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0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05화(105/388)
105화. 죽음이 예정된 환자 (15)
모니터와 박스 트레이너, 각종 도구와 물품을 세팅해야 했기에 준비 시간이 길어졌다.
‘이제 마지막 시합만 남은 건가.’
진혁이 희게 웃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나름 긴장을 푸는 행위다.
누군가는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이런 일로 긴장하는 게 웃기다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엄연히 방심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어떤 미션이 나올지 몰랐고.
2인 1조로 진행되는 시합 방식도 문제였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올라온 각 과의 날고 긴다는 에이스들과 경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3관왕을 쟁취할 수 있는 거다.
사실, 이럴 때일수록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합이 시작된 순간 텐션을 끌어 올려 최고조의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누군가와 대화하고.
실없는 얘기를 하며, 믹스커피를 한 잔 홀짝이면 된다.
텐션을 끌어 올리기 전의 준비 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축하한다며 난리 법석이었는데, 다들 침을 꼴깍 살피며 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벌써 두 번의 우승.
참가에 의의나 두면 다행이지라는 말은 떠나간 지 오래였고.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여느 부모처럼, 혹시나 수능 날 대박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침을 꼴깍 삼키며 배려 아닌 배려를 해 주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알게 모르게 기대하는 거다.
그리고 그건 하등 도움 안 됐다.
왜 그렇지 않은가.
ER이 앉은 자리를 제외하고 다들 시끌벅적하거늘.
침묵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바람이나 쐬고 올까.’
밖에 나갔다 오려던 순간.
누군가 말을 걸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태희였다.
“안 힘들어?”
“뭐, 5분씩밖에 안 했는데.”
“아니, 그거 말고.”
“?”
“논문 본다고 난리 치더니, 막판에는 연습한다고 집에도 안 갔잖아. 안 힘드냐고.”
시답지 않은 대화를 이어 가려던 진혁의 표정이 변했다.
다들 축하 인사를 건네기 바쁜데.
자신을 걱정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뭐라 말하려던 찰나.
장혁준이 끼어 들었다.
“저 빼고 둘이서만 밥 먹으러 가면 안 되는 거 알죠!?”
“갑자기요?”
“아, 혹시 우리 배 선생이, 이색적인 재료를 잔뜩 사 왔던 걸 잊어먹었을까봐요. 기억나는 거 맞죠?”
“기억나죠.”
“그럼 다 같이 밥 먹으러 갑시다. 실라호텔로요!”
순간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순대와 돼지 간, 딸기 등을 사 왔던 일을 갑자기 운운하며 밑밥을 깔더니, 속셈은 따로 있었다.
진혁이 멈칫거리자 장혁준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그를 놀렸다.
“상금이 얼만데요! 허접한 데 가려고 한 건 아니죠?!”
“…….”
“타이 250만 원에 수처 125만 원이잖아요. 공동 1등이니까 반띵할 거 아니냐고요.”
장혁준이 연신 목소리를 드높였다.
거기에 더해.
레지던트 선배들도 끼어들었다.
진혁이 동기들과 하하호호거리자, 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의 발로였다.
“야야. 니들만 입이냐. 당연히 한턱 쏴야지. 흐흐. 소고기다. 소고기.”
“그래! 우리도 입이다! A조랑 B조랑 번갈아 쏘면 남는 돈도 없겠다.”
“치프도 사야죠! 지금 바로 예약할까요?”
수선스럽게 떠드는 이들.
같은 과에서 출전한 이들이 상금을 받았다는 게 기쁘기도 했고.
오랜만의 술자리를 다들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때, 치프인 김상혁이 정곡을 찔렀다.
이럴 땐 후배들에게 무관심하다는 그의 평이 딱 어울렸다.
“촬영 끝날 때까지 음주 금지다.”
날카로운 지적.
순간 좌중이 싸늘해진다.
마치 선물을 받았다가 뺏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건만, 괜한 기대가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허나, 김상혁 옆에 앉아 있던 박영진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오랜만에 목이나 축이지. 과음은 금지야.”
순간 환호성이 인다.
“으아아아!!”
“이야!! 이게 대체 얼마 만이냐!!”
“아싸! 하하. 대박이다! 대박.”
“잘 먹겠습니다! 진혁아 땡큐다. 땡큐.”
“고생하셨습니다. 치프! 하하!”
다들 호들갑을 떨며 좋아할 때.
멀리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VJ 김석대가 다가왔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 * *
김석대의 말을 들은 진혁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토막 인터뷰를 하자는 거죠?”
“네, 이 PD한테 연락이 왔어요.”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뭐, 바로 인터뷰 따래요. 그래야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온전히 실을 수 있다고요. 아주 난립니다. 난리.”
우승으로 인한 흥분이 가라앉기 전에 하라는 말.
이변의 주인공인 진혁이 있는 이상, 시청률이 대박 날 거라고 점치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부터 할까요? 아니면, 치프부터…….”
“대회가 좀 있다 시작할 거 같으니까, 이 선생님부터 하시죠.”
“그러죠.”
잠시 후.
진혁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냐고요? 기적이 존재한다는 걸 꼭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신 모든 분들께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에 도전했고. 그 누구도 어렵다고 봤던 우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혁은 이현아와 약속했던 대로 최예린의 사정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도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환자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덤덤히 전할 뿐이었다.
힘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삶은 소중한 거라고.
병마와 싸워 이기라고.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 누구도 죽음을 막을 순 없지만, 해 보는 데까지 해 봐야 한다고.
그러려면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가 삼위일체가 되어 다 함께 병마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이다.
* * *
불과 20분 전.
여전히 수처 대회가 한창이던 그 시각.
이현아는 택시 기사를 연신 재촉했다.
“기사님~! 좀 더 빨리 가 주세요!!”
“허허, 아가씨도 참. 이러다 사고 납니다!”
“급해요. 급해!! 급하다고요!!”
“뭐, 누가 죽기라도 하는 거요?”
“제가 지금 죽을 거 같아요!!”
“헙!!”
얕은 침음성을 내뱉은 택시 기사가 풀 악셀을 밟았다.
부우웅.
목적지는 아신 병원.
여의도에서 풍납동이라는 긴 거리.
어디가 아파서 저러는 게 분명했다.
그때 빨리 가자고 성화를 부렸던 손님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터트려? 아니, 터트리면 어쩌라는 거야.”
“제대로 찔러 넣었어야지!!”
“아. 복장 터져 진짜.”
“그래서 지금 지고 있다고?”
“아니, 뭐 하는 거야. 타이는 이겼다며!!”
.
.
.
그렇게 한참 후.
중계를 전해 듣던 이현아가 포효했다.
“아싸!! 아싸!! 이겼다고! 이겼어!!!”
“저……. 음……. 아가씨?”
“기사님!! 우리 막내 선생님이 이겼대요~!!”
“네? 뭐를 이긴 겁니까!?”
“하하. 다 밟아 버렸대요.”
“네? 뭘 밟아요?”
“잘근잘근 씹어 먹었대요.”
“네에??!!”
황당한 표정의 기사를 뒤로하고, 이현아는 싱글벙글 웃었다.
점점 치솟는 시청률.
3회차 방송은 19%.
4회차 방송은 20%.
5회차는 아마 더 높은 수치가 나오리라.
왜 이렇게 확신하냐고?
다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만 우후죽순 늘리고 있었고.
처음이야 날것 그대로의 모습에 깔깔거리고 웃겠지만, 자기 복제나 다름없는 포맷의 식상함은 시청자들을 등돌리게 할 게 분명했다.
허나, 『응급실 사람들』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포맷.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소재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는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뭐, 방송 말미에 소개하는 사정이 어려운 환자에 대한 후원도 대박 날 정도니 말 다 했다.
이현아가 기분 좋은 얼굴로 창문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끼익.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쏴아아아아-.
쏴아아아-.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
애써 드라이한 머리가 엉망이 됐지만, 상관없었다.
여자한테 전혀 관심 없는 남자.
조금 재수 없지만, 이진혁이 좋았다.
* * *
복강경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과는 어딜까.
단연코 외과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산부인과에서 가장 먼저 도입해 쓰고 있긴 했지만, 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에 1.57명을 찍었던 출산율은 IMF를 맞아 1.46명까지 내려왔다.
반면, 외과의 사정은 달랐다.
간담췌, 비장, 부신, 대장, 위장관, 유방, 갑상샘뿐만 아니라, 신장절제술까지 그 영역을 더 넓혀 가고 있는 외과.
흔히 말하는 맹장 절제술 또한 개복하지 않고 0.5cm 크기의 작은 절개로 수술하는 경우도 늘고 있었으니, 말 다 했다.
그런 만큼 복강경 경연을 응원하는 외과 계열의 외침은 우렁찼다.
“위장관외과 파이팅!!!”
“아자! 아자! 우리는 간담췌외과다!”
“여기 일반외과도 있어요!!”
“우린 산부인과다!!!”
“와아아아!!”
또다시 시장통 같은 분위기.
분명 세팅을 위해 한참 뒤에 열린 대회였지만, 그 열기만은 식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현아가 혀를 찼다.
“감독님, 아무래도 후시 따야겠죠? 조금 번거롭게 됐네요.”
“동시 녹음을 살리는 것도 좋죠.”
“저렇게 시끄러운데요?”
“그래도 현장감은 살아 있잖아요. 뭐, 아주 생생합니다.”
“꼭 중학생들이 체육대회 하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남자들이 많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이현아가 묘한 눈길로 대강당을 훑었다.
저 멀리 진혁이 눈에 들어왔다.
“감독님, 막내 선생님한테 한 명 더 붙일까요?”
“에이. 지금도 두 명이나 붙었는데요?”
“오버겠죠?”
“오버죠. 그건 그렇고. 이거 5회차 때 내보낼 거예요?”
“그럼요. 날밤을 까더라도 꼭 편집해야죠!”
이현아의 목소리는 다부졌다.
진혁이 파란을 일으킨 이상,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이 숟가락을 올리려고 들 터.
대회 결과가 유출되기 전에 빨리 내보내야 했다.
뭐, 사실 기사가 나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되레 대중의 관심이 쏠릴 터.
어쩌면 더 높은 시청률을 찍을지도 몰랐다.
‘국장님, 드디어 제가 해냈습니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설렘이 묘한 쾌감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
사회자가 소리쳤다.
“자자,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이번에는 조를 나눠서 진행할 겁니다. 먼저 1조 올라와 주세요.”
모니터와 박스 트레이너가 부피를 차지했기에 발생한 일.
곧 5개 팀, 총 10명의 레지던트가 올라오자.
스크린에 경연 방식이 띄워졌다.
[복강경 경연 대회]▶ 2인 1조로 진행.
▶ 1명당 5분으로 제한(총 10분)
▶ 구슬 성공 개수 : 3점.
▶ 슬리브 성공 개수 : 3점.
▶ 고리 통과 횟수 : 3점.
▶ 수처 성공 개수 : 3점.
▶ 어블 성공 개수 : 20점.
※ 어블 실패 페널티 –40점.
예선에선 패턴 커팅을 했건만, 종목이 달라졌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자, 보시는 것처럼 미션 종류가 좀 많습니다. 순서는 상관없고, 원하는 종목을 선택해서 하시면 됩니다.”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겁니까!?”
“맞습니다! 구슬, 슬리브, 고리, 수처, 어블! 10분 동안 한 사람이 5분씩! 교대로도 가능합니다!!”
사회자의 대답에 누군가 또다시 손을 들었다.
“한 사람당 5분 룰만 지키면 되나요?”
“시간만 지키면 됩니다!!”
“종목을 중간에 바꿔도요?”
“바꿔도 됩니다! 단, 세팅 시간 차감은 감수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논의해 결정하라는 말.
제약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안 이들이 수선스럽게 떠들었다.
누가 어떤 종목을 먼저 할지 논의하는 거다.
그 어느 때보다 전략이 중요한 경연.
하지만, 스크린을 응시하는 진혁은 전략마저 다 씹어먹을 생각이었다.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