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0화(10/388)
10화. 프리인턴 교육 (1)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에 따라 지나온 발자취가 자신만의 역사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선택의 순간에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거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떨 때는 자의로.
어떨 때는 타의로 강요받곤 한다.
이번엔 자의로 움직일 때였다.
진혁의 움직임에 다들 기함했다.
“헙!”
“뭐야! 싸운 건가?”
“와. 이거 대놓고 쪽 주는 건데.”
“우와. 대박.”
진혁이 태희를 무시한 채 맨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
이태희의 얼굴 또한 사정없이 구겨졌다.
“와…….”
절로 나오는 침음성.
그녀의 반응을 확인한 김현수가 훅 들어갔다.
“이제 옆에 앉아도 되죠?”
“!”
“어차피 같은 병원에서 근무할 건데 친해지면 좋잖아요. 최소한 5년은 계속 마주칠 건데요.”
“됐거든요.”
매몰찬 거절에 김현수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가 없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그때, 이태희가 벌떡 일어났다.
짐을 챙긴 그녀가 맨 앞자리로 움직였다.
진혁의 옆자리였다.
털썩.
이번엔 진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들 장단에 맞장구치고 싶지 않았건만, 또다시 휘말려 버렸다.
* * *
영동 고속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
진혁은 MP3 플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비록 용량이 적어 많이 넣진 못했지만, 수술을 끝낸 뒤 자주 듣던 음악을 넣어 왔고, 어색한 분위기를 음악으로 달랠 생각이었다.
곧, 아름다운 선율이 귀를 적신다.
♬~~♩~♪♩♪~~♬~~!
♬~~♩~♪♩♪~~♬~~!
아치다 마츠코의 모차르트 소나타 35번.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을 때면 들었던 음악이다.
그렇게 한참 클래식 선율을 즐길 때.
진혁이 얕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음?”
고개를 돌려 보니.
이태희가 오른쪽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순간 진혁이 말을 삼켰다.
마음이 상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린 진혁은 음악에만 집중했다.
시간이 흘러,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이 이어지며 잔잔한 음악이 온몸을 감쌀 때였다.
“고등학교 후배라며 사람이 어쩜 그렇게 의리가 없냐. 나중에 복수할 거야.”
이태희가 입을 쭉 내밀고는 툴툴거렸다.
사실 기분이 상할 만도 했다.
공개적으로 외면당한 셈이 아닌가.
‘복수한다면서 옆자리에 앉는 건 또 뭔데. 종잡을 수 없단 말이지.’
“뒷자리는 멀미 나서요.”
“고작 여섯 번째였는데.”
“그 정도로 멀미에 약해서요. 그나저나 붙었네요?”
진혁이 거짓말을 한 움큼 보태며 화제를 돌렸다.
애들 장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었고, 생각해 보니 조금 미안해서였다.
한번 물꼬를 튼 그들은 계속 대화를 이어 갔다.
* * *
어느새 도착한 오크밸리.
간단히 짐을 푼 뒤.
대강당에서 열리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야 했다.
아신 병원의 역사와 현황.
분원에 대한 소개.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가 시청각 수업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고개는 한없이 바닥을 바라본다.
찍히면 안 된다는 생각과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황.
십수 년간 끝없이 달려왔던 수술에 마침표를 찍은 것처럼 푹 자 버렸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지루하기도 했다.
‘예비군에 온 느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뭐야, 언론 한 번 탔다고 잘난 척이야 뭐야.’
‘관심충인가. 태도가 왜 저래.’
‘와, 아예 대놓고 자네. 대놓고 자.’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사기에 충분했다.
아직 겸손이 미덕인 시기.
타교생이라는 신분과 나댄다는 생각.
불성실한 수업 태도까지.
다들 진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졸고 있을 때.
“와!”
“앗싸. 14조다, 14조!!”
“우리 같은 조네?”
환호성과 웅성거림에 진혁이 눈을 떴다.
어느새 조별 구성까지 마친 모양.
스크린에 띄워진 편성표를 확인한 진혁이 혀를 찼다.
‘하필 쟤하고 같은 조네.’
피하고 싶은 김현수와 같은 조가 돼 버렸다.
* * *
어느덧 조별 모임 시간.
한참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자교생끼린 다 아는 사이.
타교생을 위한 작은 배려다.
“잘 부탁드립니다!”
누군가의 소개 끝에 자신의 차례가 된 장혁준이 일어섰다.
“장혁준입니다. 나이는 스물여섯이고 아신대 나왔구요. 장래 희망은 강남에서 개업하는 거? 아, 이건 말하면 안 되나. 뭔가 자기 소개하려니까 어색하네요. 잘 부탁해요~!”
짧고 굵은 자기소개.
장혁준은 부잣집 도련님티가 팍팍 났다.
부티가 흐른다고 해야 할까.
그다음은 김현수였다.
뿔테 안경을 치켜세운 그가 정중히 인사를 해 왔다.
“저도 아신대 나왔구요. 김현수입니다. 의대에 온 이유는 엄마가……. 아니, 암튼 나이는 혁준이랑 동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마보이로 유명한 김현수.
그가 바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진혁을 한 번.
이태희를 두어 번 쳐다본다.
그 모습에 진혁이 혀를 찼다.
‘그렇게 들이대면 오히려 도망가겠다. 쯧쯧.’
진혁도 평생 혼자 살았지만, 연애의 ABC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공부만 하고 살아온 저 범생이 녀석과는 레벨이 달랐다.
그렇게 계속된 자기소개.
제 차례가 되자, 진혁이 일어나 짧은 인사를 건넸다.
“이진혁입니다. 서신대에서 공부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얼굴 볼 거 같은데,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반가워요.”
입 밖으로 나오는 말과 달리 어색한 표정을 짓는 이들.
유명인이자 타교생인 진혁이 섞여 있어 부담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이태희가 입을 열었다.
“이태희예요. 광인대 출신이에요.”
“광인대면 대구에 있는 거죠?”
“네, 대구에서 한동안 자취했어요.”
“김태곤 선배 알아요? 저랑 친한데.”
“아뇨, 몰라요.”
“그래요?”
“네.”
단호한 대답이 흘러나왔지만, 남자들의 시선은 호의적이었다.
이태희의 미모가 눈부신 게 한몫했다.
안 그래도 의대에 남자만 바글거리는 시기.
몇 없는 여자 동기를 향한 구애가 일반적이었다.
물론, 단 한 사람.
진혁만큼은 이태희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들 좋을 때다. 좋을 때.’
어린애들이 귀엽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 * *
아신 병원 인턴 14조.
그 구성은 단출했다.
타교생 2명, 자교생 8명.
총 10명이 2박 3일을 함께해야 했다.
머쓱한 분위기를 깬 건 장혁준이었다.
“먼저 조장을 뽑아야 하는데요. 투표로 정할까요?”
“야. 장혁준.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맞아. 너 원래 호들갑 엄청 떨잖아.”
동기들의 공세에 장혁준이 헛기침을 했다.
“크음. 큼. 그래도 타교생이 있으니까.”
“지금 이미지 관리하냐?”
“맞아, 선거 나왔냐?”
“닥쳐. 크음.”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져 있는 이들.
그들의 공세를 무시한 장혁준이 말을 이어 갔다.
“자원자는 없을 거 같고. 빨리 투표하죠.”
“투표는 무슨. 그냥 니가 해.”
“맞아, 인턴장(인턴 대표)도 하고 싶다며.”
“아우.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조용히 좀 해 봐!!”
장혁준의 말에 태희와 진혁이 입을 열었다.
“원래 말 꺼낸 사람이 하는 거예요.”
“저도 찬성.”
“뭐, 그럼 만장일치로 제가 추대되었습니다. 크음. 큼. 다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네는 그.
구김살 없이 유쾌해 보였다.
한참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던 장혁준이 말을 이어 갔다.
“일단 내일 저녁에 장기자랑 있는 건 알죠?”
“으으……. 싫다. 싫어.”
“뭘 할건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러냐.”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야.”
“닥쳐 봐. 좀. 일단 뭘 하면 좋을까요? 컨셉도 짜고 연습도 하고 그래야죠.”
한동안 장기자랑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다.
* * *
어느덧 점심시간.
호텔 뷔페가 시장통처럼 변했지만, 진혁은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햇병아리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친분을 쌓는 건 계획에 없었다.
‘산책이나 하면서 음악이나 듣자.’
그렇게 빠르게 움직였건만, 방해꾼이 있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이태희였다.
“그 카메라는 뭐예요?”
“사진 좀 찍으려고.”
“취미? 아니면 그냥?”
“벌써 말이 짧은데?”
“우리 좀 친해진 거 아니에요? 그리고 사회 나오면 원래 나이 안 따지는 거예요.”
친해지면 서로 말을 놓기로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며 당위성마저 부여하는 진혁.
이태희가 대답 없이 풍경을 찍었다.
아직 버스 안에서 있던 일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찰칵.
찰칵.
이태희가 말없이 풍경을 찍는 데 매진하자, 진혁 또한 그녀를 기다려 줬다.
매몰차게 먼저 가기엔 또 그랬다.
.
.
.
골프 코스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 코스.
이를 따라 내려가자, 라운딩을 즐기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일인데도 여유롭게 골프를 치는 이들.
IMF의 엄혹함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을 향해, 진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팔자 좋다. 팔자 좋아.”
저도 모르게 나온 말.
풍경 사진을 찍을 때 진혁이 기다려 줬다는 이유로 다시 기분이 좋아진 이태희가 냉큼 답했다.
“뭐, 영업 중일 수도 있지.”
“그래도 부럽네요.”
“왜? 저렇게 살고 싶어?”
“저 말고 아버지요.”
“음?”
선뜻 이해되지 않는 답변.
이태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혁이 말을 이어 갔다.
“아버지도 저렇게 즐기면서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서요. 평생 고생만 하셨거든요.”
“아……!”
“뭐, 이젠 호강시켜 드려야죠. 지금은 명퇴하신 후에 등산만 하시거든요.”
“그럼 로컬에서 페닥(페이 닥터) 하지. 우리 월급 짜잖아.”
“그건 어머니가 반대하세요. 아들이 아버지 때문에 꿈을 버리면 슬퍼하실 거라고요.”
“!”
순간 이태희가 진혁의 눈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슬픔이 가득한 눈.
이럴 때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곧 재취업이 가능하실 거라고?
조금만 더 힘내라고?
괜찮을 거라고?
전부 어설픈 위로였다.
이태희가 냉큼 말을 돌렸다.
“근데 왜 기다려 줬어?”
“?”
“아까 버스에선 그렇게 의리 없이 행동하더니, 사진 찍을 때는 왜 기다려 줬냐고.”
“복수한다고 해서 무서워서?”
분위기를 바꾸려는 진혁의 장난스러운 대답.
이태희도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래도 복수할 건데?”
“어떻게 할 건데요?”
“뭐, 누가 장기자랑 시키면 네 흉내 내려고.”
“?”
“환자만을 생각하라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움직였을 뿐입니다!”
기자 톤으로 진혁의 인터뷰를 흉내 내는 그녀.
그 모습에 진혁이 기막혀했다.
“와!”
“이래 봬도 내가 광인대 방송국 출신이야. 학생 기자였다고.”
“사진 동아리 출신인 줄 알았는데…….”
“이건 취미고. 넌 무슨 동아리 했어?”
“테니스만 조금 쳤어요.”
“오오. 그래서 몸이 좋은 건가?”
“뭐, 체력이 중요하니까요.”
진혁의 말에 태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종합 병원 생활은 체력이 전부 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와 닿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그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