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ncess pretends to be crazy RAW novel - Chapter 112
113화
아시어스는 입술 사이를 파헤치는 그녀를 더 깊이 빨아들이며 나른한 훈기에 몸을 맡겼다.
아, 이것을 위해서라면. 이 넘치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복수가 아니라 그의 해묵은 증오마저 버리라 해도 기꺼이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온몸이 빛으로 가득 채워진 것 같은 여자가 따스한 체온으로 그를 감싸 안았다.
구원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어둠에 반쯤 몸을 담근 그도 빛 속에 서 있다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사랑스러운, 오직 그만을 위해 준비된.
* * *
숨 막히게 진한 장미 향이 온 별장 구석구석 감돌았다. 1층 홀의 벽난로 앞이며 복도의 창가, 침실에까지 수천 송이의 장미가 가득 피어 있었다.
루비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장미가 흐드러진 하얀 시트 위에 찬란한 금빛이 번졌다. 하얗게 빛나는 여자의 나신에 숨이 막혔다.
아시어스는 목이 졸리는 듯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예뻐.”
그는 늘 이 여자를 볼 때면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보는데 새삼스레 또 반했다. 죽은 가족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조차 입을 맞추고 살을 섞을 때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 가장 빛나는 사람. 하얀 살결 아래 장미꽃이 부드럽게 짓이겨졌다.
아시어스는 꽃잎 한 장을 들어 둥글고 탐스럽게 솟은 가슴에 문질렀다. 그녀의 가슴에 붉은 꽃즙이 들었다. 그녀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간지러워.”
아시어스는 대답 없이 꽃물이 든 가슴을 입에 물었다. 키들거리던 웃음이 금세 가느다랗게 앓는 소리로 바뀌었다.
짙은 장미 향조차 하얀 살결에서 배어 나오는 체향에 묻혔다. 그는 숨을 깊이 내쉬며 입술을 문질렀다.
“예뻐…… 정말로.”
그의 손이 가는 허리를 지나쳐 허벅지로 내려갔다. 그대로 무릎을 접어 올려 부드러운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리즈벨이 움찔하며 몸을 뒤틀었다.
“발은…… 하지 마.”
“왜요?”
하얀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리즈벨이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 몇 곳 있었다.
아시어스의 입가에 옅은 호선이 떠올랐다.
“여기는 미처 몰랐네.”
“……!”
손이 발바닥의 움푹 들어간 곳을 스치자 가는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 아시어스!”
그가 결국엔 발가락 끝을 작게 깨물자 리즈벨이 급히 침대에 팔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더러워. 하지 마.”
“더러워요? 어디가?”
아시어스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고개를 기울이더니 그 특유의 마력 같은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당신이 더러우면 세상에 깨끗한 게 없을 텐데.”
“아읏…… 하지-.”
“‘하지 마’라뇨, 리즈벨.”
아시어스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가 흥분할 때면 으레 그렇듯 눈매가 야살스럽게 휘어졌다.
“당신은 오늘 내 선물이잖아요.”
리즈벨은 느리게 휘는 잿빛 눈을 보고는 숨을 삼켰다. 발가락이 핥아지는 느낌에 등골에 전율이 흘렀다. 가는 손가락이 시트를 쥐어짰다.
아시어스는 발에 한참을 집착하다 리즈벨이 안달이 날 때가 되어서야 아쉬운 얼굴로 놓아주었다.
“하루에 하나씩 괴롭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한쪽 허벅지가 들린 채로 느릿하게 몸이 포개어졌다. 리즈벨의 입술이 벌어지며 급히 숨을 들이켰다.
“오늘은 발. 내일은 가슴. 모레는 목…….”
“하윽…….”
그녀가 매끄럽지만 숨이 막히게 그를 조여 왔다. 아시어스는 짧게 숨을 끊어 쉬며 허리를 움직였다.
“아…….”
행위는 거칠지 않았다. 느릿하고 은근한 자극에 리즈벨의 눈꼬리가 붉게 달아올랐다.
벼락에 내리꽂히는 듯한 쾌감이 무엇도 생각할 수 없게 사고를 앗아 간다면, 최근 들어 유리 공예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은근해진 섹스는 다른 의미에서 버티기가 어려웠다.
“사랑해요.”
낮은 신음과 함께 흘러드는 애정이 몸을 가득 채웠다. 리즈벨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기다렸다는 듯 그가 그녀를 들어 올렸다. 아래에서 그가 잠시 떨어졌다 다시 깊이 박혀 오는 느낌에 리즈벨이 고양이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흘렸다.
아시어스는 침대 등받이에 기댄 채 그녀를 무릎 위로 올렸다. 시선이 같은 눈높이에서 맞닿았다.
“흐…….”
그녀의 무게로 두 몸이 빈틈없이 꽉 맞물렸다. 리즈벨이 쾌락으로 달뜬 숨을 내쉬었다.
아시어스는 흐트러진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꽃잎에 물들어 군데군데 붉어진 몸이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만이 망가뜨리고, 울리고, 빨개질 때까지 지분거릴 수 있는 여린 살들.
리즈벨이 허리를 들썩거렸다. 아시어스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움직임을 도왔다. 이제까지 죽 느리고 세심하기만 하던 행위에 점차 속도가 붙으며 격해졌다. 은밀한 살과 습한 체액이 마구 마찰한다. 하나로 연결된 데에서 오는 충족감이 이제는 구멍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온몸을 가득 채웠다.
이대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녀 안에 머물러도 좋을 것만 같았다…….
“하윽……!”
리즈벨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희락의 절정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아시어스는 그녀의 뒤통수를 붙잡고 제게로 끌어 내렸다.
“사랑한다고. 후, 다시 말해 줘요.”
다시 마주한 푸른 눈은 초점을 찾지 못하고 잔뜩 흐려져 있었다. 리즈벨은 간신히 손으로 그를 더듬어 끌어당겼다.
“사랑…… 사랑해.”
떨리는 입술이 그의 눈가에 닿았다.
“사랑해.”
“…….”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해…….”
다른 모든 상념이 증발하고 남은 거라곤 그 한 마디뿐인 것처럼 리즈벨이 정신없이 반복했다. 네가 좋아. 사랑해. 너를……. 온몸이 오싹했다.
그는 리즈벨의 어깨를 밀어 도로 눕혔다. 그리고 조급하게 다시 파고들었다.
리즈벨이 진저리 치며 그에게 매달렸다.
“아……!”
절정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잔뜩 눅진하게 풀어진 몸이 다시금 요동치며 그를 물었다. 나락 같은 절정은 금세였다.
정수리까지 치밀어 오르는 쾌감과 함께 시야가 하얗게 물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거세게 집어삼켰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고 인생에 마지막으로 맞은 생일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Chapter 10. 격랑
사람 키만 하게 쌓였던 눈송이들이 차츰 녹고 창문에 끼었던 성에가 서서히 사라져 갈 때쯤, 네키엘에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설산은 조금씩 차가운 흰옷을 벗었다. 아직도 산봉우리는 눈으로 덮여 있었지만 산 아래는 이제 완연한 녹빛으로 물들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네키엘에서 머문 석 달 남짓, 이 작은 시골 마을에는 이미 소문이 다 펴졌다. 라타에의 마탑주와 헬라르의 성녀가 산골짜기 별장에 머문다는 소문이.
마탑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사실로 굳어져 있었다. 대륙에 아시어스의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마법사는 없다. 모든 마력의 원천인 마탑의 마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리즈벨에 대한 소문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리즈벨을 실제로 보지 못한 이들은 성녀라는 소문에 코웃음을 쳤다.
“100년 만에 나타난 헬라르의 성녀가 이런 시골 바닥에 있다고? 그것도 몇 달씩이나? 말도 안 돼.”
그러나 그런 자들조차 리즈벨을 한 번이라도 눈에 담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비단 눈이 튀어나올 것같이 아름다운 외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좀 눌러 봐요, 리즈벨.”
“그게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야.”
리즈벨은 인상을 쓰고 성력이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았다.
지난겨울, 네키엘 성전을 방문해 그녀 안의 권능을 실체화한 뒤로 성력은 툭하면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헬라르의 성력은 100년 동안 대륙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력의 기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았다.
그러나 기실 헬라르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땅, 바다, 바람, 이 땅에 움직이는 모든 것에 깃든 권능. 그러니 성력의 발현을 단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은 기운이다.
리즈벨이 지나가는 곳마다 시선이 쏠렸다. 꼭 자신이 인간들의 눈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즈벨은 아시어스의 손을 잡아끌며 작게 투덜거렸다.
“사슬에 묶여 있을 때를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어.”
“취향 참 극악하네요.”
아시어스가 매끄럽게 대꾸했다. 얼핏 장난스러움이 깃든 목소리였다.
“뭐, 당신이 원한다면 ‘묶어’ 줄 수는 있는데.”
“묶…….”
리즈벨이 기가 막혀 쳐다보자 그가 입매에 예쁜 호선을 걸었다.
“돌아가서 해 볼까요?”
“그런 취향이야?”
“재밌을 것 같은데.”
“네가 묶이는 쪽을 해, 그럼.”
“……그런 취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