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0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03화(103/388)
103화. 죽음이 예정된 환자 (13)
장내는 풍선 터지는 소리로 가득했다.
사람 주먹만 한 귤을 벗겨 낸 뒤.
그 껍질을 사등분해 풍선에 붙여 놓고 원까지 그려 놨으니 어련할까.
수처는커녕 어블부터 실패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퍼엉-.
퍼어엉-.
풍선이 터질 때마다 감점이 쌓여 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영진이 혀를 찼다.
“쉽지 않겠어.”
“나름대로 사상을 담은 거 같습니다.”
아직 타이 대회 우승의 여운이 남아 있던 김상혁이 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박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애초에 우리가 올린 기획안이랑 많이 달라졌군. 수처할 때 다른 조직을 건드리거나 잘라 내면 큰일이다 이건가.”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표적 병변을 제거해야 한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박영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연 종목인 타이, 수처, 어블.
셋 다 기본 술기에 불과했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했다.
조금만 더 깊이 어블(절제)해도.
수처(봉합)를 잘못해도.
타이(매듭)가 풀어져도.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대회 운영 위원회에서 기획안을 수정했고.
방송에 내보낼 수 있게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사상을 담았다.
물론 그 덕에 고생하는 건 참가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박영진과 김상혁이 대화하는 동안에도 풍선 터지는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회자가 소리쳤다.
“다들 감점으로 끝내고 싶으신 겁니까!”
“아아! 백당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방송 중이건만, 100일 당직을 언급한다.
거기에 더해.
“지금 교수님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갈굼뿐입니다!!”
“아아! PS 과장님이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교수님들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러자 다들 질색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죽는다.’
‘한 번 죽냐. 두 번 죽지.’
‘이겨야 해! 이겨야 한다고!!’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교수님’이라는 단어에 레지던트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 * *
처음으로 수처에 도전하는 테이블이 생기자, 사회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오오! 1번 테이블! 어블을 끝내고 수처에 도전합니다!!”
카메라가 곧장 1번 테이블을 줌인했다.
그러자 열심히 손을 놀리는 GS 소속 레지던트들이 스크린을 메운다.
타이 경연에 이어 또다시 선전하는 GS.
정진석이 수처할 수 있도록 풍선을 들고 있던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오지호가 앉아 있는 방향이었다.
‘미리 알려 줬나?’
의구심도 잠시.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뭐, 미리 말해 줘 봤자 얼마나 연습했겠는가.
수처는 기본 중의 기본.
평소에 얼마나 갈고닦았는지가 중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퍼어엉-.
니들이 풍선을 건드렸는지, 1번 테이블은 수처에 실패했다.
“아아! 안타깝습니다! 힘을 빼야 합니다!!”
사회자의 관심은 곧바로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하지만, 성공하는 테이블이 드물었다.
그만큼 이색적이고 어려운 미션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늦게 속도를 내는 이들이 나타났다.
풍선을 여럿 터트리며 감을 잡은 이들이었다.
“오오!! 3번 테이블 질주합니다!!”
“5번 테이블! 무서운 속도로 수처합니다!!”
“13번 테이블!! 위장관외과 선전 중입니다!!”
“22번 테이블! 수처 성공합니다!!”
하나씩 점수를 획득하는 이들.
카메라는 득점에 성공한 이들을 비추기 바빴고, 객석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 * *
그 시각.
한동수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자식을 죽여야 돼. 살려야 돼.’
연신 풍선을 터트리는 정진석을 보고 있자니, 제 마음도 터지는 것 같았다.
1등을 해야 하는데.
아끼는 놈이 활약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이젠 인턴 가점을 받아도 역전은 힘들어 보였다.
사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3년 차가 된 정진석.
바쁘디바쁜 CS인 만큼 수술실에 들어온 횟수는 그 누구보다 많았지만, 메스를 잡아 본 일이 적었다.
주로 세컨 어시로 수술실에 들어온 탓에 절제를 별로 안 해 본 거다.
그만큼 심장과 폐, 심혈관은 중요한 기관이었고.
레지던트가 직접 집도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었다.
굳이 경중을 따지는 건 아니었지만, 막말로 OS(정형외과)에서 망치를 들고 하는 수술과는 그 결이 다르지 않던가.
‘이게 다 안 해 봐서 그런다. 안 해 봐서.’
제 마음을 알았을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한동수의 얼굴이 더욱더 상기됐다.
* * *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누는 대화.
자그마한 목소리는 비수처럼 날아들어 한동수의 가슴을 후볐다.
“결국 메스를 누가 더 많이 잡아 봤냐 이거네.”
“뭐래? 이건 메스가 아니라 아이리스 시저로 어블(절제)하는 거잖아. 그래서 안과나 성형이 유리한 거고.”
“에이~! 그래도 감이 있다고.”
“감? 무슨 감?”
“교수님 말씀 못 들었냐?”
“?”
“많이 하다 보면 느껴진다잖아.”
수백 수천 번의 수술 끝에 얻는 기이한 감각을 이르는 말.
거짓말 같겠지만, 메스를 환부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피부층을 느낄 수 있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동수의 속도 모르고 계속해서 떠들었다.
“그럼 정진석 선배는 뭔데. 이건 그냥 시험 자체가 어려운 거 아니냐고.”
“에이. 정 선배는 CS 소속이잖아.”
“그게 뭐?”
“거긴 수술실에서 밑에 얘들한테 안 맡긴다고! 펠로우는 돼야 뭘 할 수 있는 거 모르냐?”
“그건 다른 과도 마찬가지잖아.”
“정도가 다르다고. 정도가! 거긴 까딱하면 테이블 데스라고!”
고난이도 수술.
그러니까 CS 로젯에서 열리는 수술들이 대부분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만큼 정진석이 제대로 된 수련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를 들은 한동수의 얼굴이 처참히 굳었다.
‘내가 잘못 키웠구나. 잘못 키웠어.’
사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원래 수술실에서 세컨 어시가 하는 일이 다 그렇고 그런 일들이었다.
출혈 혈관 겸자를 위한 전기 소작.
견인기(리트렉터) 조율 및 커트.
지혈제 도포와 수술 도구 건네기. 혹은 시야 확보를 위한 석션과 생리식염수 도포.
바이탈 모니터링 및 수술 전후 관리까지.
뭐, 이런 류의 것들이 전부였다.
물론 퍼스트 어시는 집도의를 대신해 기본 세팅.
그러니까 흉골을 열기도 한다지만, 세컨 어시로 들어오면 하는 일이 뻔한 것이다.
하지만.
원래 그런 일을 하는 거라고 말하기엔 CS가 유난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 이를 어쩐다.’
한동수의 시선이 또다시 풍선을 터트린 정진석과 그 옆에 서 있는 진혁을 향했다.
하나, 둘, 셋, 넷.
또다시 네 개의 풍선이 터진다.
다른 이들도 풍선을 터트리는 건 마찬가지.
허나, 그의 눈엔 정진석만 보였다.
매일같이 타박하지만 누구보다 아끼는 제자.
수많은 양아들 중 한 명인 정진석을 콕 짚어 데려온 건 자신이었다.
만약 자신이 찜하지 않았다면.
그가 낚시에 걸려들지 않았다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게 뻔한 정진석이었다.
남들처럼 퇴근이라는 것도 해 보고.
의사 남자 친구를 자랑하는 여자 친구도 만나 손이라는 것도 잡아 볼 것이고.
저 강변역에 새로 생겼다는 멀티플렉스 극장에도 가 봤을 것이다.
허나, 그는 평범한 일상조차 꿈꾸지 못하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한동수의 시선이 이번엔 진혁을 향한다.
변종이라 칭했던 그도 곧 CS로 올 터.
이대로 그 재능을 썩힐 순 없었다.
방법을 찾아서.
어떻게든 방식을 바꿔서.
꽃이 피기도 전에 줄기가 꺾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전부 다 바꿔야 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 뜨거운 결심과 달리, 그 방법은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후학 양성이라는 교육 기관의 역할과 당장 목숨이 위급한 환자의 존재는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몰랐다.
해결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해야 할까.
뭐, 방법이 떠올라도 문제였다.
변화는 저항을 부르고 반발을 산다.
그리고 그 시도는 정론이 아니라고 치부되며 좌초되기 일쑤다.
아파트 동대표 회의에서 사소한 규약 하나 바꾸는 것도 힘든 게 우리네 세상사가 아니던가.
하물며 보수성이 극에 달한 병원은 어떨까.
힘들게 분명했다.
아니,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해야 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그게 후배들을 위한 길이었다.
교대를 외치는 사회자의 호령 소리에 맞춰 정진석과 자리를 바꾸는 이진혁을 위해서라도.
익숙했던 일을 탈피하고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퍼어엉-.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다시 귓가를 울렸다.
“이진혁이도 이건 어렵다고. 타이야 그렇다고 쳐도. 뭐, 메스를 잡아 본 적이나 있겠냐고.”
거기에 더해 사회자까지 소리쳤다.
“아아아아! 이게 웬일입니까! 타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이진혁 선생이 풍선을 터트립니다!!”
* * *
벌써 두 번째 터트린 풍선.
진혁의 표정이 굳자 정진석이 속삭였다.
“천천히 해. 천천히.”
“네, 선배님.”
시원스러운 대답과 달리 진혁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감을 잡으려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걸 어쩐다…….’
한참 뒤처진 상황.
반드시 이겨야 했지만, 역전은 요원해 보였다.
허나,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었다.
‘그냥 정면 승부 해? 아니, 껍질 두께가 균일하지 않아서 실수할 수밖에 없다.’
내심 고개를 젓는 진혁.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의존해 어블하면 됐지만, 역전해야 했기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양을 빠르고 정확하게 성공해야 이길 수 있었다.
찰나의 고민.
이는 순간의 고심에 불과했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당황스러움이 극에 달해 패닉에 빠진 걸로 비친 거다.
“아아! 이진혁 선생이! 패닉에 빠져 손을 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레지던트가 나서 줘야죠! 뭐 하는 겁니까!”
“인턴들이 흔들릴 때 우린 당당히 말해야 합니다! 어차피 너 대신 내가 혼난다!!”
현실에 빗댄 사회자의 진행.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인턴이 잘못한다?
바로 직속 선배가 먼저 혼나는 법이다.
“아아! 너무 아름다운 얘기였나요! 그럼 말을 바꾸죠! 너 때문에 내가 혼났다!”
또다시 좌중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내리 갈굼의 시작과 같은 말이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웃픈 얘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에 당황한 건 진혁을 믿고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던 정진석이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건가……. 하긴 타이랑 수처는 또 다르잖아. 어블은 말할 것도 없고.’
“괜찮아. 당황할 필요 없어! 타이 연습만 한 거면 그냥 천천히 해.”
패닉에 빠졌다는 판단에 기인한 위로.
사회자 또한 진혁이 타이 연습에 올인했다고 판단하고 저런 말을 하는 게 분명했으니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천천히 하면 돼!”
“…….”
“늦은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더 빠르다잖아! 하나씩 하면 되는 거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라고.”
순간 진혁의 눈이 커졌다.
좋은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