸 어떻게 찾아냈는지 정말. 거기에 절 태워서 납치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직 우리는 다키아의 납치를 사주한 의뢰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수도에서 떠난 뒤로 암살자들의 습격이 뚝 하고 끊기기도 했고.
“공녀님께선 공녀님의 오빠분께서 납치를 사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키아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제 오빠가 했든, 오빠의 가신이 했든 누군가는 제가 용왕국 왕자에게 얌전히 시집이나 가길 바라서 했겠죠. 괜한 분란 거리를 치우는 심정으로요. 얼굴도 모르는 용왕국 왕자한테는 미안하게 됐지만, 저는 죽어도 그쪽이랑 결혼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거든요?”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까 말씀하시기로 어차피 돌아가 봤자 별다른 행동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그럼 어째서 저희에게 베아투스까지의 호위를 의뢰하신 겁니까?”
벽을 바라보던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제가 딱히 큰일을 할 수 없긴 하지만, 제 납치는 또 다른 이야기잖아요. 감히 이곳 북부왕국에서 미소공의 딸을 납치하다니, 그 주모자는 삼대를 멸하고도 남을 중죄인걸요. 저는 그 점을 물고 늘어져서 저희 오빠의 기반을 흔들어보려고 했어요. 덤으로 용왕국과의 혼약을 무위로 돌리고요.”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내게 말했다.
“사실, 오빠의 기반을 흔드는 건 저 혼자선 무리니까 혼약을 무위로 돌리는 게 주된 목적이기는 했어요.”
‘살해!’
다키아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나도 모르게 두피마사지를 멈췄었다. 나는 손이 멈췄다며 팔을 휘휘 휘두르며 항의하는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다시 어머니의 두피를 부드럽게 꾹꾹 눌러드렸다.
‘ㅅ…ㅏ…ㄹ….’
어머니가 다시 내 손길에 머리를 맡긴 걸 확인하고는 다키아를 향해 물었다.
“그럼 공녀님께선 대체 무엇을 고민하고 계신 겁니까?”
다키아는 내 눈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고민하는 건 단 하나예요. 가주가 되어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제 꿈이 과연 제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인가 하는 거죠. 이르멜가의 가주의 자리란 북부 왕국의 넷밖에 없는 대영주의 지위인 동시에 수많은 이들을 이끄는 자리잖아요.”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발끝으로 향했다. 다키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딱였다.
“솔직히 마르낙 사제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과 같이 다니면서 든 생각인데요. 저는 아직 누군가를 이끌기엔 무척이나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자기가 맡아야 할 짐의 무게도 모르는 주제에 단순히 절 무시한 사람들의 코를 한 번 눌러주겠다고 가주의 자리에 앉고 싶다고 철부지처럼 떼를 쓰고 있었던 거죠. 지금처럼 마르낙 사제님과 함께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까딱이던 발이 멈췄다.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린 다키아가 진지하게 물어왔다.
“마르낙 사제님.”
“예.”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역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베아투스로 돌아가서 오빠와 한판 붙어봐야 할까요? 아니면 이대로 베아투스에서 적당히 재산만 챙겨서 마르낙 사제님을 따라다닐까요?”
한마디.
그녀의 말 저변에는 내가 딱 한마디만 해준다면 언제든지 귀족으로서의 모든 걸 포기하고서 내 곁에 남겠다는 의미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내 마사지에 정신이 팔려서 아직 눈치를 못 챈 것 같지만.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키아에게 답했다.
“그 누구도 태어나길 다른 이들을 이끄는 자로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녀님께서 자신이 가주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건 영 틀린 말입니다. 물론, 공녀님께서 가주의 자리에 앉으면 분명 사소한 사고들이 잔뜩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다키아는 입술을 삐죽였다.
“마르낙 사제님도 절 그렇게 보셨네요.”
나는 그 귀여운 투정에 피식 웃었다.
“사람 말을 원래 끝까지 들어보셔야 하는 법입니다. 공녀님. 자고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공녀님께선 처음엔 다소 헤맬지도 모르지만, 끊임없이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신다면 공녀님께선 분명 이르멜가의 모든 가신들이 우러러보는 위대한 가주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의 두피를 꾹꾹 눌러주던 두 손을 한 손을 떼어내고는 엄지로 내 가슴을 쿡하고 찔렀다.
“제가 봐온 다키아 공녀님은 주어진 상황을 무력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항상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분이셨으니까요.”
그녀는 납치된 상황에서도, 구해진 뒤에도, 여정을 가는 와중에도, 나를 도와주는 와중에도. 자신의 일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녀라면 어떤 자리를 맡게 되더라도 능히 다른 누구보다도 빛날 수 있으리라.
다키아는 잠깐 침묵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너, 너무 평가가 후하신데요. 저는 그렇게까지 뛰어난 사람이 아닌데…”
“제가 본 공녀님은 그렇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공녀님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네.”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한껏 진지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저는 공녀님의 고민에 답을 제시해드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자신의 고민에는 스스로가 답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훗날 만약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되더라도 타인의 권유로 한 선택했을 때보다는 훨씬 미련이 적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서 말했다.
“덤으로 저는 제가 감히 다른 이들에게 답을 제시해줄 만큼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고민하는 분께 제 생각을 조금 들려드리는 정도가 제 최선입니다.”
다키아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마르낙 사제님 말씀은 결국 제가 알아서 결정해라 이거네요.”
“역시 공녀님께선 제가 본 대로 무척이나 영민하십니다.”
황금빛 두 눈이 나를 한가득 담았다.
“이제보니 마르낙 사제님은 약간 치사한 면이 있으시네요.”
나는 그녀를 마주 보며 마주 웃었다.
“공녀님께서도 마찬가지십니다.”
“그럼 이번 건 쌤쌤이었던 거로 해요.”
다키아는 내 침대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두 분 다 잘 주무세요. 저는 그럼 이만 자러 가볼게요.”
“좋은 밤 되시길.”
쿵하고 내 방문이 닫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다키아는 고개만 빼꼼 내밀어서 나를 보고는 재빨리 말을 뱉어냈다.
“혹시 제가 너무너무 필요하다 싶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그럼 마르낙 사제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테니까요!”
다키아는 귀까지 새빨개진 채로 문을 쾅하고 닫고 사라졌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 두피 마사지를 즐기셨고.
‘ㅅ…ㅏ…ㄹ…ㅎ…ㅐ…’
***
다음날 마을을 떠나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오자, 말살성전단의 사제 둘은 우리보다 일찍 마을 떠난 뒤였다.
나는 자꾸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쟈멜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에 혹시 뭐라도 묻었습니까?”
쟈멜은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나? 증오를 담아서 노려보는 것보다는 눈을 반짝이면서 바라보는 게 천 배는 나으니까.
나는 그녀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그럼 저희도 떠나죠. 베아투스까지 갈 길이 멉니다.”
***
그렇게 베아투스까지 순조롭게 열흘 정도 걸어온 와중,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마을에 묵기 위해 진입했다.
‘살해…?!’
여관을 찾아 마을을 가로지르는 내내 어머니께선 당혹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살해!’
여기 지나다니는 마을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손가락의 개수가 읽히지 않는다는 외침.
마을 사람들 전원이 악마일 리는 없고, 대충 알아본 결과 말살성전단과도 별 상관이 없는 이상.
이 기현상의 원인으로 짐작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악신의 숭배자와 리베라티오.
나는 일행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아무래도 조금 긴장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평범한 마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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