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29화(129/388)
129화. 안녕, ER (1)
누군가 아이작 뉴턴에게 물었다.
당신의 천재성은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그러자 그가 답했다.
– 나도 모르겠소.
천재가 왜 천재인지 설명하는 건 그 누구도 못 할 일.
그 어떤 천재한테 물어봐도 백이면 백 똑같이 대답할 게 분명했다.
그런 면에서 진혁의 대답은 명확했다.
레지던트들이 포위했을 땐 당황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느새 생각을 정리한 거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몰라?”
“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습니다.”
“흐음.”
자신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대답.
박영진이 얕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본인도 모르겠다는데.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어지는 건 침묵.
박영진은 한참 의자 손잡이를 두들겼다.
또옥.
또옥.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모습이었다.
술기대회 3관왕.
그리고 모의 수술.
확신에 찬 병원장까지.
머리로는 이진혁이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는 천재라고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도 쉽게 ‘말도 안 되는 천재의 존재’를 받아들인 이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진혁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닳고 닳은 한 과의 과장.
ER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그.
자신을 포위한 채 ‘ER에 천재가 나타났다!’라며 좋아했던 이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게 오히려 당연했다.
아니, 어쩌면.
‘의구심을 품은 이들도 있었겠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당장 장길만만 해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던가.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반신반의하는 이.
결국, 혼재됐다고 해야 정확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박영진이 말했다.
“정리하면…….”
“…….”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 그게 뭐가 됐든?”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술기 외적인 건 잘 안 됩니다.”
“저글링 같은 건 할 수 없단 말인가?”
“예.”
“흐음. 말이 안 되는데…….”
박영진이 당장 미간을 찌푸렸다.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켠 그가 말을 이어 갔다.
“세부란스 병원에 김환영 교수라고 있어. 그 친구가 내 동기야, 동기. 포토그래픽 메모리로 유명한 친구지. 한번 보면 사진을 찍은 것처럼 기억하는 놈이야.”
“…….”
“의학 서적뿐 아니라 모든 걸 다 그렇게 기억했지. 남들이 보면 축복이라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사안을 구별하지 않았다 이 말이야.”
진짜 천재라면 모든 걸 다 따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함의.
진혁이 냉큼 대답했다.
“저도 왜 그런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른다라…….”
“네.”
박영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따지고 싶었고.
당장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도 모른단다.
계속해 모르겠다는 말만 하니,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 수 없었다.
모른다는 말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새삼 깨달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박영진이 침묵하자, 진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람되지만, 테스트를 해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테스트를 해 보자?”
“네.”
“흐음, 이미 충분히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연출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말꼬리를 흐리는 진혁.
대번에 그 함의를 눈치챈 박영진이 반문했다.
“답답했다?”
“…….”
“답답했다는 말이군.”
박영진의 말에 진혁은 답하지 않았다.
고작 인턴 주제에 선을 넘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반 박자 늦게 박영진이 노성을 터트렸다.
“자네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임상 경험이 일천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
“여기는 병원이야! 병원!”
“죄송합니다.”
진혁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청했다.
이는 진심과 다른 행동이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 자신도 종합 병원에 오래 근무했던 만큼 얼마나 선을 넘는 말을 한 건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드는 진혁의 표정이 묘했다.
시무룩한 얼굴.
답답하다는 표정.
뭔가 아쉽다는 입술의 꿈틀거림까지.
함의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도 박영진은 화내지 않았다.
아직 20대 중반인 이진혁.
치기 어린 마음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 순간.
– 허허, 울타리를 넓혀 주시지요.
– 답답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셔야 합니다.
– 정형화된 시스템이 천재를 잡아먹게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오지호가 했던 말이 박영진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가 다시 이진혁을 직시했다.
주머니 속 사탕이라고 여겼던 인턴.
처음엔 흥미로 시작했고.
나중엔 욕심으로 번졌다.
하지만 지금 주머니 속 사탕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그 어디에도 없는 천재라는 게 밝혀진 이상, 사탕은 더 이상 사탕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맞았다.
발이 달린 사탕은 세상에 없으니까.
사탕이 주머니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이진혁을 단속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당근을 제시할 때인 것이다.
* * *
과장실을 나온 진혁의 표정은 밝았다.
테스트 후 임상 권한을 주겠다고 한 박영진.
어떤 테스트를 하던 통과할 자신이 있었기에, 그를 부러트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건 자신이 ‘진짜 천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양날의 검이 분명했다. 언제 목을 조여 올지 몰랐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오지호를 원망만 할 순 없었다.
어떻게 대응의 영역으로 치환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명성을 얻어 신분의 제약을 조금이나마 푼다는 목표.
그 자신의 답답함을 풀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이 또한 환자를 위한 일이었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ER에서 임상 권한을 받았더라도 다른 과를 가면 백지화되겠지만, 이 또한 걱정되지 않았다.
외과 계열을 돌 때면, 병원장의 가호가 수호신처럼 따라붙을 테니 뭐가 걱정이겠는가.
분명, 장혁준이라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 크음. 큼. 내 뒤엔 병원장님이 있다고요! 아, 2호 동지! 지금 뭐 하냐고요!!
* * *
한참 촬영 중이기도 했고.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이었기에, 박영진은 신중했다.
그는 외과 임상 실습실로 사람들을 불렀다.
아직 온콜 당직들이 돌아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그가 주변을 오시했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이진혁 선생한테 R1의 임상 권한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의 말에 다들 놀란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게, 한 치의 구설도 없어야 한다는 이유로 구타조차 허용치 않았던 박영진이 아니던가.
이진혁의 임상 경험이 미천하다는 걸 고려했을 때, 정말 놀랄 만한 결정이었다.
말이 나오기 딱 좋은 것이다.
허나, 왕이나 다름없는 박영진의 결정.
그냥 따라야 했고.
시험은 바로 시작됐다.
먼저 기본 처치부터 박영진이 물었다.
“NYHA(New York Heart Association, 만성 심부전) 클래스 투 환자가 내원했을 때 어떤 약제를 슈팅하지?”
“니트로글로세린(NTB)를 슈팅해야 합니다.”
“조건이 있을 텐데?”
“좌심실 기능 부전 환자라고 가정했습니다.”
“내가 준 가정에 가정을 더했다?”
“네.”
진혁의 대답은 다부졌다.
이미 컨퍼런스 때 박영진을 한번 겪어 봤다.
그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좋아했다.
아니나 다를까.
입가에 호선을 그린 박영진이 계속해 물었다.
“또 있을 텐데?”
“ACEI 혈관 확장제를 투약하기도 합니다.”
“그럼 반대로 묻지, ACEI를 슈팅할 때 주의 사항은?”
“Angioedema(혈관성 부종), 진행성 Azotemia(질소혈증) 환자한테는 투약하면 안 됩니다.”
“또 있을 텐데?”
“전신성 저혈압, 고칼륨혈증, 임산부도 슈팅하면 안 됩니다.”
“CCB(칼슘 채널 차단제)는?”
“심부전 환자한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좌심실 비대를 동반했다고 가정하지.”
“디곡신(Digoxin)을 0.125mg 슈팅해야 합니다.”
“스피로노락톤(이뇨제 중 하나)는?”
“쓰면 안 됩니다.”
“왜지?”
“클래스 II에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클래스는?”
“모랄리티(사망률)를 30% 이상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진혁의 대답에 박영진이 숨을 골랐다.
조금 의아했기 때문이다.
“책도 한번 보면 외울 수 있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그럼?”
“잘 모르겠습니다.”
진혁의 대답에 박영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또또, 저놈의 잘 모르겠다는 소리다.
한데, 뭐라고 할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불호령을 내렸겠지만, 이놈의 ‘능력’에 대해서는 진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영진이 이번엔 다른 케이스를 제시했다.
“고칼슘혈증 환자가 내원했다고 가정하지. 임상 증상은 polydipsia(다갈증), dehydration(탈수), hypertension(고혈압)…….”
한참 이어진 박영진의 설명.
진혁이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노말 살라인(생리식염수)을 정주시키고, 유린 테스트(소변 검사) 결과에 따라 그 양을 조정해야 합니다.”
“또 해야 할 게 있을 텐데?”
“마그네슘과 포타슘 로스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해서.”
“마그네슘 15mg, 포타슘 20mEq를 같이 투약해야 합니다.”
“칼시토닌은?”
“효과가 크지 않지만, 마야칼식주 50을 슈팅하기도 합니다.”
“또 있을 텐데?”
“Solucortef 200mg을 IV에 섞기도 합니다.”
진혁의 대답에 박영진이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술기만 가능하다고 했던 게 아니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몰라?”
“네.”
또다시 같은 대답.
박영진이 기막힌 얼굴을 했다.
이진혁의 행태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방패 바바가 아이기스 장벽을 들고 소리치는 거랑 똑같지 않던가.
모르겠다는 말.
절대 뚫을 수 없는 방패나 다름없었다.
* * *
박영진의 테스트는 계속됐다.
“외상성 흉부 대동맥 파열 환자로 스테이터스는…….”
요약하자면,
견갑골 부위 통증.
호흡 곤란. 심막 잡음.
경부 아래 부종.
다발성 늑골 골절.
.
.
.
길었다.
진혁은 정확한 처치를 빠르게 대답했다.
“……BP를 120mmHG 이하로 조정하고, 혈압강하제는 베타차단제인 에스모롤(Esmolol)과 니프리드(Nipride)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 후로도 질문은 계속됐다.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박영진이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지 보여 줄 정도.
그렇게 시간이 계속될수록 진혁의 표정은 사라져 갔다.
사실,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박영진이 당연히 외과적 술기를 테스트할 거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박영진은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계속 케이스를 제시했고, 내과적인 처치를 물었다.
거기서 그쳤다면 좋았겠지만, 점점 난이도가 높아졌다.
결국, 모르는 문제가 나오자 진혁의 대답이 바뀌었다.
통상적인 인턴이 대답할 수 있는 범주를 한참 넘어선 질문이었고, 모른다고 대답해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이미 주변의 시선은 경악으로 물든 지 오래였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몰라? 왜지?”
“좀 더 공부해야 할 거 같습니다.”
“책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아…….”
진혁의 대답에 박영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또, 저놈의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니, 그럴 수밖에.
그가 곧 주변을 둘러봤다.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반대로 이젠 그만해도 좋을 거 같다는 표정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다들 인정한 거다.
이진혁은 진짜 천재라고.
물론,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이제 외과적인 술기를 테스트해 보지.”
“알겠습니다.”
곧 다른 테스트가 진행됐다.
* * *
그간 얼마나 참아 왔던가.
내과적 지식만 주구장창 질문이 나왔던 만큼 술기를 하는 진혁의 손놀림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그간의 분노를 다 터트릴 기세.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허허, 미쳤네. 미쳤어.”
“야야. 살살해. 살살.”
“하……. 진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
“너, 임마…….”
박영진이 있었지만, 다들 기막힌 얼굴을 하며 한마디씩 던졌다.
기관절개술을 시켰더니 순식간에 끝내 버렸다.
흉관삽관을 시켰더니, 이 또한 남들보다 빨리 끝냈다.
중심정맥관을 한번 잡아 보라고 시켰더니, 빠르게 몇 번 손을 놀리더니 금세 잡아 버렸다.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희철.
EICU의 지박령이나 다름없어 피골이 상접하고,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올 정도인 그는 생각했다.
그 자신이 붙였던 수많은 별칭.
타겟, 말리그, 원칙주의자, 괴물, 이상한 놈, 겸손한 놈, 천재.
이젠 다 필요 없었다.
그냥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허허, 말세인 게야. 말세.”
고작 인턴인 이진혁이 벌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진혁은 R1의 임상 권한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