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9)
제9화
승현과 태정, 이열상 CP가 자리한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김백춘 국장이 들어와 상석에 앉았다.
“이번에 9회 방영분에 나온 귀신 인터넷에 뿌린 거. 너희야?”
김백춘 국장이 승현과 태정을 보며 물었다.
“아뇨.”
“아닙니다.”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8회에 나온 건?”
“그, 그, 그건.”
승현이 말을 더듬자 김백춘 국장이 이마를 북북 긁었다.
“뭐- 보니까 너희가 게시 글 썼던 건 안 걸린 것 같긴 하다만. 아무튼 9회 묘비 사건 이거 생각보다 크게 이슈가 되는데?”
“그렇죠?”
승현이 살짝 미소를 참으며 되물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이렇게 귀신을 이용해서 사건을 해결하거나 하는 포맷은 어때? 열상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김백춘 국장이 이열상 CP를 보며 물었다.
“최PD가 괴담 다루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긴 한 거 같은데 사건을 해결하는 거 자체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요새 너튜브에서 ‘퇴마 탐정’이니 뭐니 하는 콘텐츠도 이미 있어서 그걸 넘기긴 힘들 것 같고요.”
“그래? 최PD 생각은?”
“사건 해결이 주 목적이 아니라 귀신을 담는 걸 주 목적으로 하면 괜찮을 것도 같아요.”
승현이 대답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말이야. 그냥 단순히 귀신만 나온 걸로는 그냥 마니아 사이에서의 흥밋거리- 정도로 끝난 거 같은데 사건이 하나 끼니까 이게 대박이 났단 말이지.”
김백춘 국장이 깍지를 끼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열상 CP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귀신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사건과 연결이 되면 현실적인 개념으로 넘어오게 되니까요. 더 흥미를 끌 수는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귀신을 이용해 형사 사건을 들쑤신다는 것 자체가 좋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귀신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한다.
이건 많은 사람들에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던 승현이 첨언했다.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에 가서 그 귀신을 찾아내는 것 자체만 주 콘텐츠로 잡고 움직여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실종자나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것처럼 구성을 해서요.”
“흐음.”
“이번에도 귀신을 찍으려고 거길 갔다가 묘비까지 찾은 거니 운이 좋으면 국장님이 말씀하신 ‘사건’도 건질 수 있겠죠.”
“뭐? 거기 귀신 찍으러 간 거였어?”
김백춘 국장이 세모눈을 뜨고 되물었다.
순간 승현은 말실수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8화와 9화 모두 커뮤니티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를 선택한 후 그곳을 촬영지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상사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승현은 [풍경이 좋다]의 담당 PD.
[풍경이 좋다]를 위해 좋은 풍경을 담으려다 귀신이 찍힌 것이 아니라 귀신을 찍으려고 하면서 서브로 풍경을 찍었다면, 그건 담당 PD로서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하아. 저 놈의 똥고집.”
김백춘 국장은 이마를 북북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열상 CP도 승현을 보고 입모양으로 욕을 보내왔다.
잠시 이어진 침묵.
“너 이거 파일럿 하나 던져볼래?”
김백춘 국장의 말에 승현이 화색을 했다.
반면 이열상 CP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네가 말아먹은 파일럿 프로가 몇 개 있어서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괴담이즘] 이거는 대박 쳤었잖아. 그때도 박태정이랑 했던 거고.”
“네, 네! 맞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너. 내가 기회 준다.”
김백춘 국장이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영상에 귀신 찍힌 거처럼. 귀신 찾아내는 내용으로 다큐 한 번 제작해 봐. 스코어 좋으면 정규 편성해줄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승현이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구, 국장님. 그렇게 하면 [풍경이 좋다]는…….”
“크게 스킬이 필요한 프로 아니니까 다른 PD 붙여.”
김백춘 국장이 대답했다.
이열상 CP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듣자 국장은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승현과 태정, 이열상 CP는 회의실에서 빠져 나왔다.
“너. 정말 네가 좋은 풍경 찍으려고 촬영지 선정한 게 아니라 귀신 찍으려고 선정한 거야?”
그는 나오자마자 승현에게 물었다.
하지만 승현은 바로 딴 대답을 해버렸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승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파이팅 자세를 하고는 도망치듯 달려갔다.
이열상 CP는 그런 승현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 매사 심드렁하고 음침한 것 같으면서도 뺀질대는 것 같은 느낌의 승현.
확실히 제작감이 있는 연출자임은 분명했다.
이열상 CP는 승현을 RBS 입사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떤 일 때문에 영화제작사에 미팅을 갔던 그.
그때 갓 대학교 4학년이 되었던 승현이 영상의 옥에 티를 찾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열상은 승현을 보는 순간 스카우트를 해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RBS로 데리고 왔고, 그가 좋아하는 괴담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냈던 것이 초대박을 쳤었다.
이열상 CP의 안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승현에게 기이한 능력이 있어서 미스터리 괴담 쪽 소스를 잘 찾아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무튼 그 뒤로 이어진 승현의 연이은 실패는 다시 한 번 승현을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김백춘 국장의 말마따나, 결국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최승현, 그 스스로 판을 만들어서.
“보통 놈은 아니야.”
이열상 CP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RBS 방송국 옥상 흡연구역.
태정이 담배연기를 뿜으며 물었다.
“선배. 그럼 다음 촬영지는 어디로 해요?”
“으음. 국장님 말씀으로 봐선 귀신을 추적하면서도 사건하고 연결이 되면 좋겠다- 뭐 이런 거잖아.”
“네, 그런데 문제소지가 있으니 가급적 조심해야 한다는 거고요. 선배도 그래서 확답 안 하고 그냥 귀신 추적하는 걸로 하자고 하신 거 아니에요?”
“그렇기는 한데 말이야.”
승현이 혼자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풍경이 좋다]에서 귀신을 포착했던 장면을 떠올렸다.사실 그 장면만을 촬영한다면 나올 분량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 조금 더 기승전결이 있는 역동적인 그림이 나올 필요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승현은 태영 저수지 촬영 때 맡았던 피비린내와 쇠냄새를 떠올렸다.
살인 피해자이면서 악귀의 기운이 느껴졌던 바로 그곳이었다.
“우리 7회 때 촬영했던 태영 저수지 있잖아.”
“네, 네.”
“그때 거기서 변사체가 발견된 적 있다고 했지?”
“네.”
“그 사건을 제대로 한 번 추적해 보는 게 어떨까?”
승현이 물었다.
“그럼 [풍경이 좋다] 7회랑 겹치는 거 아니에요?”
“아니지. 아예 포맷이 다른데 뭘.”
“흐음. 그게 분량은 좀 확실할 것 같네요. 거기에 처음 이슈가 되었던 방영분이니까 예고편 같은 걸로 어그로 끌기도 좋을 것 같고요.”
태정이 대답하는 사이, 승현은 당시 메모했던 것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어린이집 원장의 사망과 영상 속 다섯 프레임에 찍힌 귀신의 모습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기에 이상하게 모호했던 낚시꾼 사장과 주민들의 반응까지.
여러모로 애매한 것이 눈에 띄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해보자고.”
승현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바로 기획안 써보자.”
* * *
다음날.
RBS 교양국 소회의실.
승현과 태정은 작은 회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자판기 커피를 홀짝거렸다.
승현은 계속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고, 태정은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무튼 파일럿을 하나 더 받아내시긴 한 거고. 이름은 뭘로 하게요?”
“결재는 [미스터리 탐사대]로 올렸어. 대충 기획안은 보냈고.”
“벌써요?”
“머릿속에 구상은 다 있으니까.”
승현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럼 어쩌실 계획이에요?”
태정이 물었다.
“먼저 우리가 [풍경이 좋다]에서 찍은 귀신 사진을 조금 더 확실히 공론화를 시켜야지.”
“도입부를 아예 그 장면으로 깔고 간다는 거죠?”
“그렇지. 우리가 인터넷에 올린 건 60프레임으로 찍은 걸 30프레임으로 편집한 방영분을 또 한 번 잘라낸 거잖아. 이젠 우리가 정식으로 방영하는 거니까 60프레임 영상 그대로 써야지.”
“오호.”
“그러면 조금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거야. 시청자들한테.”
“그리고요?”
“전문가를 섭외해야지.”
“어떤 전문가요?”
태정이 물었다.
그러자 승현이 앞에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을 태정에게 슥 밀었다.
텁
태정이 스마트폰을 받아 화면을 보았다.
[핸드사이드]화면에는 대형 커뮤니티 [핸드사이드]의 앱이 켜져 있었다.
“이거 우리 영상 업로드 했던 커뮤니티잖아요.”
“그래. 거기에 닉네임 ‘포스그래퍼’ 검색해봐.”
“포스그래퍼?”
태정이 승현의 스마트폰으로 게시 글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자 ‘포스그래퍼’라는 유저가 올린 여러 심령사진들이 노출되었다.
“그 사람. 심령사진 업로드로 활동하는 유저인데 그 사람이 우리 조작 논란 때 편을 좀 들어주더라고.”
“아아아. 네, 네.”
“커뮤니티에 공개된 바로는 일산에서 사진관 운영하거든? 보니까 영상 편집이나 사진 인화 같은 걸 전문적으로 하더라고.”
“오호.”
“보면 그 사람이 직접 찍은 심령사진들 보이지.”
승현이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네요.”
태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어두운 산 가운데 나무 밑에 서있는 여자 귀신.
놀이터 그네 위에 앉아 있는 어린 아이 귀신.
묘지 근처에 우두커니 서있는 얼굴 없는 귀신.
하지만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제목을 보고 사진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그냥 사진만 보면 안개나 연기로 보일 법한 느낌이었다.
어리어리하게 형체만 어렴풋이 찍힌 것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진짜 심령사진 같은데요?”
태정이 말했다.
“그렇지?”
승현이 답했다.
태정은 잠시 고민하다 어깨를 으쓱였다.
“뭐. 선배가 알아서 잘 끌어주시겠죠, 뭐. 콜입니다.”
“좋았어.”
승현이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먼저 [풍경이 좋다]에 나온 귀신 장면을 보여주고, 그리고 내레이션 들어가고 바로 전문가 찾아가는 구도로 가자고.”
“좋습니다. 근데 내레이션은 누구로 해요? 성우 섭외해야 하나.”
“내가 하지, 뭐.”
태정의 질문에 승현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아유. 전문 성우나 누구 방송인 부르는 게 낫지 않아요?”
“내가 볼 때 이거 촬영하다 보면 고정 게스트들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제작비를 좀 킵해두자고.”
승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이. 선배 목소리가 그렇게 좋진 않은데.”
태정은 혼잣말로 볼멘소리를 흘리며 자리를 정리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