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33)
제33화
고요-
모두가 철수한 상릉계곡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승현과 태정, 필립의 장비만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열상 CP는 구석에서 담배를 뻑뻑 태워댔다.
“그림 상 잠수부들이 물 아래에서 실종자 시신 같은 걸 찾아내 주는 게 딱이었는데 말이야. 에잇.”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풍경이 좋다]에서부터 [미스터리 탐사대]에 이르기까지, 실제 사건과 연결이 되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불러 모았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승현은 이열상 CP의 푸념을 듣다가 수연을 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계곡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 씨. 혹시 수살귀를 불러내는 의식 같은 게 있나요?”
“네. ‘넋걸이’라고 하고요. 소위 ‘넋건지기’라고도 하는데요. 필요할까요?”
수연이 공허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해보죠.”
승현이 대답했다.
그녀는 말없이 계곡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러면 준비를 좀 도와주세요.”
수연은 승현에게 짤막하게 말한 뒤 자신의 가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 승현은 그녀를 가리키며 멘트를 했다.
“넋걸이. 다른 말로는 ‘수살 넋 건지기’라고도 하는 굿이라고 하는데요. 물에 빠진 영혼을 달래주고 뭍으로 끌어내어 천도를 시켜준다고 합니다. 문제는 무속인이 접신이 되었을 때 물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 우리는 다소 위험할 수 있더라도 진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 * *
굿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얀 천을 깔고 그 앞에 제사상 같은 상이 가볍게 차려졌다.
그리고 유기그릇과 햅쌀을 비롯한 각종 무구들이 자리했다.
“가급적이면 제자 같은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약식으로라도 해보겠습니다. PD님하고 작가님께서는 제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하면 바로 잡아주셔야 합니다.”
수연은 카메라와 승현, 필립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이내 굿 장면이 이어졌다.
태정은 여러 각도에서 이 장면을 촬영했다.
딸랑- 딸랑-
굿이 시작되자 수연은 한 손에 부채, 한 손에 방울을 들고 서서 뛰기 시작했다.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고요한 계곡 전체에 방울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느낌은 무척 음산하고 오싹했다.
계곡의 수면도 아주 작은 파동 하나 없이 얌전했다.
이내 수연은 빠르게 입을 중얼거리며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굉장히 빠르게 읊조렸다.
카메라를 든 태정은 수연을 클로즈업 했다.
뚝-
순간 수연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팔을 툭 떨어트렸다.
이내 그녀는 다시 부채를 조심스레 살랑이더니 유기그릇에 햅쌀을 담았다.
그리고는 물가에 돛단배를 띄우듯 살포시 올려놓았다.
이 모든 장면은 4K 120프레임으로 촬영되고 있었다.
둥실-
신기한 일이었다.
물에 파동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돛단배처럼 띄운 유기그릇이 계곡 중앙까지 떠갔다.
그때 수연은 꽹과리를 들고 경쾌하게 치면서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인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카강- 캉캉 카강 카강 카강
방울소리보다 더욱 날카롭고 큰 소리가 계곡 구석구석을 훑어 내렸다.
카강 캉캉캉캉캉캉-
그러더니 꽹과리 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수연의 고개가 격하게 움직였다.
무척 빠르게 도리도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캉캉캉캉캉캉캉-
어느 순간부터는 박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였다.
탱강-!
수연이 괭과리를 집어 던지더니 물속으로 확 뛰어 들어갔다.
첨벙 첨벙
“안 돼요!”
필립과 승현이 쏜살같이 달려가 수연의 팔을 붙잡았다.
“꺄아아아아악!”
수연은 흡사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카메라를 잡은 태정도 무척 흥분한 모습으로 달려들었지만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굉장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그대로 담기고 있는 것이었다.
“놔!!!!”
그녀는 코피를 흘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더니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승현을 보며 괴물처럼 비명을 질렀다.
콰직
급기야 그의 손을 세게 물어버리기까지 했다.
“큭!”
승현이 신음을 흘렸지만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그녀를 놓치면, 그녀는 이 계곡에서 죽을 것 같았다.
물린 부위에서 피가 철철 흘러 나왔지만 그는 그녀를 놓지 않았다.
필립이 수연의 머리를 붙잡고 떼어내자 피칠갑이 된 그녀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싹-
광기 어린 수연의 얼굴은 모두를 소름끼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첨벙 첨벙-
셋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물가에서 몸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퐁당-
승현의 손과 수연의 턱에서 떨어진 피가 수면에 떨어져 번졌다.
이내 그 밑으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스멀스멀, 지렁이처럼 다가왔다.
“수연 씨! 이쪽으로! 이쪽으로!”
승현이 수연을 잡고 뭍으로 끌고 나왔다.
하지만 수연은 그럴수록 점점 더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흐아아압!”
그때, 필립이 기합을 넣으며 수연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수연이 더욱 요란하게 몸부림쳤다.
결국 무게중심이 틀어지며 셋 모두 얕은 물가에 쓰러졌다.
첨벙-
얕은 물이었지만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뿐만 아니라 눈, 귀, 코, 입에 물이 들어오며 순식간에 정신이 없어졌다.
“수연 씨!”
순간 승현이 수연을 놓쳤다.
그녀는 여전히 미친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승현을 휙 노려보았다.
그때, 갑자기 수연이 물속으로 숙 빨려 들어갔다.
첨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태정 역시 이 모습을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쓰러지는 순간까지는 가만히 보고 있었지만 수연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정신이 없어진 것이었다.
누군가 물속에서 끌어당긴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수연 씨!”
태정도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러면서도 카메라 앵글은 승현과 필립을 가리키고 있었다.
“필립 씨! 수연 씨는!”
승현이 소리쳤다.
필립은 상체를 물속에 넣은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상체를 확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실신한 수연을 한 손으로 끌어냈다.
덩치에 비해 힘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첨벙- 첨벙-
그는 수연을 안고 뭍으로 끌고 와 눕혔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승현이 바로 호흡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호흡과 맥박, 모두 정상이었다.
“와.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태정이 나지막이 말했다.
필립은 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물을 한 번 훔쳐내며 승현을 보았다.
“PD님. 치료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승현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수연에게 물린 그 자리였다.
“아, 네. 네.”
승현은 다른 손으로 지혈을 하며 태정을 보았다.
“아, 아!”
태정이 잠시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은 후 배낭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 바닥에 놓인 카메라는 승현과 필림, 누워있는 수연을 그대로 녹화하고 있었다.
“다치거나 하신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때처럼 그냥 빙의하시고 나서 실신하는 뭐, 그런 것 같아요.”
필립이 수연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진짜 식겁했네요.”
승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이, 태정이 배낭에서 붕대를 하나 가져와 건넸다.
“연고나 약은 없고 이거 밖에 없어요. 일단 이거 쓰세요.”
태정이 승현의 손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러면서 수연을 슥 보았다.
“어? 수연 씨 다리에 저거 뭐예요?”
태정이 턱으로 수연의 발을 가리켰다.
일행 모두 수연의 다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
또 한 번 소름이 끼쳤다.
이건 분명 머리카락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연의 발목과 종아리에는 손톱으로 긁은 것 같은 상처도 나있었다.
마치 승현과 필립이 수연을 뭍으로 끌어내는 동안, 물 안에서 당긴 흔적처럼 보였다.
승현은 손에 붕대를 다 감은 뒤 수연의 다리에도 감아주었다.
“이것도 나가리 된 거죠?”
태정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카메라는 수연에게 난 상처를 클로즈업해 담고 있었다.
승현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휴.”
필립은 수연을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다 옆을 보았다.
그때, 무언가 발견한 그가 벌떡 일어났다.
“어엇?!”
그의 반응에 승현과 태정도 고개를 돌렸다.
수연이 굿을 하며 물에 보냈던 유기그릇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태정은 다시 카메라를 들어 물에 둥둥 떠 있는 유기그릇을 클로즈업 해 보았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데요?”
태정의 말에 승현이 까치발을 들고 그릇 안을 보았다.
방금 전에 벌어진 일 때문에 얕은 물가에도 들어가기는 거부감이 들었다.
달그락-
유기그릇은 아주 얕은 물가에까지 다가와 바닥에 톡-하고 걸렸다.
그 안에는 이상한 것이 들려 있었다.
“엇-!”
승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유기그릇을 가리켰다.
태정은 카메라를 들고 유기그릇 쪽으로 다가갔다.
햅쌀을 넣고 보냈던 유기그릇 안에는 머리카락과 함께 작은 뼈가 담겨 있었다.
크기로 봤을 땐 여성의 손가락 뼈 같았지만 육안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걸 본 필립도 연신 셔터를 눌렀다.
DSLR과 미러리스, 필름 카메라를 번갈아 꺼내며 가열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승현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유기그릇을 들어보았다.
해부학적 지식은 없지만 사람의 뼈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승현은 닭살이 돋는 것을 느끼며 태정과 눈을 마주쳤다.
상황이 잠시 진정된 뒤, 승현은 태정과 카메라 앞에서 현재 상황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유기그릇에 햅쌀을 담아 보냈을 때 망자의 유해가 건져 올라오면 넋을 건져 올린 것으로 간주하고 천도재를 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도재를 하기 전에 이 사람에 대해 먼저 알아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작진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이동해 정밀 분석을 의뢰해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바로 촬영장을 정리한 후 승현은 병원으로 가 간단히 치료를 받았다.
수연은 미안한 듯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지만 승현은 되레 아무렇지 않은 듯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했다.
어찌 되었든 그녀로 인해 촬영의 실마리가 잡혀가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