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ncess pretends to be crazy RAW novel - Chapter 150
151화
그의 미간에 팬 주름이 깊어졌다. 아시어스는 그녀의 몸에 돌돌 말린 시트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걸 뭐라고 생각했는지, 리즈벨이 대번에 정색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만해, 이제. 더는 못 해.”
“더 알고 싶은데…….”
아시어스가 아쉬운 눈으로 그녀의 쇄골 부근을 응시했다.
그가 ‘탐구’한다는 목적으로 종일 그녀를 물고 빠는 바람에 리즈벨은 한시도 아시어스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꼬박 하루 하고도 반을 더 보내며 그녀는 제대로 옷을 걸친 시간보다 시트 한 장만 달랑 말고 있을 때가 더 길었다.
가슴과 허벅지 사이가 욱신거릴 때마다 초록빛 마력이 내려앉았다. 아시어스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거세게 몰아붙이다가도 귀신같이 그녀의 상태를 꿰고 회복 마법을 걸었다.
“피로가 누적되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이런 말이나 지껄이는 게 우습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리즈벨은 아시어스가 그녀의 얼굴 이곳저곳에 입 맞추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중얼거렸다.
“그럼…… 좀 놔둬…….”
“왜 나한테만 그래요. 당신도 좋아하잖아요. 내 몸.”
그렇긴 했다. 컨디션이 회복되고 나면 어쩔 도리 없이 리즈벨은 다시 아시어스에게 손을 댔다. 닿아 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도로 사라질 것 같아서였지만 아시어스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그가 만져 오면 금세 달아오르는 자신도 또 문제였고.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온몸이 지나치게 예민했다.
아시어스가 기어이 시트를 잡아당겼다. 리즈벨은 천 쪼가리 끝을 잡고 버텼다.
“못 해, 진짜- 아시어스!”
그러나 힘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결국 시트는 아시어스의 손에 들려 침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눈앞에서 사라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말을 잘 듣고 있으면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이런 뜻은 아니었어. 너 때문에 아직도 아래가 벌어져 있는 느낌이란 말이야.”
그녀가 대놓고 힐난하자 아시어스가 생글 눈을 휘었다.
“내 모양대로 길이 나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그게 당신에게도 좋지 않을까요? 내가 들어갈 때마다 버거워하면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리즈벨이 입을 닫아 버리자 톡톡 쪼는 듯한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그는 리즈벨이 알던 아시어스와는 확실히 달랐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이고, 솔직했다.
그녀를 늘 불안하게 했던 불안정하고 처연한 기색이 사라진 대신 온 얼굴이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시어스는 놀랄 만큼 빠르게 그녀를 파악해 나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자세, 버거워하는 체위,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지까지.
“말 잘 들을게요. 한 번만 더 하게 해 주면. 응?”
“…….”
“내가 예쁘다면서요.”
전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떨떠름해 하더니 지금은 이용하려고 든다. 그녀를 숨도 못 쉬게 짓누르는 건 일도 아닌 남자가 낑낑거리며 보채면 리즈벨은 늘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그녀는 한숨과 함께 물었다.
“그럼 씻게 해 줄 거야?”
“씻겨 줬잖아요.”
“따듯한 물에 몸 담그고 싶어. ……혼자.”
리즈벨은 재빨리 덧붙였다. 아시어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 얼른 닿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리즈벨은 가까스로 덧붙였다.
“천천히 해. 살살. 아까처럼 거칠게 하면 나 정말 화낼 거야.”
“알겠어요. 참아 볼게.”
아시어스의 손이 붙잡은 허리, 그의 숨결이 닿은 쇄골과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자극이 곧 넘실거리며 그녀를 점령해 나갔다.
“역시 내가 했다는 그 말들은…… 후우……. 진심이 아니었을 거예요.”
아시어스는 약속한 대로 꽤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리즈벨은 짧게 숨을 끊어 쉬었다. 몸이 간헐적으로 움찔거리자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남자가 꾹 눌린 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잖아요. 조각조각 부서졌어도 그 조각 하나하나가 전부 나인데.”
“그런, 데……?”
“그러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본심은 같았을 거란 말이죠.”
아시어스는 그가 처음으로 떠올린 기억과 최대한 비슷하도록 자세를 고쳤다. 리즈벨이 소리 없는 신음을 흘렸다. 아시어스는 작은 뒤통수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늘 같이 있고 싶었을 거야.”
쪽. 하얀 어깨에 입을 맞춘 남자가 허리를 얕게 쳐올렸다. 느리고 은근한 자극에 리즈벨의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그러면서도 잠긴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늘……?”
“응.”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못했어도, 어쩌면 스스로는 의식조차 못 했었더라도. 그가 이런 여자를 두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조각이나마 다시 돌아와 그녀에게 각인되고 싶은 거겠지.
그를 얽어매던 모든 비극이 말소되고 나서야 바닥에 고여 있던 감정에 빛이 들었다.
“읏…….”
리즈벨이 허리를 바르르 떨었다. 좀 더 그녀 안에 있고 싶은데. 아시어스는 리즈벨의 허리를 감아 몸을 밀착하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 몇 번이나 더.
그녀가 숨 막히게 그를 조여 옴과 동시에 아찔한 욕망이 터졌다. 온몸을 점령하는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며, 아시어스는 절정에 휩쓸린 가는 몸을 더 꽉 끌어안았다.
* * *
마지막 관계를 대가로 드디어 리즈벨은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리즈벨은 이 상황에 기가 차 웃었다.
“사실은 늘 같이 있고 싶었을 거라고…….”
이전의 아시어스는 너무할 정도로 그녀가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았는데. 기억이 없는 아시어스는 귀신같이 그녀를 안정시키는 말만 골라 했다.
“……그래. 역시 이게 맞아.”
리즈벨은 가만히 서서 주위의 기척을 느꼈다.
오두막 뒤쪽 산기슭 구석에는 수풀에 반쯤 가려진 작은 호수가 있었다. 새벽녘이라 짙은 물안개가 도처에 가득했다. 리즈벨은 호수 가장자리에 앉아 발과 종아리를 천천히 물에 담갔다. 맑고 시원한 물이 기분 좋게 그녀를 감쌌다.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불안정하게 일렁이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리즈벨은 가운 소매를 걷었다. 왼쪽 손목에 찍힌 붉은 낙인이 선명했다. 휘릭. 희미한 금빛 성력이 그녀의 몸을 휘감고 치솟아 호수 위를 날았다.
위를 뒤덮고 있다시피 한 수풀이 꽃봉오리가 개화하듯 천천히 벌어지며 파란 하늘을 내보였다. 물안개가 점차 걷혔다.
리즈벨은 잠시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각도를 쟀다. 조그만 요정이 리즈벨의 어깨 위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나가려고? 하지만 여긴 지형이 험해서 네 남자에게 들키지 않고 탈출하기 쉽지 않을 텐데.]“탈출해? 어디로?”
[떠나려고 하는 거 아니야?]“나 혼자 간다고? 아닌데.”
[그럼?]요정은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지금 무슨 생각 하는데?]“어느 쪽이 덜 아플까 생각하는 중이야.”
[뭐?]“잘라 버리든가, 저며내든가. 둘 중 하나인데…….”
[뭐?]요정이 아연하게 되물었다.
[너 방금 뭐라고…….]“없앨 방법이 없다며. 이게 있으면 어디에 있든 위치가 발각될 거잖아. 열도 안 내릴 거고, 아시어스까지 위험해질 텐데.”
거기까지 말하다 리즈벨은 문득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저 남자를 두고 가겠어? 어떻게 다시 찾았는데. 다신 떼 놓을 생각 없어.”
그러니 리즈벨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하나였다. 원흉인 이 낙인을 없애 버리는 것.
리즈벨은 덤덤하게 결정을 내렸다.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뭐든.”
[뭘 확실히 한다는 거야?]낙인이 찍히지 않은 다른 손에 반짝이는 성력의 낫 끄트머리가 쥐어졌다. 가볍게 무기를 휘두르는 기세가 냉혹했다.
“목숨에 비하면 손목 하나 정도야. 싸게 먹히는 장사잖아.”
[미쳤……!]요정이 경악에 차 뭐라 외치기도 전에, 금빛 성력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아래로 쇄도했다. 핏줄기가 튀었다.
* * *
“당신은 최악이야.”
“미안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방법밖에는 없었어. 어차피 상처는 네가 낫게 해 줄 거고.”
“미쳤어.”
“그건 내가 꽤 오래 들어 온 별명…….”
“제발.”
아시어스가 꺼질 듯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
“조용히 좀 해 줄래요? 제발. 나 지금 딱 돌아 버리기 일보 직전이니까.”
평화롭기만 하던 호숫가 이곳저곳에 기괴하게 피가 튀어 있었다. 그녀가 앉아 있던 흙은 붉게 젖었고 투명한 핏물이 호숫가로 흘러들었다. 꼭 살인이라도 난 듯한 풍경이었다. 뿌연 물안개가 호숫가에 다시 잔뜩 끼어 더욱 기괴해 보였다.
리즈벨은 약간 민망한 얼굴로 제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손목의 낙인을 짓이겨 놓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불길함을 감지하고 몰래 뒤따라온 아시어스가 가까스로 마법진을 날려 그녀를 홱 밀어낸 탓이었다.
빗나간 성력의 낫은 리즈벨의 팔뚝을 깊게 베었다. 팔뚝의 상처는 곧 회복 마법에 의해 깨끗이 아물었다. 통증도 씻은 듯 사라졌다.
아시어스가 이를 갈았다.
“차라리 그냥 날 버리고 가는 게 나아요.”
“그럴 생각 없었어.”
“그게 더 낫다고. 못 알아들어요?”
잿빛 눈에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격앙된 감정이 회오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