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18화(118/388)
118화. 예상치도 못한 일 (8)
급성후두개염.
주로 소아 환자에게 발생하는 질환.
드물게 성인에게도 발생한다.
순간 진혁의 시선이 휙 하니 돌아갔다.
그러자 기관 절개를 위한 물품들이 보인다.
혹시 몰라 준비했다는 말.
허나, 기도가 완전 폐색되진 않아 삽관을 시도했을 터.
목에 흉터가 남을 수 있는 기관 절개보단 삽관을 다시 시도하는 게 맞았다.
‘일단 시야 확보부터 제대로 한다.’
“다시 앰부 배깅!”
김현수가 바로 손을 놀렸다.
그가 다시 앰부를 쥐어짜는 사이 진혁이 소리쳤다.
“베개 세 개 더 받쳐요!”
“네!”
진혁은 스니핑 포지션(Sniffing position, 베개를 받쳐 머리를 뒤로 젖히는 자세)부터 교정하려고 했다.
환자의 입과 인두, 기관을 일직선상에 놓아 삽관을 용이하게 만드는 자세였지만, 베개를 더 높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램프드 포지션(Ramped position).
주로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기관삽관을 할 때 썼지만, 상관없었다.
김지연이 베개를 밀어 넣기 무섭게, 환자의 흉골과 외이도가 수평을 이룬다.
이젠 삽관할 차례.
진혁이 김현수에게 눈짓하자 그가 바로 자리를 비켰다.
그러자 진혁이 바로 손을 놀렸다.
환자의 아랫입술을 오른손 엄지로 젖힌다.
그 상태에서 라닝고스코프(후두경)을 밀어 넣었다.
숨쉬기 힘들어 혀에 잔뜩 힘을 준 환자.
라닝고스코프의 날로 혀를 왼쪽으로 밀며 전진했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라닝고스코프를 들어 올렸다.
손목의 스냅이 아닌 팔을 이용해 45도 각도로 꺾은 거다.
이젠 확연히 보이는 성문.
시야는 고정한 채 손을 내밀었다.
“이튜브(E-tube) 주세요!”
“네!”
곧, 이튜브를 건네받은 진혁이 손을 놀렸다.
성문을 향해 바로 튜브를 삽입한다.
삽입은 성공.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김현수도 삽입까진 성공했었고, 청진을 통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했지만, 배가 부풀어 올라 계속 실패했던 거다.
“스타일렛 제거해 주세요.”
“네.”
김지연도 바쁘게 손을 놀렸다.
빠르게 이튜브와 앰부백을 연결한다.
그러고는 곧장 앰부 배깅을 했다.
그사이 진혁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어느새 후두경을 내려놓고 청진을 시도했다.
호흡음이 들리지 않으면 다시 작업해야 했다.
식도에 잘못 삽입됐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호흡음이 들린다.
푸후후. 푸후후.
제대로 삽입된 거다.
진혁이 곧바로 청진기를 내려놓고는 마무리 작업을 했다.
구강 기도 유지기를 반창고로 고정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김현수가 떨리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 *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의료진이 부족한 날에 특별한 사고는 터지지 않았지만, 환자가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손이 부족한데 환자가 넘쳐나는 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들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장길만이 김지연에게 물었다.
“혹시 김 선생 봤어요?”
“아뇨, 못 봤는데요.”
“아, 어디 간 거지.”
“전화해 볼까요?”
“아뇨, 화장실이라도 갔나 보죠. 뭐.”
처음에 장길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김현수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10분, 20분, 30분.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
그때야 장길만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한참 방송 중이거늘, 도주자가 발생했다.
* * *
그 시각.
김현수는 정처 없이 원내를 걷고 있었다.
그냥 발걸음이 닿는 대로 무작정 걷는 거다.
얼마나 걸었을까.
고개를 들어 보니 정원이 보인다.
‘이진혁표 마지막 잎새’라 불리는 정원.
그곳은 여전히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환자복을 입은 채 산책하는 중년 여인.
수액 걸이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을 떼는 흰머리가 그득한 할아버지.
삐삐를 보며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젊은 청년까지.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정원을 메우고 있었다.
‘다들 행복해 보이네…….’
분명 아프고, 고통스럽고, 지루하고, 힘들 게 분명한 병원 생활이거늘.
어째서 표정이 밝은 걸까.
김현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곧, 그의 눈에 노부부가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셀 대로 세어 하얗게 변한 이들.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고 있었다.
“여보, 이것 좀 먹어 봐요.”
“허어. 참. 무슨 김밥을 다 싸 왔어~!”
“당신이 좋아하는 소고기 잔뜩 넣었어요.”
“맛있구려.”
“그럼 누가 한 건데요.”
삐쩍 마른 할아버지는 연신 맛있다며 웃었고.
병간호에 지쳐 있을 할머니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김현수는 되레 서글펐다.
어째서…….
왜…….
난 힘들어 죽겠는데.
다들 왜…….
알 수 없는 반발감이 가슴을 적시며 또다시 우울감이 치솟았고, 이는 자책으로 승화됐다.
난 왜 이렇게 못난 걸까.
이진혁은 할 수 있는데.
난 왜 하지 못할까.
의사로서 자격이나 있는 놈일까.
만약 기관삽관에 끝내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아니, 아니었다.
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환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그 일’을 겪으며 충분히 알지 않았던가.
울적한 마음이 더해지자, 김현수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딸깍.
“어, 엄마.”
[어머! 근무 중인 거 아니니? 무슨 일 있니?]“아, 아니, 그냥.”
[그냥? 엄마 보고 싶어 전화했구나? 많이 바쁘지?]“그럼. 여전히 정신없지.”
[아들! 그래도 잘 버텨야 해! 1년만 버티면 평생 편해지는 거야! 엄마 말 알지?]“으응. 그래야지.”
[그래! 성형외과 파이팅!!]“응, 엄마. 또 전화할게.”
뚜욱.
김현수가 매가리 없이 전화를 끊었다.
항상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던 엄마의 목소리조차 어떠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현수는 또다시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응급실 A턴은 그른 상황.
다른 과에 간다고 해서 다를까.
아니, 아니었다.
자신은 둔재인 게 틀림없었다.
이진혁은 가능한 일을 자신은 하지 못하니 당연했다.
장혁준이 듣는다면 레지던트들을 제치고, 3관왕을 차지한 이진혁과 비교하는 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테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던가.
눈앞에 뻔히 보이거늘.
어찌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번 마음속 저울에 상대와 나를 올려두고 항상 재는 게 인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실망할 텐데…….’
엄마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게 서글펐다.
때리고, 화내고 비난만 하던 아빠.
인정을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 자신을 보호하고 위로한 건 엄마였다.
그래.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남들은 마마보이라고 놀렸지만, 항상 엄마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했고, 의식적으로 엄마만 찾았다.
물론, 의대에 입학한 뒤 제 심리의 기전을 알았다.
심리학개론.
예과 1학년 때 들어야 하는 교양과목을 들으면서부터였다.
엄마에 대한 강한 애착과 집착.
그리고 엄마의 과도한 기대.
모두 아빠의 행동에서 기인했다.
간단히 말하면, 엄한 아빠 밑에서 자란 부작용인 것이다.
뭐, 심리학적인 분석으로는 그랬고.
실제 자신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또다시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ER 앞이었다.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데.
한번 멈춰 선 발은 떼질 줄 모른다.
접착제를 발라 놓은 것처럼 땅에 착 달라붙어 제 마음을 웅변했다.
그때, 김현수의 눈에 현수막이 들어왔다.
『축! 치프 김상혁! 타이 대회 우승!』
『축! ER의 자랑 이진혁! 3관왕! 경축!』
김상혁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있었지만, 오로지 이진혁의 업적만 보일 뿐이었다.
이태희와 친하다는 이유로 싫어했던 이진혁.
그가 벽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 * *
한편, 진혁은 한참 뛰어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김현수의 몫까지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많이 바빠져서?
아니, 아니었다.
환자를 내팽개치고 내뺀 김현수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었다.
아프고 힘들고, 겁나서 응급실을 찾은 환자.
분명 환자 중엔 경증에 준하는.
그러니까 굳이 응급실에 오지 않아도 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들이 믿고 의지할 건 의료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허나, 김현수는 제 책임을 외면하고 도주했다.
그것도 한참 근무 중에.
‘이놈을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진혁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그어 둔 선을 한참 넘은 김현수.
젊은 날의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과했기에, 진즉에 포기했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제멋대로 살게 놔두려고 했다.
그런데.
제 마음속 꼰대 기질이 꿈틀거렸다.
그 옛날 서신대 흉부외과장 시절이었다면 엄히 혼냈으리라.
눈물을 쏙 빼 놓을 정도로 말이다.
허나, 그럴 수도 없는 일.
답답한 마음에 인상만 더 찌푸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상황을 전해 들은 장혁준이 달려왔다.
“이 선생, 많이 바빠요?”
지극히 카메라를 의식한 말투.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괜찮아요.”
“김 선생 없어졌다면서요. 얘기 들었어요.”
“찾으러 갈 거예요?”
“찾으러 가야죠. 허락도 받았구요.”
왠지 같이 가자는 뉘앙스.
진혁이 말했다.
“나까지 자리 비우긴 좀 그래요. 안 그래도 손이 좀…….”
“아아. 알죠.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뭔데요?”
진혁의 물음에 장혁준이 목소리를 낮췄다.
VJ가 들을까 의식하는 눈치다.
“현수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요. 알고 보면 불쌍한 놈이에요.”
“안 미워해요.”
“지금 그 표정은 뭔데요?”
“…….”
“에이, 딱 보니까 아닌데. 모차르트 앞에 선 살리에리의 고통을 좀 이해해 주라고요.”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장혁준이 말을 이어 갔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평범한 사람은 원래 천재 앞에서 고통받기 마련이에요.”
“…….”
“현수가 못 하던 인튜베이션 대신해 줬다면서요? 살리에리의 절망을 좀 이해해 주라고요.”
자신을 모차르트.
김현수를 살리에리로 비유하는 장혁준.
그 함의를 깨달은 진혁의 표정이 변했다.
‘설마 그래서 그렇다고?’
그러고 보니 오태상과의 ‘그 일’ 이후 방황하고 있었다지만, 딱히 김현수가 도주할 이유는 없었다.
꾸역꾸역 출근했고.
근무도 계속하지 않았던가.
‘나 때문에 좌절한 건가? 아니, 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착각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 직감이 말해 주고 있어요.”
“근데, 장 선생은 안 그렇잖아요.”
“아아, 그야…….”
장혁준이 다시 VJ의 눈치를 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고선 속삭였다.
“내가 1호 동지니까요. 내 밑에 있는 2호 동지가 잘났다고 질투할 것도 없죠. 흐흐.”
“아…….”
잠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진혁이 몹쓸 말을 들었다는 듯 탄식했다.
그래.
그래야 장혁준다웠다.
진지함과는 동떨어진 사내인 거다.
잠시 혀를 차는 사이.
장혁준이 금세 사라졌다.
멱살을 잡든,
질질 끌고 오든.
어떻게 해서든 김현수를 데려올 생각인 거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혁준을 보던 진혁도 잠시 고민하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현수에게 조언할 생각은 없었지만, 해 줄 수 있는 건 있었다.
질투와 좌절의 화신이 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아, 물론 김현수는 한번 선을 넘었던 만큼, 최소한의 일만 해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