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birth of the Hero’s Party’s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75)
용사파티 대마법사의 환생-275화(275/280)
외전 4화.
잊혀진 전쟁, 거미 군주 토벌전 (4)
“광기의 산맥의 주봉에는 천수궁(天守宮), 또는 천수성(天守城)이라고 불려온 고대의 궁성이 있다고 해.”
나뭇가지로 눈 위에 산봉우리와 구조물을 쓱쓱 그려냈다.
그래,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더없이 뜨거운 시선들이 양쪽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뭐가 문제인데, 미리아? 아가씨도 아까부터 왜 그러십니까?”
거의 동시에 미리아와 카세나가 나를 노려보던 시선을 홱 돌렸다.
흥, 이라는 인류 언어학 역사보다도 깊은 것이 분명한 콧소리를 섞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뭐가 그리 불만인데?
동료들에게 지원 사격을 받을까 싶어 고개를 돌리자 렘이 말했다.
“쓰레기.”
“쓰렉, 쓰렉, 씹쓰렉. 자살 시급.”
피피가 말했다.
발렌시디스가 특유의 기분 나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봉꾼은 본래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린 대가를 치르는 법이지.”
어째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바트가 말했다.
“이럴 시간 없다.”
역시 세상 오래 살아봐야 믿을 만한 동료는 바트밖에 없었다. 설명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천수궁에는 수없이 많은 공간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옛 옥좌로 이어진대. 거미 군주가 봉인되어 있는 장소라지.”
“경비는 없나?”
“예리세리카 님이 본 미래에서는 남동자(男童子)가 이미 궁궐을 지키고 있다더군.”
“남동자…… 여기에서 또 오본위가 나오네.”
“남동자는 천수궁의 공간을 제멋대로 조정할 수 있다고 했어. 미로로 만들 수도 있대. 역사 시대부터 궁전을 지키는 놈이었으니, 당연한 힘이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이 열쇠 거미를 사용하면 천수궁으로 직결되는 차원문이 열려. 거기서, 너희들이 남동자를 유인해줘.”
잠시 정적.
발렌시디스가 왼쪽 눈썹을 치켰다.
“옛 귀족을 상대로 죽음의 술래잡기를 하란 소리인가?”
“술래, 술래, 술래.”
“헤이, 쓰레기. 네가 자운녀를 잡은 것처럼 남동자도 처리해버리면 끝 아냐?”
“안 돼. 남동자가 죽음의 위기를 느끼면 공간 자체를 뒤틀어서 성을 봉쇄할 위험이 있어. 그리고 내가 왜 쓰레기냐?”
바트가 이마를 긁었다.
“넌 뭘 할 생각이지?”
“밀실을, 옥좌를 찾겠어. 그래서 거미 군주의 봉인을 깰 거야.”
“정말 그 짓을 할 생각인가?”
그 질문에 대답하는 데에 아주 큰 노력이 필요했다.
제대로 각오했다고 생각했건만,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악몽을 떠올리자 식은땀도 흘렀다.
하지만…… 방법은 이것뿐.
“거미 군주는 아직 힘이 온전하지 않아. 힘이 완전하지 않을 때 봉인을 깨서 상대하는 거지. 그래서 다시 천 년은 잠재울 거야.”
침묵으로 불만을 시위하던 미리아가 한숨을 내쉰 건 그때였다.
“지금 어떤 일을 하려는 건지 확실히 자각하고 있는 거 맞지?”
“물론이지.”
“아니, 아닌 것 같아. 네가 실패하면 누가 왕과 맞설지 생각해 봤어? 종말을 앞당기는 것 같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아.”
렘도 뒤통수에 깍지를 낀 채 혀를 찼다.
“마도성이 거미 군주와의 싸움으로 자기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봉인이 깨지길 기다린단 말까지 나도는 거 알지?”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장려한 수사문으로 내 이성을 서술하기보다는 진심을 전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우리는 황금시대의 막바지를 살고 있어. 과연 후세에 지금 우리만큼 힘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오긴 할까? 인류가 이렇게 단합해 있는 시기는?”
“…….”
“분명 올 거야. 오긴 하겠지. 하지만 그때는 심연 또한 하나로 뭉쳐서 세상을 삼킬 거야. 그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시간대에 있다고 해도 말이야.”
“…….”
“지금 이걸 해야만 해. 나한테, 그리고 너희들한테 힘이 주어진 이유는 분명 이걸 거야. 우연이 아니라.”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진심을 전달한다.
“무엇보다 아키, 넨, 미르…… 그 아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불꽃으로 성장할 시간을 주고 싶어. 부탁이야, 다들 힘을 보태줘.”
동굴 내부에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의 머릿속에서는 전설 속에서나 이야기되는 옛 왕과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을 것이다.
심연의 군주들은 <온 것들>과 신성 엘미네 기사단들이 뭉쳐 겨우 쓰러뜨린 상대 아닌가.
다른 동료들과 시선을 주고받은 렘이 문득 코웃음을 흘렸다.
“뭐야, 진작 그렇게 말하면 그만인걸. 뭔 놈의 서론을 그렇게 길게 붙이고 그래?”
그 뜻을 확인하듯 동료들을 바라보자, 저마다 몸짓 섞인 동작으로 동의를 표했다.
“아키를 위한 일이라면 이론은 없다.”
“그 멍청한 새끼용이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긴 하군.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테니.”
“멍청, 멍청, 멍청.”
“무슨 소리야? 지금 아키가 얼마나 예쁘게 컸는데. 벌써 키가 나만 해. 새끼용 시절은 끝났지.”
“진짜?”
카세나가 처음으로 미리아에게 살갑게 말을 붙였고, 미리아는 자기 자식 자랑하듯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그렇다니까. 이제 말도 공손하게 잘해.”
“우와, 한번 보고 싶다.”
일순 눈에 눈물이 맺혔으나 아직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었다.
이 눈물은, 모든 일이 끝난 뒤 기쁨의 축배를 들 때 흘리리라.
지금은 옛 신과 싸워야 할 때다.
* * *
“폐하, 전 병력 설령장성의 요새에 배치 완료했습니다.”
그렇게 보고한 사람은 북부의 선제후 듀렌 대공이었다.
듀렌은 북부의 모든 기수 가문에 소집령을 내려 그 병사들까지 데려온 차였다.
그럼에도 장벽의 방어선은 홑겹이었다. 장벽의 길이가 길어도 너무 긴 것이다.
중부와 남부의 군대가 늦지 않게 합류한다면 모르겠다만…….
“배치, 배치, 배치.”
대공의 태양앵무 사이아가 짖었다. 듀렌 가문의 문장은 봉황이었고 예로부터 태양앵무를 사육해서 구성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훌륭하군. 사령관, 하르바도니아의 상태는 어떤가?”
“제일선에서부터 봉화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후신경이 이끄는 심연의 대군세가 일제히 진군을 개시했습니다.”
“걸리는 시간은?”
“통상적으로는 하루, 서두르면 한나절 안으로도 올 겁니다.”
절망적인 침음이 통제실 내부를 휩쓸었다. 말없이 탁자 가장자리를 두들기던 황제가 말했다.
“용현으로부터 연락은?”
그렇게 물은 것과 반쯤 동시에, 연락병이 통제실로 뛰어 들어와 읍했다.
“동쪽에서 붉은 연막을 확인! 용현께서 본 작전을 시작한다는 신호입니다.”
라이다 에이진 황제는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용현이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이겠군.”
* * *
하르바도니아 북단에는 쉬지 않고 출렁거리며 뻗어나가는 영원의 산맥이 있다.
짐승들조차도 꺼리는 그 끔찍한 땅의 이름은 광기의 산맥.
그 산맥의 최고봉에는, 납골당의 잔해로 지어진 영원의 궁전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천수궁(天手宮).
천수궁은 삼천세계를 호령하던 군주에 걸맞은 위용과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하지만 외면의 아름다움과 달리 내부는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
이 영겁의 묘지에는 시대를 알 수 없는 백골들이 낭자했으며, 여기저기에서 거미들이 해골을 부숴 탐욕스럽게 씹어 먹고 있었다.
창백하고 긴 사지에 털 하나 없이 매끈한 몸체, 십여 개의 눈알을 멍하게 끔뻑거리는 괴물들.
하지만 본래 이 세계에서는 저런 단순한 괴물보다 인간의 탈을 쓴 존재들이 더욱 두려운 법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시군요. 이곳은 위대한 왕의 처소, 감히 발을 들인 자는 신분을 막론하고 발목을 베는 형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오본위 서열 5위, 남동자 알큐타는 불길하고 꺼림칙한 안개를 끌고 나타났다.
거미줄과도 같은 안개였다.
등불의 불빛은 그 안개에 붙잡혀 더 나아가지 못했는데, 꼭 거미줄에 붙들려 쇠약하게 날갯짓하는 불나방 같았다.
「무의미한 저항입니다. 항복하시죠. 지금이라면 한쪽 발목으로만 죄를 논할 수 있을 겁니다.」
남동자는 어린 소년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는데,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샤르’카스와 달리 공손한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단지 어법의 차이일 뿐, 인간을 벌레 이하로 보는 그 속내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알큐타의 안개는 공기조차 부패시켜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떫고, 역겹고, 축축한 맛…….
그 공기가 폐로 들어가자, 미지의 존재가 내장을 움켜쥐는 느낌이었다.
“좋아, 그럼!”
동료들이 각기 다섯 방향으로 흩어지자, 알큐타가 안개 속에서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하찮은 존재들에게 예의를 바란 것이 잘못이었군요.」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
안개가 생물처럼 전율하며 꿈틀거리더니…… 주위의 풍경이 일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궁전 구조를 바꾸고 있군.
예리세리카의 말대로다.
안개가 걷히자, 황홀한 장식으로 치장된 주랑이 전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보였다.
인간이 아닌, 거대한 괴물을 위해 세워진 구조물들은 기둥부터 판석까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이런 곳을 하나하나 수색하는 것은 불가능.
“나와라, 루디옌.”
손바닥 위로 태어나 회전하는 마방진을 깨부쉈다.
빛의 나비, 루디옌들이 눈부신 입자를 뿌리며 날아올랐다.
그 숫자, 127마리.
“서둘러, 심연의 옥좌야.”
기다리는 시간은 공포의 연속이었다.
들려온다…….
어떤 때는 먼 곳에서.
어떤 때는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찢어지는 괴물의 울음, 육중한 무언가가 넘어지는 듯한 소리…….
한 소리가 들려온다 싶으면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궁전의 구조가 뒤바뀌었다.
딱.
어느 순간에는 궁지에 몰린 카세나가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당신은…….」
심장이 펄떡 뛰어오르기 무섭게, 알큐타가 손가락을 딱 튕겼고 다시 공간이 변화했다.
「자운녀의 피 냄새가 나는군요. 이 일의 전말을 파악했습니다.」
딱.
그때부터 궁전의 구조가 미로처럼 뒤죽박죽으로 변하며 머릿속에 혼동을 주기 시작했다.
딱. 앞이 뒤가 되고, 딱, 위가 아래가 되고…….
「이곳은 왕께서 제게 맡기신 공간.」
제기랄. 남동자 이놈, 궁전으로부터 내쫓으려 하고 있군.
땀이 비처럼 흘렀다.
서둘러, 루디옌. 제발 서둘러줘.
봉인의 처소가 닫히는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단 말이다.
「제 허락 없이는 그 무엇 하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딱.
이제는 몸도 움직여야 했다.
거미가 수많은 인간을 거미줄로 엮어서 산 채로 잡아먹는 벽화가 눈앞까지 달려들었다.
이물질을 배제하려고 궁전 전체가 생물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딱.
어서.
어서.
어서 빨리.
딱.
루디옌 한 마리가 멀리서 날아오는 게 보였으나, 그러기 무섭게 다시 공간이 뒤바뀌었다.
여긴 지하실……?
암흑천지의 공간이었기에, 어둠을 헤치고 어깨 위로 내려앉는 루디옌이 더없이 선명히 보였다.
「이곳에서 무엇을 꾸미고 있는 겁니까?」
딱.
다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
공간이 다시 바뀌면서, 옆에 앉아 있던 루디옌과 자동적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아, 목적은 불분명하나 그 사술(邪術)로부터 당신을 격리하면 되겠군요.」
옛 귀족 아니랄까 봐, 감이 끝내주게 좋군…….
하지만 내가 이겼어.
루디옌들로 하여금 알아내게 한 것은 공간 좌표. 왕의 밀실이 위치한 공간의 좌표다.
“루디옌, 차원문을 열어!”
차원 공간을 열 때, 새로이 뒤바뀐 공간에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레인?”
급하게 뛰어다니느라 얼굴이 상기된 미리아가 허연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차원문? 이런!」
제르닉스와의 일전 이후, 벨 퀴리어스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원 마법을 공부해왔다.
“위치를 찾아낸 거야?”
이렇게나 확실하게 공간 좌표를 파악한 지금, 단거리를 주파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예리세리카가 말했다.
알큐타가 제어하지 못하는 방이 딱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거미 군주의 밀실이라고.
밀실에 이르기까지의 통로는 멋대로 제어할 수 있고, 또 그 문을 닫을 수도 있으나 그 내부 공간은 조종하지 못한다.
알큐타가 공간을 뒤바꾸기 전에, 열린 차원으로 몸을 던졌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던져졌다.
그 순간 각력을 증폭시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미리아에게 떠밀리듯이…….
미적지근한 늪 속으로 잠기는 듯한 감각이 온몸을 덮친다.
그 역겨운 기분에서 빠져나오자 광대한 공간이 시야를 압도하듯 가득 펼쳐졌다.
옛 왕의 어전(御殿).
서른 명의 장정이 손을 맞잡아야 할 듯한 둘레의 기둥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붕으로 높이 뻗었다.
“미리아, 너 왜 따라왔어!”
“왜냐니! 어이가 없어서, 설마 혼자 갈 생각이었어?”
“그야…….”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그 기둥들이 질서정연하게 짝을 이루며 뻗어나가는 저편 끝에서, 거미발 왕좌가 보였다.
높고 먼 왕좌의 등받이에서는 거미발이 산 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참으로 역겨웠다.
그리고 그 등받이에는 세 개의 칼이 꽂혀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말싸움할 때가 아니야. 가자.”
옥좌 앞으로 나란히 달려가는데 미리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샤릴리온……?”
미리아보다는 쉬르팽이 더 감명을 받은 느낌이었는데, 평소보다도 더 강렬한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샤릴리온?”
“진(眞)성검 샤릴리온! 현재 페이쿼리어들이 사용하는 열두 자루 극위성검들은 모두 진성검을 모방해 제조된 거야. 그리고 쉬르팽은 샤릴리온의 모조품이고.”
“다른 두 개는?”
“아마…… 장검은 리벨덴이고 태도는 갈라디엘일 거야. 필두 용사 알카이오스가 사용하던 성검들. 혼자 두 자루를 쓰셨다고 해.”
카렌덴께서 진성검 세 자루를 봉인의 쐐기로 이용했단 건가…….
나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벌이고 만 게 아닐까?
아니, 아니야. 이미 오본위들이 다 깨어나고 있어.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미리아, 한발 물러나 있어.”
오한과 식은땀으로 떨리는 손을 옷자락에 몇 번이고 닦아낸 다음, 양손을 모아 진리를 대면했다.
“아수라 실혼경.”
다시, 빛이 위대한 형체를 이루며 어둠을 찬란히 밝힌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용이 밀실의 암흑을 오롯이 걷어내면서 강림한 것이다.
벨 퀴리어스로 봉인진을 해석하면서 카렌덴의 지식을 머릿속에 담았다.
“아수라, 쐐기를 빼내!”
아수라가 샤릴리온과 리벨덴, 갈라디엘의 칼자루를 움켜쥔 순간, 문득 눈앞에 신들의 언어가 세 겹으로 복잡하게 겹쳐져 펼쳐졌다.
[신원 확인 중…….] [MT-0, 카렌덴 님. 확인되었습니다.]– 논리 체계 제어 권한 이양.
그 언어가 나타나기 무섭게 섬광이 튀고, 아수라의 칼 쥔 손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수라가 고통 어린 포효를 질렀으나, 이미 등받이에서 세 개의 검을 빼낸 뒤였다.
성검들을 옥좌에서 뽑은 일순.
끼리리릭…….
열쇠로 자물쇠가 풀리듯 봉인진이 정교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성검이 꽂혀 있던 틈새에서 역겨운 안개가 새까맣게 솟구쳤다.
아수라가 나와 미리아의 몸을 감싸주었기에 망정이지, 육신을 삽시간에 녹일 정도의 고열이었다.
그리고 틈새가.
물리적 틈새가 어느새 차원의 틈새로 변했다.
틈새는 서서히 커져가더니 이제는 궁전의 저 높은 지붕에까지 닿았다.
아아, 그 광기.
그 원시적 광란의 지배자.
모든 빛을 뿌옇게 흐려지게 만들며 암흑과 안개조차도 납작 엎드리게 만드는 초월의 존재.
천년의 세월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려 하고 있는가!
맞잡은 미리아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 떨림일지도 모른다.
서로 격한 호흡을 고르면서, 온몸을 짓누르는 광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챙, 챙, 챙, 챙, 챙……!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틈새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다리였다.
그걸 다리라고 해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언뜻 보기에는 거미발이었으나 그 형태를 이룬 건 사람이었다.
수천 명의 사람이 하나로 엮여 벌레처럼 역겹게 꾸물거리며 신음을 흘리는 악몽의 형체였다.
꾸르륵…….
우주의 공동묘지로부터 영겁의 세월을 뛰어넘은 시체와 백골과 덜 죽은 망자들이 끈적하게 쏟아져 나왔다.
아아, 공황이 폭주하고, 광기가 폭발하고, 공포가 들끓는다.
호흡이 뒤틀린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선다.
쉬르팽이 적대적으로 폭발적인 빛을 내뿜었으나 그런 빛조차도 미약하게 보이는 압도적 어둠.
온 세상을 파멸시켰다는 전설과 함께 잊혀졌던 왕이 봉인의 갑판을 뜯어내고 자신의 옥좌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절대적 공포 앞에서.
다시 양손을 모았다.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었다. 간절하게, 절박하게.
이제 여기서 이 싸움을, 내 삶의 백년여정을 끝내게 하소서.
“레인, 뭔가 이상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발치의 차원이 쭉 찢어지더니 무수한 거미줄이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
“!”
즉시 아수라의 빛이 그 거미줄들을 도려내게 하였으나, 아니, 이게 무슨……?
두 눈을 의심했다.
잘리기 무섭게 다시 양쪽 끝이 끈끈하게 맞붙는 게 아닌가. 마치 상처가 아물듯.
이건…… 초고속 재생?
말도 안 돼.
거미줄이 초고속 재생을 한다고?
당황한 한순간, 미리아를 멀리 밀쳐내려 했고 미리아 또한 나를 멀리 밀쳐내려 했다. 그렇기에 둘이 손을 맞잡는 결과가 나왔다.
위기의 순간에 같은 판단을…….
그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거미줄이 우리의 몸과 아수라를 휘감고는 차원의 균열 아래로 끌어내렸다.
* * *
「주군 폐하를 다시 뵙게 되니 그 기쁨이 한량없습니다.」
남동자 알큐타가 공손히, 너무나도 우아하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
「신(臣)이 부족하여 어전이 더럽혀졌사오니 부디 이 불충을 벌하시옵소서.」
차원을, 처량한 달빛을 어루만져 떨게 만드는 악마의 시선이 알큐타에게로 가 닿았다.
끔찍한 신음을 흘리는 혐오스러운 괴물체의 머리 위로 인간의 형체가 하나 돋아났다.
옛 귀족들보다도 더더욱 우아하며 아름답고 찬란한 풍채, 세계를 삼키는 자 아쉬론이었다.
「귀축들의 우매에 놀아나는 척하느라 수고 많았다, 알큐타.」
알큐타가 고개를 더욱 조아렸다.
「모든 것은 주군 폐하의 예언대로. 신은 그저 말씀대로 행하였을 뿐입니다.」
「다른 잡것들은 어디에 있느냐?」
「불경하게도 심연을 다루는 술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공간을 열어 멀리 도망갔습니다.」
「자윤은?」
「주군의 뜻을 받잡아, 후신경은 현재 군대를 이끌고 불경한 벽을 공략 중에 있습니다.」
아쉬론이 입꼬리를 만족스럽게 올렸다. 그러한 모습에조차 천상의 아름다움이 깃들었다.
「자, 다시 시작하자. 광란의 연회를. 삼천세계를 다시금 짐의 색채로 물들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