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손을 잡자 시체처럼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굉장히 오래된 푸세식 화장실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우리 와이프가 이 프로를 재밌게 보더니만. 별것도 아닌 걸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네요.”
안진호가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했지만, 그 눈빛과 표정에서는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여기 앉아서 이야기 나눌까요?”
그때 김현정이 거실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진호와 김현정, 승현이 소파에 나란히 앉았고 화영과 수연, 태정이 서서 이 셋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김현정의 딸은 음료수를 가져와 일행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림은 어떻게 구매하게 되신 건가요?”
“아. 그 그림말입니까. 일본에 ‘나노카 갤러리’라는 화방이 있습니다. 마이너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자주 전시가 되어 한 번씩 들러보는 곳이죠.”
“나노카 갤러리요.”
“네. 거기서 그 그림을 구하게 됐습니다.”
“그림 제목이 따로 있었나요?”
“‘능소화’였습니다.”
“능소화.”
승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뇌었다.
능소화.
이 꽃에는 꽤 유명한 전설이 있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옛날 임금을 사랑했던 궁녀가 임금을 기다리다 죽어 담장에 묻혔는데 그 뒤로 담장에 능소화가 아름답게 피었다는 이야기였다.
언뜻 보기에는 마냥 아름다운 전설 같지만, 콘텐츠를 재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각자 주제에 맞게 복수의 상징, 혹은 기다림의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어쨌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슬픔’을 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정말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떨리는 것이 어떻게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안진호가 제 가슴을 움켜쥐고 말했다.
“아이고. 아내분이 옆에 계신데 그런 말씀은. 하하하.”
승현이 멋쩍게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내도 그 그림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야 할 텐데 말입니다. 자꾸 이상한 거나 믿고.”
안진호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김현정을 노려보았다.
승현은 볼을 긁적이다 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내분께서 그림이 들어온 이후 가위에 눌리거나 이상한 귀신을 본다는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원래 평소에도 기가 약했어요. 원래 기가 약하면 헛것을 본다잖아요.”
안진호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내가 미쳤다는 거예요?”
그러자 김현정이 공격적으로 물었다.
그냥 놔두면 또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승현이 바로 끼어들었다.
“그래도 같이 지내시는 분이 뭔가 불편함을 느끼시면 그림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할 수 있으셨을 텐데요.”
“허튼소리!”
안진호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승현을 쏘아 보았다.
순간 당황한 승현이 움찔했다.
자신에게 버럭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림을 왜 옮겨! 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저 그림이 있어야 할 곳은 이 집이라고! 저 그림의 집이야. 알아?”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 네, 네. 아, 네.”
승현이 달래듯 손바닥을 펴 보이며 대답했다.
“아빠! 손님한테 왜 그렇게 소리 지르고 그래!”
급기야 김현정의 딸도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러자 안진호는 순간 움찔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딸에게는 이성을 차리는 모양이었다.
“저 그림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승현이 물었다.
안진호가 선뜻 대답하지 않자 그의 딸이 손을 흔들었다.
“안방에 있어요. 가서 보세요.”
그녀가 나서서 승현 일행을 안내해 주었다.
안진호는 무척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뭐라 반박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일행은 안방에 있는 ‘능소화’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승현은 자신도 뭔가 매료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양적이면서도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이 고고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그 어떤 고가의 그림보다도 매력적이었다.
슬픔이 느껴지는 눈빛 속으로 다양한 감정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코에서 느껴지는 악취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만약 악취가 느껴지지 않았으면, 승현도 정신 차리지 못했을 것 같았다.
“와. 그림이 진짜 예쁘긴 하네요.”
화영도 그림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태정은 달랐다.
태정은 그림을 보며 뭔가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영상 촬영을 위해 그림을 클로즈업할수록 기분이 거북해졌다.
“당장 태워야 해요.”
그 순간, 수연이 그림을 보다 말했다.
일행 모두가 수연에게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악귀가 끼어 있어요.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집에 불화가 닥칠 거예요.”
수연이 김현정과 안진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안진호가 버럭 소리쳤다.
“잠시 진정을 좀-”
승현이 안진호를 달래려는 순간, 그가 더욱 거세게 소리쳤다.
“-나가! 이 새끼들아! 이것들이 진짜! 어?! 뭐하자는 건데! 어?”
안진호가 버럭버럭 소리쳤다.
승현이 말리려 했지만 그는 승현의 멱살을 잡고 밀치기까지 했다.
결국 몸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 된 것이었다.
태정은 이 모습을 모두 담고 있었다.
“나가! 나가!!!”
안진호가 고함을 질러버렸다.
“나가자. 나가.”
결국 승현이 한 보 물러서기로 했다.
여기서 소란을 피워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쾅!
그렇게 승현과 화영, 태정, 수연은 집에서 쫓겨나고 현관문이 닫히고 말았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부부싸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요?”
화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냐. 김현정 씨도 곱게 당하기만 할 분은 아닐 텐데, 뭐. 더구나 안진호 씨가 딸 말은 그래도 듣는 거 같으니 폭행까지 가지는 않을 거야.”
승현이 대답했다.
“그래도 혹시 귀신에 쓰여서 무슨 짓을 하면…….”
태정이 걱정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턱대고 신고를 하기도 어려워. 귀신에만 안 쓰이면 그렇게 자상한 아빠, 남편이었다는데.”
승현 입장에서도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그 자리에서 돌아서기로 했다.
“일단 방송국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지금까지 촬영된 거 정리하고. 화영아. 너는 그 나노카 갤러리에 연락해서 ‘능소화’라는 작품이 있었는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승범보살님 찾아뵙고 조언을 좀 구할 필요도 있을 것 같으니 촬영본 복사 좀 부탁하고.”
“네.”
이번에는 태정이 대답했다.
그렇게 일행은 일단 방송국으로 일 보 후퇴했다.
* * *
밤늦게까지 추가 촬영과 분석이 이어졌다.
먼저 나노카 갤러리 쪽에 연락해 ‘능소화’라는 작품에 대해 물어본 결과였다.
‘히우카 나코’라는 예명의 화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낸 그림이었다.
개인적인 사연은 모르지만, 그 그림을 끝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그림을 사지 말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한 한국인 남자가 와서 사 갔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마 그 사람이 안진호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승범보살의 의견도 받아볼 수 있었다.
승현이 잠시 수원으로 가 승범보살에게 직접 촬영 영상과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승범보살 역시 수연과 같은 의견을 내세웠다.
그 그림을 최대한 빨리 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림에 붙은 귀신이 자신이 위험해진 것을 알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영상으로 촬영된 그 그림도 본 방송을 낼 때에는 모두 모자이크를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승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 모든 내용을 수첩에 정리해 두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금 승범보살이 한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한 [미스터리 탐사대] 제작진들은 그 그림을 모두 보았다는 점이었다.
태정은 편집실에서 지금까지 촬영된 영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최종 편집을 하기에 앞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삭제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장혁이 들어왔다.
“이번 촬영도 시끌시끌했다며?”
“네. 그 주인공 아저씨. 삐쩍 말랐는데 성격이 아주 보통 불같은 게 아니에요.”
태정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분량은 좀 나올 거 같아?”
“재연 장면하고 인터뷰 장면. 그리고 집에 방문했을 때 장면들 대충 정리하면 뭐- 한 1/3 정도 나온 것 같아요. 늘리려고 하면 절반까지는 올릴 수 있을 것 같고.”
“나쁘지 않네. 한 회 분량?”
“네.”
태정이 대답했다.
장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태정의 뒤에서 편집 중인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아.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때 태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편집실 밖으로 후다닥 나갔다.
그동안 많이 참았던 모양이었다.
장혁은 마우스로 편집 중인 타임라인을 슥 훑어보았다.
얼마나 작업이 됐는지 확인해 보려는 요량이었다.
“화면 자체는 좀 잔잔하네.”
장혁이 혼잣말을 했다.
그때, 안진호의 안방이 나오며 그림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나왔다.
순간 그림을 본 장혁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아주 미묘하게 뭔가 매료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었다.
지이잉 지이이잉-
편집실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렸다.
하지만 장혁은 그러는 와중에도 편집실 모니터 속 그림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씩 다가가 그림에 손을 뻗었다.
마치 헤어진 오래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남자의 모습처럼 보일 정도였다.
“선배. 뭐해요?”
그때 태정이 들어오며 물었다.
“아. 아니야.”
흠칫 놀란 장혁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저게 그 그림이에요. 이번 제보의 핵심인.”
태정이 자리에 앉아 다시 편집을 시작했다.
장면이 바뀌자 장혁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런 그림은 얼마나 하나?”
“얼마에 샀는지는 이야기 안 했던 것 같아요. 왜요?”
“음. 귀신 쫓아내고 나면 저 그림 내가 사도 되는 거 아냐?”
장혁이 물었다.
그러자 편집을 하던 태정의 손이 멈칫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태정이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렇잖아. 어쨌든 예술 작품인데 무턱대고 태워버리는 건 아닌 거 같고. 퇴마만 되면 소장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렇지.”
“태우는 게 퇴마라고 하잖아요.”
태정이 받아쳤다.
“네가 뭘 알아. 못 배워먹은 것처럼 단정 지어서 말하네.”
순간 장혁이 툭 내뱉었다.
평소 그의 말투와는 다른 공격적인 어조였다.
“네? 뭐라고요?”
태정이 다시 물었다.
장혁은 잠시 생각하는 듯 모니터를 보다 손사래를 치고는 편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태정은 그런 장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쎄한 느낌을 받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