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3화(13/388)
13화. 프리인턴 교육 (4)
진혁이 김진철을 달래기 위해 말을 걸었다.
“곧 도착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흐으윽. 너무 아픕니다.”
“진통제를 맞았으니까 효과가 있을 겁니다.”
“끄으으윽.”
구급차가 구비한 건 비마약성 진통제.
그 효과가 마약성 진통제보다는 한없이 모자랐지만, 효과가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한창 끙끙거리고 있을 때.
김진철은 덜컥 겁이 났다.
‘설마 내가 죽는 걸까.’
순간, 젊은 의사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 이러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육선재의 배은망덕한 행동까지 떠오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고작 타박상일 뿐이야!!
사실, 가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일개 법무사인 자신이 국회 의원한테 접대할 게 뭐가 있겠는가.
탈 날 염려가 없는 자신을 거래처 사장들이 불렀고, 숫자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라운딩을 돌았을 뿐이다.
그러다 일어난 사고.
이렇게 죽기엔 정말 억울했다.
다시 고통이 밀려들자 김진철이 신음성을 토해 냈다.
“끄으으윽.”
그때, 젊은 의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가족이 있으시죠?”
“있, 있습니다.”
“그분들을 떠올려 보세요.”
“으윽.”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냈던 기억들. 유치원에 입학했던 둘째라든지, 학교를 졸업한 첫째를 생각해 보세요. 그럼 고통이 한결 가라앉을 겁니다.”
뜬금없는 권유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 녀석들이 떠올랐다.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는 첫째.
엄마와 대판 싸우기만 하며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둘째.
자식을 키우는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철없는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괴로웠던 기억만 가득했다.
사춘기랍시고 반항만 하는 아들들이 뭐가 이쁘다고 고통이 사라진단 말인가.
젊은 의사는 거짓말쟁이였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들놈들.”
“네.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힘내십시오.”
“멱살이라도 잡아야……. 끄으윽.”
김진철은 그 말을 끝으로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또다시 지독한 흉통이 몰려온 탓이다.
* * *
어느새 도착한 원주 성심 병원.
119의 연락을 받은 응급의학과 소속 의사 이경태와 응급구조사가 병원 입구까지 나와 있었다.
덜컹!
구급차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하차 작업이 시작됐다.
들것을 잘못 조작한다면 낙상 사고로 이어져, 환자에게 충격을 줄 수도 있는 일.
스트레처카(환자를 운반하는 침대형 카)를 문에 바짝 붙인 뒤 다들 분주히 움직였다.
“환자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해!”
“하나. 둘. 셋! 으쌰!”
그렇게 환자를 옮기기 무섭게.
이경태와 응급구조사가 부리나케 스트레처카를 밀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진혁이 그 뒤를 따르며 소리쳤다.
“CT부터 찍어야 합니다!”
“아뇨, 응급실로 바로 갈 겁니다. 랩 체크(Lab check, 피검사)부터 할 거예요!”
“디아프라그마틱 럽쳐(횡격막 손상, Diaphragmatic rupture)에 따른 탈장이 의심됩니다.”
순간 이경태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의 표정을 확인한 진혁이 다급히 소리쳤다.
“아신 병원 소속 의사입니다.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블런트 체스트 트라우마(blunt chest trauma, 흉부 둔상) 아닙니까?”
“어퍼 페인(상복부 통증, upper abd. pain)도 확인했고, 보미팅(Vomiting, 구토)도 증세도 보이고 있습니다!”
진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경태가 소리쳤다.
“CT부터 먼저 찍죠!”
순간 스트레처카의 움직임이 변했다.
응급실이 아니라 영상의학과 옆에 붙어 있는 CT실로 방향을 튼 것이다.
곧, 요란스러운 발걸음이 복도를 울렸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비키세요! 비켜!”
“환자 지나갑니다! 비켜요!”
“비키세요!!!”
한참을 달린 뒤에 도착한 CT실.
응급으로 들어온 환자이기에 다들 달라붙었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
진혁은 방사선사 뒤에서 김진철이 CT를 찍는 걸 지켜봤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판독을 의뢰하기 전에, 먼저 영상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옆에 서 있던 이경태에게 말을 걸었다.
“CS(흉부외과)는 언제 내려오는 겁니까?”
“아, 아까 연락이 와서 급하게 수배를 때리긴 했는데요…….”
“?”
“사실, CS에 지금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수술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
“일단 최 과장님께 연락드렸습니다. 오프 중이라서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
이경태가 난색을 표하자 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 과장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당장 수술할 인력이 없다면 큰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단이 틀렸다면 괜찮을 일.
진혁이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한 영상.
판독을 의뢰할 것도 없이, 김진철의 상태는 심각했다.
왼쪽 횡격막이 축 처져 있었고.
군데군데 음영이 보였다.
게다가, 장기들도 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자세한 검사는 더 해 봐야겠지만, 어쩌면 심장마저 충격을 받았을지 몰랐다.
이를 확인한 건 이경태도 마찬가지.
그가 당장 전화기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시간을 한참이나 지체한 상황.
다른 병원으로 트랜스퍼(Transfer, 전원)하는 동안 환자 상태가 어떻게 나빠질지 몰랐다.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또다시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 * *
열악한 CS(흉부외과)의 환경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게 전부 의사가 없어서였다.
아니, 사실 의사는 있었다.
환자보다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금처럼 수술이 몰린다면, 일종의 진료 공백 상태가 펼쳐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나 달라지지 않는 현실.
속이 상하고, 답답했다.
숨까지 막혀 왔고, 그 현실의 벽이 턱없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개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내가 나선다고 해도 병원에서 허락해 줄 리 없다.’
아직 교육조차 끝나지 않은 인턴이라는 신분.
함부로 수술방을 열어 줄 리가 없었고, 설사 열어 준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문이 열리며 두꺼운 안경알을 쓴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근처에 있어 바람같이 달려온 흉부외과장 최지봉이었다.
그의 등장에 당장 이경태가 반색했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환자는 어떻게 됐나!”
“지금 막 CT를 찍었습니다.”
“그래?”
“브리핑을…….”
“됐고. 비켜 봐!”
최지봉은 당장 모니터에 띄워진 영상부터 확인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안색을 굳혔다.
“당장 수술방부터 잡아!!”
“과장님, 죄송하지만 지금 사람이 없습니다! 콜을 받을 인턴도 없는 거 같습니다!”
“뭐?! 병동 담당은 있을 거 아니야!”
“그래도 흉부 병동을 완전히 비우는 건…….”
이경태가 말을 절었다.
그때, 최지봉의 시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진혁에게 향했다.
영상을 확인하느라 뒤늦게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어? 너……!”
“교, 교수님.”
대답하는 진혁의 목소리도 잘게 떨렸다.
* * *
병원을 떠도는 유령처럼 그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말아야 했고, 그냥 조용히 서 있기만 해야 했던 PK(Polyclinic Student, 실습 의대생) 시절.
학부 시절부터 자신을 이뻐하며, PK 때도 종종 수술실 참관을 시켜 줬던 최지봉.
자신을 CS로 이끌었던 그가 눈앞에 서 있었다.
‘CS로 오라고 해 놓고 병원을 옮기셔서 원망했는데, 여기 계셨구나.’
진혁이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최지봉을 바라봤다.
수십 년 만에 보는 교수님.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최지봉 교수를 이곳에서 볼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하지만 최지봉의 반응은 궤가 달랐다.
과거로 돌아온 진혁과 달리, 얼마 전까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제자였던 탓이다.
“이진혁이? 네가 왜……?”
“제가 신고했습니다.”
“자세한 건 있다 얘기하고. 뭐 해, 수술방 안 잡고!!”
최지봉이 이경태를 재차 닦달하자, 그가 난색을 표했다.
“차라리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시죠.”
“뭐? 환자 죽이자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없긴 왜 없어.”
“?”
“네가 들어와.”
“!”
순간 이경태의 눈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자신은 써전이 아니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한 지 오래.
간단한 처치는 가능했지만, 수술실에서 집도의를 도와 어시를 서는 건 불가능했다.
“저 수술실에 들어간 지 한참 됐습니다.”
“그러니까 들어오라고. 왜 리트렉터도 못 당겨? 그것도 잊었어!”
“그, 그렇지만.”
“아, 됐고. 빨리 수술실부터 확보해!”
“네!”
최지봉의 강압에 못 이긴 이경태가 결국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로젯에 연락해 수술실을 열기 위함이다.
딸깍.
“CS(흉부외과) 환자 OP(수술) 들어갑니다. OR(수술실) 열어 주세요. 네? 아니, 어떻게든 열어 주세요! 최지봉 과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네. 네.”
뚜욱.
전화를 끊기 무섭게 이경태가 유선 전화기의 다른 단축키를 눌렀다.
마취과 의사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때, 최지봉이 훅하니 들어왔다.
“이진혁이 너도 들어와.”
“네?”
“뭐야, 못 들었어?”
“제가 아신 병원에서 아직…….”
“그냥 리트렉터나 당겨. 그것도 못 해?”
“아!”
순간 진혁은 잊고 있던 최지봉의 성격이 떠올랐다.
자신이 아직 교육조차 받지 못한 인턴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술실에 들어오라고 하는 그.
화끈한 판단.
빠른 결단력.
환자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성격까지.
최지봉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초짜들을 데리고 수술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 실력에 자신 있어 하기도 했고.
‘뭐, 오히려 잘된 건가.’
“알겠습니다.”
진혁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환자를 책임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취과랑 통화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웠던 이경태가 발목을 붙잡았다.
“과장님, 아무리 그래도 다른 병원 의사를 들이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뭐? 왜?”
“우리 병원 소속도 아닌데요. 병원장님도 싫어하실 겁니다. 나중에 수가 정산하는 문제도 있고…….”
“그럼 환자는? 이대로 죽이자고?”
“그래서 제가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지금 응급실을 비우는 것도 조금 그런데…….”
이경태가 말꼬리를 흐리자 최지봉이 으르렁거렸다.
“야. 이경태.”
“네.”
“ER(응급실)에 너만 있어? 최경식이 오프 중일 거 아냐! 당장 콜해! 병원장님 허락은 내가 받을 테니까!”
“아……. 아. 알겠습니다.”
이경태가 깨갱거렸다.
그가 최경식의 삐삐를 호출할 때.
최지봉이 당장 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깍.
“병원장님,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할 환자가 있습니다. 예, 지금 사람이 없어서요. 제가 예전에 데리고 있던 제자 놈이 있는데 아신 병원 소속입니다. 그러니까…….”
뚜욱.
짧지만 간결한 통화.
전화를 끊은 최지봉이 소리쳤다.
“프리 옵(Pre-op, 수술 전 준비)부터 하고 추가 검사부터 진행해!”
“CS는 사람이 없으니까 일단 ER로 옮기겠습니다!”
이경태의 보고에 당장 최지봉이 자리를 비웠다.
비어 있는 흉부외과 병동에 올라가 과 상황을 먼저 점검하고, 수술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