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53)
제53화(삽화)
같은 시각.
승현은 길이 없는 산을 따라 힘겹게 올라갔다.
혹시나 불빛이 새어나갈까 손전등도 켜지 못한 채 이동하느라 제법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하지만 필립은 카메라와 렌즈를 소총과 탄띠처럼 둘러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산을 올랐다.
그는 앞서서 산을 오르다 승현이 살짝 늦어질 때면 그를 잡고 끌어주었다.
그렇게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달하자 에이덴 평야의 불빛이 한 눈에 보였다.
승현은 숨을 몰아쉬며 영상을 촬영했고, 필립도 바로 카메라를 들어 촬영을 했다.
멀리서 보았던 정문을 지나 외길로 쭉 들어가면 커다란 운동장과 함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너머로 여러 동의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건물 너머로 산의 계곡을 따라 공장으로 보이는 건물과 창고 건물.
심지어 계단식으로 구성이 된 논과 밭까지 보였다.
모퉁이마다 가로등을 하나씩만 설치를 해둬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딱 봐도 엄청나게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와, 와우.”
필립도 놀란 듯 혀를 내둘렀다.
“들어갈 곳이 있겠어요?”
승현이 야경 영상을 촬영한 카메라를 어깨에 메며 물었다.
“보면 시설 주변으로 해서 울타리를 길게 쳐놨어요. 이 정도 규모면 모든 구역에 CCTV나 보안장치를 해둘 수 없었을 겁니다. 분명 취약점이 있을 거예요.”
그는 언덕 아래에 보이는 철조망을 가리켰다.
“괜찮겠죠? 내일 밤 안에는 화영이랑 태정이를 구해야 해요.”
“문제없게 해야죠.”
필립이 가방에서 절단기를 꺼내고는 철조망 쪽으로 다가갔다.
자박 자박 자박
풀과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괜스레 크게 느껴졌다.
승현은 주변을 살피면서 필립의 뒤를 쫓았다.
[접근 금지] [개인 사유지]철조망에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팻말이 붙어 있었다.
필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닥과 철조망 위쪽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뭐해요?”
승현이 물었다.
필립은 대답하지 않고 한참 주변을 관찰하는 듯 보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CCTV는 안 보이네요.”
그는 절단기를 들어 바로 철조망을 자르기 시작했다.
*
그 사이, 태정과 화영은 토가를 입은 여인들의 안내를 받아 숙소를 배정 받았다.
그들은 방문을 열더니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두 분은 부부라고 하셔서 한 방으로 배정해 드렸습니다. 편하게 있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태정과 화영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덜걱-
여인들은 둘이 들어가자마자 바로 문을 닫았다.
문 닫는 소리에서 이미 평범한 다른 방문과는 다른 문고리라는 걸 대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와- 이-”
태정이 입을 열려 하자 화영이 빠르게 손짓을 했다.
말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태정은 아차 싶었는지 입을 꾹 다물고 방을 슥 둘러보았다.
카메라나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좋네. 아늑하고.”
화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만약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 자체도 의심스러워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욕실도 있고.”
태정은 방을 둘러보는 척 CCTV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그때, 천장 구석에 작은 카메라를 발견했다.
‘마이크 기능이 있는 CCTV.’
그렇다는 건 저 카메라를 통해 이 방의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태정은 수첩을 꺼내 빠르게 화영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었다.
– CCTV에 마이크 기능이 있어요.
그리고 그 수첩 내용을 단추 카메라에 몰래 비춰주었다.
승현에게 전달을 해주려는 것이었다.
“얼른 쉬자. 피곤하지.”
화영은 웃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태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밖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창밖에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우왓!”
깜짝 놀란 태정이 창문을 확 열어보았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철창뿐이었다.
‘뭐였지. 잘못 봤나.’
태정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휴.”
그렇게 둘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 *
한편, 승현과 필립은 철조망을 지나 에이덴의 ‘영지’ 안에 들어섰다.
승현은 수시로 태블릿을 보며 태정과 화영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요. ‘에이덴 평야’인데 왜 평야가 안 보여요?”
필립이 아래 넓게 보이는 본관과 별관 건물을 보며 물었다.
“아직 시설을 다 못 봤으니 모르죠.”
승현은 산의 계곡을 따라 곳곳에 설치된 각종 건물들을 보며 대답했다.
둘은 바위에 살짝 몸을 숨긴 후 카메라를 꺼내 망원렌즈로 시설을 슥 훑었다.
“주차장 쪽에 작은 셔틀버스가 몇 대 있네요. 이 내부를 돌아다니는 버스인가 봐요.”
필립이 나지막이 말했다.
확실히 엄청난 규모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그 사이 승현은 계곡 너머 먼 곳을 비춰보았다.
아주 커다란 팻말이 계곡 끄트머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봉헌 광야 가는 길]조명이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형광물질을 썼는지 제법 선명하게 보였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 계곡과 건물들을 따라 쭉 들어가면 말 그대로의 ‘평야’가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어두울 때 최대한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내려가서 근처 살피고 해가 뜨기 전에 다시 산에 들어가죠.”
승현이 말했다.
“BMNT가 대략 다섯 시 반 정도 되니까 지금부터 다섯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바로 이동하죠.”
필립이 자신의 손목시계에 타이머를 세팅하며 말했다.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피해 잠입에 성공한 승현과 필립.
하지만 역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다보니 촬영이 원활하지는 않았다.
먼저 주차장에 진입한 둘은 차량 사이를 돌아다니며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때, ‘엔젤 관광’ 버스들이 앞문을 열어둔 채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둘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버스 쪽으로 다가갔다.
당연히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승현은 조심스럽게 버스 안에 올라탔다.
그리고 카메라로 내부를 천천히 찍었다.
치직… 치치직
조명을 켜지 못하기 때문에 녹화 중인 영상에 노이즈가 잔뜩 끼었다.
그렇게 버스 안쪽을 향해 걸어가며 좌석에 있는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끝에서 첫 번째 앞칸에 여자의 머리로 보이는 둥근 무언가가 빼꼼 올라왔다.
얼굴이 보이지 않고 정수리 쪽만 살짝 보이는 수준이었다.
움찔-
승현과 필립은 적발이 된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도망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여성의 머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승현은 필립을 한 번 돌아본 후 뒷좌석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살짝 정수리만 보이던 여성의 머리가 점점 더 많이 보였다.
이내 이마가 보였다.
새하얀 피부였다.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눈썹이 살짝 보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스윽-
여자가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졌다.
승현은 카메라를 들고 그녀의 앞좌석 정도까지 도달했다.
순간, 여자가 고개를 휙 돌렸다.
* * *
* * *
“헉!”
승현이 숨이 넘어갈 듯 뒤로 넘어가 버렸다.
눈과 코가 없이 눈썹과 입만 있는 기이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입도 턱뼈가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었고 이빨도 짐승처럼 촘촘한 것이 굉장히 흉측했다.
동시에 코를 찌르는 듯한 생선 썩은 냄새가 확 진동했다.
우당탕-
승현이 반대쪽 좌석에 처박히며 쓰러졌다.
너무 놀라 뒤로 물러서다 좌석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뭐야?”
그때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승현은 좌석에 거꾸로 처박힌 채 숨을 죽였고, 필립도 자세를 확 낮췄다.
자박 자박 자박-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승현과 필립은 숨을 죽이고 좌석 밑에 착 누운 채 발소리에 집중했다.
“잘못 들었나.”
이어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으으으으!”
그때 또 다른 남자의 신음이 들렸다.
“어딜 도망치려고 해! 이 X새끼가!”
“우리가 별관 숙소에는 오지 말랬지!”
“X발. 명령이 말 같지 않냐?”
“이번에는 눈깔을 뽑아 줘?”
우당탕-
남자들의 협박과 함께 차체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버스 측면을 들이 받는 소리였다.
풀썩-
이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차체에 확 밀려나 부딪친 모양이었다.
승현은 카메라의 스위블 액정을 아래로 돌려놓고 슬쩍 카메라를 들어 차창에 올려보았다.
버스 바로 옆에서 와이셔츠를 입은 두 남자가 대머리에 비쩍 마른 남자를 구타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하늘색 죄수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저 두 남자가 죄수복 입은 남자를 버스로 밀쳐 쓰러트린 뒤 구타를 하는 모양이었다.
퍽 퍽 퍽-
퍽- 퍽-
“하- 나 이 X발. 진짜 야밤에 이게.”
“이 새끼 진짜 죽여 버리면 안 되나?”
퍽 퍽 퍽 퍽-
구타는 계속 이어졌다.
승현은 그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뒤.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숨을 헐떡였고, 죄수복 입은 남자는 죽은 개구리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부교주님께서 한 동안 사람 죽이지 말라고 하시니까 이 정도에서 멈추는 거야. 다음에 또 걸려라. 그땐 진짜 한 쪽 눈알 뽑아버릴 테니까.”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 중 한 명이 협박을 한 후 휙 돌아서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남은 한 남자가 축 늘어진 죄수복의 남자 목덜미를 잡고는 질질 끌고 갔다.
승현과 필립은 입을 틀어막고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가 지금 뭘 본 거죠?”
필립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승현은 조용히 하자는 손짓을 한 후 몸을 움츠렸다.
잠시 동안은 침묵을 지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스으으윽-
그 순간이었다.
뒷좌석에서 발견했던 그 귀신이 버스 가운데 통로로 슥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승현은 그것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공포로 다가왔다.
귀신은 승현을 돌아보지 않은 채 옆모습만 보여주며 슥 지나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미치겠구먼.”
승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어 물었다.
“본관까지 갈 수 있을까요?”
승현이 필립을 보며 물었다.
그는 버스 안에서 운동장과 본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버스 출구로 이동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