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사실 이런 곳에서 귀신이 나타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보통 저수지에서 나오는 귀신은 수살귀(水殺鬼)였다.
이 귀신들이 풍기는 냄새는 물비린내라 지금 맡고 있는 냄새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그새 내 감이 죽은 건가…?’
태정도 같은 걸 느낀 건지 중얼거렸다.
“아… 씨. 이거 찜찜한데. 왜 하필 이런 데 걸려서….”
“야, 투덜거리지 말고 찍기나 해.”
“뭘 찍어요. 귀신?”
“찍을 수 있어? 그럼 얼른 찍어봐.”
“아닙니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박태정 AD.
그는 승현과 [괴담이즘] 때부터 호흡을 맞춘 후배였다.
그의 외할머니는 용한 무당으로, 그 역시 영적인 기운을 물려받았는지 약간의 영감이 있는 듯했다.
귀신을 보거나 만지지는 못하지만 근처에 있을 땐 뭔가 쎄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귀신의 흔적을 잡아내는 승현과 기운을 느끼는 태정이 함께 있으니 [괴담이즘]이 성공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둘이 다시 뭉친 것이었다.
고작 풍경을 찍는 프로그램이었지만.
* * *
읍내로 향하는 길목.
저수지 근처에서의 촬영은 몇십 분 동안 계속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단 몇 초짜리 영상 하나를 촬영한다 하더라도 여러 번 재촬영을 하고, 또 다른 설정값으로 바꾸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타입랩스 컷을 담는다면 기본 배속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영상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타입랩스 촬영.
태정이 한참 풍경 영상을 담는 도중 경운기를 몰고 지나가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승현은 태정의 등을 두드린 후 경운기 쪽으로 달려갔다.
태정은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그대로 둔 채 서브카메라를 들고 노인에게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잠시 뭐 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승현이 다가가자 노인은 경운기를 세우더니 카메라와 승현, 태정을 번갈아 보았다.
“동네 주민이세요?”
“그런데요. 여기서 뭣들 하시나?”
“저희는 RBS [풍경이 좋다] 제작팀입니다.”
“[풍경이 좋다]? 처음 들어보는데.”
“이 동네에 어디 풍경이 좋을까요? 추천해 주실 곳 있으신가요?”
승현의 질문에 태정은 인터뷰 형식으로 앵글을 잡았다.
“동네 조용하고 좋지. 어디서 찍어도 풍경이 참 좋을 거야. 그런데 여기 이 저수지는 찍지 마. 거- 수 년 전에 사람이 죽어서 아주 재수가 없는 곳이야. 귀신 보고 까무러치는 사람도 여럿이었고.”
수첩에 메모를 하던 승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사람이 죽은 적 있다고요?”
순간 승현은 자신이 맡았던 냄새를 떠올렸다.
“그래. 그렇다니까. 나도 희끄무리하니 이상한 걸 본 적 있어. 동네 애들도 밤에 여기 왔다가 완전 뒤집어져서 도망치고 그랬다니까.”
“사람이 죽은 적이 있었다는 건 어떤 거였나요?”
“음, 몰라? 10년도 전이긴 한데. 여기서 변사체 발견 됐잖아. 사람 죽어서. 그때 난리였지, 아주. 시신이 하도 끔찍해서 말이야.”
“아아.”
“아무튼 동네는 뭐 조용하니 이래저래 찍을만 한데 저수지는 찍지 마. 밤엔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고. 재수 옴 붙어.”
노인은 손을 휘휘 내젓고는 경운기의 시동을 다시 걸었다.
툴툴툴툴툴툴
경운기는 천천히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선배.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지 아는데, 그거 하지 마요.”
태정이 멀어지는 경운기를 보며 말했다.
“내가 뭘 생각하는데, 인마. 지금 우리는 [풍경이 좋다] 촬영 중이야. 타임랩스로 마을 초입 풍경 따고 있는 거고.”
승현은 아주 낮게 중얼거리고는 설치해둔 카메라 쪽으로 돌아갔다.
* * *
그렇게 촬영은 해가 진 오후까지 진행이 되었다.
해가 떠있는 저수지 풍경에서 노을이 지는 저수지 풍경까지, 그 변화를 빠르게 보여주기 위해 타입랩스 촬영을 하다 보니 이 자리에서만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었다.
그 사이 승현은 저수지 쪽에 오감을 집중했다.
아까부터 물비린내하고는 전혀 다른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피 비린내 같으면서도 스티로폼을 태운 것 같은 묘한 냄새.
피 냄새는 날붙이에 희생당한 영가의 냄새였다. 그리고 후자의 냄새는 악귀를 뜻했다.
저수지 쪽에서 분명 이 두 가지 냄새가 동시에 넘어오고 있었다.
승현은 근처를 오가며 밭일을 하던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추가로 확보해 보았다.
“저수지가 언제 생겼는지는 몰라. 그런데 그 주변에서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조금 있어. 그런데 이상하게 저 저수지가 낚시꾼들한테도 좀 유명한데 밤에는 아예 안 가더라고. 뭔가 터가 좀 찝찝해서 우리도도 잘 안 가.”
“거기에 물귀신 붙어있잖아. 밤에는 저수지 근처에 가지 마. 재수 없어. 잊을 만 하면 거기서 낚시하다가 죽는 사람들 나온다니까? 예전에 밤낚시하고 돌아가던 꾼 하나가 교통사고로 죽었다지?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고.”
저수지 근처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저수지를 둘러싼 괴담에 대한 것들이었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교외의 풍경을 소개하는 취재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승현은 인터뷰들을 정리하고 타입랩스 영상을 촬영 중이던 곳으로 돌아갔다.
태정은 카메라 옆을 지키고 앉아 하품을 쩍 하고 있었다.
“이쪽 촬영은 접자. 안으로 고고.”
승현은 한껏 어두워진 저수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수지 근처에 가자는 건 아니죠?”
태정이 말했다.
“왜?”
사뭇 다른 태정의 분위기에 승현이 물었다.
“아니, 아까 할아버지 이야기도 그렇고. 여기 있는데 기운이 이상해요. 뭔가 막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좀 별론데. 저수지 다시 오더라도 낮에 왔음 좋겠어요.”
태정이 말했다.
“그럼 조금만 들어가 보자.”
승현이 카메라를 챙기며 말했다.
“아, 선배. [풍경이 좋다] 촬영이라며요. 귀신 찍는 거 아니잖아요.”
“응. 저수지 밤 풍경이 좋잖아.”
승현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태정은 그런 승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구시렁댔다.
“보통 영화에서 이렇게 하지 말란 거 하다가 죽던데.”
“우리는 영화가 아니라 다큐 찍는 거잖아. 안 죽어.”
“진짜 기운이 이상하다니까요. 막, 막, 뭐라 그러지. 상한 음식 먹은 기분이랄까. 선배도 지금 뭐 냄새 맡고 이러시는 거잖아요.”
“쉿. 조용.”
“아 좀!”
태정은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승현의 뒤를 따라 갈대와 잡초 안으로 들어갔다.
스스스… 스스스스스
사방에서 들리는 날벌레 소리와 들끓는 모기 때문에 둘은 쉴 새 없이 손을 휘저었다.
물가임을 고려해도 이상하게 벌레가 많이 모여든 느낌이었다.
그때 저수지 너머로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저기가 저수지 낚시터인가 보다.”
승현이 저수지 한쪽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수지가 이렇게 큰데 낚시터는 하나네요.”
무서운 것은 그 낚시터 주변으로 폐허처럼 방치된 작은 컨테이너들이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곳도 낚시꾼들을 받기 위해 설치된 업장이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듯했다.
승현은 안으로 쭉 들어가 불이 켜진 낚시터에 다가가 보았다.
저수지에 가까워 올수록 냄새는 점점 더 지독하게 났다.
[태영5 낚시] [태영6 낚시] [태영9 낚시]버려진 컨테이너 앞에는 녹슨 간판들이 걸려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 드디어 멀리서 보았던 불 켜진 낚시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태영4 낚시터]컨테이너 앞에 있는 저수지 물가에 의자와 식탁 등이 놓여 있었고 은은하게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60대 노인이 앉아 저수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뭐 좀 여쭙겠습니다.”
승현이 다가가 말했다.
그러자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돌렸다.
“저수지에 대해 뭐 좀 여쭤보려고요.”
“저수지에 대해서?”
승현의 질문과 동시에 태정은 인터뷰 구도로 앵글을 잡으려 했다.
“네. 저희는 [풍경이 좋다] 촬영팀으로 이 저수지 근처 풍경을 담고 있거든요.”
순간 노인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얘기하기 싫어! 나가! 나가!”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갑자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노인 때문에 승현과 태정이 뒤로 주춤거렸다.
“아, 저- 그냥 간단히 아시는 것만 말씀해주시면-”
“나가라고! 또 송장 치우기 싫어!”
그는 저수지가 떠나가라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의자를 걷어찼다.
“소, 송장이라뇨?”
“썩 꺼져! 쓸데없이 근처 기웃거리지 말고!”
승현과 태정이 뒤로 물러나자 그는 조명까지 꺼버린 후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승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철수하라는 손짓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곳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포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뭘 해도 풀리지 않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이번에도 헛걸음한 것이라는 생각만 강하게 든 것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몇 시간 뒤, 그런 승현의 매너리즘은 순식간에 뒤집어 지고 말았다.
“선배. 우리 지금 [풍경이 좋다] 촬영 중인 거죠?”
주차한 자리로 돌아가는 중, 태정이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당연하지.”
승현이 입을 씰룩이며 대답했다.
“선배가 다른 걸 노리는 것 같아서요.”
“이건 그냥 사이드 메뉴 같은 거야. 아무튼 얼른 숙소로 돌아가자. 찍은 것들 확인해야지.”
승현이 태정에게 어깨동무를 턱 하고 말했다.
“에휴. 입구에서만 반나절이 꼬박 걸렸네요.”
태정이 타임랩스를 촬영했던 현장에 놓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며 말했다.
“뭐 어떡하냐. 우리 둘밖에 없는데 카메라를 여기 돌려놓고 다른 곳에 갈 수도 없고.”
승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었다.
스텝이 여럿 있다면 타입랩스를 돌려놓은 카메라 지킬 인원을 한 명 두고 다른 장소에 가서 촬영을 하면 될 일이지만 둘밖에 없으니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것이었다.
“읍내 가서 밤 촬영해요?”
태정이 물었다.
“오늘은 일단 숙소 잡고 들어가자. 숙소에서 오프닝이랑 인서트로 쓸 소스들 정리 해놓고 내일 새벽부터 움직이자고.”
“네, 네. 그렇게 해요.”
태정이 장비들을 차에 실었다.
“숙소는 알아놨지?”
“네. 저기 읍내에 ‘장수 여관’이요.”
“거기 와이파이는 되냐?”
“와이파이 되는 숙소 없던데요.”
둘은 잔뜩 꺼내놓았던 장비들을 모두 차에 실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정리를 한 둘은 차를 타고 태영읍내로 들어섰다.
나름 번화가라고 허름한 호프집과 PC방, 치킨집들이 보였지만 시골은 시골이었다.
승현과 태정은 장수 여관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쇠를 받아 여관방 안으로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가 훅 풍겼다.
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핫스팟을 켜고 업무용 노트북들을 꺼내 연결했다.
영상을 편집하고 백업해 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 거 영상은 예쁜데 뭐 실속은 없을 각인데요? CP님한테 또 깨지겠어요.”
“하여튼 너는 시종일관 재수 없는 소리하는 데에는 뭐가 있어.”
“지난번에 심하게 깨졌어요?”
“…지난번엔 좀 셌지.”
그 역시도 촬영된 영상을 확인하며 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있었다.
“아유. 이번 작품은 좀 시작부터 그러긴 했어요. ‘풍경이 좋다.’라는 제목도 별로고. 아니, 애초에 선배 아이디어도 아니잖아요.”
태정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뭐 어떡하냐. 거의 협박을 하던데.”
승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태정의 모니터를 보았다.
태정의 앞에 놓인 모니터에는 각자 다른 영상들이 바둑판같은 프레임 안에서 각자 재생되고 있었다.
밤과 낮. 꽃과 강. 산과 건물.
약간의 색보정을 더해 아름다운 풍경들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어어-?”
순간 승현이 태정의 노트북 화면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모니터 쪽으로 다가갔다.
“어? 왜요?”
“3번 카메라 녹화본. 뒤로 돌려 봐.”
승현의 말에 태정이 조그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자 한 모니터의 영상이 거꾸로 돌아갔다.
“여기서 다시.”
승현은 그 모니터에 코를 박고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을 확인해 보았다.
“왜요. 뭔데요?”
태정이 물었다.
“이거. 이거 뭐야. 여기 확대해 봐.”
승현이 그 모니터의 한 쪽 끝을 가리켰다.
꽃이 핀 시골길과 멀리 보이는 저수지 영상이었다.
바람에 꽃이 산들산들 흔들리고 있는, 평화로운 장면이었다.
“어디요. 저수지 쪽이요?”
태정이 그 모니터의 저수지 쪽을 확대하며 물었다.
조금씩 저수지가 크게 보이자 그곳에 원피스를 입은 한 여성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3초만 당겨 봐.”
승현의 말에 다시 태정이 조그 다이얼을 돌렸다.
“2초만.”
다시 주문이 들어갔다.
“다섯 프레임만.”
승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뭔데 그래요.”
태정이 따지듯 묻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고 말았다.
분명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컷 없이 촬영된 연결 영상인데, 찍혀서는 안 될 것이 찍혀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