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birth of the Hero’s Party’s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78)
용사파티 대마법사의 환생-278화(278/280)
외전 7화.
잊혀진 전쟁, 거미 군주 토벌전 (7)
「무슨 요행을 벌인 거지?」
샤르’카스와 마주한 아키레아는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알지 못하는 기억의 흐름을 느꼈다.
‘몸이, 머리가 어지러워.’
늘 근원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어떠한 온기와 이미지, 그것이 지금처럼 폭풍처럼 휘몰아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것도 그 기억이었다.
분명 아버지를 찾고 있었건만 어떠한 목소리가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 이쪽이야, 아키.
머리를 움켜잡고 잠시 휘청거리던 아키레아가 말했다.
“너…… 기억 속에 있어.”
「……?」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랑 만난 적이 있어?”
샤르’카스가 알라키쉬, 아니 아키레아에게 생긴 이변을 알아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알고 싶나?」
아키레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걷기 시작한 샤르’카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슬픈 기억이 떠오르나 보는구나. 네 어미로부터 버림받았던.」
“아키, 순 거짓말이야, 저딴 말 듣지 마!”
「네 어미는 널 증오했어. 짐짝처럼 여기며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인간들에게 넘기곤 했지.」
샤르’카스의 어린 몸이, 역겨운 물질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거대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나한텐 엄마가 없어.”
「흐흐흐흐흐흐흐, 그래, 어미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널 그렇게 버렸으니까!」
별을 향해 포효하는 다섯 개의 머리통은 광기의 산물이며…….
인간을 닮은 몸체는 크고도 메스껍게 쭉 뻗었으나, 십수 갈래로 뻗은 하체의 형태는 언뜻 혐오스러운 거미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아아, 그 몸을 이루는 요소들은 모두 마구잡이로 뒤엉킨 인간의 손발이 아닌가!
「그 우매한 것도 널 끝내 미워하면서 죽더구나. 놀랍지도 않아. 네가 거치적거리는 바람에 내 손에 죽게 되었으니!」
그 광기의 폭풍, 그 광증의 파도, 아인 수백 명이 머리통이 폭발하며 쓰러졌다.
또 수백 명은 광증에 전염되어 미친 듯이 웃어대거나 기괴한 방언을 중얼거리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 초월적 형상의 위압감은 카세나나 발렌시디스조차도 무릎이 꺾이게 만들 정도였으니, 멀쩡히 서 있는 건 아키레아뿐이었다.
“거짓, 거짓말이야…… 아키, 알라키쉬는, 알라키쉬는 널…….”
지면에 쓰러진 카세나는 숨을 겨우 헐떡이면서 중얼거렸으나 도저히 말을 맺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사랑해서.
자기 삶보다도 더 사랑해서.
위험에 빠질 때마다 같이 있을 수가 없던 것뿐이지, 절대로 버린 게 아니야.
「버림받아서 서글픈 그 마음을 내 친히 보듬어주마.」
거미발의 일격에 아키레아가 눈밭을 나뒹굴었으나 곧 낙법을 취하며 일어섰다.
그 위로 즉시 절벽처럼 일어선 두 번째 거미발이, 지축을 내리찍자 눈 폭풍이 맹렬하게 일어났다.
샤르’카스가 선택한 전술은 기만전술에서 비롯된 속전속결.
그때 아키레아는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알지 못하는 기억의 폭포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상해.’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이렇게 알지 못하는 기억이 머리를 잠식할 정도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저 녀석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건가?
“이대로 놔뒀다간, 아키가…….”
그때 카세나는 겨우 몸을 일으키면서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방법이 없을까?
샤르’카스의 거짓으로부터 아키를 지킬 방법이, 그 기억의 단편을 알게 할 방법이.
‘그때의 알라키쉬처럼.’
그 일순간, 눈이 퍼뜩 열렸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 속에서도 프리스비아를 치료하던 발렌시디스에게 다급히 말했다.
“회장님, 이슬라, 이슬라를 여기로 데려와 주세요!”
“이슬라가 누구지?”
“카세나, 지금 무슨…….”
“잠깐이면 돼요. 그리고 어차피 아키가 지면 우리뿐만 아니라 이슬라도 죽어요!”
프리스비아는 이슬라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게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으나 끝내 허락했다.
카세나로부터 대강 설명을 받은 발렌시디스는 병선기지의 함교로 이동했다.
흑양린을 통해 작동하는 방호 체계를 새로이 조작한 다음, 이어서 실험실로 이동했다.
중앙 시험관에서 새하얀 머리에 벌써부터 용 뿔이 돋아난 유아를 끄집어냈다.
품에 안긴 용아(龍兒)는 가랑잎보다도 가벼웠다. 그 눈꺼풀이 조심스레 떨렸다.
“이대로 밖으로 데려갔다간 얼어 죽겠군…….”
발렌시디스는 한기를 막는 주술을 몇 개나 걸고, 자신의 망토로 그 아이의 몸을 감싼 다음에야 다시 차원을 넘었다.
초월체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몸이 짓뭉개지는 듯한 그 강대한 힘의 향연.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는지 이슬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카세나가 이슬라를 넘겨받아 소중히 품었다. 그 울음이 멎질 않았다.
“아키를 이쪽으로 데려와 주세요. 그리고 잠깐만, 정말 잠깐이면 되니까 시간을 벌어줘요. 제가 말한 대로 병선기지를 조작했으면 가능성이 없진 않을 거예요.”
뭔가 정말 방법이 있는 건가?
발렌시디스는 잠시 카세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죽으라고 명령하지 그러나? 그게 더 편할 텐데.”
발렌시디스는 해학적인 말장난을 건넨 순간, 병선기지가 비상 전력을 제외한 모든 동력을 전투 체제로 이양했다.
병선기지의 측면에서 아직 작동하는 모든 포구가 일제히 샤르’카스를 노렸고…….
아키레아를 마구잡이로 유린하던 그 육체에 광탄이 수없이 꽂히면서 찰나의 허점이 발생했다.
그 순간 나타난 발렌시디스가 아키레아를 데리고 카세나의 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훌륭한 역용술과 축골공으로 아키레아로 변장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존재감 자체가 다르니 금방 정체가 탄로 날 터이나, 아주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아키, 잘 들어. 네 어머니는 계속 널 생각했어. 널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고.”
망신창이의 몸을 일으키는 아키레아에게, 은인의 딸에게 카세나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자신의 사명이 시작된 이곳에서, 널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그저 계속 걸어왔어. 아무리 걸어도 똑같은 일상인데. 걷는 걸 중단해도 됐을 텐데.”
분하게도, 정말 슬프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그러니 최선을 다해 해야만 해.
알라키쉬가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나 말고는 해줄 사람이 없어.
“하지만 알라키쉬는 결국 널 만날 수 없었어. 우리 때문이야. 나랑 레인을 지키려고, 저 괴물로부터…….”
“알라키쉬……?”
“이슬라…… 이 아이…… 네 유전적 동생이야. 같은 엄마, 알라키쉬의 세포로 만들어진 거니까. 자, 한번 안아볼래?”
아키레아는 멍하니 이슬라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울음이 멎었다. 이슬라의 작은 손이 아키의 손가락을 꼭 붙잡았다.
“알라키쉬는 너를 그렇게 안아주고 싶어 했어. 항상 노래를 불러줬고, 이마를 맞대고 무언가 사랑의 말을 속삭였다고.”
“…….”
“나도 이슬라한테 몇 번이고 그렇게 해봤어. 이슬라가 정말 행복해하더라.”
거기까지 말한 카세나는 저 앞, 발렌시디스가 샤르’카스의 공격에 초주검이 되어가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알라키쉬?’
그때 아키레아는 멍하니 이슬라를 내려다보았다.
뭔지, 뭔지 모르겠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건가? 싸우러 가야 하는 게 아닌가?
“Ma kiome…….”
그때 이슬라가 꼼지락거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체취가 왜인지 익숙해 그 향기를 맡았다.
그 순간 불현듯.
기억의 둑이 무너지듯.
이슬라의 몸 냄새는 겨울날의 장작의 냄새로 이어졌고, 차가운 눈 냄새로 이어졌다.
‘Ma kiome……?’
그 언어가.
그 모든 냄새가.
무언가를 소중히 안고 있을 때의 온기가.
– Ma kiome!
깨진 거울을 들여다볼 때처럼 흐릿하기만 하던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냈다.
‘알라키쉬.’
먼 겨울날, 알 속에서 꾸물거리던 날에 듣던 노랫소리가 들린다.
늘 자신을 너무나도 소중히 품던 온기가 느껴진다.
무어라 말할 수 없던 자신에게 거듭 말을 걸던 목소리가 들린다.
알 속에서, 그 존재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알을 깨고 나온 순간부터, 그 존재의 향기를 가진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처음 만난 순간 “내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늘 자신은 엄마가 아니라고 말할 때 아버지의 표정은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화염만리>에서 헤어지기 직전에도, 자신은 절대 그분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 이유를 몰랐다.
– 아키레아, 네 근원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근원은 화룡이지만 네게는 다른 근원이 있다.
눈송이가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 고요한 울림 속에서, 새끼용인 자신을 꼭 끌어안고 이마를 맞대는 어머니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것은 꿈.
알라키쉬가 평생 한 번이라도 누려보길 원했던 꿈의 편린, 꿈의 유전.
– 네 마음에 존재하는 공백, 근원을 알아야 그 공백이 채워질 거다.
엄마, Ma kiome.
그 평생의 첫 울림을 가장 먼저 들어야 했던 존재, 그 울림을 누구보다 고대해왔던 존재.
그 존재의 이름, 알라키쉬.
“Ma kiome.”
내 영혼의 근원…….
그 환상을 모방해, 이슬라를 똑같이 끌어안고 이마를 맞댔다.
무수한 기억이 하나로 엮이고 뭉쳐지며, 뜨거운 물줄기로 양쪽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아키, 늘 네 엄마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아빠는 나라고 성화를 부리니 말 한번 못했지만…… 언젠가 네 위대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있던 망향의 슬픔은 기쁨이 되고, 기쁨은 곧 분노와 살의(殺意)가 되어…….
다음 순간.
초월적 화염이 폭발하며 용솟음쳐, 먹구름조차 얼어붙은 하늘에 구멍을 뚫었다.
카세나와 발렌시디스를 끝장내려던 백도령 샤르’카스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볼 정도로.
“샤르’카스.”
그 폭발적 열기가 일순 한곳으로 집약되며, 지상의 태양이 되어 이 어둠의 동토를 찬란하게 밝혔다.
그 태양은 아키레아였다.
전신을 뒤덮은 화염이 눈부시게 이글거렸다. 더 나아가, 아직 미성숙했던 뿔과 꼬리를 성체에 가깝게 확장시켜 내고 있었다.
황금의 눈동자가, 그 어떤 불의 심장보다도 찬란하고도 매섭게 타오른다.
“널 지금 즉시 잿더미로 만들어주겠어.”
* * *
‘용의 형상을 갖추지 않는군. 방법을 모르는 건가?’
샤르’카스는 생각했다.
‘성체에 가깝게 성장하긴 했으나 아직 유체에 불과해.’
난 저놈의 어미인 성체도 이긴 몸이다. 훨씬 쉬운 상대야.
「지껄이는 대로 뭐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나? 흐흐흐, 내 친히 사육하여 예의를 가르쳐주마, 네 어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천지를 가득 메우듯 치켜들어 졌던 다리가 지면을 갈아엎고 거미줄이 허공을 제압했다.
“24.”
그런데…….
빨라. 어떻게 이리 빠르지?
어떻게 된 거냐, 이 비정상적인 속도는?
“45.”
내 공격을 한 끗 차이로 다 피해내고 있다고? 내 공격이 닿는 순간 연기와 함께 사라진다.
그래봤자 인간의 몸을 입은 상태, 위력은 없을 수밖에 없어.
우습군.
위력을 버리고 기동력을 올린 건가?
“67.”
아니, 그게 아니야. 이놈은 뭔가…… 어미랑은 규격 자체가 다른 것 같은데.
온몸이 떨리는 이 위압감의 정체는 뭐냐.
인정할 수 없다. 이놈이 나보다 더 높은 격을 갖고 있다고?
“72.”
피할 때, 아키레아는 샤르’카스가 공격에 이용하는 육신을 손바닥으로 만졌다.
그 접촉면에 새겨지는 것은 힘의 낙인.
촛불처럼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타오르는 힘이나, 샤르’카스는 이를 처리할 수 없었다.
아키레아에게는 보호자들이 있었으므로.
“그 녀석에게 누가 치근덕대는 꼴을 방관했다가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게 된다. 어떤 미친 딸 바보한테 말이다!”
적룡을 붙잡으려고 사방팔방으로 전개되는 거미줄이 차원을 찢는 바람칼에 의해 절단되었다.
「이것들이…….」
그런 발렌시디스를 내리찍으려던 거미발은, 염동력 방울에 의해 낙하 궤도가 비틀렸다.
완전히 압도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어도.
이런 조력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어. 발렌시디스와 카세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회장님, 어서 이쪽으로!”
이 하찮은…….
개별적으로 보면 아무런 위협도 안 되는 버러지들이, 용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100.”
바로 그때, 샤르’카스의 거대한 몸에 새겨진 낙인의 숫자가 100개가 되었다.
아키레아는 회피를 그만두었다.
지면에 발을 굳게 디디고 서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발목을 비틀고, 허리를 비틀며, 체내와 체외에서 회전하는 모든 외력과 내력을 오른쪽 주먹으로 이동시켰다.
“아키, 뭐 하는 거야! 피해!”
저 낙인은 마력 증폭의 표식.
타격이 닿을 시, 응축되어 있던 힘을 증폭ㆍ폭발시키며 전방의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힘.
제로 거리에서의 싸움에서 완벽한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천화파에서 개발된 비기.
그 비기가 이제, 아키레아의 손에서 극한 너머의 경지로 완성되었다.
천화파의 고수들조차 이 낙인을 단 하나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키레아는 태생부터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극진 용화투법.
다중극점(多重極點).
극렬한 폭발과 함께, 철권이 짓쳐드는 거미발과 격돌했다.
그 일순.
첫 번째 낙인이 폭발하며.
그 증폭된 힘을 두 번째 낙인에게로 전달한다.
두 번째 낙인은 첫 번째 낙인의 힘으로 폭발하며, 그 강화된 폭발력을 세 번째 낙인에게로 전파하고, 그렇게 또 증폭에 증폭을 거쳐서…….
이 폭발력은 총 백 번 증대된다.
천지개벽의 빛이 세계로부터 명암과 채도와 색도 따위를 모두 앗아갔다.
지켜보던 이들의 각막이 새하얗게 타들어가고, 귀에서 이명이 울 정도로 강렬한 폭발.
그 폭발적 화염이 옛 작위를 받은 괴물의 전신을, 그 괴물 너머의 혹한의 땅까지 눈부시고도 거대하게 뒤덮었다.
퍼버버버버버버벙!
그 막대한 열기로 근방의 눈보라가 완전히 사그라지고, 대지를 뒤덮은 눈밭이 일시에 녹아내려 진흙탕이 되었다.
‘뭐냐, 이건……?’
발렌시디스가 눈을 끔뻑였다.
화염에 한해서라면 레인 루드윅이 다루는 화염 마법을 아득히 초월하지 않은가…….
‘여의주를 추가적으로 두 개를 더 받았다더니…….’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그때 그 새끼용이 어느덧 진룡의 힘을 저렇게까지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옛 귀족을 이렇게까지 압도할 수 있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아키, 아직 안 끝났다!”
폭발의 순간, 본체를 버렸을까.
인간의 몸을 입은 샤르’카스가 폭연으로부터 빠져나오며 천라지망을 펼쳤다.
그 거미줄의 난타가 아키레아를 후려치며 눈이 녹은 진흙탕 위를 뒹굴게 만들었으나.
「이건, 이건, 절대 불가능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그 육체도 한계에 가까웠다.
레인 루드윅에게 방심하다 당했을 때보다도 더욱 만신창이였다.
왼팔과 머리통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신체 부위라고는 없었다.
‘몸에 달라붙은 불길이.’
카세나의 심장에서 전율이 내달렸다.
‘그 나머지를 불태울 때까지 거듭 몸을 좀먹어서 그래.’
그래서 샤르’카스는 직접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저렇게까지 잘라내야 했던 거야.
“지금이라면……!”
카세나가 머리끈을 풀었다.
그 머리끈에 새겨진 것은 일련의 룬, 그 룬을 그대로 허공에 옮겨 적는다.
그 순간, 샤르’카스의 육신이 빛의 비눗방울에 의해 휩싸였다.
「……?!」
이는 초대 에밋사 페이지 때부터 페이지 가문에 전통적으로 계승되는 검은 태양 카렌덴의 봉인 술식.
그걸 카세나가 알라키쉬와 레인 루드윅으로부터 받은 지식과 결합하여 더 강하게 조합해냈다.
지금 같은 순간에, 알라키쉬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또 누군가를 안녕, 이라는 말과 함께 희생하지 않아도 되도록.
“샤르’카스! 날 박제하겠다고?”
비눗방울 내부에서 강철의 골조가 나타나더니, 샤르’카스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때, 알라키쉬의 몸이 그랬듯.
샤르’카스가 발악하려고 육신 어딘가에 힘을 주자, 비눗방울 내부에서 형성된 무형의 쐐기가 그 관절 부위를 꿰뚫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내가 널 봉인해 주겠어!”
원래대로라면, 미숙한 자신의 힘으로 샤르’카스를 봉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작 찢고 나왔겠지.
“십 년 전의 복수야!”
하지만 지금은 가능해.
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 당혹감에 젖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지금이라면.
예전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
샤르’카스가 무어라 소리쳤으나, 방울 내부의 탄력에 밀려 여기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뭐라고? 안 들려!”
그 순간 비눗방울이 폭발했다.
샤르’카스의 육신과 혼이 빛과 강철과 화염의 쐐기에 뒤덮인 채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그 손끝이 마지막으로 꿈틀 움직이나 싶었으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모든 움직임이 사라졌다.
주위를 압도하던 존재감 또한 사라져서 사위는 일순 고요해졌다.
“…….”
아키레아가 그 앞으로 다가와, 샤르’카스의 새로운 무덤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체외에서 찬란히 타오르던 화염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뿔과 꼬리도 다시 줄어들었다.
저 여린 마음으로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이 못 다한 일을 끝마쳤다고 알라키쉬에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다 카세나가 끝내 입술을 열었다.
“아키…….”
“슬프지 않아.”
“응?”
“기억이 더 선명해졌어. 항상 엄마는 아키 곁에 있었어. 아빠랑 함께 있던 모든 순간에, 카세나랑 함께 모험하던 때도.”
어린 용은 태연하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으나,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눈물을 숨기는 법은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조금도 슬프지 않아.”
웃는 그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소가 사라진 뒤로도 눈물만이 거듭 흘렀다.
그때.
열풍의 아지랑이가 카세나의 시각에 한순간의 환각을 일으켰다.
울지 마렴, 아키.
카세나가 걱정하고 있어.
고개를 떨군 아키의 이마에.
알라키쉬가 이마를 맞대고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속삭이는 환각이…….
* * *
“절대 어떤 유혹에도 흔들려서는 안 됨. 눈을 뜨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함.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고 하나의 길을 곧게 가야 됨.”
미른가디아가 다섯 번째로 경고했다.
누이가 못내 걱정되는 것이다.
그 경고를 머리에 확실히 새겨넣은 세츠넨이 씩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라, 미르미르! 누나가 금방 아빠를 데리고 돌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