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3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30화(130/388)
130화. 안녕, ER (2)
과장실로 돌아온 박영진은 수심이 깊었다.
임상 권한을 얻은 이진혁이 사고를 칠까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R1의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이중삼중으로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
혹시 그의 오더나 액팅이 잘못된 게 아닌지 즉각 즉각 확인하라고 별도의 지시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대로 가면 잡을 수 없다.’
이진혁의 향후 행보였다.
당장 ER에 어플라이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던가.
물론 처음엔 당근을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그 능력을 확인하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한참 고심하던 박영진이 김상혁을 호출했다.
“이진혁 선생 말이야…….”
“계속 관심을 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아니, 그 말을 하려는 게 아니야.”
“…….”
“어느 과에 어플라이할 거 같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김상혁의 대답에 박영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아니라 ‘알아보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걸까.
김상혁이 빠르게 고했다.
“계속 물어봤지만, 본인도 결정을 못 한 거 같습니다.”
“그래? 흐음.”
박영진이 얕은 침음성을 토해 내며 의자 손잡이를 두들겼다.
또옥.
또옥.
한창 『응급실 사람들』이 잘나가고 있는 상황.
곧 중독 분석실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이진혁이 없는 6월부터는 시청률이 떨어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사탕을 남에게 뺏기는 게 싫었다.
이런 일은 항상 에둘러 말하던 그가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잡을 방법이 없겠나?”
“…….”
“없는가 보군.”
“당장 떠오르는 건 없지만, 혹시…….”
말꼬리를 흐리는 김상혁.
말을 해도 좋을지 허락을 구하는 행위에, 박영진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
“할돌(할리페리돌)의 유효성 검증을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것도 곧 시작해야지.”
“그때 플랜 B를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그 부분도 이 선생과 논의 후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김상혁의 말은 한동안 계속됐다.
섬망 환자에 대한 투약 검증에 이어, 플랜 B도 같이 진행하자는 말.
거기에 진혁을 연관시키자는 말이 계속됐다.
“논문에 이름을 올리자는 말이군.”
“네. 아이디어를 제공했으니 임상 조사자(Clinical investigators)로 이름을 올렸으면 합니다.”
“기왕이면 2저자나 3저자로 등재하는 게 좋을 텐데, 왜지?”
“Gift Author(선물 저자, 연구자의 친분으로 그냥 밀어넣는 저자)로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혁을 붙잡을 방법을 제안하면서도 그를 보호하려는 김상혁.
그 마음이 느껴졌기에, 박영진이 희게 웃었다.
“이젠 달라졌군.”
“……!”
“후배한테 무관심하더니 많이 바뀌었어. 안 그런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자 문제는 차후 논의하기로 하고. 플랜 B를 당장 가져와.”
“…….”
“할돌(할리페리돌)에 대한 이중 맹검 위약 연구도 이번 주에 바로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김상혁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 * *
그 시각.
진혁은 최지봉과 통화 중이었다.
갑자기 터진 응급 상황.
카톨릭 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갔겠지만, 인사도 건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물론 전화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하다 끝났다.
[어떻게 된 거야?]“잘 모르겠습니다.”
[뭘, 몰라?]“진짜 모르겠습니다.”
최지봉 또한 기막혀했다.
말이 되질 않는 상황.
그 또한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어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는데 뭐라 하겠는가.
아무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그게 바로 아이기스 장벽이었다.
결국, 최지봉은 CS로 와야 한다는 말만 주구장창 했다.
전화를 끊은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병원이 달랐거늘.
어찌 이리도 똑같을까.
‘우리 CS’는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다.
저도 모르게 나온 속마음에 쓰게 웃은 진혁이 곧바로 밖으로 향했다.
집에 갈 생각인 거다.
하지만.
“이진혁 선생님! 진짜 한 번만 보면 다 따라 하실 수 있는 게 사실입니까!?”
“성형외과를 희망한다는데 맞습니까!?”
“어머니가 성형외과를 가라고 하신 겁니까!!”
“라이브 수술은 언제 하시는 겁니까!!”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방호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돌아온 진혁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 무슨 성형외과에 간다고 난리지. 하, 진짜.”
없는 사실도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만들어 내는 게 기자라고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곧 진혁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걸 포기할 순 없었다.
이번에 향한 건 지하 주차장이었다.
자차로 출퇴근하는 진종욱 부교수의 도움을 받을 생각.
하지만.
“어!! 저기 이진혁이다!! 잡아!!!”
“빨리 뛰어!! 잡아! 잡으라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 선생님!!”
기자들은 지하 주차장에도 진을 치고 있었고.
진혁은 기겁해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진혁이 아니었다.
거대한 아신 병원.
별관과 신관, 그리고 본관과 연결된 주차장에 들어가는 통로만 십여 개가 넘었고.
운동장 세 개를 합친 넓이보다 컸다.
하지만.
“저깄다!! 잡아!!!”
“도망간다!! 저쪽을 막아!”
“어어!! 차라리 넘어트려!!”
기자들은 상상외로 끈질겼고 이를 뚫어 낼 재간이 없었다.
방패만 들었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다.
* * *
다시 돌아온 인턴 휴게실.
핸드폰은 꺼 놓은 지 오래였기에, 진혁은 유선 전화기를 들었다.
걱정하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기 위함이다.
금방 끝난 전화.
아직 기사가 나기 전이라, 부모님은 별걱정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뭐라고 말씀드리지?’
나중에 추궁할 게 분명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쓰게 웃은 진혁이 곧장 천리안에 접속했다.
『영닥터』에 들러 답변을 달 생각이었다.
이 모든 건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를 위한 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나만의 메모장처럼 적은 공간에 들어갔다.
전에 써뒀던 목표 중 달성한 건 바로 삭선했다.
1. 술기대회, 진행 확정(일정 미정)
2. 위약 대조 연구(논문), 진행 확정(일정 미정)
3. 안전벨트 캠페인, 미정
4. 가습기 살균제, 미정
5. 오태상, ??
6. 운영회의, 내부 고발 프레임으로 대처.
7.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 진행 중
8. 공개 검증, 진행 중
9. 『아신 재단 의료분쟁 조정중재원』, 진행 중
10. 부모님, ??
이미 했던 일도 있었지만, 아직 못한 일도 있는 상황.
특히 위약 대조 연구는 GS로 떠나기 전에 첫발을 떼야 했다.
물론, 증례를 수집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일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겠지만, 한발 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
김상혁이 들어와 거짓말처럼 플랜 B를 말했다.
* * *
어레스트 환자가 발생하면, 보통 CPR을 하고 강심제를 슈팅한다.
하지만, CPR을 할 때 부정맥 발생 확률을 높이는 약물을 투약하고 있다면 어떨까.
바보짓도 그런 바보짓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설명했지만, 김상혁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CPR 알고리즘을 확인해 보자고?”
“네, 과장님도 플랜 B를 말씀하셨다면서요. 그럼 이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야 그렇지만, 이건 명분이 없잖아.”
“명분이 없는 건 할돌(할리페리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그건 그래도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는 섬망이니까 비벼 볼 수 있었던 거고. 이건 이머전시라 다르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김상혁.
사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원래 CPR은 1분 1초가 아쉬운 법.
ROSC(자발 순환)를 목표로 대응 알고리즘까지 정해 빠르게 액팅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알고리즘을 검증하자고 했으니, 저럴 수밖에.
‘역시 어려운 건가. 그래도 환자한테 꼭 필요한 일이다.’
진혁이 다시 김상혁을 설득했다.
“AMI(급성심근경색) 환자를 CPR 할 때 보통 메탈라제(혈전 용해제 중 하나)를 쓰죠.”
“Thrombus(혈전) 때문에 어레스트가 온 거니까, 당연하지.”
“아뇨, 당연한 건 아니죠.”
“……?”
“트라우마(외상) 환자한테는 쓰지 않잖아요.”
“그거야 블리딩(출혈) 때문에 그런거고.”
메탈라제가 과다 출혈을 유발할 수 있기에 쓰지 않는다는 말.
너무도 뻔한 얘기에 김상혁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진혁의 설득은 계속됐다.
“베타차단제를 복용하는 환자한테는 도부타민을 투약하지 않죠.”
“효과가 없으니까.”
“Hypotension(저혈압) 쇼크 환자한테는 코다론을 투약하지 않습니다.”
“그건…….”
김상혁이 대답을 하다 말고 진혁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됐기 때문이다.
“케이스마다 투약 알고리즘이 다르다?”
“예, 다 부작용 때문이죠.”
“워낙 복잡하니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있을 수 있다는 거고?”
“효과가 없는데 투약하는 게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부작용이 심한데 쓰고 있는 약제가 있을 수도 있죠.”
“ACC(미국심장학회)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준용한 거야.”
“매번 개정됐던 가이드라인입니다.”
진혁이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환자의 상태를 되레 악화시키는 약물을 투약하는 상황.
박영진도 플랜 B를 언급했다니,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상혁으로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확신하는데? 뭔가 밝혀낼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
“사실, 확신은 없습니다.”
“뭐?”
“확신은 없지만, 뭔가를 밝혀낸다면…….”
“?”
“환자한테도 좋고, 발표하는 사람한테도 좋겠죠. 물론 병원도 좋을 거고요.”
이해당사자 모두가 좋을 거라는 말.
기획안을 들이밀 때마다 진혁이 늘상 하던 말이었다.
“CPR을 할 때 로딩이 걸릴 수도 있어.”
“후보군을 확 줄이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줄일 건데. 일단 선별부터 쉽지 않다고.”
“최근 5년 기준으로 검증 논문이 발표된 건 제외해야겠죠. 그럼 얼추 추려지지 않을까요?”
뭔가 계획이 있어 보이는 말투.
거기에 더해, 쐐기까지 박는 진혁이었다.
“잘되면 ICEM(세계응급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야 잘되면 그렇긴 한데…….”
“ACC(미국심장학회)에서도 초청하려 들겠죠.”
“흐음.”
“어쩌면 전 세계에서 쓰는 CPR 알고리즘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진혁의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럴 땐 자신이 회귀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 * *
한밤중에 몰래 도망갈 생각.
진혁과 김상혁은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아름드리나무의 뿌리처럼 수없이 펼쳐져 있는 CPR 알고리즘을 출력했다.
그러고는 케이스마다 논문을 주석으로 달고, 왜 후보군에서 제외했는지 쓰기 시작했다.
물론, 타겟은 명확했다.
황산마그네슘.
아트로핀.
칼슘.
세 개의 후보군을 정했고.
진혁은 김상혁을 계속 유도했다.
그러니까 이건.
윗선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를 만드는 작업일 뿐이었다.
* * *
결국, 기자들한테 가로막힌 진혁은 병원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
물론,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박영진에게 보고했다.
“황산마그네슘은 최근 5년 내 증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형성 심실빈맥에는 효과가 탁월한 거로 알고 있는데?”
“저마그네슘혈증이 의심되는 경우에 한정되지만, 이 또한 검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지?”
진혁이 살짝 심호흡한 뒤 말했다.
“적정 투약 용량에 대한 논문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너무 많아서 그렇다?”
“예,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조차 결론이 제각각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갔다.
아신 병원의 경우 황산마그네슘 1~2g을 10mL 5% 포도당 용액에 희석해 투약하고 있는 상황.
이를 검증해 보자는 식으로 박영진을 설득했다.
그가 허락한다면 바로 성과를 낼 수 있었으니, 진혁의 톤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황산마그네슘은 처음엔 무작위로 투약하다가 나중엔 다형성 심실빈맥 환자 중 저마그네슘혈증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사용했고.
결국, 성인 환자에겐 아예 사용하지 않게 되는 약물이었다.
한참 고심하던 박영진이 말했다.
“아트로핀은 왜 갖고 왔지?”
“아트로핀은 심박수 저하와 방실결절 차단에 주로 사용됩니다.”
“해서.”
“보통 무수축이나 무맥성 전기 활동에 의한 심정지에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에 따른 논문이 없었습니다.”
“결국, 관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인가.”
“네, 손해 볼 건 없을 거 같습니다.”
효과가 없다면 없는 대로.
효과가 있다면 있는 대로 좋을 거라는 말.
그 후로도 진혁의 설명은 한참 계속됐다.
칼슘이 자발 순환 회복에 미치는 영향 또한 검증된 논문이 없는 상황.
한참 설명을 들은 박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토해 보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언론 보도가 시작되자 세상이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