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3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36화(136/388)
136화. 안녕, ER (8)
[사건 발생 10일 전]혹은.
[이말자 POD(Post operative day, 수술 후 날짜) #1일]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병원은 다시 요란스러워졌다.
이진혁이 GS 수술실에 어시로 들어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평범한 인턴이라면 괜찮았을 일이었다.
뭐, 수술실 담당 인턴만 해도 수술실에 살다시피 했고.
참관 또한 다른 과 인턴이 관심 있는 과.
그러니까 향후 어플라이할 과를 컨택해 참관하는 일은 빈번했으니 문제 삼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이진혁의 행보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 원치 않았지만 촬영 때문에 억지로 참석했다거나 조용히 참가만 했다면 파장이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수술 전 평가 회의까지 열었고.
그 자리에서 빼어난 능력까지 선보였으니, 소문이 안 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구내식당은 무척 시끄러웠다.
“야, 이진혁이 GS OR(수술실) 들어간 얘기 들었냐?”
“들었지. 걔는 진짜 뭐냐. 솔직히 ER 졸라 빡세잖아. 안 그래도 촬영까지 하는데 힘이 남아도냐고. 무슨 오지랖인데 GS까지 들어가냐.”
“뭐, 한번 보면 다 기억한다니까 졸라 쉬운가 보지. 그나저나 대박이다. 대박.”
“왜? 뭐가 대박인데?”
“GS로 간다는 뭐 그런 의미 아니냐고.”
“에이~ 그건 아닐걸? 애초에 협진 수술도 보여 주기로 했다던데?”
“이건 촬영 없이 들어간 거잖아.”
“어! 그러네!? 그럼, 한동수 교수님만 우습게 된 거잖아.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네.”
병리학과 레지던트의 말에 심장내과 레지던트가 고개를 저었다.
“뭐, 이런 일이 한두 번이겠냐. 이미 통달하지 않았을까?”
“에이~ 그래도 매번 상처 입지 않을까? 넌 여친이랑 헤어질 때마다 무덤덤하냐?”
“아씨,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데.”
“거봐, 헤어질 때마다 아픈 건 똑같다고.”
그들의 대화는 끝없이 계속됐다.
사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다들 이진혁에 대한 얘기만 했다.
거짓말쟁이라느니.
연출이라느니.
혹은 진짜 천재라느니.
이런저런 얘기 속에 소문은 점점 살이 붙었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운영과장인 우용만만이 안경을 쓱 올리며 그 자신이 낸 아이디어에 만족할 뿐이었다.
물론, 한동수의 입장은 달랐다.
* * *
지난 며칠 간 총 수면 시간은 고작 10시간.
누군가는 어떻게 버틸 수 있냐고 할 테지만.
한동수는 그 나름대로 도가 튼 사람이었다.
토막 잠을 잘 때도 많았고.
눈만 감으면 꿈나라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으며.
논렘수면의 연속이라고 할 만큼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노하우까지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피곤하다, 피곤해. 요즘 왜 이렇지.’
예전 같지 않은 몸.
떨어진 체력.
피로가 풀리지 않는 느낌까지.
정말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한동수의 눈엔 핏발이 가득했다.
“얘들아, 소문 들었냐?”
“네, 들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냐.”
정진석이 곧장 대답했다.
“GS(일반외과)랑 전쟁할까요?”
“야이! 무식한 놈아!”
“네?”
“GS 밑에 있는 간담췌부터 다른 과랑 다 전쟁하자는 게 말이나 되냐!”
“아니, 그게…….”
“생각을 하고 살자! 생각을!!”
졸지에 무식한 놈이 돼 버린 정진석이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더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한동수는 정진석의 표정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레지던트들을 아울렀다.
“이제 우리도 머리를 쓸 때가 됐다!”
“어떻게 말입니까?”
“CS의 장점도 알려 주고, 당근도 주고! 어! 아들이 가출하려고 하는데 멱살만 잡아서 되겠냐! 일단 브레인 스토밍부터 한다!”
장점을 어필해 보자는 말.
한동수의 고개가 정진석을 향했다.
하지만.
침묵.
또 침묵이 이어졌다.
정진석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장점? 단점은 많지만 장점은……. 하…….’
한참 고심 끝에 정진석이 말한 건, 그 자신이 여전히 CS에 남아 있는 이유였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렸을 때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케이! 좋아! 다음!”
한동수의 고개가 김윤택을 향했다.
그는 냉큼 대답했다.
“IMF로 다들 어려운데, 우리 CS에 오면 집세를 아낄 수 있습니다. 집에 가지 못하니까 그냥 병원에서 먹고 자면 됩니다!!”
“어차피 월세는 나가는데?”
“저 두 달 전부터 집을 뺐습니다.”
집에 두 달째 못 들어갔다는 말.
한동수가 김윤택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게임이니, 각성이니, 잠재력이니.
헛소리를 많이 했지만 김윤택도 아들 중 한 명이었다.
“자, 다음!!”
“돈 쓸 시간이 없으니까 강제 저축이 됩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한동수의 고개가 돌아갈 때면, 장점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연애를 못 하니까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불면증 환자가 늘고 있지만, 저흰 걱정 없습니다!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 수 있습니다!”
“다른 과는 논문 데이터 모은다고 난리인데 저희는 그런 게 없습니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습니다!!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따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헬스장 비용도 아낄 수 있죠.”
“불필요한 인맥이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계속된 장점 어필.
정진석과 달리 다들 표정 하나는 다부졌다.
물론 그들도 장점이 장점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이라도 해야 그 자신의 행보.
그러니까 도망가지 않고 여전히 CS에 붙어 있는 자신의 행태를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른바 정신적인 만족.
자기 위안의 발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한동수는 만족스러워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장점이 장점이 아니라는 걸.
환자를 살릴 때 느끼는 희열?
그만큼 죽는 환자도 많았고.
조금씩 상처를 입고 있다는 말이랑 똑같았다.
뭐,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게 CS.
누군가는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거냐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한참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던 한동수의 고개가 정진석을 향했다.
“어이, 정진석이.”
“네, 교수님!”
“너만 혼자 망설였다.”
“아, 그게…….”
“앞으로 세 달 동안 오프 금지다!!”
“넵!!”
정진석은 대답이라도 우렁차게 했다.
어차피 지금도 집에 못 가고 있거늘.
오프 금지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의 태도를 살핀 한동수가 말했다.
“너무 약한가?”
“아닙니다! 근데, 교수님 생각도 궁금합니다!”
“어쭈! 이제 말 돌리는 것도 늘었어!”
“크음. 큼”
“우리 과에 오면 집도를 빨리할 수 있다.”
순간 좌중에 정적이 흘렀다.
집도를 빨리할 수 있다니.
흉부외과만큼 집도 기회가 없는 곳이 어딨다고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심혈관과 폐식도를 다루는 만큼 숙련된 집도의 아래 어시를 서는 일이 늘상 반복되거늘.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한동수의 말은 계속됐고.
이를 들은 레지던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한참 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레지던트들을 본 한동수가 빙긋거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볼 생각이었다.
* * *
얼떨결에 끌려온 흉부외과장실.
한동수를 필두로 레지던트 6명이 조르르 서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둘.
첫째는 심혈관 파트를 돌고 있다는 것.
둘째는 조금 전과 다르게 표정이 밝다는 거다.
그랬다.
레지던트들은 묘한 기대감에 빠져 있었다.
한동수처럼 수술에 미쳐 있어 얼굴도 잘 비추지 않는 저 흉부외과장이 반드시 한동수를 막아 줄 거라는 희망.
그리고 기대.
믿음.
이는 상식에 기반한 추론이었다.
그도 그럴 게.
‘초집도의 상시화’라니.
시스템을 중시하는 부원장이 들으면 까무러칠 만한 얘기였고.
그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 칠 생각이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초집도식은 보통 한 번만 열리는 게 상례.
레지던트가 첫 집도를 하고, 교수급이 이를 보조하며 모두의 축하를 받는 의식이었다.
호텔 연회장을 빌려 축하 파티를 열기도 했고.
가족을 초청해 석식을 함께하기도 했으며.
단체 사진을 찍고.
플래카드까지 걸어 주기도 했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런 초집도를 상시화하자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기대를 품은 이들과 달리.
한동수는 덤덤했다.
“과장님. 애들이 실력을 키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죽을 거 같답니다.”
“그래?”
흉부외과장의 고개가 레지던트들을 향했다.
하나같이 초췌한 이들.
누가 보면 노숙자.
아니, 패잔병이라 일컬을 정도였다.
그 모습에 흉부외과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네, 뭐. 대체 뭐가 불만인데?”
레지던트를 향한 질문.
한동수가 냉큼 대답했다.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수술실에서 주구장창 스크럽만 서다 보니까, 실력도 늘지 않는 거 같고 그렇답니다.”
“그래?”
“언제까지 스크럽만 서게 둘 순 없지 않습니까. 지난 술기 대회도 그렇고. 애들 실력이 영 늘지 않습니다. 믿고 맡겨 주시면 제가 애들을 키워 보겠습니다.”
“어떻게 할 건데?”
흥미가 돋는다는 얼굴을 한 흉부외과장.
그 모습에 레지던트들의 표정은 사색이 됐다.
‘아, 안 돼! 안 된다고!!’
‘끄으으윽.’
‘과장님! 제발!!’
그들은 계속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이러다 다 같이 윤리위원회에 끌려가고.
다 같이 옷을 벗을 수 있다고.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초집도식을 일주일에 한 번씩 여는 겁니다.”
“흐음.”
“제가 좀 더 고생하겠습니다. 집도 경험도 쌓게 해 주고, 혹시 모를 사고는 제가 어시를 서면서 막겠습니다!”
흉부외과장이 턱을 쓰다듬었다.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일.
종합 병원이 교육 기관의 역할도 겸한다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가 한동수의 눈을 직시했다.
“동수야.”
“네.”
“사고 나면 끝이다. 알지?”
“압니다.”
“엉뚱한 혈관을 건드릴 수도 있다.”
“그 전에 쳐 낼 겁니다.”
“못 쳐 내면?”
“쳐 낼 겁니다.”
한동수는 다부지게 대답했다.
그도 생각이 있는 사람.
당장 숨이 꼴딱 넘어가게 될 환자의 수술을 시키기보단 차근차근 스텝을 밟을 생각이었다.
물론, 집에 가긴 글렀지만.
이는 천재 이진혁을 위한 발판이자 후배들의 질적 성장을 위한 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여겼다.
한동수의 다부진 표정 때문일까.
덩치가 산만 하여 어디 가면 깡패냐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흉부외과장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뭐, 이런 걸 보고라고 하고 있어!! 진행해!”
쌍방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
격식을 차리던 한동수가 소리쳤다.
“캬, 역시. 스승님밖에 없습니다!!”
“스승은 개뿔! 뭐 해! 안 나가고!!”
레지던트들은 몰랐지만, 돌격 앞으로의 시초는 지금의 흉부외과장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진혁은 장혁준과 대화 중이었다.
“빨리 만들자는 거죠?”
“지금까지 뭘 들은 거예요! 빨리 인세 계약도 하고, 작업도 하자는 거잖아요!”
“왜 이렇게 급해졌는데요?”
“아니, 그 사건 이후로 카드 막히고 죽을 판이라니까요. 데이트 비용도 없다고요.”
장혁준은 정말 급해 보였다.
평소 씀씀이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내일 선약 있으면 어쩌려고 벌써 일정을 어레인지했어요.”
“앗! 약속 있어요?”
“없죠.”
“그럼 내일 퇴근 후에 바로 만나러 가자고요. 2호 동지는 나만 믿어요! 의사들이 사기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줄게요!”
“뭐, 어차피 아버님 지인분이라면서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가족이나 지인을 믿고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섰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하는 말.
진혁은 말없이 희게 웃었다.
안 그래도 고생하고 계신 부모님.
『엄마, 성형외과가 가고 싶어요!』로 인세를 받으면 플렉스를 좀 해 볼 참이었다.
* * *
[사건 발생 9일 전]자신의 나와바리나 다름없는 압구정동.
장혁준은 잔뜩 신나 있었다.
“잘만 되면 건물을 살 수도 있다고요.”
“에이, 그 정도는 힘들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이런 책이 없었잖아요! 제대로 알박기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고요!!”
“뭐, 사장님 말씀도 들어 봐야죠.”
한참 텐션을 올린 장혁준과 달리 진혁은 차분했다.
그렇게 만난 출판사 사장.
그의 말을 들은 진혁이 처음으로 당황했다.
“불법 제본이 성행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죠. 하하. 우리 이 선생님도 학교 다니셨으니까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진혁이 쓰게 웃으며 침묵했다.
회귀했다고 밝힐 수도 없는 일.
전북 익산에 있는 서신대에 가 본 지도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그러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진혁의 고개가 장혁준을 향했다.
“장 선생은 왜 제본하면 된다는 걸 몰랐죠?”
“아, 아니 난 제본해 본 적이 없다고요.”
“한 번도 없어요?”
“왜 제본을 해요. 그냥 사면 되지…….”
“하…….”
금수저가 금수저다운 말을 내뱉자, 진혁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출판사 사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법 제본이 성행하는 건 사실이겠지만, 인세 협상을 해 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