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birth of the Hero’s Party’s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77)
용사파티 대마법사의 환생-277화(277/280)
외전 6화.
잊혀진 전쟁, 거미 군주 토벌전 (6)
‘사라졌어……?’
미른가디아는 불길한 느낌을 받고 명상 중에 눈을 떴다.
언제 어디에서든, 레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용언의 부적이 있었다.
레인은 그 부적을 항상 품에 간직했는데, 덕분에 세계 어디에 있든 그 기척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세계 어디에 있든.’
그 말이 미른가디아의 지성 어딘가에 걸려 넘어졌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부정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이 답밖에는 없었다.
‘세계수.’
미른가디아는 즉시 세계수를 통해 순백의 꿈 내부로 진입했다.
손가락을 튕기자 수면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글자들이 비쳤다.
미른가디아는 아직 예리세리카처럼 미래를 점지하는 능력은 없었으나, 자신이 쌓은 모든 지식을 이곳에서 총망라할 수 있었다.
‘차원, 다우주, 외우주.’
곧 핵심 지식들이 간추려졌다.
미른가디아는 그 지식들을 순식간에 뇌리에서 요약하고 정리하였으며 새로운 이론을 일궈냈다.
순백의 꿈에서는 현실 시간보다 시간이 열두 배 느리게 흐른다. 그럼에도 서둘러야 했다.
‘외우주 차원 전이.’
곧 만들어낸 차원 전이 술식으로 외우주로 이어지는 균열을 빚어낼 수 있었다.
일순, 미르의 눈이 커다래졌다.
‘찾았다.’
공간 특정을 해야 해.
기력이 많이 약해졌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 거지?
공간 특정이 끝날 무렵, 절대적 사념이 꿈의 공간으로 밀려 들어와 호수를 침식하기 시작했다.
당혹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곧장 균열을 닫고 그것들을 정화하는데 적잖은 시간을 써야 했다.
‘현실적인 문제점은 둘.’
하나.
미른가디아의 능력으로는 아주 작은 균열밖에 열 수 없었다.
인류를 기준으로 크기를 측량한다면 청소년쯤 되는 인물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크기였다.
둘.
직접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균열을 유지해야 하며, 지금처럼 사념이 현실 세계를 침범하지 않게 막아야만 했으니까.
‘요정 중에 인물을 찾아야 해.’
순백의 꿈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움직이던 발길을 멈추었다.
‘하지만 과연 청소년 정도밖에 성장하지 않은 요정 중에 외우주의 힘을 견뎌낼 인물이 있을까?’
존재한다면 진작 사사로 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고, 미른가디아의 정보망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요정들이 백룡 군단과 함께 북부로 향했다.
지금 남아 있는 자들은…….
“얼굴 찌푸리는 것은 악(惡)! 한숨 쉬는 것은 악(惡)!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야말로 정의!”
그때, 마치 여명의 한 줄기 햇살처럼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낡고 해진 삿갓 아래서 찬연하게 빛나는 태양의 빛을 머금은 금발.
하지만 그 신성한 금발보다도 더 찬란한 것은 그 반가운 얼굴이 아닐까.
슬슬 처녀티가 나도록 성장했는데, 비룡의 외뿔도 돋아나는 시기인지 이맛살이 사마귀처럼 올망졸망하게 부풀었다.
곧 십자 무늬가 새겨진 눈동자가 아름다운 호선으로 미소를 그리며, 미르의 머리를 토닥였다.
“잘 지냈는가, 미르미르!”
“넨 누나. 어떻게 온 것인지 해명을 요구하는 바임.”
“미르를 보러 정의의 힘으로 탈출했다! 요슈하르 어르신과 하곤 어르신이 북쪽으로 가시는 틈에!”
황룡 군단도 북쪽으로……?
광룡을 보필하느라 오주가 자리를 비울 여유조차 없을 텐데…….
그때 아버지의 태도가 더없이 이상했었다. 역시 북쪽에서 무언가가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해후의 즐거움을 나눌 새도 없이 미른가디아는 세츠넨의 두뇌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재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한참 동안 정리하고 나서야 세츠넨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한 미르미르! 아빠를 구하려고 하는 데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로군!”
“안타깝게도 실로 그러함.”
“성서에 이르길, 형제를 돕지 않는 이의 심정으로는 다른 이를 도울 수 없나니,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으니 넨이 정의의 이름으로 도와주겠다!”
“실로 위험한 시도임. 외우주의 힘은 규명된 것이 하나 없음. 그곳과 이어지는 균열을 여는 것조차 도박임.”
세츠넨이라면 물론 미른가디아가 열 수 있는 균열을 통과할 수 있는, 대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존재다.
하지만.
이 불확실성 속에 누이를 내던져도 되는 것인가? 이러다 레인뿐만 아니라 세츠넨도 잃게 된다면?
“세계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 무엇보다 넨 누나가 외우주에 고립되거나 죽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음.”
그러자 평소에는 장난기 넘치기 그지없는 세츠넨이 빙그레 진지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아버지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미르미르.”
그 미소를 받았을 때.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표정으로 내보이는 법이 없는 미른가디아도 미소를 짓고 말았다.
“인정함. 그 확률은 100%임.”
넨이 그런 미르의 볼을 살갑게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넨도 망설임 없이 간다! 정의를 위해! 자, 아빠가 있는 곳으로 어서 보내주는 것이다!”
* * *
렘과 바트가 차원을 넘어 도착한 곳은 <설령장성> 위였다.
그 위치는 중혜부, 전방에 병선기지가 위치해 있었기에 다른 곳에 비해 전황이 다급하지 않았다.
이곳을 사수하는 마법사의 중심에는 루드윅 부자(父子)가 있었다.
그들은 레인과 미리아의 행방을 물었다. 같이 오지 않았냐며.
“차원진에 균열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간 모양입니다…….”
대충 그렇게 에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친부에게 죽음을 고하겠는가? 혼란만 더해질 뿐이다. 그리고 아직 죽은 게 확정된 게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몇 번이고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던가.
“바트, 이제 어떡하지?”
이변이 생긴 건 그때였다.
별빛이 부르르 떨더니, 달빛이 가려질 정도로 요염하게 번뜩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눈보라가 휘몰아친 것은.
거기서 보았다…….
진정한 왕을 알현한 기쁨에 겨워 내지르는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그 행복에 겨워 미쳐버리거나 몸이 폭발해 죽는 소리들이.
그리고 또 보았다.
정신을 갉아먹는 그 절대적 광기를, 초월적 암흑을, 깨끗하게 씻어버리는 신성한 물결을.
그리고 들렸다.
이 땅을 헤아릴 길 없는 세월 동안 지켜온 순청(純靑)의 목소리가.
「장벽이 무너졌다. 그대들은 남쪽으로 향해 후신경을 막아라. 황룡들이 도울 것이다.」
* * *
천공에서 눈알이 돋아났다.
처음에는 시공섬(時空殲)의 작용이 뒤늦게 일어난 균열이라 생각했건만…….
균열이 서서히 커지더니 각막을 이루고 망막을 이루고 홍채를 이루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늑대의 안구에 가까웠다.
나는 보았다.
그 형언할 수 없이 기괴한 눈알들이 하나둘씩, 이어 수십 수백 개씩 돋아나더니 곧 천년설옥의 천장을 뒤덮는 것을.
온몸이 짓밟히는 듯한 압박감 그 너머로.
시간 너머 빛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부터 광기의 북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의 정신을 부수고 깨트리고 또 짓이기는…….
“뭐, 뭐야…….”
검술은 옛 기억을 계승했으나 육체에 용의 혼이 깃들지 않은 미리아가 숨을 헐떡거렸다.
그리고 또 나는 보았다.
그 눈알로부터 눈물처럼 흘러내린 액체가 소름 끼치는 촉수들로 일변한 것을.
그 촉수들이 다음 순간 일제히 우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을.
* * *
유전자에 각인된, 아니, 과거에 학습된 공포…….
카세나의 입에서 입김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프리스비아의 광학 투구 내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인 화차 부대는 뇌리를 잡아 비트는 듯한 고통 속에서 하나둘 황망히 전대미문의 언어를 중얼거렸다.
“두려워할 것 없다!”
프리스비아의 최측근 엘드비히가 그렇게 소리치며 부대의 사기를 규합하려 했다.
“놈은 이제 막 봉인에서 깨어난 참이다! 봐라, 육체가 아직 완벽하게 재생된 것도 아니야! 예전에 불타 스러졌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샤르’카스는 유유히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어깨 아래로 불타 흩어진 팔은, 역겨운 점액질 기포 가운데 새로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병선기지의 주포(主砲)와 화차 삼십여 문이 모두 샤르’카스에게로 조준되었고…… 지축이 흔들리는 포성과 함께 일제 포화가 이루어진 그때.
「천라지망(天羅蜘網).」
천지를 무수한 사선으로 뒤덮는 거미줄 아닌 거미줄…… 그 거미줄 위로 포탄과 화살이 뒤엉키며 붙들렸다.
그뿐인가.
기묘한 힘에 의해 탄도가 뒤바뀐 포탄과 화살들이 역으로 되돌아왔고, 살육의 밤이 시작되었다.
“끄, 끄아아아!”
“화, 화차가!”
“도망쳐!”
그 질척한 피비린내와 소름 끼치는 통곡의 메아리 한복판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 흐, 흐흐, 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음향에조차 깃든 메스꺼운 신격, 필멸자들의 고막이 터지며 귓구멍으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진정한 왕께서 깨어나셨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달콤한 향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어.」
발렌시디스는 방금 그 일련의 행동으로부터,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격의 차이를 알아챘다.
옛 귀족, 샤르’카스.
대마법사 린의 몸을 취했던 나리아두크와 달리 본체로 부활한…… 오본위 서열 3위.
나리아두크를 상대하는 것도 절망의 연속이었건만, 그보다 더 강대한 힘을 지닌 옛 귀족이라니.
“이길 수 없다…….”
감히 손댈 수 없고 또 대들 수 없기에 신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 구별되어 불리는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카세나 페이지! 여기 있다가는 개죽음이야! 우리 힘으로 어떻게 대적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카세나 또한 몸과 영혼으로 그 절망감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졌다. 백금 등급 모험가가 되기까지 했다. 강해졌을 터였다.
그런데, 도대체 뭐지?
그때랑 똑같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목구멍이 타들어 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는 이 공포…….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안 들어.
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프리스비아가 반드시 병선기지를 사수하겠다는 듯, 샤르’카스 앞으로 발을 내디뎠으니까.
병선기지에는 그녀들의 보물, 이슬라가 잠들어 있었다.
「너희들은…….」
육체를 급속도로 수복하던 샤르’카스는 그 언쟁이 있고 나서야 이쪽을 바라보았다.
벌레가 곁에서 앵앵거린 뒤에야 인간이 관심을 주듯이.
그러더니 그 눈매가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가늘어졌다.
「계집, 네년은 내가 반드시 찾아내서 박제할 생각이었는데 바로 이렇게 만나게 됐군. 이 또한 왕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랴.」
“……!”
「카렌덴의 분신은 어디에 있지? 이제 하찮은 인류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만, 나에게 감히 수치심을 안긴 네놈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끝장내주마.」
그 대답으로, 투지라기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동작으로 세 사람이 행동에 나섰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
카세나가 허공에 네 개의 룬을 그려낸 일순간, 크기가 각양각색인 염동력 비눗방울들이 수없이 날아들었다.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역겨운 거미 자식아!”
혈족한계와 염동력을 극한까지 조합한 이 4성 마법은, 표적에게 적용되는 중력과 관성 따위의 섭리를 완전히 비틀어낸다.
“하…….”
발렌시디스도 심연의 성물 카샤수르를 마지못해 휘둘렀다.
시공섬(時空殲)에서 착안한 발상을 4성 주술과 4성 마법과 4성 흑마법으로 절묘하게 모방해낸 차원 마법 계열 5성 바람 주술.
초승달 꼴로 짓쳐 드는 바람칼은 차원을 찢는다.
「재미있군, 인간이 나리아두크의 장난감을 쓰다니.」
샤르’카스가 이제 재생된 왼손의 검지를 휘두르자, 거미줄이 사방팔방으로 날뛰며 그 공격을 모두 배제했다.
아니, 배제하려고 했을 때 카세나의 섭리 뒤틀기가 거미줄의 중력을 개변시켰다.
그렇게 열려낸 틈새로 차원의 칼날이 달려들어, 샤르’카스의 상반신을 차원째로 말끔히 베어냈다.
「……?!」
그리고 피피가 달려들어 발톱으로 그 눈알의 망막을 훑었다.
초고속 재생이 이루어지기 직전, 일순간의 허점.
이 허점을 붙잡기 위하여, 프리스비아의 양쪽 무릎에 장착된 아티팩트가 신묘한 빛을 토했다.
각력을 48배 가까이 증강시키는 이 고대의 정강이 각반은 최근에 찾아낸 어센시쿼리어의 아티팩트 중 하나.
아인의 신체라면 무릎 관절이 박살났을 것이나, 새로이 이식한 수인의 다리이기에 그 반동을 버텨낸다.
왼쪽 발뒤축을 지면에 꽂으며 신체를 고정.
이어 몸을 회전시키는 원심력마저 더해 발을 휘돌려 찬 그 순간.
「먹혔다, 방금 거는…… 동시에 너희는 방금 놓친 거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신체를 재생시킨 샤르’카스의 미소와 함께 허공에서 붙잡혔다.
「이 구도, 기억나지 않나? 나는 아주 잘 기억나는데 말이야.」
빠드드득.
각반이 고통스레 삐걱이다가 부서지고, 그 안쪽 근골이 마른걸레처럼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제 다리를 끊고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갔었지.」
“으, 으으으읍!”
「이번에는 안 놓친다.」
“사, 사부!”
「한 가지, 중요한 걸 하나 알려주지.」
“거미줄이다. 거미줄로 사지를 붙잡았어! 저걸 끊어야 해!”
「인간을 박제할 때 심장과 내장은 필요 없다.」
“왕녀 전하!”
카세나, 발렌시디스, 모험단 측근들 모두가 프리스비아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제 시간을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시간을 뛰어넘는 기술이 있을 리 없으니…….
저마다 황급히 외치는 외마디 비명 속에서 샤르’카스가 내찌르는 손이 프리스비아의 가슴팍을 꿰뚫으려 할 때.
───콰르르르르르르!
홍염(紅焰)의 폭류.
단순한 불꽃이라고 서술하기에 그 불꽃은 고혹적일 정도로 우아했다.
그 신묘한 불꽃은 화차 부대를 학살하던 거미들을, 또 샤르’카스가 박제식을 집행하기 위해 몇 겹으로 쳐둔 거미줄조차도 단숨에 잿더미로 불살랐다.
이 불꽃.
이 열기.
이 온기.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카세나는 심장에 아프고도 강렬하게 와 닿는 반가움을 느꼈다.
‘알라키쉬?’
그럴 리 없어.
알라키쉬는 죽었고, 그 죽음으로 샤르’카스를 봉인했던 육체조차도 박살 났는데.
그러나 그런 현실적 지적을 부정하듯, 화염의 소용돌이 속에서 너무나도 낯익은 미인이 긴 적발을 흔들며 걸어 나왔다.
“아…….”
그때, 이제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 유년기에 보았던 그 위대한 자태였다.
아니, 닮았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무언가 달랐다.
일단 알라키쉬보다 머리칼이 약간 짧았다.
양쪽 뿔은 귀엽기까지 할 정도로 아직 단출했으며, 용린이 삐죽삐죽 돋아난 꼬리도 이제 막 엉치뼈에서 돋아나기 시작했을 뿐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결정적으로 중후한 미색을 지녔던 알라키쉬와 달리, 어딘가 앳된 티가 흐르는 얼굴이었다.
그 순간 미리아의 목소리가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 무슨 소리야? 지금 아키가 얼마나 예쁘게 컸는데. 벌써 키가 나만 해. 새끼용 시절은 끝났지.
설마.
그렇게나 귀여웠던…….
그때 적룡은 샤르’카스의 손아귀로부터 프리스비아를 꺼내 발렌시디스 곁에 내려놓았다.
발렌시디스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네 괘씸한 아비한테서 나쁜 것만 보고 배웠구나. 항상 위험이 극에 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타나.”
발렌시디스에게 순박한 미소를 지은 적룡 근처를 신나게 날며 피피가 그 이름을 읊었다.
“아키, 아키, 아키, 아키.”
정말, 정말이라고……?
그때 알라키쉬를 빼닮은 적룡이 문득 카세나를 바라보았다.
“……?”
잠시 머릿속 기억을 뒤적거리듯 인상을 찌푸리나 싶더니, 곧이어 눈을 크고 깜찍하게 깜빡였다.
“카세나!”
“응?”
“아키 앉아! 아키 엎드려!”
뭐…….
카세나는 잠시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심장 중심이 무언가에 꿰뚫린 듯 아프기까지 했다.
「어떻게 된 거냐?」
아키레아의 출현을 확인한 샤르’카스의 혼란은 카세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했다.
「그 육체 어디서 새로 만든 거냐? 아니, 있을 수 없어. 네놈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