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25화(125/388)
125화. 예상치도 못한 일 (15)
화면 속 이진혁은 계속해 손을 놀렸다.
그가 간 주변의 혈관과 담관들을 감싸고 있는 조직인 겸상인대를 절리했다.
쉽게 말해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복막 주름을 걷어 내는 거다.
너무도 쉽게 절리하는 모습.
박영진의 눈이 커졌다.
‘앞배벽과 가로막 사이에 뻗어 있어 쉽지 않거늘……. 흐음.’
다시 박영진의 고개가 오지호를 향했다.
어쩌면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사자인 이진혁은 거짓말이 들킬까 봐 죽을 둥 살 둥 손을 놀리고 있었지만.
화면에는 보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착각이었다.
수십 년간 수천 번의 수술을 했던 이진혁.
능숙한 손놀림으로 어설픈 모습을 전부 가리고 있었다.
곧, 화면 속 이진혁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가 양손을 이용해 간을 촉진했다.
모형이기에 병변을 확인하는 척하는 것일 뿐.
실제와는 조금 달랐다.
그러고는 간문맥(Portal vein, 위장관과 비장에서 나온 혈액이 간으로 들어가는 혈관)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소망(Portal vein inlet)을 열고.
Winslow 공을 통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위장과 콜론 중간에 있는 공간이었다.
박영진이 다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응급의학과 과장.
그 자신도 간담췌를 돌지 않아 저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 림프절 비대가 있다고 가정하지.
– 네. 전이 여부 확인하겠습니다.
오지호의 말에 알 수 있었다.
림프절의 상태를 손으로 가늠해 보고.
비대할 경우 절제하기 위해 체크하는 행동이라는 걸.
곧, 화면 속 이진혁이 말했다.
– 스켈프 주세요.
– 여깄습니다.
스켈프를 받아 든 이진혁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스켈프의 날카로운 칼날이 다른 부위를 건드릴 수도 있었지만, 화면 속 이진혁의 손놀림은 망설임이 없었다.
순서가 헷갈렸기에, 확실히 아는 것을 할 때 제 실력을 전심전력으로 뽐내야 한다는 생각의 발로였다.
허나, 박영진이 이를 알 리가 없었다.
– Frozen BX(동결절편 조직검사) 부탁드립니다.
– 네.
이번엔 유진태가 움직였다.
수술 중에 의심스러운 조직을 절제한 뒤 빠르게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동결절편 조직검사를 하는 척하는 거다.
그와 동시에 이진혁도 움직였다.
왼쪽 손가락을 Winslow 공에 다시 삽입한 다음.
엄지손가락으로 간십이지장 인대를 붙잡았다.
간동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한 일.
그때 이진혁이 망설이는 게 보였다.
– 왜? 기억나지 않나?
– 아닙니다.
– 그럼 빨리 움직이지. 담석이 있다고 가정해.
– 흐음.
– 왜 모르겠나?
– 아닙니다. 담낭절제술 시작하겠습니다.
순서가 기억나지 않아 잠깐 망설이던 이진혁.
그가 곧장 수술 도구를 바꿔 들었다.
그러자 오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왜 담낭절제술을 해야 하지?
– 우간절제술은 말 그대로 오른쪽 간을 어블하는 수술. 담낭이 오른쪽 간과 붙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 잘 아는군.
– 담낭을 건드릴 수도 있어서 하는 건데, 안 건드리면 그만 아닌지요?
– 허허, 그게 쉽지 않아서 하는 게야. Biliary stone(담석)이 움직여 담도로 이동하면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 합병증)이 올 수도 있어.
– 알겠습니다.
그 후 수술은 빠르게 진행됐다.
이진혁은 담낭동맥과 담낭관을 결찰하고 절리했다.
다시 간십이지장인대의 장막을 총담관에 평행하게 절개했다.
이어지는 건 우간동맥의 이중 경찰.
그리고 다시 절리.
그 모습을 보며 박영진이 기막히다는 듯 웃었다.
“허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걸까.
다른 이들의 탄식이 들렸다.
“고작 인턴 주제에 저게 말이나 됩니까?”
“아무래도 사실인가 봅니다.”
“에이, 아직 믿을 수 없지요. 그런 류의 천재가 세상천지에 어딨답니까.”
“보고도 못 믿습니까.”
물론, 아직까진 과장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제 눈으로 생생히 보았지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Handheld Retractors(리트렉터)로 벌려 주세요.
이진혁의 지시에 최재원과 유진태가 담관과 우간동맥을 좌측으로 당겼다.
– 미상엽지는 2개가 있다고 가정하지.
– 흐음.
– 왜? 모르겠나?
– 아닙니다.
잠깐 망설이던 진혁이 빠르게 손을 놀렸다.
이미 우측 벽이 노출된 간문맥의 전벽을 먼저 박리하고.
우간문맥의 박리까지 마쳤다.
– 클램프(Clamp)로 결찰 부탁드립니다.
– 어딜 결찰해야 하지?
– 이쪽입니다.
– 허허, 잘 아는군.
문맥혈류에 지장이 없는 지점을 가리킨 이진혁.
외과장인 최재원의 만족스러운 웃음이 들렸고, 이를 지켜보던 박영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진짜인가? 설마…….’
– 허허, 미상엽지가 손상되지 않았어.
– 스테이플러(Stapler) 주십쇼.
– 여기 있네.
– 수처 시작하겠습니다. 비흡수성 봉합사 6-0으로 부탁드립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높기에 존댓말을 쓰는 이진혁.
약간 어색했지만, 그의 손놀림은 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끝난 연속봉합.
오지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 허허, 혈관 자동 문합기를 안 써도 될 정도야.
– 우간문맥은 굵어서 어려웠을 텐데, 꼼꼼하게 아주 잘하는 거 같습니다.
– 허허허.
이진혁의 손놀림에 놀란 건 화면 속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만큼 웅성거림이 커졌다.
“아니, 저저……. 허, 참.”
“크음. 이 정도면 사실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혀를 차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다른 과의 과장들.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는 점만 같았다.
* * *
영상은 빠르게 재생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기자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들은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있는 외상외과장의 얼굴을 촬영했고.
탐욕스러운 눈빛을 띤 혈관외과장의 표정 또한 찍었다.
그리고 그런 과장들의 모습은 기자들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박이다. 대박!!’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와…….’
그들이 곧 이진혁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물론.
‘표정이 왜 저래?’
‘왜 이렇게 안 좋은 건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나.’
이유는 몰랐지만, 이진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허나, 어디 이에 아랑곳할 기자들이던가.
그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곧, 기자 중 누군가 단상을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거기엔 표정이 엇갈리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오지호.
똥 씹은 표정의 부재일이 그 대상이었다.
촬칵.
촬칵.
기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신나서 촬영했다.
어차피 사진은 편집팀에서 고를 터.
일단 찍고 보는 게 자신들의 일이었다.
그때, 유인물을 나눠 주던 웬 의사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2호 동지, 믿고 있었다고요……! 책이 다 팔리면 이게 다 얼마야…….”
이해할 수 없는 소리.
카메라 촬영을 하다 말고,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장혁준이라는 이름표가 새겨진 가운을 입은 의사였다.
“2호 동지가 대체 무슨 소립니까?”
“그런 게 있어요.”
“……?”
“대박. 대박이라고요.”
“뭐가 대박입니까!?”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가 대박이라고요!! 카드도 정지됐는데. 살았다고요!!”
“네? 이진혁 선생은 성형외과를 희망하고 있는 겁니까?”
“아, 몰라요, 몰라.”
젊은 의사는 불친절했지만, 기자는 핵심 단어를 조합해 얼른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진혁, 성형외과를 희망해!] [성형외과를 꿈꾸는 이진혁!] [엄마의 권유로 성형외과의를 꿈꾼다.] [압구정에서 개업 예정인 이진혁!]그렇게 만족스러운 타이틀을 뽑았을 때였다.
다시 뒤편이 수선스럽게 변했다.
“허허, 진짜인가 봅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지요.”
“허허허, 세상천지에……. 허허.”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봅니다.”
내로라하는 과장들이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그건 화면 속 이진혁 때문.
하대정맥의 단단 문합.
흡수성 봉합사를 이용한 수처.
다시 우간정맥의 결찰.
간문부 차단.
간실질의 절리.
절제 면에 대한 후속 처리.
잠깐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보였지만, 이진혁은 진짜 미친 듯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이 망설였다는 걸 숨기기 위한 행위였고.
사람이 아닌 모형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모습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진혁은 천재라고.
그 어떤 세상에도 없는 천재가 틀림없다고.
곧, 과장들이 허탈한 웃음소리로 합주를 하기 시작했다.
“허허허.”
“허허허허.”
“허허.”
누구는 수십 년을 노력해 경지에 달했건만, 고작 26살밖에 안 된 인턴이 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
그렇게 ‘허허허’라는 말이 귀에 딱지가 들리도록 들릴 때 즈음이었다.
화면 속 영상이 꺼졌다.
* * *
오지호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죽겠다. 죽겠어. 끄으응.’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싶어 죽을 거 같았다.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부재일 앞에서 놀려 주고 싶어 죽을 지경이니, 어찌 그러지 않을까.
당장 달려가 말하고 싶었다.
어떠냐고.
내 말이 맞지 않냐고.
그러니까 작작 까불라고.
하지만, 자신은 병원장.
항상 위엄과 근엄한 얼굴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웃어 줬다.
아무 말 없이.
씨이익-.
순간 부재일의 표정이 더 굳는 게 보였지만, 그래서 더 기뻤다.
이런 작은 몸짓 하나에도 부재일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우리 애’가 있어서니까.
곧, 고개를 돌린 오지호가 좌중을 말없이 응시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는 이들이 대부분.
거기에 기자들은 한 달을 굶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그간의 설움이 전부 풀리는 느낌.
이건 일종의 오르가슴이었다.
쾌감, 행복, 그리고 길게 느껴지는 여운까지.
게다가 걱정할 것도 없었다.
가짜도 아니고 진짜 천재거늘.
걱정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순간 오지호가 진혁의 표정을 훔쳤다.
뭔가 어색한 미소를 잔뜩 짓고 있는 그.
스스로 자신은 천재라고 고백했을 때와 똑같은 표정이었기에, 오지호는 빙긋 웃었다.
그래.
얼마나 고맙겠는가.
제 정체를 밝혀 줘서.
한참 유명해질 테고.
스타 의사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게 분명하니 병원도 좋고, 오지호 그 자신도 좋고, 이진혁도 좋은 일을 한 게 틀림없었다.
곧, 마이크를 잡은 오지호가 말했다.
“아아, 어떻습니까. 이래도 제가 허언을 했다고 보십니까.”
“질문 있습니다! 이 사실을 언제 아시게 된 겁니까!”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있는 겁니까!”
“포토그래픽 메모리의 일종인 겁니까!”
“Eidetic Memory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중구난방 쏟아지는 질문.
오지호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구재완을 향해 말했다.
“한정일보의 구재완 기자라고 하셨죠.”
“…….”
“우리 이진혁 선생의 핸드폰 번호를 유출했다지요?”
“그, 그건.”
구재완이 다급히 말을 하려고 했지만, 오지호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아, 다른 기자님들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재단 법무팀을 통해서 법적 대응을 할 겁니다.”
개인 정보 유출로 걸고넘어지겠다는 말.
구재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거기에 더해 오지호가 쐐기를 박았다.
“이래도 실력 없는 인턴이 환자를 죽일 뻔했다고 하실 겁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구재완은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완패.
완패였다.
곧, 오지호의 시선이 다른 기자들을 향했다.
“아직 의심하는 분이 계십니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아, 정확한 기전은 저도 모릅니다.”
“녹화본을 틀어 주셨는데요. 혹시 공개 검증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연습을 하고 찍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원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요.”
연신 허허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오지호.
누군가 그에게 떡밥을 던졌다.
냉큼 받아먹진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라이브 수술은 어떠십니까!”
“아아, 그것도 좋지요.”
오지호의 대답에 장내가 술렁였다.
아직 인턴에 불과한 이진혁.
라이브 수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곧,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라이브 수술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인턴이 집도의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수술받을 환자의 불안감은 어떻게 해소하실 겁니까!”
“전례가 없지 않습니까!”
쏟아지는 질문.
진혁의 실력을 봤을 테지만, 기자들답게 호기심이 왕성했다.
오지호가 싱긋거리며 답했다.
“이진혁 선생은 아직 임상 경험이 부족합니다. 라이브 수술을 하기 전에 충분한 경험을 쌓게 하려고 합니다.”
“그럼 일정은 언제라고 봐야 합니까!”
“최소 1년은 지켜봐야겠지요. 아아, 기간은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습니다. 보통 초집도에 임하는 시기보다 조금 빠를 뿐입니다.”
오지호의 말에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오지호가 설명을 이어 갔다.
초집도 방식을 차용하겠다는 것.
초집도는 교수가 어시를 서고.
레지던트가 집도를 하며.
첫 집도를 축하하는 일종의 의식이라는 것.
첫 집도를 끝낸 이들에게 메스를 선물로 주거나, 기념패를 줄 만큼 뜻깊은 행사라는 점도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건.
“보통 R1, 그러니까 레지던트 1년 차 때 하는 일입니다.”
“그럼 어떤 수술입니까!?”
“그건 우리 이진혁 선생이 어떤 전공을 선택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크음. 큼. GS로 온다면 보통 맹장 수술을 하게 되겠지요.”
“맹장 수술이라면 너무 간단한 거 아닙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오지호가 대답하려던 찰나.
갑자기 방송이 울렸다.
– ER 소속 의료진은 지금 즉시 응급실로 복귀 바랍니다.
– ER 소속 의료진은 지금 즉시 응급실로 복귀 바랍니다.
코드 블루는 아닌 상황.
고작 복귀를 독려하는 방송이었다.
하지만, ER 소속 레지던트들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는 이들 사이에.
졸지에 천재가 돼 버린 이진혁도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선을 세게 넘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