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62)
제62화
복귀 D-1. 오전 2시.
“으음.”
필립이 피곤한 듯 상체를 일으키며 시계를 보았다.
“아직 한 시간 더 주무셔야 하는데요. 지금 위층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먼저 깨웠습니다.”
승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필립은 어두컴컴한 계단 쪽을 한 번 본 후 물었다.
“이 시간에요? 위에 뭐 있나요?”
“그걸 모르겠어요. 만약 야생동물이라도 있으면 쫓아내야 할 것 같아서요.”
“아이고. 알겠습니다. 두 분이서 올라가 보시게요?”
필립이 승현과 태정을 보며 물었다.
승현이 끄덕이자 필립은 이마를 북북 긁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야생동물이면 제가 쫓아내는 법을 알고 있으니 저랑 올라가시죠.”
그의 말에 승현은 그가 특전사 출신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올라간 김에 촬영도 하려고 했는데.”
태정이 카메라를 들고 말했다.
“아. 제가 촬영하겠습니다.”
기본적인 카메라 작동법을 아는 필립이 자신 있게 말했다.
태정이 승현을 보자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여기 혼자 있다가 무슨 이상한 거 보이면 사람들 깨우고 무조건 소리 질러. 절대 혼자 움직이지는 마라.”
승현이 신신당부했다.
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쫄보라 혼자 못 다녀요.”
살짝 능글대는 듯한 말투였다.
승현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필립에게 이동하자는 손짓을 했다.
필립은 태정의 카메라를 들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부러진 각목을 하나 집어 들었다.
만약 야생동물이 있다면 때려눕힐 심산이었다.
“갑시다.”
승현과 필립은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동했다.
휘이이이이이잉-
덜컹 덜컹-
비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 다소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아까보다 더욱 강해졌는지 창문을 연신 두드렸다.
폐허가 된 2층 복도를 걷다 창문 앞을 지날 때면, 강한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볼과 목을 두드렸다.
‘피 냄새. 알코올 냄새.’
승현은 계속해서 ‘귀신의 흔적’을 느끼고 있었다.
영상에서 파악한 것처럼 귀신이 한두 명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어떤 게 보인 거죠?”
그때 필립이 물었다.
“사람 같기도 한데- 뭔가 머리 같은 둥근 게 계단 위에서 슬쩍 보였다가 사라졌어요. 만약 동물이라면- 귀가 처진 강아지나 코알라, 벌꿀오소리 같은 느낌?”
“셋 다 아니겠네요.”
필립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휘이이이잉-
덜컹 덜컹
바람 소리와 창틀 덜컹이는 소리는 점점 더 요란해졌다.
승현은 걸어가며 문이 열린 사무실 안쪽을 하나씩 슥 살펴보았다.
필립은 그런 승현을 뒤에서 촬영하며 수시로 주변 풍경도 담았다.
태정과 굉장히 비슷한 스타일로 촬영하는 것이었다.
쾅!
그때 복도 끝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바람에 나무 문이 멋대로 닫혀버린 것 같았다.
쾅!
또 다른 문이 닫혔다.
쾅!
이어서 다른 문도 닫혔다.
이쯤 되자 승현과 필립은 이게 단순히 바람 때문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저기.”
필립이 반대편 복도 끝을 가리켰다.
어두운 가운데 손전등 불빛도 미치지 않아 어렴풋이 보였지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황색 점프슈트를 입은 채 서 있었다.
그때 필립이 카메라를 이용해 그들을 클로즈업 해보았다.
시커먼 피부와 충혈된 눈.
언뜻 보기에는 ‘에이덴 평야’에서 보았던, 악령에 쓰인 사람들 같았다.
화아아아아악-
갑자기 그들이 복도를 가로질러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승현과 필립에게 돌진을 해오는 것이었다.
“어어어어-!”
그제야 승현의 눈에도 그들의 모습이 명확히 보였다.
그 역시도 그들이 악령에 쓰인 사람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 도망쳐요!”
승현이 본능적으로 돌아서며 외쳤다.
둘은 바로 복도를 내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두두두두두두
덜컹-
카메라는 정신없이 흔들렸고, 필립과 승현은 미친 듯이 내달렸다.
“달려요! 달려!”
“1층으로!”
누가 외치는지 모를 소리들이 오디오에 담겼다.
필립은 수시로 카메라를 뒤로 돌렸다.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단!”
승현이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에 멈춰 섰다.
그곳에도 주황색 점프슈트를 입은 귀신들이 서있었다.
“빌어먹을!”
승현은 계단 바로 옆에 있는 사무실 문을 박차고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얼굴이 시커먼 귀신이 기다렸다는 듯 승현을 덮쳤다.
“우악!”
승현은 몸을 움츠린 채로 멈췄다.
그 뒤를 쫓던 필립 역시도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보았다.
검은 피부의 귀신들이 순식간에 사라져있었다.
“대체, 대체 뭐지. 그 사람들은.”
승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곳은 지금까지 봤던 사무실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큰 편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로 된 메모들도 제법 보였다.
“아.”
승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메모와 서류들을 슥 보았다.
1단계 실험 생존자 명단
2단계 실험 생존자 명단
임상학적 예후 보고서
사망자 부검 결과 보고서
붓으로 표지를 작성한 서류철들이 보였다.
승현은 서류를 몇 장 넘겨보았다.
그곳에는 사람들과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었고, 일본어로 무어라 메모들이 되어 있었다.
필립은 서류의 내용도 카메라에 쭉 담았다.
*
같은 시각.
화영과 수연, 이지혜 교수가 잠들어 있는 1층 로비.
태정은 모닥불 앞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고, 지금까지 찍은 영상들을 대략적으로 편집하고 있었다.
위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쿵 쿵 쿵-
그때 복도 한쪽에서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허리를 펴 복도 쪽을 보았다.
먼지와 잡동사니, 비바람과 열린 창문만 보였다.
“야. 와서 이것 좀 도와줄래?”
문소리가 난 쪽에서 승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정은 편집하던 것들을 그대로 둔 채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왜요. 뭔데요?”
그는 배를 북북 긁으며 아무렇지 않게 닫힌 문 쪽으로 다가갔다.
*
“이 서류들. 중요한 정보가 되겠어요.”
승현이 필립에게 서류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런 거 함부로 들고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필립이 물었다.
승현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귀신이 나타나는 곳에 있는 물건들을 잘못 옮겼다가는 귀신이 붙을 수 있다고.
하지만 승현은 왠지 모르게 귀신들이 이곳으로 유인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마치 자신들의 정체를 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잠시 고민하던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영상으로 잘 담아두죠. 이지혜 교수님 깨시면 한 번 보시게.”
“알겠습니다.”
필립은 바로 서류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내용을 담았다.
그 사이 승현은 사무실 내부를 돌아다녀 보았다.
“아.”
한쪽 벽에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멘트벽을 뒤에 두고 찍은 독사진들이 쭉 펼쳐졌다.
흑백이라 옷의 색깔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목 부위의 디자인을 봐선 방금 보았던 주황색 점프슈트인 듯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의 피부는 검지 않다는 점이었다.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사진. 같은 옷에 검은 피부를 가진 귀신.’
옷차림만 봐선 같은 인물들인 것 같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 됐습니다.”
필립은 카메라를 들고 독사진들도 쭉 촬영하며 말했다.
“다시 내려가죠.”
승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사무실 밖으로 몸을 돌렸다.
*
복귀 D-1. 오전 3시.
승현과 필립이 다시 1층 로비로 내려왔을 때, 태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고있는 수연과 화영, 이지혜 교수, 노트북에 연결된 카메라와 편집 중인 화면, 그리고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만 보일 뿐이었다.
승현은 인상을 쓰며 주위를 보았다.
“박태정 얘 어디 갔지.”
복도 쪽을 보아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필립도 심각한 얼굴로 현관 바깥쪽을 살펴보았다.
“혼자 어디 가지 말라니까. 아오.”
승현은 입을 씰룩이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복도를 좀 찾아볼까요?”
필립이 물었다.
승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여성분들을 이렇게 둔 채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수연 씨. 화영아. 잠깐 일어나 봐. 교수님도 일어나 주세요.”
승현은 셋에게 다가가 흔들어 깨웠다.
그녀들은 잔뜩 피곤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화영이 물었다.
“태정이 없어졌어. 잠깐 일어나.”
“네? AD님이 없어져요?”
그녀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우리 잠시 태정이를 좀 찾으러 다녀볼 테니까 세 분, 잠시 일어나 계세요.”
승현이 말했다.
“알겠어요.”
수연도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승현은 바로 필립에게 움직이자는 손짓을 보냈다.
일단 승현과 필립, 둘이 2층에 있었던 만큼 위로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래서 둘은 1층부터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거의 모든 사무실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태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승현의 짜증이 점점 불안으로 바뀌어 가던 도중, 마지막 사무실 안쪽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승현은 필립과 눈짓을 주고받은 뒤 굳게 닫힌 사무실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 열어 보았다.
이곳도 작은 사무실이었다.
다만 전체 지도가 그려져 있고 철제 캐비닛과 각종 열쇠들이 걸려있는 걸로 봐선 이 미류도의 연구소 시설 전체 관리실인 것 같았다.
그곳에서, 벽을 보고 쪼그려 앉아 있는 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 박태정. 뭐하냐?”
승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태정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야. 박태정! 박태정!”
승현이 다시 불렀다.
하지만 태정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승현은 필립을 한 번 본 후 천천히 다가갔다.
“야, 야. 왜 말이 없어.”
승현은 갑자기 몰아치는 두려움에 천천히 팔을 뻗었다.
숨을 쉬는 건지 아닌지조차 모르게 미동도 없는 태정의 모습.
승현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톡
그리고 태정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태정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강한 알코올 냄새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귀신의 흔적.’
귀신이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