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0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06화(106/388)
106화. 죽음이 예정된 환자 (16)
수선스럽게 떠드는 이들을 보며 이현아가 말했다.
“전략을 잘못 짜면 망하는 거죠.”
“뭐, 각자 잘하는 게 있을 테니까요. 누가 이길까요?”
“저야 모르죠. 그러는 감독님은 누가 이길 거 같은데요?”
“저야 뭐, 관심 없죠. 저는 항상 이기는 사람 편입니다. 대선 때도 항상 지지율 높은 사람 찍었어요.”
그저 대세에 따르는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말.
이현아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막내 선생님이겠네요?”
“왜요? 두 번이나 이겨서요?”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무슨 약속이요?”
“그런 게 있어요.”
이현아의 대답에 촬영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맥락 없는 말의 연속이니.
그럴 수밖에.
허나, 이현아는 되레 기분이 좋아졌다.
진혁이 환자와 꼭 우승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녔다는 건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 * *
순서는 원하는 대로.
중간에 종목과 사람도 체인지 가능.
이전 경연과 시합 방식이 달라졌지만, 사회자의 진행만큼은 똑같았다.
“으윽!! 외과장님이 얼굴을 굳힙니다!!”
“아아!! 간담체외과! 어떻게 된 겁니까!”
“오옷! 구슬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안 그래도 레지던트가 다루기엔 어려운 복강경.
사회자는 숫제 중개가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 냈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말에 이골이 난 경연 참가자들은 점수를 따는 데만 혈안이었다.
“김 선생. 좀 더 빨리해!”
“열심히 하고 있거든?”
“차라리 내가 할까?”
“닥쳐. 좀.”
토오옥.
토옥.
떨어진 구슬이 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그래스퍼로 작은 구슬을 잡은 뒤 원형 기둥 위에 올려놔야 했거늘, 기둥의 직경이 작아 쉽지 않았다.
정중앙에 제대로 올려놓지 않으면 곧바로 떨어지는 거다.
한편, 누군가는 고무 슬리브를 원형 기둥에 끼워 넣느라 바빴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았다.
그래스퍼에 너무 힘을 주면 고무 슬리브가 찌그러지기 십상.
원형 기둥에 끼워 넣을 수 있는 형태가 도저히 안 나왔다.
구슬 미션과 달리 원형 기둥의 직경이 컸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안 들어가는데!”
“힘을 빼라고. 힘을 빼!”
“나도 알거든?”
“아, 그게 아니라니까! 차라리 내가 할게. 비켜 봐!”
파트너와 투덕거리는 이들 뒤에는, 다른 종목에 도전하는 레지던트들이 있었다.
원형 고리에 굵은 줄을 밀어 넣거나 실리콘 패드에 수처하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외면받는 종목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어블(절제)이었다.
성공할 경우 획득 점수는 가장 컸지만, 실패할 경우 –40점을 받는 종목으로 실패에 따른 리스크가 있었다.
그뿐이랴.
제대로 절제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렸기에, 아무도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사회자가 소리쳤다.
“아아!! 끝났습니다!!”
1조의 경연은 금세 끝나 버렸다.
* * *
어느덧, 마지막 조만 남은 상황.
스크린에 그 순위가 떴다.
1등 : 일반외과 82점
2등 : 산부인과 81점
3등 : 간담췌외과 78점
4등 : 소화기외과 77점
5등 : 내분비외과 75점
아직까지 1등은 일반외과.
자리로 돌아와 다른 이들의 경연을 지켜보던 GS 소속의 레지던트가 입을 열었다.
“와. 진짜 아슬아슬했다.”
“진짜 역전당하는 줄 알았네.”
“상금 받으면 뭐 할 거냐.”
“하긴 뭘 해. 회식비로 토해 내고 교수님들한테 이쁨이나 받아야지. 봐 봐. 벌써부터 쳐다보는 눈이 다르다고.”
“흐흐. 진짜 이대로 이겼으면 좋겠다. 설마, 역전당하진 않겠지?”
“에이, 남은 애들을 봐라. 산부인과 애들이 우릴 못 이긴 순간 우승 확정이라고!”
최약체로 평가받는 과만 남은 상황.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GS 치프인 유진태와 같이 올라온 이진혁이었다.
잠시 후.
진혁이 단상에 서자 좌중이 술렁였다.
이변의 주인공이 등장해서가 아니었다.
인턴 주제에 감히 복강경 경연에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비공개로 열렸던 복강경 예선.
다른 예선도 비공개로 열린 건 똑같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본선과 달리 예선은 공간이 협소했고.
복강경 장비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에 보는 눈이 필연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뭐, 진혁이 힘을 빼고 설렁설렁한 탓도 있었지만.
소문이 덜 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복강경이라서 그런 걸까.
GS 치프인 유진태와 함께 단상에 오르는 진혁을 향해 다들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건 못 이기지.”
“당연하지. 속성으로 교육받아 봤자. 뭐, 얼마나 했겠어. 예선도 유진태 선생 덕에 통과한 거겠지.”
“그래. 이것도 이기면 말도 안 되지. 이진혁이 우승하면 내가 진짜 절하고 온다.”
“난 손에 장을 짓는다.”
“나는 선배라고 부를게.”
연신 고개를 젓는 이들.
전부 유진태 덕에 진혁이 예선을 통과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예선에서 진혁이 힘을 숨겼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장내가 다시 수선스러워지자.
사회자가 소리쳤다.
“아아아~!! 드디어 이진혁 선생이 등장했습니다! 이변의 주인공! 파란의 주인공입니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
사회자도 복강경 경연에서 진혁의 활약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마지막 조의 시합인 만큼 지켜보는 이들의 텐션이 끝까지 유지되길 원했다.
허나, 그의 바람과 다르게 야유가 터져 나온다.
“우우우우우!!”
“우우우우!!”
“우~~~ 말도 안 된다!! 내려와라!!!”
“내려와! 내려와! 내려와!”
“당장 내려와라!! 복강경을 무시하지 마라!!”
그가 어떤 활약을 보이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이들은 고래고래 악을 쓰기 바빴다.
당연히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치는 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이진혁이 복강경도 잘 다룬다면?
술기 대회에 나선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박살 날 게 분명했다.
‘인턴도 하는데 너는 왜 못해!!’
‘이 자식이 빠져 가지고!’
‘오프할 시간은 있고 연습할 시간은 없어!!’
‘앞으로 오프는 없다! 다들 연습에 매진해!’
뭐, 이런 류의 불벼락이 떨어질 게 자명한 거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진혁의 파트너인 유진태를 갉아먹고 있었다.
* * *
상금을 받으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보일러를 놔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뿐이랴.
전국에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하지만 유진태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았다.
진혁의 실력을 보고 방방 뛰던 그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바로 계속된 이변 때문이었다.
타이 대회 단독 우승.
수처 대회 공동 우승.
두 번의 이변을 전부 지켜봤고.
이를 보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은 레지던트 4년 차.
한 과를 책임지고 있는 의국장이었다.
반면 파트너인 이진혁은 고작 인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사실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처럼 침식해 들어갔다.
이진혁보다 못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라는 못난 생각이 스스로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과장님이 날 죽이려고 하실 거야. 날 죽이려 하실 거라고!’
차라리 연습 때 진혁의 실력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부담감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시작된 경연.
유진태는 실수를 연발했다.
“아아!! 또다시 구슬이 떨어집니다!!!”
구슬이 떨어질 때마다 심장이 뒤흔들리며, 파문이 인다.
도저히 못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세팅 시간을 소비해 가며 종목을 바꿨다.
하지만.
“아아!!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슬리브를 제대로 끼워 넣어야지요!!”
연이은 실패.
애초에 경연 난이도를 비정상적으로 올려 놨다지만, 한 과를 맡은 의국장(치프)답지 못한 모습이었다.
* * *
그 옛날, 진혁은 테니스를 해 본 적이 있었다.
예과 1학년.
대학 입학 후 모든 게 설렐 그 시절이다.
퍼어엉.
퍼어엉.
처음 해 본 테니스.
힘을 잔뜩 주고 때렸더니, 연신 아웃이더라.
하물며 테니스도 이럴진대.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복강경은 말해 무엇하랴.
힘을 주지 않으면서도 기구를 제 몸같이 움직여야 했거늘.
유진태의 손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갑자기 왜……. 설마?’
순간 진혁이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바라봤다.
자신을 찍고 있는 VJ만 두 명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대강당을 훑었다.
목청이 터져라 치프를 응원하는 GS.
이미 또 다른 GS 레지던트 조가 1위를 기록하고 있기에, 부담 없이 소리를 지르며 유진태를 응원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병원장인 오지호마저 눈에 들어오자, 유진태의 반응이 절로 이해됐다.
‘잡아먹혔구나. 잡아먹혔어.’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진혁이 움직였다.
유진태의 귀에 대고 카메라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뭐라 말을 건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유진태의 손놀림이 달라졌다.
이를 알아챈 사회자가 당장 소리쳤다.
“오오오!! 유진태 선생의 움직임이 달라졌습니다! 대체 뭐라고 한 걸까요!!”
사회자가 의문을 토해 냈지만, 진혁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잠시 후.
5분이라는 시간을 전부 소진한 유진태 대신 진혁이 박스 트레이너 앞에 앉았다.
그 모습에 사회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아! 이진혁 선생이 자리에 앉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입니다!”
“이길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1등을 달리고 있는 GS의 점수는 81점.
따라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기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역전해야 하는 상황.
진혁이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이긴다.’
어렵다고 포기하는 거?
사실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힘들다고, 혹은 어렵다고 포기할 거면 진즉 흉부외과에서 뛰쳐나왔을 거다.
게다가.
상금, 유명세, 최예린.
거기에 최익진까지.
이겨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물론, 복강경 장비를 잘 다루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해야 할 때였다.
입술을 깨문 진혁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쥔 그래스퍼(Grasper)로 구슬을 잡고, 왼손으로 쥔 다이섹터(Dissector)로 또 다른 구슬을 잡는다.
그러고는 한 번에 움직였다.
“아아! 무리수입니다! 무리수!!”
“다들 한 손으로 하고 있는데 혼자 뭐 하는 겁니까!”
“아아! 연이은 수상에 눈이 멀었나 봅니다!”
우려 섞인 사회자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허나, 이에 아랑곳할 진혁이 아니었다.
아니,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고 해야 맞았다.
잠시 후.
원형 기둥 위에 두 개의 구슬이 동시에 안착하자 사회자가 탄성을 토해 냈다.
“크어어억!! 성공! 성공했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
너무 놀랍고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숙련되지 않고서야 저런 손놀림을 보일 수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양, 양손잡이인가 봅니다!!! 아니 그보다 복강경 도구를 대체……!!”
사회자는 제대로 사회를 보지 못했다.
혹시 양손잡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수한 의문이 말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건, ‘대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가’라는 본연적인 물음이었다.
물론, 그 반응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양손잡인가?”
“지금 양손잡이가 문제가 아니라고! 복강경이라고 복강경!”
“와, 진짜 말도 안 돼!”
“인턴이 진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데.”
“대체 언제 연습한 거야……?”
경연이 끝난 후 당장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따지고 들 게 분명할 정도로 장내는 술렁였다.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이 궁색해질 게 뻔한 상황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