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birth of the Hero’s Party’s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79)
용사파티 대마법사의 환생-279화(279/280)
외전 8화.
잊혀진 전쟁, 거미 군주 토벌전 (8)
세츠넨은 우주적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미르는 무형의 공간일 거라 했지만.’
그 길은 돼지기름이 들끓는 듯한, 누리끼리한 공간이었다. 피로 얼룩진 선혈의 공간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러자 무형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촉수로 돋아났다. 의식에 직접적으로 어떠한 풍경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집중하면 안 돼.’
세 개의 대가리에 전부 말뚝이 박힌 이름 모를 괴물, 머리 위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핏물, 더러운 바닥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괴물.
천장.
핏물.
웃음소리.
더러운 바닥에서 메아리치는 신음 소리, 머리 위 천장에서 쏟아지는 눈물, 세 개의 대가리에 전부 말뚝이 박힌 이름 모를 괴물이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의식하면 안 돼.’
우주적 지식이 지각을 뚫고 뇌리로 침투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저 시상 중 하나에라도 관심을 주는 순간, 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외우주를 다스리는 신들의 촉수이자 더듬이가, 새롭고도 흥미로운 제물을 취하기 위해 저마다 의식을 유혹하듯 더듬고 있었다.
괴물.
바닥.
눈물.
울음소리.
의식은 계속 멍해졌다.
머릿속을 비우려 할 때마다 다시 의식은 다른 우주의 소용돌이에 붙들려 요동쳤다.
궁금해, 궁금하지만, 미르가 보지 말라고 했어.
광기 어린 웃음소리.
신음.
벽.
괴물.
‘그것’들이 머릿속 공백을 뜨뜻하고 희멀겋게 메우면서 세츠넨을 부르고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지금 걷는 이 길로부터 자기 쪽으로 오게 하겠다는 듯…….
– 길이 끝에 다다를 때까지 이성이 작동하게 하려면 무언가를 분명히 떠올려야 함.
발목까지 잠기는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넨은 그때 마음의 눈을 열었다.
저 머나먼 날들의 추억들,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기억을 심층으로 끌어당겨 읽었다.
저 늦봄의 날들…….
수평선 끝까지 펼쳐진 너른 벌판을 가득 메운 황혼초들이 일몰 속에서 하나둘 깨어나고…….
레인, 미리아, 아키, 넨, 미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그 꽃들을 바라보며 웃고 또 서로 뛰놀고…….
그 기억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리고 한 줌의 향기였다.
그 빛과 향기로 어떤 어둠도 악취도 끼어들지 못했다. 범접할 수 없는 광휘였다.
세츠넨은 볼 수 없었으나, 신성한 광휘가 그 몸을 감쌌다.
외우주의 기척은 그 빛에 닿으면 파열되어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외우주의 유혹을 모두 떨쳐내는 절대적 순수(純粹).
한 발.
한 발.
머릿속에서 두려움이 사라졌다.천천히 내딛던 걸음을 어느덧 빠르게 종종걸음치기 시작했고, 이어서 달리기 시작했다.
향기가 점점 가까워져.
그리고 빛이 점점 강렬해져.
거의 다 왔어.
있는 힘껏 내딛는 발걸음 끝에서, 다음 순간 챙, 하고 차원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
“……?!”
시퍼런 거미줄과 기괴한 눈보라 말고는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외우주의 촉수들로부터 저항하며 또 쫓기던 레인과 미리아가 흠칫 고개를 들어 넨을 보았고…….
넨은 양쪽 귀를 막았던 손을 떼어내며 반갑게 소리쳤다.
“아빠! 귀여운 넨 등장!”
“넨, 네가 어떻게……?”
세츠넨이 레인의 품에 안기기 무섭게, 미르의 자기력 술식이 눈 부신 빛을 뿜으며 작동했다.
생명체의 상처가 아물듯 닫히는 차원의 균열. 그것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자기력이 그들을 끌어당겼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촉수들이 맹렬한 속도로 뒤쫓아왔고 미리아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촉수가 발목의 살을 뚫고 체내로 들어갔다.
원초(原初)로 돌아가는 듯한 기괴한 느낌, 미리아가 행복한 웃음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비명을 흘렸다.
“쉬르팽!”
레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것이 혈관을 타고 더 위로 올라오기 전에, 쉬르팽의 칼날이 부르르 떨리더니 섬광을 발했다.
그것이 미리아의 발목을 절단한 순간, 셋은 차원의 균열 속으로 들어왔고, 균열이 닫혔고, 촉수들의 허리가 끊어졌다.
“넨…….”
방금 이성을 침식해 들어온 기분 나쁜 울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리아는 넨을 꼭 끌어안았다.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 저은 넨이 미리아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자기력에 의해 그들은 저 너머, 창세의 빛이 비치는 공간으로 날아갔고…….
곧 전신에 낯익고도 아름다운 향기와 온기, 그리고 눈부신 달빛이 시야 가득 쏟아졌다.
이곳은 세계수의 호수.
이 땅에서 가장 고요하고 또 아름다운 땅.
셋이 균열 밖으로 튀어나오며 풀밭을 마구잡이로 구르기 무섭게, 미르가 균열을 재빨리 닫았다.
“미르?”
“괜찮음?”
“넨 누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잘 봤지, 미르미르?”
레인이 미리아의 발목을 재생시킬 때, 넨과 미르가 손뼉을 짝 마주쳤다.
그 순간, 레인과 미리아는 넨과 미르를 꽉 끌어안아았다.
두 아이와 얼굴을 맞댄 채, 아주 오랫동안 그저 그러고만 있었다.
극한의 위기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메운 감정은…….
넨과 미르가 순식간에 어른이 된 것 같은 게 너무 대견하고 또 기특해서…….
그러나 그 기쁘면서도 편안한 적막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인류의 명운을 건 전쟁 중이었다.
“미르, 방금 그 차원 술식, 네가 만든 거야?”
“그러함. 넨 누나의 두뇌가 그런 걸 해낼 가능성이 없잖슴.”
“넨은 정의의 사자, 그런 걸 쓰지 않아도 강한 거다!”
“나에게 알려줘.”
“레인, 뭘 하려고?”
“거미 군주를 끝장낼 방법을 알아냈어.”
확률은 반반.
누가 선공을 치는지에 달려 있겠지만, 이 방법이 최선이다.
“정말로 다 끝낼 방법이지…… 내 삶의 싸움을.”
* * *
「예리세리카, 네 가련한 형제들은 어디에 두고 홀로 왔느냐?」
아쉬론은 수룡의 위협이 같잖다는 듯이 여유까지 부렸다. 곁에 있던 남동자 알큐타가 고했다.
「인간들의 기억을 읽은바, 화룡은 남쪽 대륙에 장막이 되어 죽었다고 하며, 광룡은 시간의 군주님을 대적하다가 깊은 상처를 입어 거동이 불가능하다 합니다.」
사방이 광기의 구렁텅이였다.
장벽 위로, 무너진 외벽을 기어 올라온 거미들과의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사 한 명이 거미의 다리를 끊어내자, 다른 거미가 그 심장을 꿰뚫고 목을 물어뜯어 경추를 드러냈다.
전투는 장벽 위뿐만 아니라 무너진 장벽 이남, 제국군 주력이 포진한 장소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아쉬론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극히 듣기 좋은 말이로다. 네가 진정 날 상대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느냐? 네 같잖은 형제들 중에서도 제일 무력한 네가.」
그 웃음소리에 천지가 전율했다.
음향에 깃든 암흑이 분명한 형체를 갖고 돌진해와 예리세리카의 빛을 좀먹었다.
그 암흑을 떨쳐내듯 예리세리카가 크게 날갯짓을 했다.
「내가 오늘까지 힘을 온존한 이유는 단 하나, 처음으로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본 이 순간, 나의 길이 끝나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나니!」
「무어라 지껄이는 게냐?」
「Has ku bu aldem! 일어나라, 나의 아이들아!」
그 순청색 포효에, 순백의 군단이 응답했다.
갈라지고 무너진 장벽 내부, 그 기단에서 어머니의 포효에 응답하는 메아리들이 점차 커져 갔다.
장벽을 뒤흔드는 새하얀 날갯짓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수한 백룡들이 장벽 밖으로 날아올랐다.
「뭣이……?」
남동자 알큐타의 눈이 떨렸다.
이 숫자는 어떻게 된 거냐.
백룡 군단은 용 군단 가운데 그 숫자가 가장 적다고 들었는데…….
「설마, 장벽을 만들 때 군단 대다수를 모두 기저부의 토대로 사용했던 건가?」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인류 역사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은 장벽 건설의 진실, 그 비현실적인 축조 속도가 단번에 이해된다.
그 군단의 숫자는, 양쪽 시야로 비치는 밤하늘을 새하얗게 뒤덮을 정도로 많았고 아직도 나오는 중이었다.
비룡뿐만 아니라.
그 행방이 불분명했던 새하얀 진룡들도…….
천이백 개의 거미 눈알을 가진 괴물체의 얼굴 위, 찬란한 미색을 가진 아쉬론의 인간체의 입가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이 괘씸한 것을 어찌하랴…….
역시 심연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이 잡종들을 모조리 구축하기 전까지는 기꺼이 연회를 베풀 수 없는 것인가…….
이 또한 심연의 주인,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일지니…….
「나 예리세리카, 오늘 맡기신 길을 완주하리니. 나의 아바 아버지, 카렌덴이시여. 이 마지막 여정 속에서 나를 이끄소서!」
그렇게 백룡 군단 최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용들이 물을 내뿜어 거미들을 장벽 밖으로 밀어내거나, 수압을 통해 질식시켰다.
남동자 알큐타가 안개형 거미줄들을 땅으로 끌어 내리면 옛 거미들이 숨통을 끊고 심장과 내장을 파먹었다.
그때 장벽 동쪽에서 불화살이 날아올랐다.
불화살은 용의 심장을 파먹는 거미들의 몸을 불태웠다. 흑요정의 2만 군대가 참전한 것이었다.
청은의 사사가 그들을 이끌었다.
눈부신 꽃들이 거미들의 육체를 비틀어서 마른걸레처럼 쥐어짠 다음 장벽 너머로 내던졌다.
<온 것들> 중 하나인 창백한 달, 막센시아의 기적이었다.
– 이 아이의 이름은?
– 예리세리카. 정을 주지 마. 전쟁 병기니까.
– 이게 병기란 말이지.
먼 옛날, 신들의 시대.
막센시아가 자신을 꼭 끌어안는 풍경이 예리세리카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이 좋지 못해 늘 창백하고 야윈 인상이었던 막센시아는 말수가 적었으나 사실 누구보다 배려심이 깊었다.
막센시아가 예리세리카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 카렌덴이 솔직하지 못하니 이해하렴. 사실 누구보다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을 거야.
장벽 아래쪽에서도 혈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전투 나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이끄는 중기병대가 쇄도해 드는 거미들의 측면을 치고 들어갔다.
기병들이 거미를 짓밟고 지나가거나, 거미들이 말을 죽이고 기병을 삼키거나 둘 중 하나였다.
– 너희는 전쟁 병기다. 전쟁을 위해서 내가 만들어낸 거지. 심연의 주인을 본떠 만든 괴물이다.
제국 각지에서 공수된 군대의 투석기와 궁병들이 비처럼 투사체를 쏟아냈으나 그럼에도 거미들의 군세는 끝이 없었다.
그뿐인가.
기병들 사이를 뚫고 초대형 거미, 후신경 자윤이 등장하자 많은 병사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려 했으나 금세 정신을 차렸다.
예리세리카의 빛 덕분이다.
–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검푸른 용…… 그 이름 요토스 욜레 요티아토스라 한다.
일성칠검의 각 검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이 자윤에게로 돌진했다.
그러나 자윤이 역겨운 아가리로 토해낸 거미줄에 붙들리더니 곧 뼈만 남긴 채 녹아내렸다.
백도령 이상의 힘을 가진 옛 귀족을 막아 세운 건 창성과 궁성과 네 명의 페이쿼리어였다.
– 아바 아버지, 어째서 저희를 두고 가시려는지 그 까닭을 여쭙고 싶습니다.
필두 페이쿼리어 밀로네 알터 가우므리스가 창성 바트와 함께 선진을 맡았다.
세 명의 신입 페이쿼리어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져서, 허점이 생길 때마다 유효타를 노렸다.
렘의 세르웨본이 세계수의 화살을 날려서 중요한 순간마다 자윤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온 황룡 군단의 벼락이 사정없이 떨어지며 거미들을 일소시켰다.
– 저희를 전쟁 병기로 창조하셨다고 늘 말씀하셨사온대, 어찌 요토스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저희를 두고 가시려 하시는지요?
그때 창공을 날며 백룡들을 지휘하고 아쉬론을 견제하던 예리세리카가 아쉬론의 손에 붙들렸다.
– 그건 거짓말이었다.
기원의 세월 너머.
저 아득한 고대의 시대에 죽은 망자들의 육신으로 구성된 손에 붙잡혔다.
– 예?
그 손아귀에 서린 망념, 망혼, 사념, 심연…….
즉시 몸이 검게 부패되어 가며 썩은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만약 인간이었다면 즉시 점액질 덩어리로 산화해 버렸을 것이다.
– 내가 너희들에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 거짓말.
몸부림을 쳐도, 날갯짓을 해도.
온 천지의 빛을 어루만져 떨게 만들고 또 어둠으로 만드는 옛 왕의 손길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썩게 하고 고름이 피어나게 만드는 손길이 육신 너머 영혼에까지 깃든다.
– 난 너희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누가 뭐래도 내 최고의 걸작들이니까.
아쉬론이 손아귀에 붙들린 예리세리카를 얼굴 가까이 가져왔다.
「이제 네놈의 심장에도 공포가 느껴지느냐? 널 구하러 올 자가 누구냐? 꽁무니를 말고 잠적한 카렌덴이냐?」
피골은 썩어서 녹아내리고.
부식된 뼈가 너무나도 쉽게 부러지기 시작한다.
「이제 다 끝났다. 마지막으로 이 세계를 봐둬라. 이제 네놈들의 흔적은 전부 사라지고, 다시 내 색채로 물들 테니……!」
그 순간, 첫 여명이 피어오르듯 차원이 갈라졌다.
그 균열로부터 눈부시게 쏟아지는 광휘는 새까맸다.
일순간 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빛줄기가 새까만 안개로 휘감겨 있었으니까.
「이 안개는…… 카렌덴?」
그리고 그 균열로부터 뛰어내린 존재가 있었으니, 그 너무나도 낯익은 존재감에 예리세리카와 아쉬론 모두 당혹스럽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와라, 아수라.”
빛이 집약되며 고귀한 형상을 이룬다.
세 개의 머리에 세 쌍의 팔을 지닌 맹룡이, 그 빛에 닿는 것만으로도 옛것들이 산화하는 빛을 삼천대천에 흩뿌렸다.
거룩한 섬광, 잠시 땅에는 그림자조차 남지 않았다.
심연의 왕들은 용들을 불경한 존재라 칭했는데 이는 그들의 주인을 감히 모방했기 때문이다.
아수라의 팔들이 아쉬론의 손을 움켜잡았다. 예리세리카를 붙든 손을 본체로부터 뜯어냈다.
「폐하!」
아수라는 예리세리카를 장벽 위, 백룡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고통스레 숨을 씨근거리는 예리세리카의 시야에, 아수라의 주인의 뒷모습 위로 일순간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이 포개졌다.
그 얼굴 너머로 보이는 건 레인 루드윅이었다. 그가 쓰라린 미소를 지었다.
“오랜 세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다시 아쉬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장소를 옮기자, 아쉬론.”
아쉬론은 잠시 아수라를, 그리고 그 시건방진 술사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이놈이 외우주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꼬…….
<온 것들>도 동료의 도움이 없이는 나오지 못한 곳이었거늘.
「지금 나에게 명령하는 것이냐? 어찌 왕이 벌레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그러자 레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무슨…….
그 일순간에 시상이 뒤바뀌었다. 세계의 촉각이, 색채가, 피부와 더듬이에 와 닿는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변화했다.
「……무어냐?」
빛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림자 하나 없이 비춰오는 천지를 비추는 그 빛에, 아쉬론의 육체를 이루던 망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승천하기 시작했다.
아쉬론은 피부와 영혼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넌 그때 그 밀실에서 나와 승부를 봤었어야 해. 그러면 훨씬 높은 확률로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나한테 조언만 해준 셈이니.」
「……?」
「여긴 내가 만든 세계야. 내 차원이지. 그리고 네 새 무덤이고. 마음에 들면 좋겠는데.」
절대적 존재로부터 신격을 받은 옛 왕들은 차원 계열 마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생각할 수 있는 바는 단 하나, 왕의 신격을 입은 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소름이 끼쳤다.
「네놈, 설마.」
차원에 속한 아쉬론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들인 게 아니라, 두 차원의 위치를 바꿨단 말인가?
한낱 인간이?
반편이 신격밖에 가지지 않은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절대신의 영역에서 섭리를 주물렀단 말인가?
그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기 위해 차원 자체를 녹이는 독기를 뿜어냈으나, 세계를 비추는 광휘에 무력하게 불태워져 버렸다.
「알면서 왜 그래?」
아쉬론의 힘은.
옛 심연의 힘은 약화된 반면.
「이 세계에서는 내가 왕이고.」
레인을 비호하듯.
그 뒤에서 솟구쳐서 일렁이는 아수라의 형상은 원래 세계보다 더욱 크고, 눈부시고, 위엄찼다.
옛 왕의 힘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창세(創世)의 빛.
「내가 신(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