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11화(111/388)
111화. 예상치도 못한 일 (1)
어느새 병원장실로 돌아온 오지호.
외과장인 최재원도 그 옆에 있었다.
스케줄을 변경하며 시간이 붕 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뜬금없는 최재원의 말.
한창 희희낙락거리던 오지호가 물었다.
“허허, 뭐가 말입니까?”
“이 선생 말입니다.”
“?”
“GS에 온다고 확실하게 말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병원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애들은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저희끼리 너무 앞서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좀 그렇습니다.”
순간 오지호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확답을 받은 적이 없었다.
“허허.”
“…….”
“허허허.”
오지호가 연신 헛기침을 터트렸다.
달콤한 꿈에서 깬 거 같았다.
아니, 냉수를 한 모금 들이켠 느낌이랄까.
그때.
오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잉.
평생의 라이벌.
삼선 병원 외과장 김석준이다.
잠깐의 망설임.
딸깍.
“왜 전화했나?”
[난 전화도 못 하나?]“흰소리할 거면 끊게.”
[어허, 이 사람이. 아직도 꽁해 있나?]“뭐? 꽁해?”
[뭐, 뽕샷도 치고 쪼루도 내고 그러는 게지. 뭘 그러나?]라운딩 때 있던 일을 언급하는 김석준.
오지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또 그 소린가?”
[아아, 기분 나쁜가 보지? 그러니까 백돌이인 게야.]“백돌이는 무슨. 구력이 벌써 20년이 넘었어!”
[공 치는 데, 구력이 중요한가? 실력이 중요하지. 흐흐흐. 20년을 해도 막창이 나고, 옆집에 살림을 차리는 게 골프 아니겠나.]틀린 말은 아니었다.
구력이 오래돼도 스코어가 들쭉날쭉한 게 골프.
지난 라운딩은 그만큼 최악이었다.
“놀리려고 전화했나? 외과장이나 돼서 할 일도 없나 보구먼. 일원동은 한가한가 보지?”
[그놈의 과장 같은 소리! 에잉. 쯧쯧.]“그럼? 외과장을 과장이라고 부르지, 뭐라 부르나!!”
오지호의 유치한 반격.
김석준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재선이 어렵지 않냐는 함의.
이사장한테 인정받고 있었지만, 매번 어려운 표 대결을 하는 건 맞았다.
오지호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김석준이 깐죽거렸다.
[요즘 말이야. 우리 과에 에이스가 들어왔어.]“에이스?”
[그래. 구력이고 뭐고 다 씹어먹는 놈이지. 공무원 퍼팅이나 하는 누구랑은 아주 다르다고! 흐흐.]“공무원 퍼팅은 무슨. 그날은 컨디션이…….”
[아아, 됐네. 됐어. 뭐, 술기부터 에티튜드까지 흠잡을 데 없는 친구지. 일원동의 자랑이 될 걸세.]그 말을 시작으로 김석준이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설 자리가 좁아지던 GS.
차기를 이끌어 갈 후학을 자랑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었고.
상대를 약 올리기에 이런 유쾌한 주제도 없었다.
한참 그의 자랑을 듣던 오지호가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뭐? 더블 보드(Double Board, 2개 전문의 자격 취득)? NS 보드를 땄는데 GS로 와?”
[왜? 놀랍나? 요새 특훈도 하고 있지.]“특훈은 무슨. 한참 어시나 서고 있겠지. NS에서 배웠다고 해도 GS는 모를 게 아닌가.”
[우리가 아신 병원 같은 줄 아나?! 밀어줄 땐 확실히 밀어준다 이 말이야! 구력만 따지는 곳이랑 다르다고!!]보수적인 아신 병원의 문화를 비꼬는 김석준.
의사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연공 서열과 경력을 중시하는 문화를, 골프 구력과 정비례하지 않는 오지호의 실력에 빗대고 있었다.
허나, 가만있을 오지호가 아니었다.
“우리도 있어! 우리도 있다고!”
[누가 있는데?]“이진혁이.”
[뭐? 누구?]“이진혁이 있다고!!”
[아아. 그 방송 좀 탔다는 인턴 말인가? 이봐. 오 원장.]“왜! 뭐!”
[천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거야. 어! 인위적으로 만들어 봤자 롱런 하기 힘들다고!]한껏 조롱하는 김석준.
오지호가 기가 찬 듯 반문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나!”
[솔직히 말할까? 유명해지려고 기자한테 제보한 놈이 아니냐, 이 말이야. 히스토리를 보아하니, 같은 기자가 두 번이나 터트렸더만.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도 적당히 하게. 쯧쯧.]“방송을 보고도 그런 소릴 할 수 있는지 내 두고 보지.”
[방송은 무슨. 춘계학술대회 때 우리 아이나 소개해 줌세.]“방송이나 꼭 보게! 아아, 이만 끊음세.”
뚜욱.
오지호가 핸드폰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한층 상기된 얼굴이다.
외과장의 존재를 상기한 그가 안색을 다듬는다.
물론, 열을 식히기 위한 깊은 한숨과 함께다.
“후우…….”
“괜찮으십니까?”
“괜찮지요. 암, 괜찮고말고요.”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
견원지간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던 최재원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방송을 보면 크게 놀랄 겁니다. 그때 한 방 먹이시지요.”
“허허, 한 방 먹이다니요.”
“…….”
“밟아 버려야지요.”
“……!”
“밟아 버려야겠습니다!”
“!!”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지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고 얄밉다는 말은 틀렸다.
둘 다 얄미운 게 인지상정.
응당 응징해야 마땅했다.
방법은…….
그래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방송만 보게 만들면 된다.
방송을 보고 나면 뒤집히리라.
아니, 화들짝 놀라 침묵할 게 분명했고.
그때 다시 전화해서 실컷 이죽거리리라.
일원동 삼선 병원 GS엔 더블 보드에 도전하는 에이스가 있다면, 아신 병원엔 고작 인턴에 불과한 이진혁이 있다고 말이다.
* * *
자극을 실컷 받은 상황.
오지호가 정신없을 정도로 한참을 서성였다.
“더블 보드, 더블 보드라. 정 안 되면 더블 보드라도 시켜야겠지요.”
GS를 거부해도 방법이 없진 않다는 말.
최재원이 얕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흐음.”
“왜요, 별롭니까? 케이스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 아닙니다. 당장 우리 병원만 해도 대여섯 명은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ER에 있는 류덕환 교수도 PED(소아청소년과) 보드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진혁이 경험하지 못한 소아응급실.
류덕환 교수는 소아청소년과(PED)와 응급의학과(ER) 전문의 자격증을 둘 다 갖고 있었다.
전문성을 위해 어려운 길을 간 셈이다.
남들보다 수련을 2배로 했으니.
왜 안 어렵겠는가.
최재원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본인이 원하겠습니까?”
“그렇지요. 결국 본인 의사가 중요하지요.”
“본인이 원할지가 문제인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꺼릴 수도 있습니다.”
최재원의 말에 오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제도로 뒷받침하면 된다 여겼다.
“외국에서는 트리플 보드(전문의 자격증 3개 보유)나 쿼드러플 보드(전문의 자격증 4개 보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야 제도가 뒷받침돼서 그렇지요. 수련 기간이 대폭 단축되니까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지요. 건의부터 해야겠습니다.”
순간 최재원이 놀란 얼굴을 했다.
건의를 하겠다니.
그 대상은 한 곳밖에 없었다.
“벌써 말입니까.”
“아아, 미리 얘기해 둬야지요. 지금 얘기해도 한참 후에야 움직일 사람들입니다.”
‘전문의의 다른 전문 과목 수련 인정 기준’을 개정하자는 말.
다른 과 보드를 취득할 때 실무 경험을 인정해, 수련 기간을 단축해 주는 제도가 있었고.
불과 2년 전인 96년에 개정된 바 있었다.
놀란 기색의 최재원을 보며 오지호가 말했다.
“1년, 1년만 더 앞당깁시다. 지금은 1년만 면제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흐음, 그럼 2년이 면제된다는 건데…….”
“왜요? 별롭니까?”
“병원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쉽지 않을 겁니다.”
“인정 기준을 완화하면 장점이 많다는 걸 어필해야지요.”
“뭐, 환자를 위해선 좋은 일이지요. 한데, 각 과에서 쉽사리 문을 열어 줄지 모르겠습니다.”
“정 안 되면 외과 계열만이라도 공론을 모아야겠습니다. 이 모든 게 환자를 위한 일이지 않습니까.”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신경외과 전문의가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해 활약하는 것처럼, 의사의 지식이 뛰어날수록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리는 법이었다.
“정 안 되면, 『의료분쟁 조정중재원』 건과 같이 엮어야겠지요.”
“설, 설마 국가 주도로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건의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허허.”
최재원이 헛웃음을 켰다.
진혁의 실력을 봤다지만.
병원장이 너무 앞서 간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신 병원도 『의료분쟁 조정중재원』을 운용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던가.
그 유용성도 검증해 봐야 했고.
국가 주도로 설치한다면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게 분명했다.
허나, 오지호의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그건 가뭄에 대한 해갈.
인력난에 시달리는 GS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였다.
“아아, 이럴 게 아닙니다. 다시 전화해야겠습니다.”
“?”
“박 과장 말입니다. 그립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분이지요.”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전화 한 통으로 그립을 풀 사람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오지호가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또다시 박영진을 단속하는 오지호였다.
* * *
한편, 응급의학과 과장실을 나온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박영진이 따져 물을 줄 알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왜 병원장님이 전화하신 거냐고 물을 줄 알았다.
한데, 별다른 말이 없다.
그저 일정을 조율해 휴가를 다녀오라는 말뿐이었다.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닌데…….’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오태상을 한 번에 날려 버린 박영진.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고 냉혹한 사람이다.
한데 캐묻지 않는다.
뭐, 표면적으로는 따르는 시늉을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렇더라도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 물어야 정상이거늘.
결국, 어떤 꿍꿍이인지 알 수 없었고.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병원장이 지시가 있었더라도, 선을 지켜야 하는 거다.
인턴이 수술을 집도한다거나.
거꾸로 교수들을 가르친다거나.
뭐 이런 일은 있을 수도 없었고.
해서도 안 됐다.
결국, 자신이 얻은 건 반쪽짜리 자유.
좀 더 자유로워지겠지만.
적정한 선을 먼저 가늠해야 했다.
한데 상대가 저리 나오니 그 선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뭐, 조금씩 확인해 봐야 하는 건가.’
진혁이 쓰게 웃으며 상념을 털어 버렸다.
어차피 지켜보면 될 일.
벌써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바로 회식을 잡아 버리네.’
집에 가긴 그른 상황.
진혁이 바로 인턴 휴게실로 향했다.
옷이나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그때, 장혁준이 길을 막았다.
그도 회식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고 기다린 게 분명했다.
“아! 진짜 어디 갔었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왜요?”
“아, 그게 말이죠. 흐흐.”
“?”
“우리 배 선생을. 아니 2호 동지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단 말입니다.”
“배신자라서 배 선생이라고 부른다면서요.”
“아아. 우승했으니까 봐주려고요.”
흰소리를 늘어놓는 장혁준.
진혁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나중에 얘기해요.”
“아, 진짜 대박 선물이라니까요.”
“?”
“그때 그, 구재완 기자 기억나죠? 번호 유출했던 나쁜 놈이요.”
“뭐, 그놈 때문에 한참 고생했죠.”
“갑자기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장난 좀 쳤죠. 그게 그러니까…….”
장혁준의 설명은 한참 계속됐다.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는 말에 진혁이 혀를 찼다.
“떨어졌다고 보냈다는 거예요?”
“아, 진짜! 지금까지 뭘 들은 거예요! 이거 말해 주고 싶어서 집에도 안 갔다니까요!!”
“회식 때문이겠죠.”
“아, 그야 그렇기도 한데. 진짜 이러깁니까!”
자신의 공을 알아달라는 말.
우쭈쭈 해 줄 마음이 없던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이런 거에 속겠어요?”
“속을 수도 있죠!!”
“?”
“화장실에서 울고 있다고 했거든요.”
“!”
순간 진혁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화장실에서 울고 있다니.
너무 과장된 제보였다.
“그냥 떨어졌다고 보냈다면서요!”
“에이, 양념 좀 쳤죠.”
“뭐, 믿지도 않겠네요.”
“어차피 인턴이 우승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고요!”
“따로 확인해 보면 바로 알 텐데요.”
“지금 소문 몰라요?”
“?”
“사람들이 배 선생, 아니 2호 동지가 3관왕 차지했다고 해도 안 믿고 있다고요!!”
“아…….”
“뭐,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손해 볼 건 없는 거다.
거기에 더해,
크로스체크는커녕 일차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쳐 내던 강기재마저 떠오른다.
‘메이저 출신이라면서 팩트 체크는 하지도 않았지.’
안 그래도 기사를 볼모로 뒷돈을 받는 일이 많던 시절.
김영란법은커녕 기자 윤리조차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럼 해야 할 일이 있겠는데요?”
“뭔데요?”
“홍보팀을 단속해야죠.”
“오오오오! 한 방 제대로 먹여 주자고요.”
“그래야죠.”
제 번호를 뿌려 피곤하게 만든 기레기.
어쩌면 카운터를 날릴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