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92)
92 화 기사와 맹수.
기사와 맹수.
테르지오는 자그마한 다리를 바삐 놀려 감옥 복도를 질주했다.
보초를 서던 경비병들은 테르지오가 달리면서 내는 사부작거리는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히 손바닥만 한 금속 기사가 쟈멜을 찾아내기 위해서 지금 베아투스의 감옥에 잠입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지는 못했다.
샤샤샥.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테르지오는 침착하게 1층의 감옥을 모조리 살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쟈멜이 감금된 장소는 1층이 아니었다.
– 음.
손바닥만 한 테르지오는 계단 앞에 서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 상반된 방향을 가리키는 두 계단이 테르지오의 앞에 있었다.
과연 어느 쪽을 먼저 수색하는 게 옳은가?
테르지오의 금속 머리가 탈탈거리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키아 공녀의 부탁을 제대로 들어 먹은 경비병이 쟈멜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쾌적한 상층 감옥에 그녀를 감금해 뒀을까, 아니면 어차피 실권도 없고 별다른 지지 기반도 없는 공녀의 말 따윈 한 귀로 흘려듣고 지하에 그녀를 감금해 뒀을까.
– 어렵군.
쉽게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엔 테르지오에게 이곳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다.
테르지오가 진지하던 그때.
찌직.
거대한 불청객이 등장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타고서 늘어지는 침. 족히 테르지오의 네 배는 될 법한 몸뚱이. 잔뜩 기름기를 머금어 더러운 윤기가 가득한 검은 털.
검은 들쥐는 자신의 영역을 활보하는 강철 기사를 향해 누런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진한 경계심을 드러내 보였다.
샛노란 짐승의 눈을 마주한 테르지오는 묵묵히 검을 빼 들었다.
그는 이 거대한 괴수와의 사투를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통짜 이모탈리움 검이 주황빛 횃불의 빛을 반사해 일렁였다.
적이 이빨을 드러냈다. 상황 파악을 끝마친 들쥐는 그르렁거리는 울음을 내뱉으며 이 맛없어 보이는 침입자를 자신의 영역에서 쫓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찌지직!!!
먼저 움직인 건, 본능에 몸을 맡긴 검은 들쥐였다. 네 발로 자리를 박찬 검은 들쥐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테르지오를 향해 돌진했다.
– 어딜!
테르지오는 침착하게 몸을 날려 들쥐의 공격을 피해 내고 이쑤시개만 한 검을 내질러 들쥐의 몸을 찔렀다.
찌이이이익!!!
하지만 상대와의 덩치 차이가 너무 컸다. 이쑤시개만 한 이모탈리움 검은 성공적으로 들쥐의 몸뚱이를 헤집었지만, 그건 이 거대한 들쥐의 두꺼운 가죽에 상처를 남긴 것에 불과했다.
찌익!!!
굵직한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와 테르지오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꼬리의 힘을 이기지 못한 테르지오가 검을 놓치고 그대로 튕겨 나가 콩 하고 벽에 처박혔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른 그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털었다.
– 이런.
신성과 마력, 그리고 과학이 이루어 낸 이 ‘축소’의 기술은 모든 면에서 완벽했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한 탓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실론의 기술들이 작동하는 방식은 대부분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과학을 이용해 짜인 최고로 효율적인 루트를 따라 연료의 역할을 하는 마력이 질주해 물리법칙을 현상화하고, 마지막으로 신성이 해당 물리법칙을 비틀어 현세 이루어 낼 수 없는 결과를 발생시킨다.
그 결과, 손바닥만 하게 축소된 테르지오의 질량은 딱 지금의 몸뚱이 크기에 걸맞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겨우 저런 쥐의 꼬리에 맞고 튕겨 나갈 정도로.
테르지오는 거대한 들쥐를 노려보며 비장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 감히 후계자님의 계획을 방해하려 들다니! 나는 오늘 여기서 널 베겠다!!!
찌지직!!!
금속 기사와 들쥐의 포효가 교차하며 둘을 거침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테르지오를 한입에 물어뜯기 위해서 벌어졌다. 거대한 들쥐의 새빨간 목구멍 너머에는 새카만 어둠만이 가득했다.
금속의 기사는 당연히 눈앞에 있는 괴수의 이빨 따윈 두렵지 않았다. 그는 감히 자신을 집어삼키려 하는 무례한 들쥐에게 진정한 의미의 정의를 구현해 주기 위해 통짜 이모탈리움 주먹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그리고 그때.
“아. 쥐새끼가 오늘따라 왜 이리 많이 돌아다니지? 하. 진짜 개시끄럽네. 하, 상부에 보고하고 날 잡고 쥐약을 풀든지 해야지. 진짜. 맨날 내가 근무할 때마다 ‘찍찍! 찍찍!’ 하고 울어 대지 말라고! 다 꺼져! 이 쥐새끼들아!”
찌직?!
– 헛?!
둘과는 감히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경비병의 신경질적인 외침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복도 너머에서 나타난 거대한 경비병 거인의 두 눈이 검은 들쥐와 테르지오를 향했다. 그는 반짝이는 은빛을 보곤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토해 냈다.
“어?”
경비병과 눈이 마주친 테르지오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서로를 향해 돌진하던 와중 생긴 빈틈. 거대한 맹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침없이 자신의 이빨을 테르지오에게 박아 넣었다.
찍?!
전혀 씹히지 않는다. 이 공교로운 사실에 진심으로 놀란 들쥐는 일단 입 안에 가득 찬 테르지오를 자근자근 씹어먹기보다 눈앞에 인간에게서 우선 도주하는 걸 선택했다.
찌지지직!!!
그렇게 테르지오는 거대한 들쥐의 입에 물린 채, 감옥의 지하로 끌려갔다.
“음?!”
방금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비병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형 같은 게 반짝였던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건가…?”
***
쟈멜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배신자라고…?”
검은 머리를 탐스럽게 흐트러뜨린 여인, 지젤은 쟈멜의 밝은 녹색 눈동자를 쏘아보며 날카롭게 말했다.
“그래. 이 배신자야! 응? 유적에서 따로 떨어지는 바람에 네가 죽기라도 했을까 봐 기껏 걱정해 줬더니, 결국 다 의미 없는 짓이었더라?”
경멸이 듬뿍 담긴 시선이 쟈멜의 몸에 틀어박혔다.
“우리가 유적을 빠져나오느라 그 생고생을 하는 동안, 너는 그냥 그 마르낙이라는 사제 놈하고 붙어먹고서 아주 편하게 지냈지? 응?”
쏟아져나오는 은빛 병사들. 그 기계 병사들은 차가운 몸뚱이를 자랑하며 지젤과 쟈른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그들이 그 끈질긴 추격을 겨우 뿌리치고 유적을 벗어난 건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적어도 지젤이 느끼기에는.
사실 그들의 도주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쟈멜이 마르낙에게 매달리듯이 부탁한 덕이었지만, 당연히 쟈른과 지젤은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쟈멜은 지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빨리 대답했다.
“어, 억울해요! 완전 억울해! 둘을 살리려고 그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마르낙 사제님한테 안 부탁했으면 너희 둘 다 꼼짝없이 유적 안에서 죽었을 거란 말이야!”
쟈멜의 변명에 지젤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지금 쟈멜이 궁지에 몰리니까 되는 대로 중얼거리는 것임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애초에 쟈멜이 내세우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기에.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보다 더 늦게 들어온 그 마르낙이라는 사제가 사실은 유적에서 쏟아져나오는 고대 제국의 병기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 거네?”
자신의 말이 통한다고 생각한 쟈멜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 맞아! 지젤! 내가 다 설명해 줄 수 있어! 진짜로!”
지젤은 팔짱을 끼고서 창살 너머에서 벽에 몸을 기대곤 툭 하고 말을 던졌다.
“그럼 어디 자알 설명해 봐.”
당연히 쟈멜을 믿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저 배신자가 어떤 말을 주워섬길지 궁금했을 뿐.
“유적이 제멋대로 움직인 탓에 내, 내가 너희랑 떨어지고 나서 있잖아? 나는 우리가 찾던 발굴단 사람들을 발견했거든? 그런데 갑자기 막 은빛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일단 그 발굴단 사람들한테 물어볼 게 있으니까 죽게 내버려 두기도 뭐해서 도와줬어! 하지만 혼자서는 조금 역부족이었고, 내가 위기에 빠졌던 그때 마르낙 사제님이 짠 하고 나타나서 나랑 같이 그 은빛 병사들을 없앴어!”
지젤은 쟈멜의 말을 듣던 와중,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툭 하고 질문을 내뱉었다.
“아까 네가 말하기론 그 마르낙이라는 사제가 은빛 병사들을 조종할 수 있다며? 앞뒤가 안 맞지 않아? 대체 왜 그 마르낙이라는 작자가 너랑 같이 그 기계 덩어리들이랑 싸운 건데?”
“그건 아직! 아직 마르낙 사제님이 유적의 통제권을 얻기 전이었거든! 드, 들어 봐! 그 뒤로 막 상위 기체 투입이니 뭐니 하면서 쟈른의 두 배는 족히 될 만큼 커다란 은빛 기사가 커다란 검을 치켜들고서 뛰쳐나왔단 말이야? 근데 그 은빛 기사가 딱! 마르낙 사제님을 쳐다보더니 무릎을 턱! 하고 꿇고는 ‘후계자님!!!’ 막 이러면서 우리를 거대한 기계 눈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는데, 거기서 마르낙 사제님이 사실은 고대제국의 황녀인…”
“그만! 거기까지만 해!”
날카로운 한마디가 쟈멜의 설명을 끊어 냈다.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설명하고 있던 쟈멜이 우뚝 멈춰 서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지젤은 쟈멜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딴 휘황찬란한 거짓말에 나랑 쟈른이 속아 넘어갈 거라 생각한 거야? 뭐? 고대 제국의 황녀? 그리고 그 후계자? 거대한 기계 눈? 아무리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다지만 허풍이 너무 심하잖아. 나는 쟈멜 네가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애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네. 진짜. 평소엔 맨날 ‘돈돈.’ 하면서 돈만 밝히고 온갖 삭막한 티는 다 내더니.”
“거짓말…?”
쟈멜은 무척이나 상상력이 빈곤한 편이었다. 그래서 거짓말에 별다른 재주가 없었고.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전부 진짜야! 진짜라고!”
“그래그래. 대충 네 말이 다 맞다고 쳐. 그러면 대체 왜 유적에서 빠져나온 다음에 우리랑 합류 안 한 건데? 응? 왜 계속 그 마르낙이라는 작자와 같이 다닌 거냐고.”
“그, 그건…”
엄밀히 따지고 보면 쟈멜은 리베라티오의 배신자가 맞았다.
그리고 쟈멜 스스로도 지젤의 추궁을 통해 지금 막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직시했고.
지젤은 차가운 눈빛으로 쟈멜을 노려보며 말했다.
“할 말 없지? 응? 이 배신자야? 우리가 설마 그냥 널 무작정 배신자로 모는 줄 알아? 우리는 네가 그 뻔뻔한 얼굴을 들고서 베아투스로 들어온 그날부터 널 감시했어. 그랬더니 아주 가관이더라? 마르낙이라는 그자는 완전 방심해서 널 방치해 두고 있는데, 너는 수십 수백 번도 더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헤벌쭉 웃으면서 그자 뒤를 졸졸 따라다녔지. 안 그래?”
지젤의 말이 다 맞았다. 쟈멜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신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그대로의 ‘배신자’였다.
쟈멜은 쟈른과 지젤의 눈치를 보고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그래! 너, 너희도 마르낙 사제님 편에 붙어! 마르낙 사제님은 진짜 황금 동아줄이거든! 게다가 엄청 착하신 분이니까 너희 둘이 먼저 손을 내밀면 흔쾌히 받아 주실 거야!”
“하!”
지젤은 비릿한 비웃음을 내보였다.
“이제 혼자 배신한 거로도 모자라, 우리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는구나? 아주 배신자가 체질이지? 그치? 그리고 뭘 보고 그 마르낙 나부랭이에게 붙어. 너는 모르겠지만, 이곳. 베아투스는 이미 우리 ‘리베라티오’의 손아귀 아래에 있어. ‘추락한 신’이 이미 이곳에 있…”
“그만. 더 이상 떠드는 건 허락하지 않겠다. 지젤.”
쟈른의 나지막한 경고에 지젤은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더 말할 생각은 없었거든?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마.”
지젤은 쟈른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인 다음 쟈멜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리 우리가 한솥밥 먹고 자라났다고 해도, 배신자를 봐줄 수 없다는 건 잘 알지? 리베라티오는 어떤 경우에도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아.”
그녀는 품속에서 한 자루의 총 모양 고대 유물을 꺼냈다. 새카만 총구가 쟈멜의 미간을 향했다. 지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단번에 보내 줄게. 아, 괜히 권능을 사용해서 막으려고 하지 마. 여긴 베아투스 한복판이고, 네가 권능을 사용했다간 그 신성을 느끼고 당장에 달려올 말살성전단만 해도 수십 명이거든. 너도 알지? 걔네한테 잡혔다간 차라리 나한테 죽을 걸 하고 후회할 정도로 더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될 거란…”
“빨리 쏴라. 지젤. 말이 너무 길군. 네가 하지 않겠다면 내가 하겠다.”
쟈른의 서슬 퍼런 선언에 지젤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같은 고아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커 온 쟈멜을 쏜다는 게 그녀라고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이 빌어먹을 멍청이는 대체 왜 배신을 해서!!!’
지젤이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자, 보다 못한 쟈른이 직접 나섰다.
“비켜라. 지젤.”
“어?!”
그는 미처 지젤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의 손에서 고대 유물을 뺏어 들고는 쟈멜을 향해 겨냥했다. 쟈멜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웅크리며 소리쳤다.
“주, 죽기 싫엇!!!”
“잘 가라. 배신자.”
굵직한 손가락이 방아쇠를 거침없이 잡아당겼다.
탕!
새카만 총구가 탄환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때.
– 감히!!!
찌지직!!!
들쥐를 탄 은빛 기사가 쥐구멍 사이로 나타나 질주했다. 은빛 기사는 여태 자신을 태워 준 들쥐의 등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축소’를 해제했다.
순식간에 2미터 크기로 불어난 테르지오가 거침없이 이모탈리움 대검을 휘둘렀다.
텅!!!
허공을 가르며 그려진 궤적이 정확하게 탄환을 이등분했다. 갈라진 탄환이 테르지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 벽을 꿰뚫었다.
은빛 기사의 투구 구멍 너머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분노한 테르지오가 소리쳤다.
– 이 무도한 것들이 어딜 감히 후계자님의 동료분을 건드리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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