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23화(123/388)
123화. 예상치도 못한 일 (13)
한동수는 연신 육모방망이를 휘둘렀다.
허나, 부재일은 흔들리지 않았다.
되레 그 옛날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전의를 다질 뿐이었다.
그래, 그건 레지던트 2년 차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퍼어억.
퍼어억.
흰 가운은 빗물에 더럽혀진 지 오래.
부재일은 선배에게 연신 두들겨 맞았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말처럼.
맞고, 또 맞았다.
하지만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물론 아팠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허나 고통을 호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죄인이었다.
백당을 서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정신이 흐리긴 했지만, 위에서 시키지도 않은 투약을 했다.
그건 자만에서 기인한 일.
2년 차가 되며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약을 슈팅했지만, 환자가 죽을 뻔했다.
퍼어억.
퍼어억.
분노의 발길질이 다시 날아온다.
하지만 피하지 않는다.
이건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
시시포스가 신을 기만한 죄로 산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처럼 자신은 맞고 또 맞아야 마땅했다.
퍼어억.
퍼어억.
못난 자신 대신 사태를 수습한 선배의 분노는 끝도 없이 계속됐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부재일은 알량한 자만감에 함부로 액팅했던 자신이 끔찍하게도 싫어, 차라리 죽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발길질이 멈춘 건 한참 후였다.
– 억울하냐?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하…….
– 죄송합니다.
– 사과는 환자한테 해! 인마!!
– 네.
– 넌 의사야 의사! 조그만 실수에도 환자가 죽을 수 있는 곳이 병원이라고! 근데, 긴장을 풀고 액팅을 해!?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해! 감히!!
그의 일갈에 부재일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그가 재차 강조했다.
– 간단한 처치에도 죽을 수 있는 게 환자라고!!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진짜 환자가 죽을 뻔했다.
부재일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 미안함, 괴로움, 자신에 대한 의심.
모든 게 제 마음을 괴롭혔다.
– 외국도 우리처럼 작은 실수에도 환자가 죽는 건 같아! 근데 우리만 유독 군기가 심해! 왜 그런 거 같아!!
부재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몰라 침묵하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은 말할 자격도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선배의 성화에 간신히 한 대답이 고작 이따위였다.
– 그건 병원이 보수적이라서…….
– 아니, 틀렸어. 이게 다 인력 부족 때문이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라고! 의사들의 평균 수면 시간이 고작 4시간이야! 4시간!!
– 정확히 말하면 인턴은 4시간 7분! 레지던트는 4시간 14분이라고!! 제대로 잠도 못 잔 애들이 1년, 2년, 아니 5년 동안 계속 환자를 돌본다고!!
– 그래서, 그런 거야. 수면 시간도 짧고. 실수할 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군기를 잡고 엄히 다스리는 거라고!
부재일은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하지만 의문은 되레 커졌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그 뜻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선배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 그래서 폭행, 폭언도 안 없어지고. 의사를 더 뽑으면 된다지만, 뽑을 수도 없어!!
– 결국, 시스템을 개선할 수 없는 한 최적화 된 시스템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선배의 말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됐다.
그건 바로 시스템의 사수.
개인은 톱니바퀴처럼 움직이고.
아무리 졸려도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하며.
알아도 자만하지 않고.
끝없이 겸손해야 했다.
3종 철인 경기에 나선 운동 선수처럼 몸 관리도 해야 한다는 말은 덤이었다.
그래야 환자를 살릴 수 있으니까.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부재일이 변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는 시스템의 신봉자가 됐다.
튀는 의사는 필요 없다는 생각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굳어졌고, 정해진 선을 확실히 지켰다.
그것이야말로 의사의 본분.
그리고 그 자신은 승승장구했다.
부교수, 정교수, 부원장, 병원장까지.
선거에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지만, 그 시스템을 지켰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 그랬다.
저마다 주어진 롤에 충실하며 짜여 있는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면 되는 거다.
하지만, 지금.
정형화된 시스템을 망치려는 이물질이 눈앞에 있었다.
그건 바로 이진혁.
언론에 제 행동을 두 번이나 제보하였으며, 유명해지고자 하는 놈.
의사의 본분을 저버린 놈.
당연히 응징해야 마땅했다.
* * *
푸닥거리를 끝낸 한동수.
이젠 부재일 차례였다.
“고작 인턴에 불과한 이진혁 선생한테, 왜 이렇게 가혹하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요.”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그가 과거의 경험을 풀기 시작했다.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시스템을 강조하고.
술기 대회는 술기 대회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필드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과 함께, 다른 의사의 권유가 있더라도 자격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수처를 해서는 안 됐다는 말도 했다.
이는 정해진 시스템에서 벗어난 행동.
앞으로 그 행동이 체계를 흔들 거라며, 결론을 내렸다.
“이진혁 선생은 아직 젊은 만큼 무모합니다. 체계를 흔들 위험인자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허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이진혁 선생이 선을 넘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지호의 말에 부재일이 고개를 저었다.
“복강경 경연에서 어블에 도전했다지요.”
“……?”
“경연에 참여한 이들 중 오직 이진혁 선생만이 도전했습니다.”
“허허, 그야.”
“아아, 병원장님. 그 일만 봐도 알 수 있지요.”
“…….”
“이진혁 선생은 환자만 살릴 수 있다면 위험한 도박 같은 수술도 서슴지 않고 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분원으로 보내는 것으로 징계를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분원으로 보내자는 말.
그대로 매장시키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오지호가 폭발했다.
술기 대회 이후 계속된 고통.
거기에 진혁의 비밀을 한동수까지 알고 있다는 생각.
설사 이진혁이 다른 과를 선택한다면, 더블 보드를 시키면 된다는 생각까지 그의 결심을 뒷받침했다.
쾅!!
오지호가 갑자기 책상을 내리쳤다.
“우리 이진혁 선생은 말입니다.”
“천재입니다. 천재!”
“그것도 그냥 천재가 아니라 동영상을 한 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는 천재라 이 말입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은 한동안 계속됐다.
.
.
.
믿기지 않는 말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곧, 정신을 차린 외과 계열 과장들이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원장님께서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봅니다. 허허.”
“허허, 원래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요즘 기력이 쇠하신 게지요.”
“암요, 암요. 이거 원, 우리가 부족한 탓입니다.”
오지호의 생각과 다른 반응.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물론, 외과장인 최재원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자신도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던 한동수는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의 반응이 되레 오지호를 자극했다.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계속 혈압이 쏠리고 있었다.
“끄으으윽.”
그가 얕게 신음하기 무섭게.
부원장인 부재일이 말했다.
“이진혁 선생을 아끼는 마음이야 알지만, 방금 하신 말씀은 선을 넘으신 것 같습니다만.”
믿지 못하겠다는 말.
오지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도 제 말을 믿지 못하니, 실제로 보여 주면 그만이었다.
두 번째 모의 수술을 진행할 때부터 일부러 촬영하지 않았던가.
오지호가 주변을 오시했다.
“어디 두고 봅시다.”
“내부 징계는 후일로 미뤄야겠습니다,”
“일단 언론부터 잠재우지요. 당장 기자 회견을 할 겁니다. 그때 한번 보시지요. 다들 깜짝 놀랄 겁니다.”
오지호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깜짝 놀랄 거라니.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들은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오지호가 기자 회견 자리에서 모의 수술 장면을 상영할 생각이라는 걸.
폭풍이 거칠게 그 크기를 키워 가고 있었다.
* * *
잠시 후.
진혁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박영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무슨 일이 있었나?’
의문도 잠시.
박영진이 말했다.
“세 시간 후에 바로 기자 회견을 할 거야. 준비하지.”
“예, 과장님.”
“김진철 씨한테 연락해서 일정 어레인지해.”
“예.”
진혁이 바로 대답하자 박영진이 다시 묘한 얼굴을 하며 말을 흐렸다.
“근데 말이야 자네 진짜…….”
“……?”
“아니, 아니야.”
말을 삼키는 박영진.
진혁이 영문을 몰라 했다.
‘뭣 때문에 그러는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아니, 아니야. 일단 당시 수술을 집도한 최지봉 과장님도 모셔 오지.”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이 과장실을 나왔다.
그렇게 오게 된 흡연장.
박영진 앞에선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최지봉 교수님께 연락드릴 마음은 없었다.
췌장암 수술 날짜를 받아 둔 상황.
어찌 감히 연락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병도 아니고 암이었다.
괜한 일로 번거롭게 해 드리기 싫었다.
‘뭐, 연락이 안 된다고 하면 되니까.’
앞에서 안 된다고 말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
먼저 수긍하고, 나중에 어레인지를 못 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진혁은 먼저 김진철에게 전화했다.
아버지와 같이 일하고 있는 그.
당연히 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딸깍.
“법무사님. 저 이진혁입니다.”
[선생님! 안 그래도 연락드렸는데,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괜찮으신 겁니까?]“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면목이 없습니다.]“그보다 혹시 시간 되시면 기자 회견에…….”
뚜욱.
전화를 끊은 진혁이 곧장 문자함을 살폈다.
계속 전화를 꺼 놓은 상황.
혹시 중요한 연락이 있을지도 몰랐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이현아의 문자였다.
[막내 선생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요!!] [지금 정아름이랑 기자들 만나고 있어요!!] [나중에라도 연락 줘요!!]‘거, 참. 막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녀는 여전했다.
진혁이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문자가 대부분.
그런데 그 사이에 놀랄 만한 문자가 있었다.
[지금 서울 올라가는 길이다.]그건, 최지봉이 보낸 문자였다.
* * *
최지봉과 통화를 끝낸 진혁이 쓰게 웃었다.
‘하필 오늘 검진을 받으러 오신다니.’
원주에서 카톨릭 병원을 오는 길이라고 했다.
간담췌외과의 최익준 교수를 만나는 날인 거다.
슬기로움이 가득한 의사라나 뭐라나.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지만, 진혁은 그를 몰랐다.
사실 이건 최지봉 교수답지 않은 뻘소리였다.
허나, 이 또한 자신을 걱정해서 한 말.
하지만.
‘바로 병원으로 가시지, 왜 여길 먼저 오신다고…….’
되레 진혁이 그를 걱정했다.
사실, 그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다.
물론, 최지봉의 입장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긴 했다.
그 자신이 집도했던 수술.
자신에게 OR(수술실)로 들어오라고 했던 것도.
중간에 일이 생겨 블리딩 포인트를 잡으러 갔던 것도 맞았으니, 책임감을 가질 만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좋지 않았던 진혁의 표정이 밝아졌다.
생각을 바꿔 먹은 거다.
‘뭐, 교수님 얼굴도 보고 좋지.’
최지봉의 마음을 오롯이 느끼자는 생각에 진혁이 밝게 웃었다.
자신을 사랑해 주고, 아껴 주고, 이뻐해 주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닳고 닳은 원숙한 어른인 진혁이 봐도 뿌듯하고,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아, 물론.
적도 아직 많았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좋아지는 건 어쩌면…….
목표했던 대로 잘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희게 웃은 진혁이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잠시 후, 인턴 휴게실.
컴퓨터 앞에 앉은 진혁은 당장 타이핑을 시작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키보드를 두들기며 질문지를 작성한다.
이른바 모범답안을 만드는 행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진혁의 움직임이 멈췄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이미 충분히 준비하고 또 준비한 일.
고작 기자들에게 답변하기 위해 모범답안을 만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일을 한 자신.
아무리 생각해도 떳떳했다.
진혁이 만들어 뒀던 답변지를 전부 삭제한 뒤, 의자 두 개를 붙여 발을 뻗었다.
준비는 끝났으니 기자 회견 전까지 잠이나 늘어지게 잘 생각이었다.
* * *
두 시간 후.
진혁이 냉큼 일어나 신관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원주에서 봤을 때보다 한층 더 말라 보이는 최지봉이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
“과장님이라니까!”
“카톨릭 병원부터 가셔야죠. 여긴 왜 오셨어요. 검사 시간은 몇 시예요?”
이미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괜한 말을 해 본다.
그러자 최지봉이 희게 웃으며 타박했다.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어!”
“아이, 그게 아니라요.”
“허어! 이놈 보게. 벌써부터 환자 취급이야!”
최지봉은 여전히 걸걸했다.
깡마른 얼굴과 몸만 아니었다면, 암 환자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못난 제자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고생이 많다.”
“고생은요.”
“그보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잘 마무리될 겁니다.”
진혁이 말을 흐렸다.
그 모습에 최지봉이 혀를 찼다.
“이미 다 듣고 왔다.”
“네?”
“기자 회견을 한다며?”
“그, 그걸 어떻게…….”
“이놈이 아주! 내가 눈을 감고 사는 줄 알아! 얼른 안내나 해!”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앞장서는 최지봉.
그를 말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진혁이 냉큼 그를 앞질렀다.
췌장암에 걸린 은사가 제자를 위해 달려왔으니, 최소한 길 안내는 해야 하지 않던가.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거대한 후폭풍이 밀어닥칠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좋은 일이 아닐까?
조금은 선을 넘어도 천재의 행보라 하여 봐줄 테니까.
또 한 번 세상이 진동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