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0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07화(107/388)
107화. 죽음이 예정된 환자 (17)
진혁이 또다시 동시에 구슬을 올려놓는다.
성공.
그리고 또 성공.
또 성공이었다.
연이은 성공을 지켜보다 보니, 웅성거림마저 잦아든다.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침묵을 메운 건 사회자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고작 인턴이……. 고작 인턴입니다!!”
사회자가 간신히 공백을 메우는 사이, 진혁은 구슬 미션을 끝냈다.
유진태가 채우지 못한 점수만 채우면 됐던 탓이다.
진혁이 곧장 다른 미션에 도전했다.
“이번엔 슬리브로 넘어갑니다!!”
“아앗!! 또다시 양손을 이용합니다!!”
그 모습에 다들 눈을 치켜떴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조직을 박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다이섹터는 조직을 잡는 용도로 사용하는 그래스퍼와 집게 모양이 달랐다.
구슬이야 꽉 잡아도 된다 해도, 조금만 힘을 주면 찌그러지는 고무 슬라브는 양손으로 다룰 수 있는 계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아! 이럴 수가! 또다시 성공합니다!”
“이게 사람입니까, 괴물입니까!”
“인턴이 레지던트보다 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회자의 호들갑은 전혀 호들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찌그러지는 슬리브를 원형 기둥에 끼워 넣을 수 있다는 말은, 각기 다른 도구를 다루면서도 손잡이를 통해 전달되는 힘을 잘 통제한다는 말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슬리브 종목을 끝낸 진혁.
이번엔 고리가 박혀 있는 판을 세팅하고 다시 손을 놀렸다.
30개의 고리 중 노란색으로 표시된 고리에만 줄을 통과시키면 됐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고리에 줄을 밀어 넣은 다음.
다시 반대편에서 그래스퍼로 잡아당기는 걸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이 지렁이가 비 오는 날에 몸을 꿈틀거리듯 빠른 속도로 고리를 통과한다.
그렇게 획득 점수를 높여 갔건만.
사회자가 한탄했다.
“아아!! 시간이 부족합니다!! 1분 30초밖에 안 남았습니다!”
순간 진혁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고리판을 냅다 빼 버리고.
어블을 위한 물품을 세팅하기 시작한다.
물이 가득 들어 있는 밀봉된 라텍스 장갑.
그리고 이를 천장에 고정시킬 고리까지.
이를 지켜본 사회자가 소리쳤다.
“아아! 이진혁 선생이 어블에 도전합니다!”
“손가락을 잘라 낼 때마다 20점을 받을 수 있지만, 물이 조금이라도 샌다면 감점이 40점입니다!”
“이진혁 선생도 역시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은 역시 큰 거 한 방입니다!”
가장 까다로운 종목.
물이 한 방울이라도 새면 실패로 판정됐기에,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종목에 트라이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팅을 마친 진혁이 빠르게 손을 놀렸다.
먼저 노린 건 중지였다.
물이 새지 않도록 봉합사를 휘감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박스 트레이너 안에서 니들홀더와 그래스퍼가 빠르게 교차한다.
허공에서 봉합사를 이어받고.
다시 허공에서 봉합사를 건네받는다.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타이 홀.
타이는 금세 끝났다.
이번엔 도구를 교체한다.
진혁이 박스 트레이너에 시저스(Scissors)를 집어넣고는 곧장 중지를 박리했다.
뚜욱.
절제한 중지가 바닥에 떨어지자, 다들 스크린이 뚫어져라 이를 쳐다봤다.
“아아! 물이 새느냐! 안 새느냐!”
.
.
.
“오오오!! 물이 새지 않습니다!!”
성공, 성공이었다.
그렇게 사회자가 호들갑을 떨 동안에도 진혁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약지를 건드리고 있는 그.
그래스퍼와 니들홀더가 박스 트레이너 안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매듭까지.
순식간에 타이를 끝낸 진혁이 그래스퍼를 빼낸 뒤 시저스를 밀어 넣으려던 순간.
사회자가 소리쳤다.
“끝! 끝입니다!”
마무리만 하면 됐건만, 경연이 끝나 버렸다.
이제 그 결과를 확인할 때였다.
* * *
무거운 침묵이 장내를 휘감는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단상만 바라본다.
복강경 장비를 다루는 인턴이 신기해서?
아니,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놀랐고 경탄했다.
허나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아쉬운 표정을 하는 진혁 때문이었다.
뭐가 그렇게 아쉬운 걸까.
무슨 미련이 남은 걸까.
레지던트를 전부 씹어먹는 실력을 보여 놓고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복강경 수술을 주로 집도하는 전문의들은 참가하지 않았다지만, 단상 위에 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보이지 않았던가!
자랑을 해도,
자부심을 가져도,
자만심에 어깨를 으쓱거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를 욕할 수 없을 텐데.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저러는 걸까.
이젠 ‘어떻게’에서 ‘왜’로 바뀐 의문사.
다들 진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
.
.
침묵.
또 침묵이 이어진다.
사실 그만큼 이상한 상황이었다.
정상적이라면.
아니, 한창 나이인 20대 중반이 맞다면.
지금은 오히려 당당히 어깨를 펴고 쏟아지는 찬사와 경탄을 즐겨야 옳았다.
허나, 그러지 않는다.
큰 거 한 방에 도전해 성공해 놓고선.
아쉬운 표정만 짓고 있다.
대체 왜……?
침묵을 깬 건 사회자였다.
그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고 있었다.
“아, 그, 저…… 일단 발표에 앞서 인터뷰부터 하겠습니다.”
그 말이 시발점일까.
멈춰 서 있던 감독관들이 점수표를 취합하기 시작했고.
진한 아쉬움을 토해 내던 진혁 또한 표정을 지웠다.
곧, 진혁 앞에 선 사회자가 물었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데요. 충분히 잘했고. 믿을 수 없는 성과를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겁니까?”
사회자는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냐는 물음보단, 진혁의 표정에 집중했다.
* * *
아쉬운 표정은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아쉬웠다.
마무리를 제대로 지었다면.
방점을 제대로 찍었다면.
우승은 확정이었을테니까.
아니, 그보다, 실전이었다면 자신은 낙제점이라고 생각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환자를 수술해야 하는 상황.
수술을 채 하다 말고, 타임 리밋에 걸려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절대 해서는 안 될일인 거다.
‘실전이었다면 환자는 죽었다.’
진혁이 아쉬운 표정을 애써 감춘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무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페널티를 받진 않았습니다만, 점수를 따지 못한 게 아쉬웠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뭐 때문에…….”
“만약 필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환자는 죽었을 겁니다.”
“!”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었어야 했습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할 거였으면 시도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죠. 그래서 아쉬웠습니다.”
“허허.”
예상치 못한 대답.
사회자가 헛웃음을 켰다.
물론,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분초를 다투는 건 일상.
제한된 시간 안에 환자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마무리까지 해야 하는 게 그네들의 삶이었다.
허나, 그 말을 인턴이 한다는 게 문제였다.
고작 인턴 주제에 경험 많은 노교수가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었고.
아쉬워하며 자책까지 하고 있었으니 기시감이 들 수밖에.
‘진짜 별나단 말이야.’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왜 어블에 도전한 겁니까? 리스크 테이킹을 할 자신이 있었던 겁니까?”
“자신이 있었다기보다, 역전을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고. 이기고 싶어서 도전했습니다.”
“이기고 싶었다고요?”
“네.”
진혁의 대답에 사회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경연도 아니고 복강경 경연.
‘이기고 싶었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왜죠? 이진혁 선생은 아직 인턴입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고. 인정받을 만했습니다. 왜 욕심을 부린 거죠?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사회자의 질문에 진혁이 숨을 골랐다.
“우승하고 싶었습니다. 꼭 우승해서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
“그래서 죽어라 연습했고. 이를 증명해 낼 수 있었습니다.”
“누구한테 증명한다는 거죠?”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계신 환자분들입니다.”
“!”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말도 안 되는 일은 언제든지 벌어진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꿈과 희망. 절대 포기하지 말자.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습했고 이를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진혁의 대답은 계속됐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이쁘장하게 포장한다.
솔직히 말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허나, 뭐 어쩌랴.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었냐고 물으면, 대답할 방법이 없는걸.
그리고 이 또한 괜찮지 않을까.
최예린, 최익진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제 인터뷰로 희망을 품는다면.
한 명이라도 더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다다익선이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 * *
어느덧 끝난 인터뷰.
쉽게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아니, 조금씩 진혁에게 마음을 여는 이들이 늘었다고 해야 맞았다.
그래.
이진혁은 어쩌면 말리그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저 환자 한 명 한 명한테 항상 집중하고.
속절없이 죽은 이들의 존재를 아쉬워하고.
그 자신의 손놀림을 자책하며.
향상심마저 뛰어난 후배일지도 몰랐다.
환자를 위해 우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는 실력으로 입증해 보였고.
결과로 이를 증명했다.
쇼 앤 프로브.
스스로 실력을 보여 주고 증명했으니 뭐라 반박할 말도 없었다.
침묵이 이어질 때.
병원장인 오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쳤다.
짝. 짝. 짝. 짝.
클래식 공연을 감상한 뒤 기립박수를 치는듯한 오지호의 행동에 다들 주섬주섬 일어나 손뼉을 쳤다.
이는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한 인턴을 향한 찬사였다.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대강당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혁이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이들의 시선이 엇갈렸다.
‘장하다! 내 아들!! 역시 넌 CS다!’
‘크음. 큼. 큼. GS. GS로 데려와야 해!!’
‘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2호 동지!! 대박입니다! 대박! 이게 다 돈이라고요!!’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잠시 후.
채점표를 건네받은 사회자가 소리쳤다.
“1등은 유진태, 이진혁 선생입니다!!”
끝내 3관왕을 차지한 이진혁.
인생은 역시 큰 거 한 방이었다.
아니, 어쩌면 괴물 인턴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일지도 몰랐다.
* * *
진혁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목표했던 바를 전부 이뤘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곧바로 시작된 타이 시상식.
김상혁과 함께 밝은 얼굴로 단상에 올랐다.
하지만, 진행 요원이 들고 온 패널을 확인한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500만 원』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사회자가 소리쳤다.
“우리 아신 재단은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번 대회를 개최했으며, 상금을 전부 기탁하기로…….”
한참 계속된 설명.
더 들을 것도 없이 상금을 전부 기부한단 말이었다.
‘어쩐지 많이 준다 했다.’
쓴웃음을 짓던 진혁이 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인턴 필독서만 제대로 집필한다면 큰 돈을 벌게 될 터.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미련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환자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으니까.
“자자. 사진 찍습니다. 어어~!! 이 선생님! 웃으세요!”
“네.”
“아니, 웃으셔야 한다니까요!”
“웃고 있습니다.”
“자~ 따라 해 보세요!! 치이이이즈~!!”
“치즈!!”
“치이이이즈~!!!”
“치즈!”
찰칵!
찰칵!
곧바로 이어진 수처와 복강경 시상식.
진혁은 계속 패널을 바꿔 들어야 했고.
그때마다 상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잃는다고 했던가.
딱 그 꼴이었다.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 가 있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