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3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34화(134/388)
134화. 안녕, ER (6)
GS로 지원한 인턴과 레지던트는 간담췌를 비롯한 각 과를 로테이션 도는 게 일상.
공식 용어로는 일반외과라고 불렀지만, 사실상 통합외과라고 부르는 게 맞았다.
그런 이유로 전화를 끊은 진혁의 표정은 어두웠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당황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기 때문이다.
[네? 폐쇄공 탈장이라고요? 그게 무슨…….]떨떠름한 어투.
영상을 직접 확인한 유호진과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고, 분명 처음 들어 본 질환인 게 분명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폐쇄공 탈장은 고령의 여성 환자. 그것도 삐쩍 마른 이들에게 발생한다.
문제는 발병률이 극히 낮다는 거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미래에도 폐쇄공 탈장 환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말 다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집도 경험이 있는 의사가 없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걱정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게, 미래에도 폐쇄공 탈장을 다뤄 본 이는 손에 꼽을 정도지 않던가.
당장 자신만 해도 지인의 모친이 폐쇄공 탈장으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게 분명할 정도로 희귀한 질환이었다.
허나,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진혁이 곧장 판독실에 푸시했다.
“선생님, ER 인턴 이진혁입니다. 환자 번호는…….”
말을 채 있기도 전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울렸다.
[바로 할게요. 바로 한다고요!!]“네?”
[끊어요!! 바로 한다니까요!!]뚜욱.
전화를 끊은 진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하필 그 전문의가 전화를 받은 건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응급인데도 판독을 바로 해 주지 않던 이.
푸시를 한다고 심지어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되레 역정을 냈고, 김석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녹음됐다.
이를 우려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상대가 저리 나온다면 좋은 일이었다.
진혁이 이번엔 유진태한테 전화를 걸었다.
복강경 대회에서 우승한 만큼,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의 발로였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유진태.
고개를 갸웃거린 진혁이 이말자에게 향했다. 그러자 이말자의 며느리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 별일 아닌 거죠?”
“아무래도 수술해야 할 거 같습니다.”
“네? 수술이요!?”
“소장이 폐쇄공으로 탈장됐습니다. 골반 안쪽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삐져 나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침음성을 토해 내는 그녀.
이말자의 목소리도 뒤이어 울렸다.
“뭔 놈의 수술이여. 약만 받으면 되는 거여.”
“할머니, 꼭 수술받으셔야 해요.”
“됐어.”
“지금 골반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시잖아요.”
“…….”
“탈장낭이 폐쇄 신경을 압박하면서 통증이 방사되는 거예요. 지금은 타이레놀로 버틴다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큰 병이에요.”
“수술은 무슨. 약만 어여 챙겨 줘.”
노인 환자를 다루다 보면 왕왕 있는 일.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하지만 진혁의 거듭된 설득에도 이말자는 강경했다.
수술만큼은 정말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입씨름을 이어 갈 때.
의외의 인물이 개입했다.
“할머니, 꼭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응급의학과 과장 박영진이었다.
* * *
의아한 기색도 잠시.
진혁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과장님.”
“인사는 나중에 하지. 어르신, 응급의학과를 맡은 박영진입니다.”
“높은 분이라고?”
“응급실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 선생도 들여보낼 테니, 꼭 수술받으셔야 합니다.”
같은 흰 가운을 입었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박영진의 말은 무게감부터 달랐다.
하지만 미련이 남은 이말자가 도돌이표 같은 물음을 던졌다.
“꼭 해야 혀?”
“꼭 하셔야 합니다.”
“그러다 죽으면? 수술 중에도 죽을 수 있는 거 아니여. 이제 죽을 때가 된 거여.”
이러나저러나 갈 때가 됐다는 말.
박영진이 냉큼 화제를 돌렸다.
“옆에 계신 분은 따님인가요?”
“며느리야. 며느리.”
“사이 좋으시죠?”
“그럼~! 좋다마다!”
“며느님을 위해서라도 꼭 수술받으셔야 합니다.”
“…….”
“수술을 받지 않고 이대로 돌아가시면, 며느님께 평생 상처가 될 겁니다.”
순간 이말자의 눈꺼풀이 떨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며느리를 응시했다.
‘내가 죽으면 후회할 거라고?’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 고생만 한 그녀.
자신이 죽으면 한갓지겠지만, 마냥 후련하기만 할까.
아니었다.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였다.
거기에 더해, 지금 이 자리엔 없는 아들마저 떠올랐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심성은 착한 아이.
다 늙어 버린 자신이 아직도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는 아들 녀석한테도 평생 상처로 남을 수도 있었다.
* * *
수술을 거부하고 죽는 노인 환자가 얼마나 많던가.
진혁이 희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감사는 내가 아니라 외과장님께 하지. GS에 노티한 거 아니었나?”
“안 그래도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과장님이 직접 집도하신다고 하더군. 5년 전에 해 보신 모양이야. 특별히 스케줄도 조정한다고 하셨고 말이야.”
“아…….”
순간 진혁이 짧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자신을 위해 그렇게까지 나서다니, 얼핏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고마운 일.
이유는 모르지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마침 저기 오는군.”
박영진이 가리킨 곳으로 진혁이 고개를 돌리자, GS에서 내려온 이들이 보였다.
그런데.
“비켜!! 어디야!!”
“이진혁 어딨어!!!”
“저깄다!!!!”
CS를 똑 닮아 있는 저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우용만이 말한 ‘아직 나이 어린 진혁을 감동시키자’는 성의 표시였지만, 진혁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물론,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었다.
종합 병원인 만큼 저렇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도 못 자고 사투를 벌이는 이들.
그저 이송팀 직원만 보내면 될 걸, 눈이 벌게져 달려오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던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때로는 짝퉁도 감동을 주는 법이었다.
* * *
숨을 허덕이던 유진태가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 대상은 박영진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바로 모시고 올라가겠습니다.”
“잘 부탁하지. 우리 이 선생 환자야.”
“안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다 하려고 합니다. Pre-op evaluation(수술 전 평가)도 하기로 했습니다.”
“과장님이 직접 주관하시나?”
“예.”
순간 박영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선생이 모시고 온 환자라서 그렇겠군.”
“아, 네. 당연히……. 아…….”
유진태가 대답을 멈칫거리자, 박영진이 쓰게 웃었다.
“외과장님 말씀대로 이 선생도 참관하면 될 듯싶은데.”
“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어차피 휴가 중에 들어왔으니 인사를 받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야. 근데 말이야.”
“네.”
“방송에 내보낼 것도 아닌데, 이 선생이 왜 필요하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유진태가 머리를 긁적이자 박영진이 쓰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너무도 노골적으로 이진혁을 탐하는 GS.
자신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 * *
이말자는 곧바로 GS 병동으로 올라갔다.
진혁도 같이 올라가야 했지만, 그는 인턴 휴게실로 향했다.
자신을 위해 수술 스케줄을 조정한 외과장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고.
무엇보다 이말자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앉은 진혁이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오후 2시.
이말자의 수술은 4시간 뒤인 6시로 잡혔다.
소장이 탈장된 만큼 NPO(금식)를 철저히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Pre-op evaluation에도 참석하려면 3시간이 남은 건가.’
진혁이 곧바로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딸깍.
딸깍.
먼저 국내 학술지 사이트를 훑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논문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검색어를 바꿔 봤지만 여전했다.
‘결국 외국 논문밖엔 없는 건가.’
이번엔 펍메드(PubMed)에 접속했다.
다행히 폐쇄공 탈장에 관한 논문이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진혁이 빠른 속도로 논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30분, 한 시간, 두 시간.
논문을 읽을수록 이말자의 태도가 이해됐다.
비특이적인 증상을 보이는 폐쇄공 탈장.
심한 복통을 느끼는 환자도 있었지만, 이말자처럼 통증이 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증상이 각기 다를뿐더러, 초진이 늦어 환자가 사망한 다음에야 부검을 통해 폐쇄공 탈장을 확인한 사례도 있을 만큼 비특이적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건가.’
아버지의 마음 씀씀이와 자신의 오지랖이 그녀를 살렸다.
아니, 아직 안심할 순 없었다.
수술 후에 합병증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딸깍.
딸깍.
대표적인 합병증도 빠르게 살폈다.
심부전, 호흡부전, 뇌경색.
고령의 환자에겐 하나같이 치명적인 병환이었다.
게다가, 수술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조영증강 CT를 찍은 것도 아니고.
실제로 복부를 열었을 때 영상과 다른 양태가 나타나는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그렇게 한참 수술 케이스를 뒤지고 논문을 읽으며 폐쇄공 탈장에 대한 지식을 욱여 넣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유진태의 전화였다.
* * *
잠시 후, 외과 임상실습실.
유진태가 진혁을 반겼다.
“빨리 왔네? 아, 반말해도 되지?”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진혁의 말에 유진태가 손에 쥔 비디오테이프를 흔들어 보였다.
“진짜 어렵게 구했다. 동기들한테 쫙 연락 돌리고 수소문하느라 고생했다고.”
“흔치 않은 케이스인데 용케 있었네요.”
“자자. 빨리 앉자고.”
“네.”
곧, 영상이 재생됐다.
무영등이 밝게 빛나는 가운데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
폐쇄공 탈장 수술에 나선 의료진들이었다.
“저긴 소화기외과에서 수술했어. 우린 외과장님이 직접 집도하실 거고.”
“뭐, 병원마다 R&R이 다 다르니까요. 어시는 누가 들어가는 겁니까?”
“감일중 선생님이 퍼스트, 내가 세컨, 이 선생이 써드야.”
“참관이 아니라 스크럽을 서라는 말씀이십니까?”
“뭐, 써드니까 괜찮지 않을까.”
비디오를 보여 줄 때부터 짐작했지만, 써드로 어시를 서라니.
보수적인 아신 병원답지 않았다.
라이브 수술을 한다고 말했을 때도 고작 맹장 수술을 언급했던 오지호가 아니던가.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진태가 씩 웃었다.
“지난번에 병원장님이 말씀하셨잖아.”
“이번 건은 촬영도 안 하는데요.”
“너무 부담 가질 거 없어. 어차피 세컨도 아니고 써드잖아. 뭐, 수술 도구 건네는 거밖에 없다고.”
“…….”
“없어, 진짜 없다니까. 그냥 경험이나 쌓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유진태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소문이 갈렸어. 직접 못 봤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
“그럴 때 딱 선언하는 거지. 우리 GS는 이진혁을 믿는다고.”
여러 목적이 있다는 말.
폐쇄공 탈장 수술은 그 자신도 경험이 없었기에 자신이 없었지만, 수술 도구를 바꿔 주는 것 정도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선을 넘은 건 자신도 아니고 GS.
뭐, 어떻게 보면,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진혁이 한참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