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화(1/388)
1화. 회귀하다.
전북 거점 병원 중 하나인 서신대 병원.
흉부외과장인 이진혁은 한창 통화 중이었다.
“……힘들 거 같다고?”
[네, 오늘이 고비일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말.
이미 각오한 지 오래였지만, 직접 들으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죄송은 무슨. 그동안 고생했어.”
[아닙니다.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요.]“아니야. 알게 모르게 신경 써 준 거 알아.”
[그보다 언제 오실 겁니까?]“……!!”
진혁이 말없이 숨을 골랐다.
암 병동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한 상황.
당장 달려가 옆을 지키는 게 맞았지만, 수술해야 할 응급 환자가 있었다.
“OP(수술) 들어가야 해.”
[아, 아니. 과장님!!]“금방 끝내고 갈게.”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우리 과 상황 알잖아. 부탁 좀 할게.”
[……알, 알겠습니다.]뚜욱.
핸드폰을 내려놓은 진혁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당장이라도 어머니가 계신 암 병동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울부짖던 환자의 보호자가 생각나 그럴 수가 없었던 탓이다.
* * *
D로젯(수술장, 수술실이 모여 있는 공간) 5번 수술실.
밝게 빛나는 무영등 아래.
일단의 의료진들이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마취까지 끝난 상황.
그가 들어오면 바로 수술할 수 있게끔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마취과 의사인 우태준의 시선이 진성만에게 향했다.
“좀 말려 보지 그랬어.”
“말씀드려 봤는데, 소용없었습니다.”
“아니, 왜 그러시는 건데! 아무리 집도할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잖아.”
“장 교수님도 병원을 옮기시는 바람에 다들…….”
진성만이 말꼬리를 흐리자, 우태준이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어레스트가 이미 두 번이나 왔다며. 환자 앞에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조금 그렇잖아.”
“테이블데스(수술 중 사망) 확률이 높긴 하죠.”
“내 말이. 의사도 사람이라고. 사람!”
“그래도 과장님 앞에선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알아. 나도 안다고. 내가 오죽 답답하면 그래. 하. 진짜 어쩌다가…….”
우태준이 재차 답답함을 토로했다.
CS(흉부외과)의 인력난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모친의 임종을 앞두고 수술이라니.
진혁이 처한 상황이 너무 기막혔다.
그가 다시 뭐라 말을 꺼내려던 찰나.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며 집도의인 이진혁이 들어왔다.
그러자 장시간 수술을 앞두고 느슨하게 이완돼 있던 이들이 전부 긴장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장에 나선 병사들이 전고 소리에 맞춰 칼을 빼 드는 것처럼 보였다.
“오셨습니까!!”
“그래. 마취는 끝났나?”
“네, 신원 확인부터 마취까지 전부 끝났습니다.”
“좋군. 바로 시작할 수 있겠어.”
모친의 임종을 앞둔 진혁은 결연해 보였다.
급성폐동맥색전증(Acute Pulmonary Artery Embolism)으로 진단한 환자.
바이탈이 불안정했기에, 조금의 방심도 할 수 없었다.
곧, 수술 가운과 장갑을 착용한 진혁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우 선생, 수고 좀 해야겠어.”
“……!!”
순간 우태준이 본심을 삼켰다.
이제 와 그가 수술을 포기할까.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 무슨. 평소처럼만 해.”
“네.”
“자네들도 잘 따라오고.”
“네, 과장님.”
“그럼 시작하지. 메스.”
폐동맥을 꽉 막고 있는 색전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은 곧바로 시작됐다.
* * *
환자의 가슴 라인에 절개선을 마크해 둔 상황.
진혁은 거침없이 마크된 절개선을 따라 살을 갈랐다.
평소라면 레지던트에게 맡겨야 할 일이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무섭게 그가 손을 내민다.
“보비(전기소작기, 절개와 지혈에 사용).”
“여깄습니다.”
이번엔 보비를 놀려 피부밑 연조직을 절개한다.
물론, 중간중간 지혈은 기본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드러난 갈비뼈.
흉골마저 그 형상을 드러냈다.
“전기톱.”
“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만큼 스크럽 간호사의 행동은 재빨랐다.
진혁은 흡사 나무를 베는 목수가 된 것처럼 갈비뼈를 절개해 나갔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위이이잉. 터억.
위이이잉. 그르럭.
누구나 익숙한 그 소음.
오늘만큼은 더 특별하게 들렸다.
진혁이 어떤 심정으로 환자를 집도하는지 다들 아는 거다.
곧, 뼈가 타는 냄새와 비릿한 피비린내가 어우러져, 특유의 향을 내뿜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들어와 보지 못한 이들에겐 설명하기 힘든 냄새.
다들 얼굴을 찌푸릴 법도 했지만, 동요하는 이는 없었다.
고작 정중흉골절개술(Median sternotomy)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한참 손을 놀리자.
심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둥둥. 두두둥. 두둥. 두둥.
어레스트를 세 차례나 겪었던 만큼 심장 박동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고.
다시 멈출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더 당겨.”
레지던트들이 리트렉터(개흉 수술 시 가슴을 벌려 주는 도구)를 있는 힘껏 당기자.
울긋불긋한 심장의 속살이 한층 더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순간,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BP(혈압) 떨어집니다!!”
진혁의 시선이 곧장 혈압 다중 파라미터로 향했다.
그러자 급전직하하는 수치가 눈에 들어온다.
고작 개흉만 했을 뿐인데, 바이탈이 흔들리고 있었다.
“에피(에피네프린) 3mg 투약합니다!”
“더 쏟아부어. 풀드립(Full drip) 해!”
“예!”
심근의 수축력을 증가시키는 강심제.
떨어지는 혈압을 잡기 위한 임시 조치다.
하지만.
“60/40! 아! 40/20까지 떨어졌습니다!”
혈압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5mmHg였던 중심 정맥압(우심방에서 측정한 정맥압)마저 9mmHg로 상승하자 진혁이 안색을 굳혔다.
* * *
또다시 어레스트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
환자를 예민하게 주시하던 진혁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파리해진 환자의 얼굴에 어머니의 얼굴이 비쳤던 탓이다.
‘어. 어머니가……. 아!’
순간 정신을 차린 진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죽어 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 어머니를 생각하다니, 이럴 거면 수술실에 들어와서도 안 됐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삐이이이이-.
“어레스트!”
최악으로 치닫던 바이탈이 결국 사달을 냈다.
불규칙하게 뛰던 심장이 아예 멈춰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진혁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절개된 흉골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는 강하게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건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꽈악.
꽈아악.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심장.
손에 힘을 풀자 심장이 이완된다.
그게 시작이었다.
진혁은 계속해 심장을 쥐어짰다.
손을 폈다가 움츠렸다가를 반복하며 멈춰 버린 심장을 강제로 박동시키길 반복했다.
하나. 둘.
하나. 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손.
그에 맞춰 뛰는 심장까지.
개흉 심장마사지(Open Cardiac Massage)가 계속됐다.
* * *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돋아오른 핏줄이 용솟음하며 꿈틀거린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은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해 온다.
사실,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인 만큼 근육의 저항이 심했고, 평소 심장 박동을 생각한다면 보통 힘을 줘야 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일.
환자를 살려야 이곳에 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짧지만 긴 시간.
개흉 심폐술에 온 힘을 다할 때.
우태준이 소리쳤다.
“리듬 돌아왔습니다!”
“아직 부족해!”
꽈아악.
꽈아악.
진혁은 제 손의 감각을 믿고 심장을 쥐어짜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을 놓는다.
그러자 미약하지만 스스로 박동하는 심장이 보였다.
둥둥! 두두둥!
둥둥! 두두!
불규칙한 바운스.
여전히 불안해 보였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혈압마저 올라오고.
심박수 또한 정상 리듬을 되찾자 진혁의 안색이 조금은 밝아졌다.
또다시 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때, 우태준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체력부터 끌어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다시 닫으면 죽어.”
“에크모(심폐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환자의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투입하는 장치)를 달고 지켜보는 건…….”
“폐동맥이 완전히 꽉 막혔어. 환자를 포기하자는 말이랑 같다고.”
혈전용해제로도 혈전을 녹일 수 없다는 말.
무리해서 집도하는 이유가 있었다.
* * *
사각. 사각.
진혁의 손놀림은 유독 빨랐다.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그 마음을 알기에 스크럽 간호사뿐 아니라 어시로 들어온 의사들도 최선을 다해 그를 보필했다.
어느덧 인공심폐기를 돌릴 차례.
타닥.
타닥.
도관을 쳐 공기를 털어 내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것도 잠시.
심정지액이 주입된다.
그러자 심장의 움직임이 천천히 느려졌다.
그와 동시에 작동하는 인공심폐기.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이젠 어레스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지만,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이제 겨우 체외 순환기를 돌렸을 뿐.
색전제거술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잘 따라와.”
“예!”
진혁의 손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최소화한 채.
심낭을 절개하고 폐동맥을 절단한다.
곧, 모습을 드러낸 폐동맥 기시부.
환자를 괴롭히던 병변이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다들 얼굴을 굳혔다.
경피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던 병변인 만큼 한눈에 봐도 혈전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포츠포셉.”
또다시 시작된 손놀림.
진혁은 빠른 속도로 혈전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수술의 막바지.
폐동맥 문합만이 남았을 때다.
갑자기 수술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급하게 들어왔다.
CS(흉부외과) 치프인 허준덕이었다.
“과장님!!”
“?”
“당장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순간,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다.
수술 중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허준덕이 들어온 이유를 짐작한 것이다.
전부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봤다.
당장 어머니께 가 보라는 무언의 함의.
하지만 진혁은 망설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수술을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망설임이 길어지자 진성만이 나섰다.
“과장님, 폐동맥 문합은 제가 하겠습니다.”
“으음.”
“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
순간 진혁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마음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고, 돌풍에 휘감긴 갈대처럼 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뉘었다.
진성만을 믿고 나가도 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때, 마취과 의사인 우태준이 소리쳤다.
“과장님, 임종은 지키셔야죠!”
“……!!!”
“평생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후배들을 믿고 맡기세요. 아무리 CS가 사람이 없다지만 이건 아닙니다!!”
자신을 향한 우태준의 고언.
결국, 진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 * *
타다다다다.
타다다닥.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복도를 내달린다.
아무리 지방에 있다지만, 종합 병원인 만큼 암 병동과 흉부외과 병동은 거리가 있었고.
노화된 폐와 심장은 마음만큼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반드시 가야만 했다.
‘어머니, 조금만. 조금만 힘내 주세요.’
신을 믿지 않지만, 지금만큼은 간절히 기원했다.
누군가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머니의 임종만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지막 인사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그렇게 도착한 암 병동.
거친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진혁은 어머니가 계신 병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침통한 표정의 의사들만 있을 뿐이다.
“어, 어머니는…….”
“14시 31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아……!”
불과 2분 전에 눈을 감으셨다는 말.
진혁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끄으윽. 끄흑.”
흉부외과장이라는 체면도 버린 채 통곡하는 그.
그런 그에게 누구도 다가가지 못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의사가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 * *
며칠 후, 어머니의 고향 풍덕천리.
진혁이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 들었다.
시골 마을인 만큼 관례에 따라 장례를 도와준 이장에게 돈을 건네야 했기 때문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욕봤네, 욕봤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예…….”
“그건 그렇고,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얘기 많이 들었어.”
착한 일?
자신이 의사라는 걸 알고 말하는 걸까.
아니, 어머니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의문도 잠시.
진혁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 네.”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네?”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
뜬금없는 소리에 진혁은 침묵했다.
좋은 일이 있을 거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무리 시골에 사는 노인네라지만, 모친을 잃은 사람한테 할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드잡이할 수도 없는 일.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잠시 후,
이장이 손을 휘적거리며 내려가자, 진혁의 시선이 다시 산소를 향했다.
붉디붉은 흙빛만 맴도는 산소.
그곳에 어머니가 있었다.
‘어, 어머니…….’
사실, 죽음을 일상처럼 여기고 있었기에.
이미 쇠약해진 어머니를 보며 각오했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정말 멀쩡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부족하지 않았고, 감정의 파도는 연신 마음을 때렸다.
진혁이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흐으윽. 끄으윽.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못난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 * *
다음 날 아침, 진혁은 이장이 말했던 뜻 모를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