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26화(126/388)
126화. 예상치도 못한 일 (16)
다들 달리고 또 달렸다.
흰 가운이 바람에 휘날려 펄럭였고.
머리카락은 엉망이 됐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거 자리를 비운 상황.
당장 돌아가야 했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복도를 가득 메운 뜀박질 소리.
연이어 울리는 콜폰.
난리통도 이런 난리통도 없었다.
하지만 다들 달릴 뿐이다.
본관과 신관.
별관을 잇는 거대한 복도.
갈림길이 계속 나오고.
미로처럼 어지러웠다.
“왼쪽이야!!”
“넵!”
선두에 있는 진혁이 선배의 말에 따라 몸을 틀었다.
아직 길이 익숙지 않았던 탓.
이놈의 병원은 끝도 없이 컸다.
“이번엔 오른쪽!!”
진혁이 몸을 휙 하니 튼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숨이 차올랐지만 멈출 순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ER과 가장 가까운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하지만.
‘7층? 계단이 빠르다.’
진혁이 금세 몸을 틀었다.
물론 다른 이에게 알리는 걸 잊지 않는다.
“계단으로!!”
덜컹.
비상계단을 열어젖힌 뒤.
정신없이 계단을 올랐다.
때로는 두 개.
때로는 세 개.
긴 보폭으로 진혁이 뛰어올랐다.
물론 넘어질 수 있었다.
허나 망설일 틈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황.
후회를 남기기보다, 잠깐의 고통이 백 배, 천 배는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진짜 천재가 아니라는 것도.
라이브 수술이 예정됐다는 것도.
거짓말이 눈덩이 커졌다는 것도.
전부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일.
그게 할 일이었다.
* * *
그 시각.
ER은 전쟁통이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의료진.
그들을 쫓아 VJ마저 뛰어다녔다.
“과장님은!!”
“지금 오고 계신답니다!”
“빨리 다른 과 콜해!”
“아직 환자가…….”
“야이씨! 빨리 콜해!!”
“알겠습니다!”
김영은이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물론 다른 이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몇몇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TA(Traffic Accident, 교통 사고) 사고입니다! 예상 환자는 40명! 중환 다수!”
“ER입니다! 버스 전복으로 중앙선 침범! 사상자 다수 발생! 급합니다!”
“아, 우리도 환자 상태는 모르니까, 당장 내려오라고!!”
요란스러운 소리.
누군가는 애원했고.
누군가는 싸웠다.
다른 병동도 환자가 넘치는 상황.
의사는 여전히 부족했고.
그들의 처지도 이해됐다.
허나, 어떻게든 불러내야 했다.
그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사이.
진종욱 부교수가 소리쳤다.
“AN(마취과)에도 연락해! 마취과 의사 수배 때려!”
“넵!”
“뭐 해! 어이, 김영은이! 전화 끊었으면 베드 확보해! AED(제세동기) 옮겨!”
연신 채근하는 진종욱.
그도 알고 있었다.
다들 정신없이 움직인다는 걸.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1분 1초.
찰나의 시간.
환자의 생사가 뒤바뀔 수 있는 긴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다다다다.
다다다다다.
ER 입구가 요란스러워졌다.
지하 강당에 내려갔던 이들이 도착한 것이다.
당장 진혁이 소리쳤다.
“허억, 허억, 어떻게 된 겁니까!”
“이 쌤!! 다중 추돌 사고예요. 지금 연락 온 것만 40명이 넘어요!”
카트를 정리 중인 김지연의 대답.
진혁이 얼굴을 굳혔다.
‘다른 병원에도 갔을 텐데…….’
따질 필요도 없는 대형 사고.
진혁이 휙 하니 고개를 돌렸다.
평소보다 부족했던 의료진이 준비에 애먹고 있는 게 보였다.
김상혁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그가 소리쳤다.
“뭐 해! 다들 움직여! 진혁이랑 현수는 트리아지(Triage, 응급 환자 분류) 구역 정리하고! 어떻게든 자리 확보해!”
“장혁준! 넌 AED 옮기는 거 돕고! 이태희 너는 이동형 X-ray 장비 끌고 와!”
“넵!”
대답과 동시에 진혁이 움직였다.
물론 김현수와 함께였다.
하지만, 곧.
진혁은 얼굴을 굳혀야 했다.
접수처 옆에 있는 트리아지(응급 환자 1차 분류) 구역.
익히 아는 장소였지만, 40명이 한꺼번에 몰려든다고 생각하니, 너무 비좁아 보였던 탓이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허나, 어쩌면 당연한 일.
아직 응급 의료 센터라 부르지 않는 ER이 아니던가.
게다가 대형 사고가 아니라면 자주 쓰지 않는 공간이었다.
“일단 박스부터 치웁시다.”
진혁의 말에 김현수가 즉각 반응했다.
그도 염치가 있었고.
반발할 시간도 없었다.
되레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꾹 참고 움직였다.
곧,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의약품 박스를 옮기는 이들.
박스를 치운다고 해도 공간이 협소해 한번에 들이닥칠 이들을 선별하기란 불가능해 보였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손을 바삐 놀리는 진혁의 머릿속은 휙휙 돌아갔다.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계속 생각을 쥐어짜는 거다.
* * *
한편, 그 시각.
뒤늦게 도착한 박영진이 상황을 보고받자마자 소리쳤다.
“비상 연락망 가동해! 전부 불러!”
“온콜(On call, 오프 중에도 응급 대기) 말고도 호출합니까?”
“아직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알겠습니다!”
대번에 뜻을 파악한 김상혁.
스테이션으로 달려간 그가 소리쳤다.
“당장 비상 연락망 가동해!”
“어디까지 돌릴까요!”
“전부!”
“전부요?”
“어, 과장님 지시야!”
“알겠습니다!”
“서둘러!!”
곧장 스테이션 근처에 있던 이들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직접 지시하지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 왜 이러냐고 할 테지만, 원래 병원이 그랬다.
철저한 계급 구조.
이에 따른 순차적인 지시.
그게 병원이었다.
당장 김영은이 삐삐 번호가 적힌 서적을 뒤적인 뒤, 긴급 호출 번호를 남겼다.
그사이 다른 이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핸드폰이 있는 이들에겐 전화를 걸었다.
“최 선생! 어디야! 지금 당장 들어와! 뭐? 종로? 종로를 왜 가!”
“김 선생님! 지금 비상입니다!”
“유 선생님!! 과장님이 비상 걸었습니다!”
그렇게 레지던트 기숙사나 병원 근처에 사는 이들을 호출하는 사이.
ER 입구가 부산스러워졌다.
기자 회견장에 있던 오지호와 타 과 과장들이 뒤늦게 달려온 거다.
박영진이 달려가 상황을 보고하자, 오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반갑지 않은 얼굴마저 나타났다.
“어떻게 된 겁니까!”
“사고가 난 겁니까!”
“무슨 일입니까!”
“라이브 수술은요!!”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질문을 쏟아 내는 기자들.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 그저 하나의 기삿거리에 불과해 보였다.
잠시 기자들의 행태를 지켜보던 오지호가 호령했다.
“뭣들 하나! 당장 쫓아내!!”
곧, 번을 서던 방호원이 달려들었다.
거기에 더해, 원무과 직원들까지 합세해 기자들을 몰아냈다.
“어어! 이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겁니다!!”
“병원장님!!”
“취재를 제한하시면 안 됩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들.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가면을 써서 그런 걸까.
오지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되레 빠르게 추가 지시를 내렸다.
그 대상은 각 과의 과장이었다.
“이럴 게 아닙니다. 가용 인력을 빨리 부릅시다!”
“바로 내려오라고 하겠습니다.”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과장들도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아, 나 이 과장이야. 지금 최소 인력만 남기고 전부 ER로 내려와!!”
“치프, 나야. 뭐? 사람이 없어? 오프 중인 애들 콜하고 빨리 내려와!! 당장!”
빠르게 지시를 내리는 이들.
물론 병동에 공백이 발생하면 안 됐기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였다.
“병원장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진혁 선생이 성형외과를 희망한다는데, 사실입니까!!”
기자들의 아우성이 저 멀리서 들렸다.
구급차 주차 라인 밖으로 밀어냈음에도 떠드는 것이다.
그 모습에 오지호가 미간을 찌푸릴 때.
트리아지 구역을 정리하던 진혁이 김상혁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치프!!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습니다!! 공간이 너무 비좁아서 병목만 생길 거 같습니다!”
되레 시간이 지체될 거라는 말.
김상혁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 봐!! 방법이 없잖아!”
“차라리.”
“차라리 뭐!”
김상혁이 의아한 낯빛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똥오줌은 가릴 줄 아는 이진혁.
그가 왜 이러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이 오지호를 비롯한 과장단을 향했다.
거기에 더해,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어차피 기자들이 마구잡이로 펜대를 휘두를 거 같은데요. 차라리 밖에서 트리아지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자고?”
“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면 그 방법이 최선입니다.”
대화는 김상혁과 하지만, 여전히 과장단을 향해 있는 진혁의 고개.
인턴이라 직접 건의하진 못했지만, 그는 지금 묻고 있었다.
너네는 뭐 하냐고.
밑에 애들만 부리지 말고.
직접 나서라고.
그 뜻이 전달된 걸까.
오지호가 냉큼 소리쳤다.
“자자, 이럴 게 아닙니다. 아신인의 힘을 보여 줍시다! 허허, 뭐 하십니까. 다들 나갑시다. 나가.”
“직접 트리아지를 하자는 말씀이시지요?”
“못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요.”
“좋습니다. 좋아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저놈들한테 보여 줍시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제 잇속들만 챙기는 못된 놈들 아닙니까.”
오지호의 말에 과장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보직을 맡고 있지만, 그들 또한 의사.
한 명도 헛되이 죽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허나, 그 생각을 하는 건 진혁도 마찬가지.
그도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 * *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ER 내부는 여전히 분주했다.
조금씩 다른 과에서도 사람이 내려왔고.
그들 또한 가만있지 않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병원장을 비롯한 과장들이 직접 나선 상황.
피곤하단 이유로, 혹은 다른 과의 일이라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움직일 순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구급차가 도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원 근처에 살던 이들도 하나둘 오고 있었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진혁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치프, 예정 시간보다 너무 늦는 거 같습니다.”
“흐음.”
“소방서에 연락해서 상황을 파악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바로 전화해 봐.”
“네.”
아직 관제 센터가 없던 시기.
진혁이 강동소방서에 전화를 걸었다.
빠르게 전화를 끊은 그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선행 차량이 비켜 주질 않아서 이송이 지연되고 있답니다.”
진혁의 말을 들은 이들이 얼굴을 굳혔다.
둑방길을 따라 나 있는 왕복 1차선 도로를 누군가 막고 있는 모양.
그렇다면 병원으로 올 방법이 없었다.
아니, 있긴 있었다.
올림픽대교 남단에 있는 교차로를 통해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 아니던가.
* * *
그 시각.
둑방길 옆 왕복 1차선 도로는 요란스러웠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빠아아앙-.
빠아아앙-.
사설 구급차를 모는 최기덕은 외부 스피커와 연결된 무전기에 대고 연신 소리쳤다.
“4848번. 비키세요!”
“환자가 타고 있습니다!”
“비키세요! 옆으로 붙으세요! 비키라고!!”
어느새 존댓말이 반말로 변했지만, 앞을 막아선 차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레 일방통행이 금지된 도로로 우회전해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선 또 다른 차가 연신 클랙슨을 울리며 빵빵거렸다.
방법은 하나.
구급차가 반대편 차선으로 잠깐 넘어가거나.
아니면 앞 차량이 우회전을 포기하면 그만이었다.
허나, 둘 다 여의찮았다.
아직은 1998년.
쉽게 길을 비켜 주는 이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사설 구급차라 그런 걸지도 몰랐다.
환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지독하게 비켜 주지 않는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최기덕이 열이 뻗쳐 소리쳤다.
“시발, 좀 비키라고!! 비켜!!”
허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
최기덕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그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뒤차는 시멘트 트럭.
근처에 시멘트 공장이 지랄 맞게 있었다.
차라리 구급차였다면 저러지 않았으리라.
구급차의 행렬을 보고 비키지 않는 이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트럭 뒤에 일반 차량과 구급차가 뒤섞여 있다는 게 문제였고, 당장 이를 해결해야 했다.
“4848 차량!! 환자가 타고 있다고! 비켜!!”
최기덕이 다시 소리쳤다.
허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그가 차 머리를 들이밀었다.
혹시나 접촉 사고라도 난다면, 한 달 치 생활비가 그대로 날아갈 테지만, 마음이 급했다.
그도 그럴 게 직접 보지 않았던가.
사고는 끔찍했다.
2주 전에 있었던 성수동 버스 사고도 이렇게 끔찍했을지 몰랐지만, 뒷바퀴가 터지며 중심을 잃은 버스가 중앙선을 침범했다.
그대로 휘청이며 쓰러진 버스.
그리고 충돌한 차량.
연이어 격돌했고.
그 사고는 컸다.
“X발, 도둑놈들 같으니라고.”
최기덕이 또다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실, 그건 인재였다.
앞바퀴에는 재생 타이어를 쓸 수 없다는 법령이 있었지만, 뒷바퀴에 관한 법령은 없었으니까.
아니, 안 그래도 영세한 버스 회사들은 앞바퀴도 재생 타이어를 쓰고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때, 119와 연결된 무선이 울렸다.
여차하면 우회하라는 말.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최기덕이 입술을 깨물었다.
와이프가 한 소리 하겠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환자가 다칠까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상대차에 구급차를 갖다 붙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엑셀을 밟았다.
상대 차를 조금씩 미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환자가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상대편 운전자가 창문을 내려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
되레 스피커를 켠 다음에 소리쳤다.
“야이, 개XX야!! 너 때문에 환자 죽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제 차가 아까웠던 걸까.
아니면 일방통행임에도 진입하려던 차를 막고 있던 다른 차가 뒤로 후진하기 시작해서일까.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변한다는 여느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던 운전자가 움직였다.
드디어 열린 공간.
최기덕이 풀 악셀을 밟았다.
부우웅웅.
부우웅웅.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차들.
일반 차와 구급차가 뒤섞인 행렬이 빠르게 달렸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그 모습에 운전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안, 안 보였다고. 저 뒤에까지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려면 한참 먼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