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son to sell the Korean Peninsula RAW novel - Chapter 301
299화. 거기만큼은
“이곳이… 우리 종족의 고향이란 말이야?”
“그래. 우리의 모든 역사가 시작된 곳이지만 황릉과 황릉을 관리하는 자들만이 남아있는 죽은 자의 땅.
선대 황제폐하들이 묻혀계시고 나도 묻히게 될 땅.
성지(聖地) 한반도이니라.”
김재호는 대조선을 이끌어가던 총리대신이었고 자리를 자주 비우는 황제를 대리하여 내정을 다스릴 수 있게 많은 교육을 받은 자였다.
그러나.
그가 받은 그 많은 교육에서는 성지를 밟은 이후의 이유 모를 울렁거림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땅은 참 신기한 곳이었다.
여름은 습하면서 더운데 그 날씨가 가히 열대지역과 비견될만하고 겨울은 우리의 수도인 한양만큼이나 매섭지.
여름엔 불지옥이요, 겨울엔 얼음지옥이라고 해야 할까?
참 재미있는 땅이야.
미주를 실질적으로 관리했던 너라면 이 땅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땅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7할 이상이 크고작은 산들로 이루어졌고 계절변화가 변화무쌍했다.
미주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작았고 규모는 보잘것이 없다.
그러나…
대조선의 전대 황제와 전대 신인이 한반도에 발을 디딘 계절은 한창 더운 여름이 지나 단풍이 아름답게 온 산을 뒤덮어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하는 가을이었다.
아름답기로는 절정에 다다른 계절이었다는 말이다.
그 계절에…
이 땅은 너무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질 만큼.
“이 땅은 사람이 사라지고 난 이후 순식간에 자연으로 돌아갔느니라.
이 땅에 새겨져 있던 역사와 문화는 덩굴과 풀, 나무에 뒤덮여 천천히 삭아가고 있지.
백성들이 살던 사가의 돌담에 우거진 담쟁이들이 어찌나 무성한지 원래부터 거기가 바위로 이루어진 땅으로 보일 지경이었느니라.
아마 이 땅도 성지를 관리하기 위해 와 있는 병력이나 홍인들을 제외하고도 상세히 살펴보면 파악되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할 거다.
저 중원이나 열도, 그리고 고조선과 고구려의 땅에서 죄를 지어 도망친 자, 황릉을 건설한 이후 순장될 것을 눈치채고 도주한 자들이 있을 테니 어딘가 집성촌 같은 게 존재하긴 하겠지.”
성지에 죄인 또는 순장을 피해 도망친 중원인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이원생의 말에 김재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성지에 감히 잡것들이 들어와 있다니… 모조리 다 색출해서 잡아 족쳐야겠네.”
비록, 제 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이 만든 세상이 아름답지 않으니 직접 보고 확인하라는 이원생의 말을 듣고 약간 누그러지긴 했지만…
김재호는 근본부터 타 종족에 대한 혐오가 뼈에 새겨져 있던 인물이다.
당연히 웅장한 미주의 한양과는 달리, 왠지 아기자기하고 작고 험준한 것 같으면서도 아담한 이 아름다운 성지에 대조선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 숨어 살아가고 있다는 말에 그 혐성이 들어날 수밖에.
하지만 이원생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우리의 성지이니 단속은 필요하겠지만 여기도 마냥 작은 땅은 아니니라.
우리의 세계지도에 그려진 것으론 작디작은 땅이었지만,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작지 않더냐.
가뜩이나 유럽에, 남미에, 중원에 퍼져있는 대조선의 군사들도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이니 이곳에 병력을 투사하려면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말에 김재호는 순간 말문을 닫았다.
현재의 인력이 부족해 당장 한반도를 관리할 병력이 부족하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른 종족의 인력을 데려다 쓰면 된다.]면죄부의 값을 치르기 위해 중원에서 한창 천불교를 위한 성전을 벌이고 있는 유럽의 홍인들처럼, 이 땅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 그리되면 이 땅에 그렇게 온 자들이 뿌리를 내리게 되겠지.
철진이 녀석이 성지 관리를 위해 잔의 남매들을 보낸 것처럼, 이 땅의 요지에 사람을 하나하나 가져다 놓아야 할 것이야.
허나, 너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 나도 마음이 좋지 않고.”
“….”
그 말에 김재호는 침음을 삼켰다.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나는 좋다.
이곳은 사람의 개입이 최소화되어 지금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영원토록 보존하고 싶다는 것이 사실 내 바람이야.
그리고 이 땅에 와서 놀랐던 게 무엇인지 아느냐?”
“뭔데?”
“이곳은 말도 못 할 만큼 위험한 맹수들이 참 많다는 것이야.”
“그건 미주도 마찬가지 아니야?”
“미주와는 다른 개념이지. 수군(악어)은 서식지를 벗어나면 그다지 위험하지 않아.
큰곰(코디악베어)은 분명 위험한 짐승이지만 놈들도 대조선군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북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실정이지.
하지만… 이 땅에 있던 맹수들 중, 산군은 다르더구나.”
“…설마! 앞에서 본 적이 있어?”
“성자제(이성계)께서 그 열악한 활과 화살로도 잡았다던 놈이라고 하길래 나도 도전해봤지.
물론 실패했다.”
이원생의 말에 김재호는 황제를 경호하는 병력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아무리 황제가 원하기로서니, 어찌 그 위험한 맹수가 눈앞에 아른거리게 한단 말인가.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놈을 보면서 느꼈느니라. 아… 이 땅은 절대로 만만한 땅이 아니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이 땅에 도주한 자들이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면 그들은 바로 산군의 먹이가 될 것이라는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그렇게 위험한 동물이었나? 산군이?”
“말도 마라. 내 온 세상을 돌아다녀 봤지만, 산군만한 맹수는 없었다.
비견하려면 물속에 있는 수군정도가 그나마 비교해볼 법하지만, 놈은 심지어 수영도 잘 한다더군.”
이원생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아름답게 단풍으로 물든 화령 일대를 둘러봤다.
“우리 대조선의 강력한 기질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그런 맹수와 죽고 죽이며, 중원과 열도의 인간맹수들과도 피 터지게 싸워가며 우리의 선조들은 이 땅에 살아왔던 게다.
찬란한 역사도 있었고 국토의 한계 때문에 발해 이후로는 한반도에 거의 갇혀 지냈다고 하지만…
그 모든 역사 속에서 이 땅의 백성들과 지배자들은 정말 피 터지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그러했겠지.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싸우고 죽고 죽임당하면서…
그렇게 그들만의 역사를 이뤄왔던 것이다.”
김재호는 이원생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너는. 나는. 우리의 선대 황제폐하들은. 그리고 초대 신인이셨던 너의 아버지이자 나의 대부 김승후는.
그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짓밟아버렸느니라.
국가 간의 관계에 인본 따위가 어디 있겠냐마는 정말 최소한의 도리는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토록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이후 대조선이 걸어왔던 길은 압도적으로 나약한 자들을 도살하며 얻은 것들이었다.
솔직히 사람이 할 짓들은 아니었고, 괴물 같은 행동들이었지.”
이원생은 김재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사랑하는 조국 대조선이 자랑스럽다기보단 부끄럽다.
우리는 힘을 가진 자로서, 제대로 된 모범을 세계에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야.”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둘째가… 효온이가 죽었을 때. 나는 우리나라가 무척이나 야만스럽다고 생각했다.
자식의 거세가 걸리니 그때서야 그렇게 느껴지더구나.
분명 건국 초창기의 성자제께선 아바마마(이방과)를 확실한 후계자로 삼고자 하셨던 것이겠지만…
신인 김승후가 고려 말기에 떨어진 이상 ‘조선’이라는 나라는 애당초 성립되더라도 원래의 역사와는 크게 다른 길을 걸어갔을 텐데도.
이방원이란 자가 일으켰던 왕자의 난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셨던 모양이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말이지…
신인을 만나면서 이방원은 태어나지 못했느니라. 그런데도… 그런데도 성자제께서는 그렇게 하셨고 신인은 말리지 않았다.
신인 김승후는 분명 지금의 우리 세계보다 압도적으로 선진적인 곳에서 왔을 텐데도, 그렇게 야만적이었던 거지.”
이원생은 김재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회한에 찬 듯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대부(김승후)를 떠올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그분은 우리 시대의 광기와 미래 시대의 광기를 모조리 다 섭렵해 광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
김재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이원생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래도 철진이는 사람을 사람으로 볼 줄은 알더구나.
보고 배운 게 죄다 그렇게 살벌한 것들뿐이었는데, 잔 다르크를 붙여두었더니 그래도 사람같이 행동하더구나.
그렇기에 나는 철진이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느니라.”
그 말을 끝으로 이원생은 화령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흐드러지게 핀 단풍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철진이는, 잘 할 것이야. 녀석이라면 믿을 수 있어. 녀석이라면 효손이와 함께 대조선을 관대한 제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야.”
심장이 뛰지 않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없으며, 대조선에서 신인은 심장과도 같은 존재.
그렇기에 이원생은 제 아들인 이효손보다는 김철진을 믿었다.
“이곳에서 한 1년간 머물다 동남아와 천축으로 갈 것이다. 그동안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마음껏 즐기자꾸나.
그리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많은 홍인들이 마련해준 곳이니 혹여 홍인들이 눈에 거슬린다고 하여 막 대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대체 왜 그렇게 타 종족에 관대하길 바라는 거야? 이대로도 우리는 충분히 훌륭한데.
우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데.”
“너의 [우리]와 나의 [우리]는 개념이 다른 것이겠지.
그리고 화원에 꽃이 하나만 있으면 단조로워서 재미가 없지 않겠느냐. 껄껄.”
그 차이가 두 사람의 그릇의 차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반도에서 1년간 머무르며 종족의 고향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다음 가을이 오자, 그들은 열도 고려로 향했다.
***
열도 고려는 마치 원래 왜국이 그러했듯, 공민왕의 직계 자손은 사실상 허수아비가 되었다.
총독이라는 관직을 대조선에서 부여받은 충렬공 이지란의 후손들은 이곳을 자신의 영지로 사실상 하사받은 셈이었고 그들은 철선을 타고 수시로 대조선을 오가며 제국의 위엄을 열도인들에게 수시로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일도 벌어진다.
[상황 폐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엉엉! 폐하! 날 가져요!]에도항구에 모인 수만의 인파들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진심으로 대조선의 황제 이원생을 열렬히 반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조선은 항거할 수 없는 가미(신)의 나라였고 대조선의 전대 황제였던 이원생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태풍이자 화산이자 번개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순종적으로 변할 수밖에.
압도적인 힘만 있다면 그 어떤 나라의 백성들보다 노예로 부리기 쉬운 자들이 열도인들이었고 그들은 충분히 대조선의 힘을 경험했으니까.
그리고 이원생은 이곳 열도에서 오랜만에 본 지인을 만나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이구나. 화수야.”
“하하! 이게 몇 년 만에 뵙는지 모르겠습니다. 상황 폐하. 세계 유람은 만족스러우신지요.”
“나의 신인과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이 즐겁기 그지없네.
이곳의 온천이 참 괜찮아 동남아로 떠나기 전, 한 달 정도만 즐기고 가려고 하니 잘 부탁함세.”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한반도와 가까운 열도 고려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상황 폐하께서 한 달이나 머무신다고 한다!] [나니!?] [신께서 이 땅에 머무르게 되었으니, 올 한해도 풍년이겠구나!]아타카마를 수중에 넣은 대조선은 열도고려 총독 이화수의 요청으로 막대한 구아노를 보내주어 옥수수로 박살이 났던 열도의 지력을 되살리게 만들어 준 나라다.
당연히 대조선의 전대 황제를 환영할 이유가 있었다.
뭣도 모르고 옥수수를 함부로 심어버린 이후, 열도 고려는 아직도 국토 대부분의 지역이 지역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원생을 극진히 대우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기랄. 온천은 좋군그래.”
“그렇지?”
그렇게 열도 고려의 귀금속 자원을 대량으로 받는 조건으로 1년 치 구아노를 결제해준 이원생은 한 달의 시간을 보낸 이후 미련 없이 동남아로 향했다.
“중원도 너의 포용의 대상이냐?”
그 물음에 이원생은 씩 웃으며 답했다.
“거기만큼은 안 된다.”
포용을 말하는 이원생도 중원만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나는 대조선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포용을 논하는 것이지, 강력한 경쟁자를 놔두자고 한 적은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