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83)
제83화
2주 전.
청상동 인근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한혜정은 약간 취한 채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야. 그래서 다음 편 촬영은 뭔데?”
그녀의 친구가 물었다.
“엘리베이터 귀신 이야기. 아, 근데 문제는 그다음 소재가 없어서 문제야.”
“그다음 소재?”
“응. 이번에 엘리베이터 이야기 나오고 나면 그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한혜정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음.”
그녀의 친구도 같이 고민을 해주는 표정이었다.
“다음 소재는 나보고 골라보라는데 뭐가 좋을지 감이 안 와. 뭐 좋은 아이디어 없냐?”
“뭐가 있겠어.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친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다 갑자기 손뼉을 짝 쳤다.
“혹시 뭐 ‘인형’ 얘기는 어때? 옛날에 [악마의 인형]이라는 영화도 엄청 히트 쳤었잖아.”
“인형?”
한혜정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친구를 보았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친구의 얼굴에서 뒤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대문이 살짝 열린 폐가가 보인 것이었다.
“어머.”
한혜정이 대문 쪽으로 다가가 슬쩍 안을 보았다.
“얘가, 얘가. 괴담 프로그램 팀에 들어가더니 겁이 없어졌네. 들어가지 마. 여기 재수 없는 데야.”
친구가 한혜정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재수가 없어? 왜?”
“여기 몇 년 전에 여자애가 자기 식구들 다 칼로 찔러 죽인 집 아니야. 들어가지 마. 재수 옴 붙어.”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한혜정은 비웃듯 친구를 돌아보고는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집 현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앉은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촬영에 쓰였던 그 인형이었다.
그녀는 뭔가에 홀린 듯 인형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 * *
승현은 [토요일 오전은 호러 시간]의 막내 작가, 한혜정이 어떻게 귀신 들린 인형을 습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태정은 그녀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냈고, 승현은 그걸 토대로 재연 영상을 만들 것을 메모해 두었다.
이렇게 재연 영상을 만들 부분이 생기면 승현은 바로 장혁에게 전달했고, 승현이 야외에서 현장 촬영을 하는 동안 장혁은 재연 영상과 내부 CG 및 콘티 작업을 진행하는 구조였다.
“그러면 사고 당일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자차로 운전하시다 사고 나신 거?”
“아뇨.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한혜정이 다시 이야기를 해나갔다.
* * *
[토요일 오전은 호러 시간] 귀신 들린 인형 편 촬영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언제나처럼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밤길인지라 차는 막히지 않았다.
한혜정은 집에 가는 버스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무심히 차창 밖을 보고 있었다.
끼익- 푸쉿-
에어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버스가 멈췄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인도에 있는 사람들을 슥 보았다.
그때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약간 떨어진 곳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하늘 거리는 원피스인지라 유독 눈에 띄었다.
심지어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며 사람들이 건너는 동안에도 여자아이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한혜정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잠시 뒤, 버스는 평소랑 똑같이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린 한혜정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매일 지나가는 길인데다가 그리 한적한 곳은 아니라 약간 경계심이 풀어진 상태였다.
그때, 그녀의 눈에 낯익은 것이 보였다.
아까 보았던 여자아이가 골목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한혜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가던 길을 갔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이 한혜정을 계속 쫓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그녀는 아이의 옷이 빨간 이유가 피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엇!”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고 놀란 한혜정이 그 아이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그녀를 감쌌다.
빠아아아아앙-
요란한 경적소리와 함께 차량이 그녀를 치고 말았다.
* * *
인터뷰를 들은 승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여자아이는 뭐였죠?”
그건 한혜정도 알 턱이 없었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도로 CCTV나 주변 주차되어 있던 차 블랙박스에는 여자아이가 없더라고요.”
“그래요?”
“네. 그냥 저 혼자 갑자기 도로에 확 달려드는 그런 그림이었어요.”
“그건 직접 확인하셨고요?”
“네, 네. 아무래도 사고 처리, 보험 처리해야 하니까 다 확인 했죠. 운전자 분 과실은 없는 걸로.”
“으음.”
승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 물었다.
“혹시 그 영상을 볼 수는 있을까요?”
“아, 네. 제 보험 담당자가 까톡으로 보내줬어요.”
한혜정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여자아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멀쩡히 걸어가던 한혜정이 갑자기 1차선 도로로 툭 뛰어드는 그런 모양새였다.
“이거 방송에 써도 되죠?”
“네, 네. 차 번호판만 안 나오면 문제없을 듯하네요.”
한혜정이 대답했다.
“몸조리 잘하고요. 협조 고마워요.”
승현이 웃으면서 마무리 인사를 했다.
*
병원 밖으로 나온 승현 일행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때, 침묵을 깬 것은 수연이었다.
“그 ‘어린 여자아이’를 본 게 거짓이 아니라면 우리 추측대로 인형에 붙어 있던 귀신이 이 사람들한테 옮겨붙은 게 확실한 것 같아요.”
“역시 그렇죠?”
승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부정을 타서 계속 안 좋은 일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흐음.”
승현이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몸이 안 좋았다는 다른 스태프들도 인터뷰를 딸까요?”
화영이 물었다.
승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비슷한 이야기일 것 같아.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후자는 아닐 것 같긴 하짐나-”
잠시 고민하던 승현이 말을 이었다.
“다른 스태프들 인터뷰는 장혁이한테 토스해 두고 우리는 신수일 씨 유족을 찾아가 보자.”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안 돼서 분위기가 뒤숭숭할 텐데요.”
“뭐 범죄나 그런 게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일단 요청이나 해보는 거지, 뭐.”
“네, 알겠습니다.”
“화영이, 너는 장혁이한테 몸이 안 좋은 다른 스태프들 인터뷰 따라고 전달하고, 바로 신수일 씨 유족 인터뷰 잡아.”
“네, 알겠습니다.”
“필립 씨는 돌아가서 인형하고 여기 인터뷰 장면 촬영한 사진 보내주시고요.”
“네, 네.”
“오늘은 이만 해산하고 내일 다시 모입시다.”
승현의 말에 제작진과 필립, 수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장혁을 필두로 한 [미스터리 탐사대] 스태프들 일부는 재연 영상 제작과 [토요일 오전은 호러 시간] 스태프들의 전체적인 인터뷰를 진행했고, 승현 일행은 신수일 유족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향했다.
방송인 신수일의 아내는 1980년대 ‘배혜란’이란 이름으로 잠깐 활동했던 여가수로, 방송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신수일의 명예나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렇게 그녀의 집에 간 승현과 화영, 태정, 필립과 수연은 곧장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이상한 말을 했어요. 며칠 전부터 집 근처에 이상한 여자아이가 있다는 거예요. 항상 같은 곳에서 자길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경비실에도 연락하고 저하고 나가서 찾아보기도 했거든요.”
배혜란의 말에 승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아이요?”
동시에 그는 한혜정이 보았던 소녀를 떠올렸다.
그러자 다시금 악취가 확 풍겨오는 것을 느꼈다.
“네. 그런데 경비 아저씨들도, 저도, 그런 여자아이는 보지를 못했어요. 뭐, 남편이 혼자 있을 때만 찾아서 오는 건지. 팬 아니냐니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고요.”
수첩에 메모를 하던 승현의 펜이 멈칫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인기척과 시선을 느낀 것이었다.
승현이 주변을 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요?”
마주 앉은 배혜란이 갑작스러운 승현의 행동에 놀라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승현은 머리를 긁적이다 이어 물었다.
“혹시 그 소녀에 대해 인상착의를 말씀하시던가요?”
“네. 약간 탁한 와인색? 그런 원피스를 입은 애가 여기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서서 쳐다보고 있다고.”
“아. 언제부터요?”
“글쎄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며칠 안 됐어요.”
“혹시 [토요일 오전은 호러 시간] 촬영 갔다 온 이후 아닌가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사합니다.”
승현이 꾸벅 인사를 한 후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 * *
방송인 신수일의 집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카페에 모여 앉은 승현 일행은 지금까지 촬영된 영상들을 확인하며 막간 회의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선 수연 씨 말씀이 맞는 거 같지?”
승현이 화영과 태정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에 대한 사연을 조금 더 파보고 거기 촬영 들어가자고.”
“네. 언제나 그렇듯이 근처 부동산에 가서 물어보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동네에 빠끔할 테니까.”
“음. 그렇지?”
화영의 말에 승현이 끄덕였다.
“보통 이런 부자 동네에는 집집마다 연결된 공인중개사들이 있어요. 그 담당 공인중개사를 찾아가면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필립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죠. 고마워요.”
승현이 웃으며 필립을 보았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아 참. 필립 씨. 어제 사진 찍은 거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안 왔더라고요.”
“아아. 그게요.”
필립은 머리를 긁적이다 사진 몇 장을 꺼내 들었다.
“DSLR이나 미러리스로 찍은 건 특별한 게 없었는데요. 인화 작업을 하다 보니까 필름지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서요.”
“필름지에요?”
승현이 놀라 되물었다.
필립은 그의 앞에 사진 결과물과 네거티브 필름을 나란히 놓았다.
“설마.”
태정은 전처럼 네거티브 필름에만 귀신이 잡힌 거라 생각하고 바로 카메라를 들어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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