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er Who Captures Ghosts RAW novel - Chapter (90)
제90화
그가 안내한 곳은 더욱 허름한 건물이었다.
현지인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그곳에 들어가자 키가 무척 작고 나이든 노인이 보였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여행 가이드를 해 오셨던 분입니다. 젊으셨을 땐 미군 길잡이 역할도 하셨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현지인 가이드가 말했다.
“한국말 못하시죠?”
“네. 기본적인 것 말고는 못 하십니다.”
“그럼 통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승현이 말한 후 노인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승현의 인터뷰가 시작되고 ‘핏빛 건물’에 대해 묻자 노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장을 뒤적거렸다.
이내 오래된 사진과 영어, 베트남어로 된 여러 서류를 책상 위에 쿵 내려놓았다.
노인은 베트남어로 말했고, 현지인 가이드가 통역을 해 주었다.
“그곳은 옛날부터 ‘저주 받은 땅’이라고 불렸던 곳이에요. 그런데 군사적 가치가 있다 보니 오래전 프랑스가 거기를 군사기지로 사용했고, 베트남 전쟁 때는 미군이 사용하기도 했죠. 제 기억에 한국군도 그곳에 들렀던 것으로 기억을 해요. 그런데 그곳에서 기이한 일이 무척 많이 일어났죠.”
그는 오래된 흑백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미국 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민간인들이 포박된 채로 무릎 꿇고 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클로즈업 했다.
분명 평범한 흑백사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금방이라도 사진 속 모든 사람의 눈이 일제히 카메라로 향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도 이상한 일이 발생했어요.”
그리고 노인은 그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 * *
젊은 모습의 가이드 노인 ‘팟꾸이’가 미군을 안내하고 있었다.
“저쪽이 말씀하신 포인트입니다.”
팟꾸이의 안내에 미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미군들이 주둔해 있었고, 그 옆으로 포박된 베트남 사람들이 줄지어 묶인 채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팟꾸이는 이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서 무전음과 군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 의문의 사고가 자꾸 발생해 주둔지를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팟꾸이. 기상편 때문에 돌아가는 헬기가 못 뜬다니까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에 복귀합시다.”
젊은 백인 미군이 다가와 팟꾸이에게 말했다.
팟꾸이는 배낭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여전히 무전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근무자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팟꾸이는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어두운 정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정글 사이로 무언가 언뜻 보였다.
시뻘건 눈을 가진 남자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던 것이다.
팟꾸이는 뭔가 잘못 본 것이 아닐까, 눈을 비볐다.
이곳은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저런 민간인이 마음대로 다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팟꾸이는 군인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쪼그려 앉아 잠을 청했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타다다다당-
콰아아앙-
타다다다당
두두두두두두
잠결에 멀리서 총성과 폭음이 들렸다.
베트남 전장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라 팟꾸이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는 놀라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이 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팟꾸이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그 어떤 군 물자도, 군인들도 없었다.
심지어 최근 몇 달 동안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과 동행한 군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팟꾸이는 군인들이 자기만 낙오시킨 후 떠난 것이라 생각했다.
이 근방을 잘 아는 팟꾸이는 혼자서 다시 복귀 길에 올랐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을 발견했다.
핏빛 건물까지 가는 정글 길목에 잔뜩 널려 있는 군인들의 시신이었다.
그것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팟꾸이 자신과 동행했던 그 군인들이었다.
모두 총에 맞은 상태였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쏜 것 같은 자세였다.
핏빛 건물로 가던 중 이미 죽었던 것이고, 팟꾸이는 그 죽은 군인들의 귀신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던 것.
그리고 건물에서 만난 모두도 환각이었다.
팟꾸이는 도망치듯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간첩 혐의를 받고 말았다.
그와 함께했던 군인들 모두 사망하고 베트남인인 팟꾸이 혼자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모진 고문을 받았지만 현장과 시신의 상태로 봤을 때 간첩 혐의가 없다고 판명이 되어 풀려났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팟꾸이는 너무 억울했고, 핏빛 건물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뭘 본 것인지, 뭘 겪은 것인지 직접 소명해보려 한 것이었다.
* * *
팟꾸이는 여러 사진과 서류들을 토대로 설명을 이어갔다.
승현은 현지인 가이드의 통역을 토대로 계속해서 메모를 해 나갔다.
그렇게 인터뷰가 마무리되자 태정이 녹화를 멈췄다.
“죄송하지만 혹시 그 ‘핏빛 건물’로 저희를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승현이 물었다.
팟꾸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근처’까지는 안내해 드리죠.”
그가 베트남어로 대답하자 옆에서 가이드가 통역을 해주었다.
“통역을 위해서는 같이 가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승현이 현지인 가이드를 보며 말했다.
그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팟꾸이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자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그렇게 승현과 화영, 필립, 태정은 팟꾸이, 그리고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굉장히 오래된 베트남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털털털털털-
현지인 가이드가 운전하는 승합차는 금방이라도 퍼질 것처럼 요란하게 떨렸지만 나름대로 앞으로 잘 나아갔다.
양옆으로 울창한 정글이 펼쳐져 있었고, 좁은 도로 위에는 이끼들이 올라와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도로였다.
에어컨이 고장 나 있어 창문을 열었지만 습한 바람만 불어올 뿐이었다.
일행 모두 더워 손부채질을 하는 와중에, 차량은 도로에서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차체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끼익-
그러다 한 곳에 차를 세운 가이드가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아이고야!”
태정이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켰다.
화영과 승현, 필립도 차에서 내려 심호흡을 했다.
울창한 정글에 작은 길이 나 있는 곳이었다.
차량이 들어가기에는 어렵지만, 사람이 다닐 수는 있는 수준이었다.
“이곳부터는 걸어가야 합니다.”
현지인 가이드 히에우 뚜언이 팟꾸이를 챙기며 말했다.
“녹화 떠.”
승현은 태정에게 손짓을 하고는 현지인 가이드에게 몸을 돌렸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가나요?”
“조금 걸어야 합니다.”
팟꾸이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하자 가이드가 통역을 해주었다.
허리가 살짝 굽은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좁게 나있는 길이 조금씩 없어지고 완벽한 정글로 들어선 듯한 길이 나왔다.
현지인 가이드가 마체테를 들고 앞을 가로막는 잡초를 베었고, 그 뒤로 팟꾸이가 따라갔다.
승현은 수시로 뒤를 돌아 일행과 카메라를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여기가 군인들을 발견했던 곳입니다.”
팟꾸이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가리켰다.
그곳은 지금까지 걸어온 주변 풍경과 약간 달랐다.
오래된 유적이라도 있었는지 넝쿨에 뒤덮인 벽돌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일부 바닥에는 네모나게 다듬은 바위가 깔려 있었다.
건물의 형태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무슨 ‘구조물’이 있던 흔적은 분명했다.
“이곳은 뭘 하던 곳인가요?”
승현이 을씨년스럽게 남은 벽을 바라보며 물었다.
“과거엔 여기저기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종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 시설물일 겁니다.”
팟꾸이가 대답했다.
현지인 가이드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통역을 해주었다.
“흐음.”
화영이 벽을 슥 만져보았다.
탄흔이 명확하게 남아 있었다.
“저기, 저건 뭐죠?”
그때 이곳저곳 사진을 찍던 필립이 한쪽을 가리켰다.
기괴하게 생긴 동물 형태의 석상이었다.
“이 지역의 원주민들이 믿었던 신입니다.”
팟꾸이가 대답했다.
넝쿨과 이끼가 지저분하게 뒤덮여 있어 언뜻 보면 석상이라고 생각 못 할 수준이었다.
태정은 카메라 앵글을 석상에 맞추고 천천히 클로즈업 했다.
“기괴하네요. 고대 유적 같은 건가.”
태정이 나지막이 말했다.
승현은 그 유적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온갖 풀 냄새가 가득한 사이로 악취가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이어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시스사스사세샤소수시서스사서시서소샤샤시시서사시사수사시샤사서시서서서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쿵-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 사이로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기, 저기 뭐예요?”
태정이 울창한 숲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일행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누군가 있어요.”
필립이 그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자 현지인 가이드와 팟꾸이가 격렬하게 손을 휘저었다.
“가면 안 돼요! 가면 사라져요!”
쫓아가면 실종된다는 의미였다.
필립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보다 숲 쪽으로 카메라를 줌 해 보았다.
하지만 그림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뭐였죠?”
승현이 팟꾸이에게 물었다.
“뭐가 됐듯 절대 쫓아가면 안 됩니다.”
현지인 가이드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팟꾸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이곳의 법칙은 딱 한 가지. ‘그래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 어떤 일도 하면 안 됩니다.”
표현이 어렵지만 단순한 이야기였다.
뭔가에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확신이 생긴다고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기도 했다.
“귀신에 홀리기 쉽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화영이 덧붙여 말했다.
“이동합시다.”
팟꾸이가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돌아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