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승현 일행은 휴게실 옆에 붙어 있는 화장실을 한 번 둘러본 후 계단 앞에 섰다.
한 명이 겨우 올라갈 정도로 무척 좁은 편이었다.
승현이 손전등으로 위쪽을 비춰보았다.
“한 명씩 올라갑시다.”
그는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구구궁-!
또 다시 천둥소리가 들렸다.
끼우우우웅-
계단을 딛고 오르자 쇳소리도 또 한 번 크게 들렸다.
그렇게 일행은 갑판실 2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2층은 선원들의 선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침대와 책상 하나가 노일 정도로 좁은 편이었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 역시 치우지 않은 매트리스와 이불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각종 옷가지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을 수사하면서 저렇게 어지럽힌 것 같습니다.”
최지훈 주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잠시만요. 여기 조명이 하도 어두워서 스트로브 좀 장착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필립이 카메라에 사용하는 스트로브 라이트를 꺼내 카메라에 장착했다.
그 순간이었다.
– 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다죽을거야……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승현은 자신만 들리는 소리인지 일행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승현을 제외한 다른 일행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치직 치직 치직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이 소리는 일행들도 들을 수 있는지, 모두 스피커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 치직- 치직-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야.] 스피커에서 들려오고 있는 목소리는 분명 수연의 음성이었다.
“조타실.”
승현이 짤막하게 말한 후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 뒤로 화영과 태정, 최지훈 주임과 필립도 허겁지겁 뒤를 쫓았다.
우당탕-
쿵 쿵 쿵-
일행이 달려가는 소리가 을씨년스러운 선박 곳곳에 울려 퍼졌다.
이내 조타실 앞에 도착한 승현이 문을 활짝 열었다.
“욱-!”
승현이 코를 틀어막았다.
아까보다 몇 배는 더 심한 악취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인 것은 각종 장비에 묻어 있는 피였다.
하지만 정작 수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타실에서 방송을 하는 거 맞죠?”
승현이 물었다.
“보통 그렇죠.”
최지훈 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필립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비는 계속해서 강하게 내리고 있었다.
“신기한 광경이네요.”
승현은 창밖에 보이는 유령선 아크로 호의 갑판과 평택항 전경을 보며 말했다.
굉장히 공포스러운 일이 거듭 발생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풍경이 제법 멋들어졌다.
번쩍-
찰칵-
이번에는 번개가 아닌 필립의 스트로브 덕분에 주변이 번쩍였다.
건물 바깥 풍경과 유리창에 비친 빗방울을 촬영하려는 목적인 듯했다.
순간 필립은 깜짝 놀라는 얼굴로 승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승현이 다가가자 필립은 방금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멋들어진 구도로 허름한 조타실 기기와 빗방울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스트로브 조명이 번쩍이며 그 빛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비췄다.
그 하얀 빛 사이로, 누군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유리창 밖에 서있는 것 같은 구도였다.
승현이 깜짝 놀라 유리창에 다가가 아래를 보았다.
유리창 앞에는 난간도, 발을 디딜 선반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누군가 바깥에 공중에 떠있을 때나 찍힐 수 있는 사진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무서워하지 않는데 여긴 정말 정신 나갈 것 같네.”
필립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진정하시고. 이 주변을 좀 찾아봅시다. 수연 씨가 여기 왔었다면 분명 흔적이 있을 거예요.”
승현이 말했다.
그러자 화영이 바닥을 슥 살폈다.
만약 수연이 바깥을 통해 이곳에 왔다면 분명 비를 맞았을 것이고, 바닥이 젖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닥에는 그 어떤 물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 다른 근무표가 있네요. 피 안 묻은 거.”
최지훈 주임이 조타실 구석에 있는 서랍장에서 오래된 황색 서류봉투를 한 장 꺼냈다.
그곳에는 사진과 함께 선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용승
신태종
이항성
김유군
김창석
최필종
윤배문
그리고 그 이름 옆에는 투박하게 날짜들이 적혀 있었다.
필체가 다 다른 걸로 보아하니 각 근무자들이 그때그때 직접 기재를 한 듯했다.
“아! 맞아! 저 ‘김용승’이 선장이었어요. 이 배 선장.”
최지훈 주임이 명단을 보고 기억이 난 듯 말했다.
“저 사람도 실종된 거죠?”
“네, 네. 저기서- 저기서- 발견돼서 정신병원에 후송된 사람이- 제 기억에는 ‘김창석’이었던 것 같아요. 이름이 낯이 익네요.”
“김창석.”
승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름 옆에 있는 날짜에는 6/1이라는 숫자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즉, 어디 근무인지는 몰라도 1974년 6월 1일 당시 근무를 했다는 의미였다.
승현은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했다.
“실종된 수연 씨를 찾던 도중 아크로 호의 유일한 생존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건 어떤 실마리가 되어줄까요. 조금 더 빨리 수연 씨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타실에 있는 여러 찬장과 캐비닛을 모두 열어봐도 수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아까 분명 방송으로 들린 목소리, 수연 씨 목소리였죠?”
“네,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죠?”
승현과 태정, 화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쿵 쿵 쿵 쿵 쿵
그때 아래에서 누군가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필립이 계단 아래로 고개를 내려 보았다.
쿵 쿵 쿵-
누군가 지나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아래 누가 있어요!”
필립의 외침에 일행 모두 다시 밖으로 달렸다.
그 사이 화영은 근무표를 챙겨들고 뒤를 따랐다.
다다다다다다-
일행은 허겁지겁 좁은 복도를 달렸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아주 간발의 차로, 그림자가 다음 모퉁이로 돌아 사라졌다.
“저기예요!”
필립이 소리쳤다.
일행은 그림자가 사라진 모퉁이를 돌아 계속 쫓아갔다.
그렇게 여러 복도와 모퉁이를 돌아 다시 1층까지 내려온 일행.
갑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멈춰 서야 했다.
그곳 아래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아 무척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자가 여기로 간 거죠?”
승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일행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삐- 뽀- 삐- 뽀-
그때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이 들려왔다.
승현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최지훈 주임을 보았다.
“이 아래는 기관실이라는 거죠?”
그의 질문에 최지훈 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있는 곳은 1층.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바로 구급대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승현은 어두운 계단 아래 기관실과 최지훈 주임을 번갈아 보다 비장하게 말했다.
“여기는 저희가 내려가겠습니다. 주임님께서 구급대원 분들을 아래로 안내해 주세요.”
어쨌든 구급대원들이 이곳에 오면 안내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안내자가 없다면 그들 역시 배 곳곳을 수색하고 다니느라 기관실에는 늦게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최지훈 주임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저희는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구급대원 분들을 모시고 기관실로 와주세요.”
승현의 말에 최지훈 주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처음 들어왔던 출구로 달려 나갔다.
“우리는 내려갑시다.”
승현의 말에 일행 모두 조명을 계단 쪽으로 비췄다.
한 편, 밖으로 나온 최지훈 주임은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가운데, 구급차가 선박 옆에 정차하는 것이 보였다.
최지훈 주임은 구급대원들을 향해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요! 여깁니다!”
폭우를 뚫고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구급대원들의 귀에 들어갔다.
* * *
퉁- 퉁- 퉁-
어두운 기관실로 진입한 제작진의 손전등 불빛이 곳곳을 비췄다.
1970년대 문화가 물씬 느껴지는 칠판과 각종 집기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곳곳에 자리한 투박한 금속 설비들이 보였다.
퉁- 퉁-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요란하게 메아리 쳤다.
갑판실보다 더 크고 우렁차게 울리는 것이 괜스레 더 육중하게 느껴졌다.
“여기는 악취가 심하네요.”
필립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승현는 내내 맡고 있었지만 ‘평범한 감각’을 가진 다른 일행들은 이제야 그 냄새를 맡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이곳에 있는 악귀가 굉장히 강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보았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과 긴장한 얼굴.
이곳의 환경을 표정으로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이런 와중에 카메라에 설치된 조명이 승현의 얼굴을 하얗게 비추자 공포스러움은 더해졌다.
카메라는 승현의 얼굴에서 주변 풍경으로 돌아갔다.
사방에 묻은 핏자국.
누군가 고통에 몸부림치다 벽을 두드린 듯한 피 묻은 손바닥 자국.
날카로운 피비린내.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승현은 수시로 카메라와 필립과 화영을 확인하며 긴장한 표정으로 기관실 깊숙이 들어갔다.
가각- 가각- 가각- 가각-
그 순간이었다.
기관실 구석에서 무언가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작진 모두의 조명이 구석으로 향했다.
커다란 엔진 같은 설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승현은 뒤에 있는 일행을 한 번 돌아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옆으로 확 돌며 조명을 비췄다.
“수연 씨?”
승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어 카메라 조명에 들어온 것은 기관실 설비 뒤에 웅크린 채 몸을 움츠리고 있는 수연이었다.
그녀는 온 몸에 피가 묻은 채 흐느끼듯 들썩였다.
“수, 수연 씨?”
승현이 조심스레 한 걸음 다가가며 불렀다.
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비도 맞았는지 머리와 옷도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악귀. 악귀. 악귀예요.”
수연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때 카메라가 수연 앞에 있는 모퉁이 쪽으로 돌아갔다.
“저, 저기.”
그곳에는 미이라가 된 채 죽어 있는 한 남자의 시신이 마치 산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