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91)
91 화 결백해…?
결백해…?
“전 진짜 무고하다고요!!! 분명 무슨 오해가 있을 거예요! 분명히요!!!”
쟈멜은 전혀 무고하지 않고 악신의 숭배자인 것도 맞았지만, 그래도 여태 같이 여행했던 동료인 이상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살해살해.’
정말 안타깝지만, 괜히 얽히지 말고 그냥 보내 주자는 어머니의 속삭임. 나는 어머니의 손을 꾹 누르며 다키아에게 말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쟈멜을 저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요. 저기요! 잠깐만요!”
다키아의 외침에 버둥대는 쟈멜을 질질 끌고 가던 경비병들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우리는 빠르게 걸음을 놀려 경비병들을 향해 다가갔다.
쟈멜은 멈춰선 경비병들 사이에서 완전 울상을 짓고서 소리쳤다.
“저 진짜 무고해요! 마, 마르낙 사제님도 아주 잘 아시잖아요! 제, 제가 엄청나게 결백하다는 사실을요!”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경비병들 중 하나가 쟈멜을 가리며 우리를 향해 말을 걸어 왔다.
“혹시 이자를 알고 계십니까? 다키아 공녀님.”
경비병들이 멈춰선 이유는 다키아가 누구인지 파악해서였다. 저들에겐 내 말보다 다키아의 말이 훨씬 영향력이 있을 테니, 나는 잠깐 뒤로 물러나 다키아가 경비병들과 편히 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흠흠.”
다키아는 잠깐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지금 잡아가는 여자분은 여태 저와 함께 여행했던 동료인지라, 자세한 사정을 들려주셨으면 하는데요.”
쟈멜은 포승줄에 온몸이 포박된 채 두 눈을 반짝이며 다키아를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구원자를 보는 것처럼.
“여, 역시 다키아 공녀님은 절 외면하지 않으시리라 믿었어요!”
경비병은 쟈멜이 뭐라 떠들든 무표정한 얼굴로 다키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익명의 고발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묵고 있는 숙박객들 중 악신의 숭배자가 있다는 익명의 고발이 말입니다. 저희는 그 고발에 따라 악신의 숭배자로 추정되는 이 여인을 잡아가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익명의 고발요?”
“예.”
다키아는 잠깐 말을 고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제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발 때문에 문답무용으로 사람을 잡아가다니, 너무 강압적이지 않나요?”
“최근 북부왕국에서 악신의 숭배자들이 벌인 대규모 사건들 때문에 지침이 엄격하게 바뀌었습니다. 악신의 숭배자들로 의심되는 자들은 우선 체포하고 보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경비병은 뒤에 묶여 있는 쟈멜을 힐끔 보곤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공녀님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악신의 숭배자들은 그 정체를 지극히 은밀하게 감추고 다니니, 같이 여행을 하신 공녀님이라고 해도 이자의 정체를 못 알아채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이 여인의 진짜 목적이 공녀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일지 말입니다.”
현재 동시에 여러 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악신의 숭배자들 때문에 꽤나 큰 피해를 입은 북부 왕국의 입장을 고려하면, 쟈멜을 대하는 저 경비병의 태도는 지극히 옳았다. 다키아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경비병에게 신중하게 질문을 골라 던졌다.
“그럼 쟈멜은 대체 언제까지 신병을 구속당하게 되는 거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마침 말살성전단의 사제분들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참이라, 저희가 그분들께 연락을 넣으면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빠르면 내일, 늦어도 며칠 내로 이 여인이 악신의 숭배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주실 겁니다.”
“히끅!”
말살성전단이라는 단어에 쟈멜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거칠게 딸꾹질을 시작했다.
이건 곤란한데. 진짜 많이 곤란한데.
악신의 숭배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북부왕국에 진입한 말살성전단이라면 악신의 숭배자를 판별해 낼 수 있는 ‘성물’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명분이 완전히 저쪽에 있었다.
단순한 익명의 제보 하나만으로 쟈멜을 붙잡아 가는 것도, 경비병들 입장에선 일단 의혹이 있으면 체포한 다음 말살성전단에 부탁해서 진짜 악신의 숭배자임을 확인받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상 이렇게 대처하는 게 무척이나 당연했다.
여기서 이들의 행동을 저지하면 오히려 우리가 악신의 숭배자들과 결탁하고 있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 오해를 받았다간 앞으로의 여행길에 애로사항이 꽃필 게 분명했다.
어쩌지.
‘살해살해.’
참으로 안타깝지만, 여기선 쟈멜을 포기할 때라는 어머니의 조언. 그 말을 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전혀 안타까운 사람의 것이 아니었지만, 사소한 문제기에 흘려 넘겼다.
“공녀님. 이 여인은 공녀님의 지인인 만큼 최대한의 인도적인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악신의 숭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지체 없이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히끅!”
우리는 저 경비병을 막을 명분이 전혀 없었다. 다키아는 침중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나라고 해서 작금의 상황을 돌파할 뾰족한 수가 있을 리도 없었고. 베아투스 한복판에서 경비병들을 두들겨 팬 다음 쟈멜을 데리고 도망칠 수도 없으니까.
나는 두 눈을 글썽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쟈멜의 시선을 외면했다. 내 외면을 확인한 쟈멜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다키아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거린 끝에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가… 보세요.”
“예.”
경비병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다른 이들을 지휘해서 쟈멜을 데리고 떠나갔다. ‘히끅!’거리는 딸꾹질 소리가 천천히 멀어져 갔다. 다키아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쟈멜의 등을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진짜 어떻게 하죠?”
쟈멜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완전히 시간문제였다. 거기다 카르멘과 사지타는 쟈멜이 악신의 숭배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쟈멜이 악신의 숭배자라는 게 밝혀진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마 곧장 말살성전단 쪽으로 신병이 인도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리베라티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고문을 받게 되겠죠. 그것도… 죽을 때까지요.”
다키아는 무척이나 어렵게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떻게 쟈멜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저도 지금 당장은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
문득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쟈멜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이.
겉으로 정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악신의 숭배자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성물’의 원리는 대부분 비슷했다.
그 어떤 종류의 신을 모시든, 권능을 사용하는 사제들의 몸속에는 모시는 신의 신성이 항상 잔류해 있다. 지극히 미세한 양이라 다른 사제들이 그 신성의 존재를 읽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악신의 숭배자를 찾아내는 ‘성물’들은 그런 미세한 잔류 신성을 파악해서 악신의 숭배자들을 판별해 낸다.
그 말인즉, 성물을 사용해서 쟈멜을 검증하기 전에 쟈멜의 몸속에 있을 ‘엉겨붙는 바위’의 신성을 모조리 제거해 둔다면, 성물은 쟈멜이 악신의 숭배자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몸속에 남아 있을 미세한 양의 잔류 신성을 제거하는 일은 그 누구라도 불가능했다.
“무슨 방법이 떠오르신 거죠? 그렇죠?”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키아에게 대답했다.
“예. 쟈멜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지. 나도 무리니까.
하지만 ‘신’이 직접 쟈멜의 잔류 신성을 없애 버린다면 어떨까?
봉인을 풀고 성장하신 어머니는 몇 번이고 다른 악신의 신성을 정화해서 순수한 신성으로 만들어 내 보이셨다. 만약 어머니가 직접 쟈멜의 잔류 신성을 정화한다면 쟈멜을 완전 무죄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힘을 써 주신다면 쟈멜의 정체를 숨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해!’
내가 왜 굳이 그 여자를 구하기 위해 직접 힘을 써야 하느냐는 어머니의 대꾸. 나는 어머니의 손을 토닥여 드리며 말했다.
“저는 어머니께서 쟈멜을 구하는 걸 도와주신다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습니다.”
‘살해!!!’
방식이 무척이나 치사하다는 외침.
‘살해살해!’
어머니께선 내가 그렇게 말하는 데 안 도와주면 자기 입장이 어떻게 되느냐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어지는 잠깐의 침묵.
‘살해…’
고민을 끝마친 어머니께선 결국 그 짐 덩이를 도와주는 건 딱 이번 한 번만이라며 항복 선언을 하셨다. 나는 가슴 주머니를 토닥여 드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졌다는 걸 눈치챈 다키아가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향해 힘차게 말했다.
“그럼 당장 쟈멜을 면회하러 갈까요? 언제 말살성전단의 사제분들이 성물을 들고서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면회는 안 됩니다. 어머니께서 신성을 정화하시려면 직접 모습을 드러내셔야 하는데, 면회를 한다면 지켜보는 경비병이 있을 테니 모습을 드러내실 수가 없습니다.”
내 말뜻을 파악한 다키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예.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쟈멜이 갇혀 있을 감옥에 무단침입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무단침입 말씀입니까?
여태 조용히 내 옆에 서서 나와 다키아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테르지오가 힘차게 입을 열었다.
– 후계자님이 누구보다도 은밀하게 침투하실 수 있도록 이 세 번째 기사 테르지오가 돕겠습니다!
***
“훌쩍.”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한 쟈멜은 감옥의 구석에 앉아 혼자 훌쩍였다. 사실, 숙취로 자던 와중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경비대에게 붙잡힌 터라 빼앗길 물건도 몇 개 없긴 했지만.
“훌쩍.”
쟈멜은 서늘한 감옥 벽에 등을 대고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마르낙이라는 이름의 사제를 따라온 건 실수였던 걸까? 최근엔 여행하는 동안 딱히 자신을 감시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틈을 노려서 도망쳤어야 했을까? 마르낙은 황금 동아줄이 아니었던 걸까.
애초에 쟈멜은 딱히 악신의 숭배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채 도시의 뒷골목에서 전전하며 배를 곯던 그녀에게 손을 뻗어 온 게 악신의 숭배자였고, 그렇게 악신의 숭배자들이 거둬들인 고아들 중에서 운 좋게 신께 선택받아 사제가 되었을 뿐인 인생이었다.
“엉겨붙는 바위시여… 저 이제 진짜 어떻게 해요… 훌쩍.”
도망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 도시 한복판에서 권능을 사용해서 감옥을 탈주하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마르낙 사제님이 과연 나를 구해 주러 오실까… 그, 그래. 마르낙 사제님은 정이 많은 분이니까 나, 나를 구하러 와 주실 거야! 분명히 그럴 거야!”
그녀는 스스로 다독이며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캄캄한 밤. 일렁이는 횃불을 따라 쟈멜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경비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그때. 창살 너머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두 남녀가 솟아났다. 두 남녀의 정체를 확인한 쟈멜의 눈이 커졌다.
“쟈, 쟈른? 그리고 지, 지젤?!”
눈앞에 나타난 두 명의 남녀는 고대유적에서 헤어졌던 자신의 옛 동료였다.
오랜만에 보는 두 얼굴에 쟈멜은 반가움을 느꼈다가, 이내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공교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을 악신의 숭배자라고 고발했고 그 탓에 이렇게 잡혀 왔는데, 감옥에 갇힌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기다렸다는 듯이 쟈른과 지젤이 나타난다?
엄청난 우연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쟈멜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설마 나를 고발한 게 너희들이야…?”
여인이 푹 눌러 쓰고 있던 로브의 모자를 벗자, 검은 머리가 탐스럽게 늘어졌다.
지젤은 쟈멜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맞아. 그간 잘 지냈어? 이 ‘배신자’야.”
***
샤샤샥.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에 건물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의 시선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바라본 방향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쥐인가? 하암.”
작게 하품한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자그마한 은빛 동체가 반짝였다.
자그마한 은빛 기사는 누구보다도 잽싸게 달려서 경비병 시야의 사각을 이용해 감옥 안으로 진입했다.
그의 임무는 단 하나. 마르낙과 다키아가 잠입하기 전에 먼저 감옥에 잠입해 쟈멜이 갇혀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서 그 정보를 마르낙에게 전해 주는 것.
손바닥만 한 크기로 몸을 줄인 테르지오는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 모든 것은 후계자님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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