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14화(114/388)
114화. 예상치도 못한 일 (4)
곧이어 방송된 『응급실 사람들』.
5회차 방송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항상 급박한 장면만 보여 줬던 기존과 달리 술기 대회가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편집 실력이 점점 좋아지네?’
방송을 본 진혁이 희게 웃었다.
틱틱거리며 상남자 흉내를 내는 이현아의 실력이 늘고 있는 게 확연히 보였던 탓이다.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고.
이길 수 없을 것처럼 편집한다.
그 후에는 짜릿한 역전.
중요한 건 이를 세 차례나 반복했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거다.
이는,
“와아! 이겼다! 이겼어!!”
“으하하!!”
부모님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지만 두 분 다 손에 땀을 쥐며 마음을 졸였고.
끝내 승리를 쟁취할 때마다 어린애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효도가 뭐 있나. 이게 효도지.’
진혁이 남몰래 코끝을 긁었다.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
조금이나마 힘이 됐다면 그걸로 족했다.
곧, 술판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연신 소리쳤다.
“우리 아들이 최고다! 어! 최고야! 하하!”
“에이~! 당신도 최고예요. 여보.”
“그럼! 누구 핏줄인데!!”
“에잇! 당신은 왜 내 칭찬 안 해요!!”
“아, 크음. 큼. 우리 아들 이만큼 키우느라 고생했어요.”
어색한 말투로 말하는 아버지.
진혁이 소리 내 웃었지만,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폐경이 오며 감정 기복이 심한 시기였다.
“갑자기 눈물이 다 나오고. 어머~!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어머니.
진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호르몬 영향일 거예요. 제가 영양제 좀 사 드릴게요.”
“영양제는 무슨. 됐어. 돈 아껴야지.”
“에이, 그래도요. 직원 할인 받으면 돼요.”
“직원 할인도 있어?”
“그럼요.”
거짓말이었다.
허나, 뭐가 중하랴.
부모님을 위한 일이거늘.
“아빠는? 아빠 것도 챙길 거지?”
“그럼요, 남자한테 좋은 거로 챙겨 드릴게요.”
“그래!?”
“네, 아직 의약분업 전이라…. 아, 원내 약국에서 사면 돼요.”
진혁이 서둘러 말을 수습했다.
의약분업.
2년 뒤면 대규모 파업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제때 진료받지 못하고 죽는 이도 생긴다지만, 아직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렇게 한창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진혁이 말했다.
“근데,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좋다마다.”
“어떤 점이요? 유명해져서요?”
“아니, 그때도 말했지만, 아빠는 우리 아들이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좋아.”
회귀 첫날에 했던 말을 꺼내는 아버지.
그가 말을 이어 갔다.
“최고보다 환자를 생각하는 따뜻한 의사가 되면 그만인 거야. 술기 대회? 우승해서 당연히 좋지. 그보다 네가 했던 말들. 환자를 응원하는 그 모습이 자랑스럽고 좋아.”
술기 대회 중간에 방영된 토막 인터뷰뿐 아니라, 복강경 경연을 끝내고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던 인터뷰를 언급하는 아버지였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진혁이 희게 웃으며 답했다.
어쩌면, 부모님 옆에 있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제 본분에 충실한 게 진정한 효도일지도 몰랐다.
* * *
그 시각, 아신 병원은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밤이 됐지만, 아픈 이들의 고통은 끝이 없었고, 의료진은 각기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
아니, 묘하게 들썩인다고 해야 맞았다.
“와, 이진혁이 진짜 대박이네.”
“내가 말했잖아. 진짜 3관왕이라니까.”
“하……. 이거 꿈이냐. 생시냐.”
“꿈이다. 왜.”
“으으. 꿈이 더 싫어.”
“?”
“그럼 또 출근해야 되잖아.”
“뭐래, 평소에 퇴근도 못 하면서.”
“암튼 대박이다. 대박. 와. 진짜 믿기지가 않는다.”
진혁을 두고 수선스럽게 떠드는 이들.
그들이 병원을 소란스럽게 하는 범인이었다.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왜 사람 말을 믿지 않냐는 타박이 들렸고.
일하면서 짬짬이 방송을 본 이들의 탄식이 울려 퍼졌다.
고작 인턴한테 다들 잡아먹힌 것이다.
이는 위계질서를 뒤흔드는 일.
이미 결과를 알고 있던 이들은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연신 그 결과를 부정하고, 부인하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치부했던 이들의 충격은 컸다.
그리고 그 반응은 온라인도 마찬가지였다.
* * *
『영닥터』는 진혁에 관한 얘기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와, 이거 편집한 거지?] [미친 거 같다. 인턴이 저렇게까지 한다고?] [레지던트들은 다들 뭐 하는 거냐.] [인턴이 어떻게 복강경 기구를 다뤄?] [레지던트보다 왜 손이 빠른 건데!!] [조작이야. 조작.] [와. 실력 지린다. 펠로우라고 해도 믿겠다.]놀라움, 경탄, 탄식, 질투.
온갖 감정이 실린 글이 폭주했다.
10개, 30개, 50개, 100개, 200개, 300개.
게시판이 마비될 정도로 글이 쏟아졌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실컷 비웃고 현실을 부정했던 이들인 만큼 그 후폭풍도 거센 것이다.
혹시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회귀자가 아니냐는 헛소리도 올라왔지만, 금세 묻혔고.
진혁에 관한 얘기로 계속 진동할 뿐이었다.
반면, 그 시각.
오지호는 병원장실에서 홀로 괴로워했다.
“이 자식이 왜 전화를 안 받아!!”
일부러 퇴근도 미루고 방송을 본 상황.
곧바로 삼선 병원 외과장 김석준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질 않는다.
“이놈의 자식이……. 하…….”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번.
오지호는 계속 통화 버튼을 눌렀다.
구력에 비해 골프 실력이 못하다고 한참을 비웃던 김석준.
그놈한테 바로 전화해서 웃어 줘야 하는데.
아주 크게 웃어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데…….
받질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지호가 혈압이 올라 소리쳤다.
“이 자식이 진짜!!! 끄으으윽!”
라이벌 병원의 외과를 맡은 김석준.
자신이 처음 병원장이 됐을 때랑 똑같았다.
* * *
페르소나(Persona).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
인간은 누구나 그렇듯 사회적 가면을 쓴다.
싫은 티를 내지 않고 웃는다.
한 대 때리고 싶은데 웃으며 악수한다.
침을 뱉고 싶어도 참고.
밥 한번 먹자고 웃으며 말한다.
허나, 그 가면도 벗을 때가 있었다.
그건 바로 혼자 있을 때다.
“이건 아니지. 암! 아니고말고!”
그런 면에서 오지호는 솔직했다.
평소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던 가면을 훌훌 던진 그는 연신 분통을 터트렸다.
“에잇!! 김석준이 이놈 자식을!!”
다시 전화를 해 봤지만 받질 않는다.
연락을 씹는 게 분명했다.
한데.
받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밟아 줘야 하는데.
실컷 비웃어 줘야 하는데.
그저 분통만 터트릴 뿐이다.
“에잇, 쯧쯧.”
사실 참을 수 없는 행태였다.
그가 뭐라 말했던가.
– 백돌이, 그러니까 자네가 백돌이인 게야.
– 구력? 구력이 뭐가 중요하나? 실력이 우선이지.
– 뽕샷도 치고, 쪼루도 내고. 크하하하.
전화로 했던 말도 있었지만, 라운딩을 돌며 들었던 비난도 있었다.
그래서 말해 주고 싶었다.
구력이 중요하지 않은 에이스가 등장했다고.
자, 보라고.
우리 이진혁 선생은 비록 구력은 미천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프로 골퍼 못지않다고.
골프에 빗대 실컷 비웃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부러 전화를 피하는 게 틀림없었다.
오지호가 또 한 번 분통을 터트렸다.
“왜 전화를 안 받는 게야!!”
그러다 문득 또 다른 라이벌이 생각났다.
그건 부원장 부재일.
요즘 들어 자신한테 실컷 얻어터지고 있었지만, 그 또한 얄밉긴 마찬가지였다.
– 외과 계열의 적자가 얼만 줄 아십니까!?
– 병원은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 허허, 수익도 생각하셔야지요!!
– 우리 내과 계열만큼 수익을 내는 곳이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사사건건 시비만 터는 놈.
‘놈’이라고 불러도 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만큼 묵은 원한이 컸다.
어디 외과 계열이 적자를 내고 싶어 내는가.
이게 다 낮은 수가 탓이거늘.
모든 걸 외과 계열 탓으로 돌리는 놈이었다.
“그래, 그거야!!”
순간 오지호의 눈이 번뜩였다.
김석준이 안 받는다면 부재일에게 전화해 자랑질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전화.
그래, 전화는 안 된다.
김석준처럼 피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천년만년 방문할 일이 없을 거 같던 부원장실로 찾아가, 실컷 비웃어 주면 그만이었다.
잠시 후.
오지호가 품위 있는 발걸음을 보였다.
어느새 내려놓았던 가면을 뒤집어쓴 채다.
“안녕하십니까. 병원장님.”
“허허, 그래요. 그래. 고생 많아요.”
자신에게 인사하는 수많은 이들.
엘리베이터에서도, 복도에서도.
다들 고개를 숙인다.
당황한 얼굴의 간호사.
어쩔 줄 몰라 하는 젊은 의사.
병원장인 줄 모르고 지나치는 이들까지.
각양각색의 반응이 함께한다.
오지호는 그런 그들이 그저 흐뭇했다.
“허허, 고생들 많아요. 다들 조금만 힘을 냅시다.”
저마다 환자를 위해 열심히 뛰는 거다.
그래.
이들이 모여 거대한 병원을 이루고.
저들이 모여 환자를 살린다.
“허허.”
또다시 나오는 헛웃음.
그건 병원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느끼는 흐뭇함이었다.
한 사람의 환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지들을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또다시 누군가 인사를 건네자 오지호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아아, 고생 많아요.”
으레 하는 말.
허나, 진심이 담겨 있다.
병원장으로서 기품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냐.
어디서 일하냐.
힘든 건 없냐.
뭐, 이런 말보다 그저 고생한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품위를 유지하며 도착한 부원장실.
늦은 밤인데도 퇴근하지 않은 비서가 뭐라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손을 들어 막았다.
“아아, 일 봐요. 일 봐.”
짧은 심호흡.
오지호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당긴다.
하지만.
덜컹.
“으음?”
절로 나오는 침음성.
다시 한번 힘을 준다.
덜컹.
문이 열리지 않는다.
굳게 닫혀 있다.
“아, 아니…….”
당황한 오지호가 침음성을 내뱉었다.
항상 퇴근이 늦기로 유명한 부원장.
그런 그가 부재중이었다.
‘왜 비서만 남겨 두고 퇴근을…….’
의아함도 잠시, 등 뒤에서 어색한 목소리가 울렸다.
“저, 부원장님은 퇴근하셨습니다.”
“크음. 큼. 그렇습니까?”
“예, 병원장님.”
어색하게 웃는 비서.
오지호도 어색하게 웃었다.
속이 비틀리고, 열불이 터지고, 화가 났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그저 헛기침과 헛웃음으로 대답할 뿐이다.
“허허. 크음. 큼.”
“병원장님?”
“아아, 혹시 방송 때문에 일찍 퇴청했답니까?”
“아……. 그게…….”
“?”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으시다고……. 방송은 볼 시간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오지호의 볼살이 부들거렸다.
볼 시간도 없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의 반응을 살핀 비서가 냉큼 말했다.
“전화 연결해 드릴까요?”
“아, 됐어요. 됐어. 일 봐요. 일 봐.”
손사래를 친 오지호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리고 곧.
비서의 귀에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끄으으윽.”
자랑할 곳이 없어 울분에 찬 오지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