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20화(120/388)
120화. 예상치도 못한 일 (10)
일이 벌어졌으니 보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냥 들어가선 안 됐다.
여전히 걱정 어린 눈빛이 가득한 김상혁을 보며 진혁이 말했다.
“치프, 저 아직 면허 못 받았습니다.”
“?”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단 말입니다.”
순간 김상혁의 표정이 달라졌다.
진혁의 말에 담긴 함의를 이해한 거다.
“아직도 못 받았어?”
“네, 원래 느린 거 아시잖아요.”
“그야, 그렇지. 하하. 그럼 간단하잖아.”
김상혁이 다시 한번 좋아했다.
의료법 시행 규칙.
– 신규 면허 발급은 2개월 이내에 한다.
규정에 따라 2월 말에 면허증을 신청하지만, 사실상 4월 말에 발급받는 이도 많았다.
행정 처리 속도 하면 한국이지만, 보건복지부는 유독 느렸다.
이는즉슨.
“다른 인턴들도 사실상 무면허 진료 중이죠. 이건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공론화해야 할 사항이구요.”
‘우리’의 문제로 치환될 수 있었다.
면허증 없이 의료 행위를 하는 모든 인턴이 그 대상인 것이다.
“좋아, 이 부분을 어필하면 되겠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 말만 해.”
진혁이 다부진 어조로 말했다.
“저희 기수에서 아직 면허증을 받지 못한 비율을 조사해야 할 거 같습니다.”
“…….”
“3월부터 순차적으로 발급됐을 테니, 아마 절반은 받았을 겁니다.”
“비율을 조사하자?”
“네, 악마는 디테일에 있으니까요. 반박도 못 하게 밟아 주려면 디테일을 보완해야 합니다.”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김상혁이 말꼬리를 흐리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신대에는 기수별로 모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천리안에요.”
“그야, 그렇지.”
“거기에 한번 올려 보는 게 어떨까요.”
“도움을 청하자?”
“네, ‘우리’의 문제로 치환해서 도움을 청하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겁니다. 원래 의사들이…….”
“……?”
“외부의 공격에 엄청 민감하니까요.”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의사의 권익이 침해될 만한 일이 발생하면, 똘똘 뭉치는 게 현실.
이를 이용하자는 말이었다.
“오케이, 오케이야. 일단 내가 바로 글 쓸게.”
“저는 장 선생한테 말해 보겠습니다. 37기방에도 글을 남겨 달라고 하려고요.”
“뭐, 일손은 많으면 좋지. 차라리 다시 오라고 하자. 아직 멀리 안 갔을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혁과 김상혁이 움직였다.
김상혁은 천리안에 접속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진혁은 곧바로 장혁준한테 전화했다.
딸깍.
“장 선생. 어디예요?”
[어디긴 어디예요. 지금 택시 타고 가는 길이죠. 아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빌 테니까, 좀 기다려요.]장혁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급해 보였다.
희게 웃은 진혁이 말했다.
“아버님께 부탁드리는 건 전화로 하면 될 거 같고. 일단 다시 왔으면 해요. 그게 그러니까…….”
한참의 설명 끝에 감탄사가 들린다.
[오오!! 2호 동지!! 역시!!! 바로 갈게요! 기사님!! 차 좀 돌려 주세요!!]뚜욱.
제대로 마무리도 짓지 못하고 끊긴 전화.
뭐, 상관없었다.
진혁이 이번엔 최규재 팀장한테 전화했다.
딸깍.
“예, 팀장님. 혹시 37기 인턴 명단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그게 그러니까……. 네네. 감사합니다.”
뚜욱.
면허증을 받은 비율을 구하기 위해선 명단이 필요했고, 최규재는 흔쾌히 협조해 주기로 했다.
홍보팀엔 없겠지만, 운영과를 통해 구하면 될 테니까.
진혁이 이번엔 이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깍.
[어머, 막내 선생님! 웬일이에요.]뭐라 말도 꺼내기 전이건만 이현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편집하느라 아직 못 본 건가?’
“그게…….”
진혁의 한참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가 핏대를 드높였다.
[와, 이놈들이 진짜!! 막내 선생님! 딱 기다려요! 내가 본때를 보여 줄게요!]뚜욱.
반박 포인트를 짚어 줬기에 곧 아는 기자를 통해 흘리기를 할 터.
병원장의 재가 없이는 보도자료를 뿌릴 수 없는 홍보팀과는 그 결이 달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저곳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이, 부리나케 달려온 장혁준이 문을 열었다.
덜컹.
인사를 묵례로 대신한 그는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신대 37기방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면허증 못 받은 사람!! 지금 X 된 거 같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 너 지금 무면허 진료 중이다.
└ ??
└ 이진혁이 2월에도 면허증 없었고, 지금도 없어. 2월에 했던 일이 문제가 될 거면 지금 하는 일도 문제가 되는 거라고!
└ 그게 그렇게 된다고?
└ 다들 빨리 답글 달아라. 면허증 못 받은 사람!!
딸깍.
딸깍.
장혁준이 이번엔 『영닥터』에 접속했다.
여론을 끌어모으려 한 일이었지만, 올라온 글을 보고 당장 인상을 찌푸렸다.
[이진혁이 나대더니 잘됐다. ㅋㅋㅋ] [나도, 너무 날뛰는 거 보기 싫었음.] [ㅋㅋㅋ 무면허 의료행위라니. 바2.] [그러길래. 인턴이 너무 설친다 했어.]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글.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사람이었고, 그간 진혁이 스포트라이트를 홀로 받은 게 못마땅했던 이들의 반응은 저열했다.
하지만, 장혁준이 비장한 얼굴로 글을 쓴다.
[다 같이 X 될 듯. 98년 인턴 기수 중에 면허증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뭐래?
└ 너 무면허 진료 중이잖아.
└ 나 면허 있는데?
└ 그럼 너 말고 니들. 아직 면허증 못 받은 사람 많을걸? 이걸 두고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하는 거다.
└ 여기서 수능 지문이 왜 나옴?
└ 공부했으면 알 거 아니냐고. 이완용 같은 놈아. 너를 두고 비아(非我)라고 하는 거야. 너 어떻게 의대 들어왔냐 휴먼.
타다다닥.
장혁준이 개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비아냥거리는 이가 있다면 배틀을 떴고.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이가 있다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 모습에 진혁도 천리안에 접속해 『영닥터』에 가입했다.
곧, 그가 장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닉네임은 ‘이진혁’ 실명이었다.
[이번 사태는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장혁준과 달리 정중하게 글을 쓰는 진혁이었다.
이른바 양면 전략이라고 해야 할까.
공정의 육모방망이가 풀스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여론을 바꾸고, 면허증 미발급자를 조사하던 그 시각.
박영진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연신 책상을 두들겼다.
또옥.
또옥.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거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지천명(知天命).
삶의 연륜이 쌓인 만큼 언론의 행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승냥이 같은 놈들.’
지금껏 이진혁을 찬양했던 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을 바꿀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VS로 시작되는 보도만 주구장창 내보내겠지.’
논란을 만들고.
이를 확산한다.
그리고 관심을 환기시킨다.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그리고 그 끝엔.
너덜너덜해진 개인만 남는 거다.
그 행태가 예측됐기에 솔직히 말하면 걱정됐다.
아직은 26살에 불과한 이진혁.
사회 경험이 일천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멘탈이 약하면 스스로 무너질 테고. 결국 부담스러움에 무너지겠지.’
순간, 오지호가 했던 당부가 떠오른다.
두 번째 전화에서 했던 말이다.
– 천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겁니다.
–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해야 천재를 지킬 수 있단 말입니다!
– 그간 우리 병원에도 천재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한데, 다들 어디 갔습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 아아. 박 과장. 나도 알아요. 알아. 하지만 그놈의 정형화된 체계 때문에 재능이 묻힐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이진혁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 있는 전화였다.
혹시나 보수적인 문화에 잠식되지 않을까.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지 않을까.
뭐, 이런 류의 걱정인 거다.
일정 부분은 자신도 동의했다.
그래서 유호진한테 당부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물론, 남몰래 그은 선은 명확했다.
레지던트 1년 차에게도 임상 권한을 주지 않는 기관절개.
만약 이진혁이 이를 행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중지시킬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아직 임상 경험이 일천한 진혁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속의 선을 그어 두고 지켜봤다.
답답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조용히.
하지만, 지금은 나설 때였다.
박영진이 김상혁을 호출했다.
* * *
박영진은 진혁을 배려하고자 했다.
그래서 일부러 김상혁만 불렀다.
하지만 김상혁이 예상치 못한 보고를 해 오자, 놀라 반문했다.
“이 선생 생각인가?”
“예, 판을 엎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판을 엎어?”
“네,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치환해 판을 엎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종지부를 찍는다? 허허.”
박영진이 헛웃음을 켰다.
수많은 논란 속에 허비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방법을 벌써 찾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망설일 게 없었다.
“올해 통계만 뽑아선 안 돼. 30년 치. 30년 치를 가져와!”
“운영과에 문의해 보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우리 병원 말고도 다른 병원도 포함해서야.”
순간 김상혁이 놀란 얼굴을 했다.
질병의 기전을 밝힐 때처럼 증례는 많을수록 좋았다.
어떤 논란이든 다 찍어 누를 수 있는 거다.
1년 치가 아니라 10년 치라면.
아니, 30년 치라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면허증을 늦게 발급한 보건복지부 때문에 무면허 진료로 걸릴 만한 이가 숱하게 많지 않던가.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 선생이 수술실에 들어간 시점이 2월입니다.”
“흐음.”
“아시다시피 면허증은 2월 말부터 발급하는지라……. 저쪽에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 수도 있습니다.”
프레임 전환에 차질이 빚을 수도 있다는 말.
잠시 고심하던 박영진이 말했다.
“통계 자료는 내가 병원장님께 말씀드리지.”
“그럼 저는…….”
“해당 논리도 논파할 근거를 어떻게든 찾아!”
“알겠습니다.”
김상혁이 묵례를 한 뒤 밖으로 나가자 박영진이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병원장인 오지호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 * *
어느새 인턴 휴게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태희마저 전화를 받고 다시 돌아왔고, 김현수도 돌아왔다.
다들 한 몸이 된 것처럼 자료를 찾았다.
딸깍.
딸깍.
이태희는 얏후를 뒤지고.
진혁은 논문을 뒤졌다.
임상 논문뿐 아니라 다양한 논문이 나오는 게 현실.
어쩌면 이에 대한 논문이 있을 수도 있었다.
반면, 장혁준은 달랐다.
그는 혹시 모른다며 천리안을 훑었고 뱀심이 가득한 이들과 싸웠다.
딸깍.
다다다다.
딸깍.
다들 말없이 자료를 찾고 있을 때.
이태희가 말했다.
“의학사 학위 또는 의과대학 졸업예정자로서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주는 면허를 받은 자만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의료법에요.”
“…….”
“근데 PK(의대 실습생)은 또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잖아요. 이 점을 파고들면 어떨까요?”
순간 김상혁의 눈이 빛났다.
“괜찮은 생각인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PK도 불법이잖아.”
“앗. 죄송해요. 지도 교수의 지도·감독을 받은 경우 제한적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시행령에 나와 있네요.”
“흐음.”
김상혁이 나직이 침음성을 토해 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보이는데 논파의 근거가 약했다.
하지만, PK 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장혁준의 생각은 달랐다.
“전 좋은 생각 같은데요.”
“?”
“실습할 때 생각해 보자구요.”
“또 뭔 소릴 하려고?”
“아, 그게 아니라요. 지도 교수의 지도·감독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
“옆에서 장승처럼 서서 지켜볼 때도 많지만, 혼자 실습할 때도 많단 말이죠. 당장 저부터 그랬는데요?”
장혁준의 말은 한참 계속됐다.
안 그래도 바쁜 지도 교수.
밀려드는 외래 환자와 입원 환자.
그리고 수술까지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런 그들이 PK를 신경이나 쓸까.
지도·감독은 제한적이었고.
말뿐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실습 과제 발표 또한 어떠한가.
혼자 환자를 문진하고.
케이스 스터디 후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또한 지도·감독 하는 이가 없었다.
끽해야 레지던트, 혹은 인턴이 잠깐 짬 내서 봐 줄 뿐인 거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진혁도 입을 열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다 불법이란 소리인데……. 사실상 형해화된 법조문이고. 흐음.”
“형해화? 형해화가 뭔데요.”
장혁준의 물음에 진혁이 답했다.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껍데기만 남은 거죠. 뭐, PK생이 차트를 보는 것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차트 복사해서 가져가는 것도 불법이네요. 조문에 따르면 열람권도 없는 거니까.”
장혁준이 신나서 소리쳤다.
“그렇죠. 근데 형해화됐어도 법은 법이고. 결국 위법 행위잖아요!”
“결국, 걸고넘어지려면 이것도 다 걸고넘어져야 형평성에 맞는 거니까요.”
“오오! 역시 2호 동지!!”
장혁준의 말에 김상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2호 동지? 그게 뭔데?”
“치프는 몰라도 되는 겁니다~!!”
“야이씨. 너 인마. 사고 쳐 놓고 벌써 긴장 풀면 어떻게 해!”
“아, 그게…….”
장혁준이 금세 시무룩해했다.
허나, 낙천적인 성격은 그의 장점.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마우스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장혁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력한 지원군의 등장이었다.
장혁준이라는 오렌지족을 낳은 금수저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