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16화(116/388)
116화. 예상치도 못한 일 (6)
다량의 식은땀을 흘리는 건 생명의 위험을 느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
곧, 바람처럼 달려온 진혁이 손을 놀렸다.
촤르르륵.
커튼을 친 뒤 환자의 포지션을 바꿨다.
앙와위(Supine).
비스듬히 누워 있던 환자를 반듯하게 눕혔다.
“시계, 팔찌, 귀걸이, 뭐 다 없으시죠?”
“없어요.”
“탈의 부탁드려요.”
환자가 상의를 탈의하는 사이, 진혁이 알코올 솜을 꺼내 들었다.
먼저 전극을 닦아 준다.
그러고는 빠르게 환자의 피부를 소독했다.
사실, 소독보다는 피부 위 분비물 제거.
그러니까 전기 전도의 증가 목적이 컸다.
일부 병원은 아티팩트(Aritifact, 전기적 잡음) 제거를 위해 물 묻은 솜을 사용하기도 했으니, 말 다 했다.
“검사 중에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네네.”
진혁이 환자의 몸에 EKG 전극을 붙이기 시작했다.
순서는,
빨, 노, 녹, 파, 주, 보.
전흉부유도(Precordial leads)의 그 순서다.
심장을 보다 입체적으로 관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곧, 기계가 기록을 시작한다.
10초, 20초, 30초, 50초.
짧은 시간도 길게 느껴진다.
빨리 결과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속절없이 기다려야 했다.
곧, 진혁의 얼굴이 굳었다.
화면에 띄워진 문구 때문이다.
[ABNORMAL]비정상이라는 말.
마음이 급한데 아티팩트(전기적 잡음)가 발목을 붙잡는다.
심장에 이상이 있을 경우 타과를 호출해야 하는데, 서버에 업로드하면 당장 다시 찍으라고 할 게 분명했다.
‘환자가 움직인 것도 아닌데. 왜?’
진혁이 다시 환자를 훑었다.
미동도 없이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호흡이나 움직임에 의한 건 아니었다.
혹시 몰라 결과지를 훑었다.
흔히 말하는 Wandering baseline artifact가 보이지 않는다.
환자의 움직임에 따라 기저선이 위아래로 흔들린 흔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파형은 A-Fib(심방세동, 심방 근육이 국부적으로 불규칙하고 잦은 수축 운동을 하는 병적인 상태)을 닮아 있었다.
다른 인턴이었다면 EKG 리딩을 다른 이에게 요청하거나, 오판했을 터.
하지만 민감도를 높인 기계가 ‘비정상’이라는 문구를 띄었으니,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
곧, 진혁이 눈이 이채를 띄었다.
‘Muscle Tremor(근육 떨림)가 있어?’
미세한 근육 떨림으로 인한 아티팩터는 A-Fib과 닮아 있는 법.
진혁이 곧장 환자에게 말을 걸었다.
“환자분, 많이 긴장되시죠?”
“네, 제가 오죽하면 여길 왔겠습니까.”
그가 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하지 말라는 당부는 소용없어 보였다.
허나, 이대로 둔다면 계속 미세한 근육 경련이 검사를 방해할 터.
근육 이완제를 투약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진혁의 선택은 달랐다.
빠르게 EKG 전극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좀 더 아래에 붙였다.
순서는 같았다.
빨, 노, 녹, 파, 주, 보.
전극의 색상은 그대로.
위치만 다를 뿐이다.
V1과 V2 전극은 네 번째 늑간에.
V4, V5, V6 전극은 겨드랑이 선을 기준점 삼아 붙였다.
원래 붙여야 하는 곳보다 그 위치가 낮았지만, 아티팩터(전기적 잡음)를 줄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해부학적 변이가 있는 환자한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위치가 달라진 만큼 EKG를 리딩(판독) 할 때 주의해야 했고.
왜 이렇게 했는지 또한 설명해야 했다.
한마디로 노티에 애먹을 수 있는 거다.
하지만 모니터에 다른 문구가 뜨면 그만.
곧, 기다리던 문구가 보였다.
[NORMAL]EKG 결과지를 출력한 진혁이 곧장 리딩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얼굴을 굳혔다.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 * *
심전도 결과지를 본 순간, 다른 가능성이 소거된다.
아니, 다른 질환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주 병증을 찾아냈다고 해야 맞았다.
‘심장에 이상이 있다.’
V1과 V2에서 업 슬로핑(Up-sloping)된 ST분절이 보였다.
정상 범주를 벗어나 경사진 모습이다.
그뿐이랴.
V3에선 이상성 T파가 보인다.
Q파는 또 어떠한가.
계곡이 더 깊게 파이고.
한결 출렁인다.
V4-5에서는 T파의 역위.
V6에서는 다시 평평해진다.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비치성 치통이 유발될 정도는 아닌데.’
뭔가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다는 말은 틀렸다.
비특이적 증상을 보일 수도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먼 현대 의학.
질병의 기전과 메커니즘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 추가 검사를 해 본다.’
“X-ray 촬영 좀 하겠습니다.”
잠시 후 시작된 흉부 단순 촬영.
진혁은 PACS에 띄워진 영상을 확인했다.
딸깍.
딸깍.
X-ray 검사 결과 별다른 게 없었다.
경한 심비대 소견.
그게 전부였다.
‘이 정도면……. 음. 폐문부에 음영이 증가돼 있긴 한데…….’
되레 심장이 아니라 폐 쪽에 눈길이 갔다.
물론 이 또한 특이 소견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식은땀을 흘리는 환자.
증상이 가라앉았다면 모를까.
계속 발현 중인 저놈의 증상이 문제였다.
“피 검사 좀 하겠습니다.”
“또요?”
“네, 잠시만요.”
베드로 돌아온 뒤 곧바로 채혈을 시작했다.
카디액 엔자임(Cardiac enzyme, 심장 효소 수치 검사)을 하기 위함이다.
심장 근육 속 효소나 단백을 측정해 병세의 경중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순식간에 끝난 채혈.
진혁이 검사실을 향해 뛰었다.
“응급으로 부탁드려요!”
“응급이요?”
“네, 급해요!”
대답을 들을 틈도 없다.
진혁이 다시 뛰어와 환자 옆에 섰다.
숨이 살짝 거칠어졌지만, 안색을 가다듬는다.
환자가 불안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1시간 뒤에 심전도를 다시 찍어 볼 거고요.”
“아, 네네.”
환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허나, 이대로 넘어갈 순 없는 상황.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갔다.
심장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
움찔 놀란 그가 몇 마디 물었지만, 확정적으로 대답할 순 없었다.
그때였다.
김지연이 또다시 부른다.
“이 쌤!! 케모포트 소독 좀 해 주세요!”
“환자분, 잠시만요.”
양해를 구하고 움직이려던 찰나.
환자의 불안한 눈빛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건…….
어쩌면, 자신을 믿고 기다렸던 게 아닐까.
나름 유명세를 탄 자신을 알아보고 말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움직여야 했다.
끝없이 밀려드는 환자.
그리고 업무, 한 명한테 매달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아주 없진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
빠르게 다른 환자를 처치하고 자체적으로 킵을 서면 될 일이었다.
13번 베드로 움직이기 무섭게, 김지연이 말했다.
“치통 환자는 어때요?”
“아직 결과가 안 나왔어요. 이리게이션(세척)만 하면 되죠?”
“네, 준비는 다 해 놨어요.”
트레이에 올려진 물품들.
케모포트(Chemoport, 약물 주입 및 수혈, 채혈을 위해 삽입된 관) 세척을 위한 기본 도구들이었다.
진혁이 환자 차트를 살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확인 없이 그냥 술기만 하고 갈 순 없었다.
통원 항암 치료 중인 환자.
매번 팔에 바늘을 찌르는 불편함을 덜어 주기 위해 피부 밑에 케모포트를 이식했다.
혈전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 월 1회 세척을 해야 했는데, 외래 일정을 잡지 못해 응급실을 방문한 모양.
“환자분, 금방 세척해 드리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히마리 없는 환자의 대답.
암이라는 게 그만큼 무서운 질병이었다.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게 삶의 의지를 매 순간 갉아먹고 희망마저 삼켜 버리니까.
진혁이 빠르게 손을 놀렸다.
먼저 멸균 장갑을 착용하고.
드랩(Drap, 소독)을 했다.
크로르헥시딘으로 피부를 소독하는 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음이 바쁘다지만 꼼꼼한 건 어디 가지 않는다.
감염 위험이 적다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곧장 후버 니들을 챙겨 들었다.
케모포트 전용 니들로 ㄱ자 모양의 바늘이다.
“노멀 살라인이요.”
“네.”
김지연이 생리식염수가 들은 시린지(주사기)를 건넸다.
이를 받아 든 진혁이 후버니들과 연결된 라인에 생리식염수를 도포했다.
“바로 이리게이션 할게요. 환자분 조금 따갑습니다.”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이미 삽입된 케모포트의 윗부분을 쥔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이용해 후버 니들을 직각으로 삽입했다.
삽입은 쉬웠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천천히 밀어 넣는다.
너무 세게 밀어 넣으면 원통형 모양의 케모포트 바닥에 니들 끝이 닿을 수도 있었다.
어느 순간.
감촉이 느껴진다.
설명할 수 없는 느낌.
진혁이 곧바로 손을 뗐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할까요? 어차피 리거지(Regurge)만 하면 되는데요.”
니들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작업.
생리식염수가 주입된 시린지의 플런저를 앞뒤로 당기며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항암 병동에서는 케모포트 세척을 간호사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냥 그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확정적 진단을 받은 암 환자.
그리고 심장 질환이 의심되는 또 다른 환자.
이 둘을 놓고 경중을 따지고 싶진 않았다.
왠지 회귀하기 직전의 자신을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아뇨, 제가 마무리할게요.”
“넵.”
진혁이 빠르게 손을 놀렸다.
생리식염수를 주입했다.
그러면서 저항이 느껴지거나 케모포트 주변의 피부가 붓는지 확인했다.
혈액이 역류되는지 체크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음? 리거지가 안 되는 거 같은데요.”
“잠시만요.”
진혁이 다시 시린지와 연결된 관을 확인했다.
뭔가 흐름이 시원치 않았다.
이럴 때 해야 하는 건 니들의 재삽입.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환자분 기침 좀 해 보시겠어요?”
“기침이요?”
“네.”
“콜록. 콜록.”
“자세도 잠깐 틀어 보실래요.”
“네.”
환자가 매가리 없이 움직였다.
그 모습에 다시 리거지를 시작했다.
그러자 확연히 다른 흐름이 보였다.
일시적으로 막혀 있던 게 뚫린 거다.
그렇게 잔기술을 부린 진혁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수액 라인을 연결하고, 거즈 드레싱을 했다.
그러고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환자분.”
“네.”
“꼭 이겨 내실 겁니다.”
“!”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사실 그건 조심스러운 한마디였다.
이미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고 왜 하필 내가 ‘그 대상’이냐고 크게 원망했을 암 환자.
하지만 그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건네고 싶었다.
그 마음이 전달된 걸까.
환자가 희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진혁이 대답 없이 그의 손을 잡아 줬다.
* * *
운명이라는 게 존재할까.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정해진 대로 사는 게 인간의 삶일까.
아니, 아니었다.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투쟁하고, 싸우고, 이겨 내고, 주도적으로 삶을 이어 가는 존재였다.
만약 정해진 대로 사는 게 일생이라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그런 면에서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닥쳐온 질병과 맞서 싸우길 원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그들을 돕는 조력자.
의사라는 게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