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ncess pretends to be crazy RAW novel - Chapter 64
65화
남자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아시어스의 입술은 그의 체온만큼이나 서늘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녀의 입술에서 전해진 열기로 화악 타올랐다.
‘이 느낌…….’
그가 그녀에게 물드는 느낌. 그래. 몸서리치게 좋다. 리즈벨은 감질나게 입술 안쪽 점막을 훑고 그가 반응하기 전에 놀리듯이 떨어졌다.
몇 초간 침묵하던 아시어스가 느리게 물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하면 되죠?”
리즈벨의 눈매가 색정적으로 휘었다. 그녀는 나긋하게 답했다.
“나, 너를 갖고 싶어.”
너를 지배하고, 소유하고 싶어. 네가 다시는 나를 죽일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하게. 하지만 그 속내를 줄줄 고하면 남자는 당장에 그녀를 죽여 버리리라.
아시어스가 그녀를 경계하지 않게, 그를 안심시키면서도 그녀를 안을 수밖에 없게 하는 말.
리즈벨은 그의 입술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하루짜리 관계에 사랑 운운할 셈은 아니지, 아시어스?”
잿빛 눈에 탁 불씨가 튀었다. 리즈벨은 방금의 그 말이 정답이었음을 알았다. 남자가 그녀를 집어삼킬 듯이 키스했다.
* * *
그래. 어차피 사랑해도 사랑한다 말도 못 할 거. 언젠가는 죽여 취할 여자인 거, 지금 좀 즐거우면 뭐 어떤가.
아시어스는 품 안의 여자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리며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리즈벨의 말이 다 맞았다. 그는 그녀를 원하고, 그녀도 그를 원한다.
거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든 없든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단한 건데. 발디마르에서 그랬듯 그들은 서로에게 원하는 것만 취해 가면 그만이다.
그것이 육욕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리즈벨이 그의 뺨을 감싸고 다시금 입술을 포개었다. 은은한 온기가 감도는 입술 사이로 작고 따스한 혀를 내어 그의 입술 안쪽을 깊게 핥았다.
늘 경계심 높고 방어적이었던 여자가 먼저 몸을 붙여 오자 그의 이성은 흐물흐물 녹았다. 손이 성급하게 그녀의 등을 더듬었다.
간소한 드레스의 단추가 그의 손에 맥없이 툭툭 풀렸다. 바스락거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천 조각이 거슬렸다.
리즈벨이 걸치고 있던 크림색 드레스와 속옷이 난잡하게 헤집어지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잿빛 눈동자에 하얗고 매끄러운 나신이 담겼다. 길고 가느다란 목. 하얗고 매끄러운 어깨. 탐스럽게 부푼 가슴과 허리, 골반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굴곡. 그 위에 결 좋은 금발이 햇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시어스는 눈을 깜빡이지도, 호흡하지도 못한 채 겨우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예뻐.”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쁜 몸이었다. 그녀의 나신에 은은하게 감도는 성력의 향이 사고를 마비시켰다.
리즈벨이 그의 목을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너도 벗어.”
가느다란 손가락이 헐렁한 검은 상의 밑으로 들어와 단단한 허리께를 노골적으로 쓸었다. 아시어스는 잠긴 목으로 웃음소리를 냈다.
“아…… 이렇게 자극당하면 안 되는데.”
“안 될 게 뭐 있어?”
“감당은 어떻게 하려고요?”
푸른 눈이 야릇한 빛을 띠고 휘어졌다.
“그런 걱정은 너나 해. 난 안 할 거니까.”
그녀를 짓누르다시피 한 남자의 몸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녀의 체온이 불씨가 되어 금세 화끈 달아오른 몸이었다. 단단하고 뜨거운.
남녀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리즈벨은 모르지 않았다. 발디마르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타락한 왕국이었고, 왕성 곳곳에서는 야심한 시각에 교접의 신음이 터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정사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도 많다.
그때는 그저 색에 미친 자들이라 한심스레 생각하고 넘겼는데…….
제가 갖고 싶은 남자를 눈앞에 두니 리즈벨은 그들의 기분을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인간이 한 인간을 정복하는 아주 원초적인 방법이었다.
그녀의 손이 아시어스의 허리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도발적인 손길을 느끼자마자 아시어스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가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며 그녀에게 숙이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팔을 교차해 상의를 벗어젖혔다.
리즈벨은 눈을 깜빡이며 그의 드러난 상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리즈벨 정도는 간단하게 품에 가둘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체격을 지닌 남자였다.
“이거…….”
그러나 그녀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모양 좋게 짜인 탄탄한 근육이 아니었다. 어깨와 빗장뼈, 왼쪽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
리즈벨의 눈이 그의 흉터에 고정된 것을 눈치챘는지, 아시어스가 그녀의 턱을 붙들고 시선을 억지로 제게 돌려놓았다.
“당신이 집중할 건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리즈벨.”
달칵,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 손으로 끌어들인 남자가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제 나를 감당하셔야죠.”
분명 불을 붙인 것은 그녀였다. 그러나 도리어 흔적도 없이 타 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이 리즈벨을 휘감았다.
상당한 체격 차이와 그의 시선 아래 온전히 드러난 벌거벗은 몸. 그녀는 이런 종류의 자극에 놓여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제 몸을 훑을 때마다 가볍게 소름이 일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대감…….
네가 나를 여기까지 끌어들였지. 시야를 차지한 남자가 꼭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저 하룻밤 관계. 잠깐의 쾌락. 이미 그렇게 정의를 내렸다.
리즈벨의 손이 남자의 등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더 바짝 끌어당겼다.
그는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하얀 살결을 훑어내리는 아시어스의 손에 조급함이 어렸다. 깊고 얕은 입맞춤이 어깨와 쇄골에 자잘하게 흩뿌려지다가, 예고 없이 미끄러졌다.
“……!”
리즈벨은 가까스로 신음이 튀어 나가려는 것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나 금세 손이 붙잡혔다. 아시어스는 가는 손을 깍지 껴 잡고 침대에 내리눌렀다.
“예쁜 소리, 듣고 싶어요.”
아시어스가 도취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흥분으로 까슬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사람을 홀렸다.
“우는 얼굴은 어떨까. 예쁘겠지. 좋아하는 얼굴은 어떨까. 그것도 예쁘겠지. 빌어먹을…….”
나른한 한숨과 함께 어느새 허리와 골반을 더듬어 내려간 손이 갈라진 틈을 파고들었다.
“!”
순간 미약한 통증이 일었으나 이내 사라졌다. 대신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생경한 이물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시어스. 이거…….”
“괜찮아요. 조금만.”
남자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눈과 몸은 그렇지 않았다. 아시어스는 꼭 그녀를 탐색하기라도 하듯 움직였다. 그녀가 보이는 모든 반응이 잿빛 눈에 빠짐없이 담겼다.
낯설기만 하던 감각이 쾌락의 색을 입는 건 금방이었다. 소리 없이 달싹이기만 하던 리즈벨의 입술 사이에서 작은 신음이 터졌다.
“아……!”
“아하. 여기.”
“앗…… 읏, 으응.”
그에게서 도망치고픈 것처럼 허리가 둥글게 말렸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만큼 멀어진 거리가 무색하게도, 그가 손을 움직여 종전보다 더 빡빡하고 깊게 그녀를 벌렸다.
“흐읏…….”
한 번 튀어나간 신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눈을 질끈 감을 때마다 그가 혀끝으로 눈꼬리를 핥았다. 눈을 뜨면 잿빛 눈에 비친 자신이 보였다.
그녀 자신조차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흐트러진 표정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내리깔린 눈꺼풀과 길게 뻗은 눈매, 약하게 짓씹은 입술이, 아시어스가 보였다. 잿빛. 사람을 얽어매는 눈…….
“쉬. 예뻐라. 조금만 참을래요?”
그의 목소리조차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훨씬 더 조급하고, 흥분으로 달궈져 질척하게 고막을 녹였다.
그녀는 손쉽게 그의 품 안에서 흐무러졌다. 몸에 긴장이 완전히 풀린 것을 그녀보다 아시어스가 더 먼저 느꼈다. 얕게 속을 휘젓던 쾌락이 쑥 물러갔다.
리즈벨이 밭게 숨을 몰아쉬는 사이, 뜨겁게 달궈진 몸이 그녀에게 겹쳐졌다. 저를 짓이기는 무게와 이물감을 느끼자마자 리즈벨은 본능적으로 그에게 잡힌 손목을 비틀었다.
“아픈, 건, 싫어.”
“당신이 아픈 건 나도 싫어요.”
초록빛 마력이 휙 얽혔다. 아래에서 알싸하게 느껴지던 통증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안 아플 거야.”
아시어스가 달래듯 그녀에게 깊이 입을 맞추었다. 따듯한 온기에 허벅지 안쪽 근육이 눅진하게 풀어짐과 동시에, 그가 단번에 그녀에게 짓쳐 들었다.
“……!”
들이켠 숨조차 입술을 맞붙인 남자에게 빼앗겼다. 그녀가 도로 숨을 내뱉지 못하고 몸을 떨자 아시어스가 입술을 떼어 내고 대신 이마를 맞대었다.
“흐…….”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리즈벨은 헐떡였다.
“아시, 으. 흑, 너 왜 이렇게…….”
“미치겠네.”
아시어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압박감에 눈을 길게 감았다가 떴다. 그녀가 버거워하는 게 눈으로 볼 것도 없이 몸으로 느껴졌다. 마법을 썼는데도 아파하는데 도저히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제기랄, 빌어먹게 뜨겁고, 좁고……. 사람을 미치게 했다. 결국 아시어스는 잇새로 신음을 뱉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으, 읏……!”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가는 교성이 튀었다. 남자에게 적응할 틈도 없이 통증 같은 날카로운 쾌감이 번졌다.
눈앞이 순간 하얗게 점멸했다.
“아!”
“리즈……. 아, 리즈벨.”
아시어스는 갈증으로 푹 젖은 목소리로 몇 번이나 그녀를 불렀다.
그녀의 입술 안쪽에, 그를 받아들인 은밀한 수원에, 드러난 온 살갗에 눌어붙고 싶은 욕망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리즈, 벨.”
부름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도 더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허리짓이 점차 빠르고 거칠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