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son to sell the Korean Peninsula RAW novel - Chapter 278
276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1)
사실상 김가의 3대 가주가 확정된 김재호의 아들 김철진은 이원생의 부름으로 태자 이효손과 함께 한양에 와 있던 상황이었다.
그가 국정을 운영할 파트너로 이순지를 발탁하고 제 누이를 연결시켜 혈족으로 만들어 영구적으로 옭아맸다는 사실이야 이미 대조선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김철진의 인재 수집 욕구는 대단한 편이었다.
그런 소년이 오를레앙의 처녀라든가, 프랑스의 성녀라든가 하는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다.
“헤헤! 대부!”
“철진이 왔느냐.”
황제를 대부로 부를 수 있는, 그야말로 대조선에서 유일한 가문이었던 김가의 후계자 김철진은 제 아버지만큼이나 이원생을 살갑게 대했다.
“네. 이번에 프랑스에서 직접 잡아온 성녀라는 아이가 궁금해서요.”
“잔 다르크를 만나보고 싶더냐? 그 아이가 진짜 성녀라면 휘하에 인재로 발탁할 생각도 있는 모양이로구나.”
“헤헤.”
머쓱하게 웃는 김철진의 눈빛에는 [인간]에 대한, 정확히는 [능력 있는 인간]에 대한 탐욕이 그득했다.
어차피, 이효손과 함께 차기 대조선을 이끌어야 할 신인의 가문이었던 만큼 그런 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았으니 이원생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 여아가 아직은 우리말에 능숙하지 못하단다. 역관이 없으면 제대로 대화조차 되지 않으니 직접 소통은 어려울 터인데 그래도 볼 생각이더냐?”
“궁금하니까요.”
“흐음···.”
마침, 김철진과 잔 다르크의 나이가 엇비슷한 것을 떠올린 이원생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럼 네가 한번 우리말을 가르쳐 볼 생각은 없더냐?”
“···제가요?”
“그래. 정말로 그 아이가 성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비망록’에서도 한 장이나 다뤄진 여아가 아니겠느냐.”
김승후의 비망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망라하여 훈민정음으로 집필한 서책이다.
그것에 담겨있는 지식들은 대조선이 발전해 나갈 방향이나 기술적인 특성, 동방(서방) 세력의 대체적인 역사들에 관한 것이었다.
프랑스 또한 유럽의 주요 국가였던 만큼 김승후는 제법 비중을 두고 비망록에 기재한 상황이었고, 그중에서 오를레앙의 처녀는 무려 한 장 분량을 차지하는, 나름 무게감 있는 비중을 차지했다.
“성녀의 재지는 괜찮은 편인가요?”
“나쁘진 않아 보인다. 아비였던 자크 다르크가 그래도 교육을 잘 시켰던 모양인지 우리말을 배우는 속도도 나쁘지 않더구나.
뭐, 그들 형제가 죽기 직전 구해준 곳이 대조선이니 우리의 말을 유독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지능이 높은 듯 보였느니라.
다만, 프랑스의 글은 모르더군.”
그 말에 김철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글을 모른다라··· 그럼 훈민정음은 어느 정도로 습득했답니까?”
“우리의 언어는 완벽한 표음 문자가 아니더냐. 배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느니라.”
훈민정음에 그야말로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이원생의 말에 김철진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음··· 그럼 제가 가르쳐볼게요.”
“그리하거라. 태감.”
“네. 폐하.”
“잔을 데려오거라.”
“명 받드옵니다.”
이내 명령을 받은 태감 이무생이 어딘가로 향하더니 잠시 후 검은 머리를 한 푸른 눈의 작은 소녀를 데려왔다.
“호오··· 홍인의 계집아이는 이렇게 생겼나 보네요.”
“그래. 이목구비가 워낙 또렷해서 영 예뻐 보이지는 않는구나.”
“그러게요.”
대조선은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이며, 사상적으로 단일 종족이라 스스로를 여기는 자들의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유럽인은 그저 기괴한 오랑캐에 불과할 뿐이니, 잔의 미모를 평가하는 기준도 [예쁘지 않다]로 귀결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다만, 잔 다르크는 흑사병과 천연두가 만연하던 유럽에서 온 만큼, 혹여나 황실에 역병을 퍼뜨릴 수 있을지 몰라 청결과 건강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
성녀를 가족으로 둔 그녀의 남매들 또한 동일한 선상에서 엄청난 관리를 받고 있었으니,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황제 이원생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항제 풰하. 망셰!”
당연히, 지고의 존재(?)를 직접 앞에서 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던 잔은 철퍼덕 하고 엎드려 절을 올리며 어설픈 대조선어로 이원생을 찬양하였으며···.
그 꼴을 조용히 바라보던 김철진의 눈빛은 뭔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반짝임이 담겨 있었다.
“사가로 데려가도 되나요?”
“원하는 대로 하거라. 헌데, 네 아비가 저 여아를 보면 부아가 터질지도 모를 텐데··· 이를 어쩐다.”
“괜찮아요.”
김철진은 환히 웃었다.
“뭐, 종아리 몇 대 맞고 말죠.”
약간, 망나니 기질도 있었던 김철진의 발언에 이원생이 순간 피식 웃으며 답했다.
“황명으로 너를 때리지 말라고 명령해야겠구나.”
“어··· 자꾸 그러면 아버지 삐지실 텐데요. 안 그래도 잔이라는 저 계집을 데려왔다고 퇴청하시면 매일 한숨만 쉬신다구요.
그냥 제가 종아리 좀 맞고 화 좀 풀어드릴게요.”
“···녀석. 왜 이리 능글맞느냐. 꼭 작고하신 네 할애비를 보는 것 같구나.”
김승후의 성격이 딱 저랬다.
유들유들하고 능글맞기가 이를 데 없었으며 가끔 굉장히 무모하기도 했다.
김가의 후손에게 김승후를 닮았다는 말은 그야말로 극한의 칭찬이었기에 김철진은 환히 웃으며 답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대부!”
그렇게 김철진은 잔 다르크와 함께 사가로 퇴청했다.
1424년 4월 16일의 일이었다.
***
“···뭐가 어째?”
각 도의 중심 도시가 될 지역들에 세워질 학교에 대해 맹렬한 논의를 마치고 퇴청하니 철진이 녀석이 오랑캐 홍인 소녀를 집에 데려왔다고 한다.
“헤헤. 대부께서 한번 직접 가르쳐보라고 하셔서요.
명색이 성녀라고 하던데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데려왔어요.”
그러면서 내 앞에 꼴도 보기 싫은 오랑캐 소녀를 떡하니 들이밀었다.
“이미 알겠지만, 대조선의 신인이시자 총리대신인 우리 아버지셔.”
“아, 앙녕하세여.”
홍인들 특유의 코를 찌르는 듯한 암내는 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불쾌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가끔 하시던 ‘불쾌한 골짜기’라는 것이 딱 느껴지는, 인간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 거부감마저 생길 지경인데, 대체 철진이 녀석은 왜 이 여아를 데려와 가르치겠다고 한 거지?
“철진아.”
“네. 아버지.”
“이 여아를 가르쳐서 어찌할 생각이냐.”
“음··· 혹시 압니까. 잔이 진짜 성녀라면 천주와 접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대부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더라도 ‘원래 역사’에서 성녀로 불린 인물이었다면 뭔가 평범한 자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혹시, 이순지를 내 휘하로 거둬들인 것처럼 너도 이 여아가 재능이 있다면 거둬들이겠단 말이냐?”
“뭐··· 그렇겠죠?”
이 녀석의 인재 욕심은 어릴 때부터 좀 남다른 구석이 있긴 했지만···.
설마 성녀마저 휘하에 두고 부려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탐낼 줄이야.
“이 녀석아. 네 대부이자 황제인 양반이 명령하면 이 오랑캐 홍인 소녀에게 대학자를 붙여 가르칠 수도 있거늘, 네가 뭘 안다고 나서서 이 여아를 가르친다는 말이냐.”
“저는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조선의 총리대신이자 신인이 될 녀석 아닙니까.
그런 중책을 맡아야 할 제가 오랑캐 소녀 하나를 교화시키지 못한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저는 엄연히 천주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문의 후계자인데 말이죠.”
“혹시, 일종의 경쟁심이더냐? 저 여아가 천주와 접선할지도 모른다는··· 뭐 그런?”
내 질문에 철진이 녀석이 씩 하고 웃었다.
“설마요. 저 여자애가 진짜 성녀라고 해도 어떻게 저와 경쟁할 대상이 되겠습니까?
홍인은 대조선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에 불과한 종족이잖아요. 그럼 그 목적에 맞게 길들이면 될 뿐이에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녀석도 나처럼 근본적으로 이종족에 대한 거부감은 있는 듯한데···.
“아무튼, 직접 가르쳐보도록 할게요. 폐하의 청탁이기도 하니, 이건 완곡한 표현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걸 보니 괜히 부아가 치솟아 올라 머리를 쥐어박고 말았다.
“···젠장. 아들놈이라고 하나 있는 게 왜 이리 능글맞아!”
“아야!”
철진이는 어린 나이에도 꽤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아이다.
저 녀석을 15세도 안 된 어린아이처럼 봐서는 안 되는 것이 원래 어릴 때부터 제 사람에 대한 탐욕이 엄청난 녀석이었다.
“재지가 별로 없으면 어찌할 생각이더냐.”
“어찌하긴요. 대부께 보고드린 다음, 가노로 부리면 되죠.”
“끙···.”
나는 잔이라는 오랑캐 홍인 소녀를 노려보며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가급적, 내 눈에 띄지 않게 별채에 두고 가르치도록 하거라.”
“네엡!”
***
“기초적인 훈민정음은 뗀 것으로 알고 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김철진은 잔 다르크라는 홍인 소녀를 가르치며 나름 생각이 있었다.
‘흥. 이딴 홍인 오랑캐 계집이 천주와 접선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니.
말이 안 되지.’
대조선의 황제는 겨레의 성자요, 신인은 성자를 보필하며 천주의 존재를 증명하는 존재다.
그런 가문의 세 번째 가주로 태어난 김철진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혈통에 대해 자부심이 컸건만, 그런 자신도 천주와 접선해 본 적이 없거늘···.
황제 이원생은 어쩌면 잔이 천주와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언을 하며 김철진의 자존심을 건드려버렸다.
‘과연 네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지켜보자구.
쓸만하면 부하로 두고 부려먹을 수도 있겠지.’
김철진은 지성이라는 것이 생긴 이후부터 그야말로 엄청난 교육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당연히 그 교육은 전통적인 영재 교육을 비롯해 ‘비망록’에 기재되어있던 기술의 발전과 세계사의 주요 흐름, 이상 기후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당연히 이런 지식은 가르칠 수 없었기에 일단은 이원생의 명령처럼 말부터 가르쳐보고자 했다.
“자, 이거 보거라. 이건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대조선의 역사서야.
이걸로 우리 [배달]의 역사를 배우면서 언어를 습득하면 좋을 것 같아 교재로 선택했으니, 늦더라도 천천히 한 글자씩 완벽하게 읽어내고 그 뜻을 풀이해보자.
할 수 있지?”
아직 대조선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잔은 눈치로 김철진이 건네준 책으로 언어를 배우자고 하는 것을 알아채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네. 감샤해여.”
‘말을 곧잘 알아듣는 것을 보면 눈치는 합격. 과연 이해력은 얼마나 대단하려나···.’
김철진이 본 비망록에서 잔 다르크라는 인물은 최후까지 문맹이던 여인이다.
새카만 머리는 얼핏 보면 대조선인으로 보일 정도였지만, 홍인 특유의 흰 피부는 대조선 백성들의 평균보다는 하얀 편이었다.
“[···하여, 고려 말 풍기 문란···]? 도련님. 문란이 머예여?”
“문란이라는 것은 음··· 그래! 너희 유럽의 일반적인 생활상이야!”
여말선초의 문란한 성 문화를 제대로 고치지 못한 채 제국으로 발돋움한 대조선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당시 유럽의 문란함은 현시점의 대조선을 아득히 뛰어넘는 면모가 있었다.
더구나, 성현의 묘를 모조리 파헤치고 천불교에 유학의 교리도 일부 섞이기 시작하며 대조선인들은 문란함을 종교의 힘으로 아주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었으니 김철진의 판단으로 유럽이 훨씬 문란했다.
“일반적인 유럽?”
고개를 갸웃거리던 잔은 이내 ‘아하!’ 하고는 별도의 공책에 훈민정음으로 비뚜름하니 문란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적어두고 있었다.
[문란: 사람이 많이 죽는다.]···뭔가 좀 이상한 형태로 문란이라는 단어를 기억했지만, 김철진은 그런 잔의 메모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틀렸어여?”
“오냐.”
“문란한 게 머예요? 먹는 건가요?”
“문란이란··· 어··· 그러니까.”
너무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문란의 뜻을 정의해 달라는 잔을 바라보며 김철진은 순간 피식 웃고 말았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뜻해.”
그 말에 잔이 방긋 웃으며 ‘아하!’ 하고는 공책에 다시 문란의 정의를 적어두었다.
[문란: 개판]“···이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폐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