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4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41화(141/388)
141화. 외과 춘계 학술대회 (1)
픽스턴(과가 정해진 인턴)도 아니건만, 춘계 학술대회까지 따라온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오지호의 요청이 있었고.
둘째는 그와 딜을 해 한동수를 지키고.
셋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는 것.
이를 위해선 육모방망이가 됐든, 방패가 됐든 마음껏 휘둘러야 했다.
그렇게 들어선 경주 컨벤션 센터.
대한외과학회 주관으로 춘계 학술대회가 열리는 만큼 정장을 입은 이들이 바글거렸다.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전국의 외과의는 전부 모인 셈.
진혁은 당장 팜플렛부터 훑었다.
정책 세션.
필수 평점 교육.
논문 발표.
워크숍과 석식 행사.
2박 3일로 이뤄지는 학술대회는 그 일정이 빡빡했다.
곧 팜플렛을 손에 쥔 아신 병원 소속 의사들이 움직이자, 진혁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시작된 건.
“오 원장님 아니십니까.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허허, 고생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래 숙소는 어디로 잡으셨습니까?”
“경주 힐튼으로 잡았습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우린 분원 근처로 잡았습니다.”
“오오! 아신 병원은 경주에도 분원이 있었지요. 부럽습니다.”
“뭐, 부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허허.”
오지호에게 인사를 하는 외과의의 행렬이었다.
TOP 5에 속하는 아신 병원.
대(大)아신 병원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이도 있을 만큼 규모가 컸고.
전국 각지에 있는 분원까지 합치면 본원의 원장이라는 그 지위는 특별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오지호가 한담을 나누는 사이.
진혁은 주변을 살폈다.
사실, 그 옛날의 자신이라면 제약 회사에서 차린 부스를 기웃거리며 새로 나온 기기가 없는지 확인하고.
신약에 관한 설명도 듣고.
다른 이들과 교류하며 수술법에 대해 토론도 하고 소소한 얘기도 나눴겠지만.
그러기엔 아직 인턴.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담을 나누던 오지호가 진혁을 불렀다.
“이 선생!”
“네, 병원장님.”
곧바로 움직인 진혁.
오지호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인사하게. 삼선 병원 외과장 김석준이야. 아, 과장이라고 무시하지 말게. 동기야. 동기.”
“그놈의 과장 소리하고는.”
“허어, 과장을 과장이라고 부르지 뭐라 부르나.”
“그러는 자넨 언제까지 병원장을 할 거 같나.”
바로 투덕거리는 둘.
진혁이 타이밍을 살피다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인턴 이진혁입니다.”
“이 친구가 그 친군가?”
뚱한 표정의 김석준이 곧바로 오지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척하긴. 『응급실 사람들』을 봤으면 알 게 아닌가.”
“천재 한 명 메이킹했다고 아주 신났구먼그래.”
“메이킹은 무슨!!”
“아아. 됐네. 됐어.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믿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외과의사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도 추진한다지?”
“관심 없다면서 그건 또 어디서 들었나?”
“『외과 사람들』도 아니고 『외과의사 사람들』이 뭔가. 문법에도 어긋나고 어감도 이상하고. 쯧쯧. 별로야. 별로.”
진혁은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김석준.
시비조에 가까운 말투마저 여전했기에, 오지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진혁이 타이밍 좋게 나선 건 그즈음이었다.
“편성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런칭하게 되면 『외과의사 24시』로 하게 될 겁니다.”
“프로그램명이 바뀌었다?”
“네, 병원장님껜 보고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외과의사 사람들』은 가제였습니다.”
정중하지만 오지호의 체면을 살려 주는 말.
눈치 빠른 오지호도 가만있지 않았다.
“협의만 잘되면 주구장창 방송에 나올 게야.”
“끄응.”
“왜?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은가?”
김석준이 내뱉은 얕은 침음성조차 그대로 넘기지 않는 오지호.
미간을 찌푸린 김석준이 고개를 돌렸다.
“우리 GS의 보물부터 소개해 줌세. 최인호 선생!”
곧, 젊은 사내가 튀어나왔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를 봤을 땐 한 성질 할 것처럼 보이는 최인호를 보며 오지호가 웃었다.
“더블 보드를 한다는 그 친구군.”
“안녕하십니까. 병원장님. 최인호라고 합니다.”
“아신 병원을 맡은 오지호일세.”
악수를 나누는 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최인호에게 쏠렸다.
신경외과 또한 GS처럼 기피과가 된 지 오래.
NS 보드를 따고 다시 GS에서 레지던트를 한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오지호가 물었다.
“NS에서 보드를 땄는데 왜 GS로 왔지?”
“미세 신경 수술 외에 일반적인 수술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
“네, 의사의 역량이 뛰어날수록 환자의 고통은 경감된다는 구절을 항상 되뇌고 있습니다.”
너무도 깍듯한 자세.
그리고 정론.
외과의라면 누가 들어도 흡족할 만한 답변이었고.
순전히 환자를 위한 도전이라는 함의에 오지호가 밝게 웃었다.
“허허, 안 그래도 더블 보드 인정 기준을 완화하려고 하고 있네.”
“……!”
“지금은 3년이지만, 곧 2년으로 줄어들 게야. 조금만 더 고생하시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수련 기간에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누구랑 다르게 아주 예의가 바르군. 자자, 들어가세.”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다 밟아 주자고 했지만.
막상 망해 가는 GS에 지원한 후학을 보자 마음이 약해진 오지호.
그의 재촉에 다들 메인홀에 들어섰다.
* * *
아직은 금요일.
Pre-congress 워크숍답게 개회사는 없었다.
본격적인 행사는 토요일부터 시작되기 때문.
사회자가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했다.
“30분 뒤부터 ‘외과 주임교수 과장 회의’가 진행됩니다. 과장님들께선 3번 홀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주섬주섬 자리를 뜨는 어르신들.
다시 사회자가 소리쳤다.
“레지던트와 펠로우분들은 ‘Meet the Expert’ 시간이 예정돼 있습니다.”
“2번 홀로 바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분들은 그대로 스테이하시면 됩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
진혁도 인파에 묻혀 2번 홀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보는 지인의 옆에 앉거나.
자유롭게 착석하는 이들.
진혁도 아신 병원 소속 의사들과 떨어져 맨 뒷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검증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 강의에만 집중할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도 되죠?”
“앉으셔도 됩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최인호가 진혁의 옆자리에 앉겠다고 나섰다.
진혁은 별다른 말 없이 팜플렛부터 확인했다.
<수술실을 나온 외과의사.>
<서혜부 탈장 수술의 모든 것.>
<외과 병원의 변천사 그리고 미래.>
<위장관외과가 당신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Meet the Expert라는 프로그램명처럼 전문의가 강사로 나서 강연하는 시간이었고.
개업의를 위한 강연까지 예정돼 있으니, 주제는 꽤 다양했다.
그렇게 한참 강의를 듣고 있을 때 최인호가 말을 걸어왔다.
“GS에 지원할 건가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모르는데 여길 왔어요? 뭐, 소문대론가.”
“……?”
“병원장님을 믿고 위아래도 모르고 설치는 인턴이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일원동까지 소문났으니 말 다 했죠.”
갑자기 시비조로 나오는 최인호.
오지호한테 깍듯이 인사하던 모습이 가식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어이가 없던 진혁이 헛웃음을 터트리자,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난 지금까지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습니다.”
“…….”
“서울대 의대도 수석 입학했고 수석 졸업했죠. 모교 병원이 아니라 삼선 병원을 간 것도 삼선이 최고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진혁 선생님은 어디 출신이죠?”
“서신대 출신입니다만.”
“지방대군요. 이 선생과 난 학력고사 점수부터 꽤 차이가 납니다.”
갑자기 시작된 학벌 공격.
거기에 더해.
“NS랑 GS 더블 보드에 도전하는 건, 아직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초에 도전하는 거죠.”
“…….”
“근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자랑하는 미꾸라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애쓰더군요.”
그 능력이 거짓이 아니냐며 도발까지 해 왔다.
그래.
그의 말대로 능력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미꾸라지가 될 순 없지 않던가.
말리그가 뭔지 제대로 보여 줘야 했다.
* * *
‘멍청한 인간에겐 안 보이는 옷감’으로 만든 옷.
재단사의 말에 속아 임금은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했고.
백성들은 소리쳤다.
– 너무 멋있습니다! 전하!
– 옷이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 오오!! 나의 왕이시여!!
멍청한 인간이 될 수 없다며 옷이 보이는 척했던 건 백성들도 마찬가지.
최인호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그 무지함에 혀를 찼었다.
한데 동화책도 아니고 현실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을 볼 줄은 몰랐다.
한번 보면 다 기억할 수 있다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도.
언론의 호들갑도.
IMF용 영웅 만들기 기사도.
이진혁한테 환호하는 멍청한 대중도.
그의 눈엔 전부 개돼지처럼 보였다.
사실 대중의 환호는 그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시선과 친구들의 우러러보는 눈빛이 삶이 낙이자 원동력이었고.
어디에서든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더블 보드에 도전하는 자신을 향한 언론의 관심은 없었다.
그뿐이던가.
간호사들의 험담은 충격적이었다.
– 최인호 선생님은 너무 기계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거 같아. 근데 이진혁 선생님은 좀 달라 보이더라.
자신을 찬양하고 우러러봐도 모자랄 것들이 감히 타 병원 의사와 비교하는 현실.
바보 같은 연놈들은 방송용 ‘연출’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고.
최인호는 이진혁을 떠올리며 이를 갈아야 했다.
그렇게 오늘.
이진혁을 대면했을 때, 최인호는 생각했다.
드디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외칠 기회가 왔다고.
하지만.
“보통 초면에 이런 얘기는 안 하지 않던가요?”
“……?”
“제가 녹음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변태도 아니고 무슨 녹음기를 갖고 다니겠습니까.”
“그래요?”
“실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죠.”
괜한 도발이라고 여긴 최인호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허나 이진혁이 품속에서 녹음기를 꺼내며 방긋 웃자,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멍청한 임금님이 반격을 가해 온 것이다.
* * *
이현아가 준 소니 초소형 녹음기.
진영국의 의료 소송 건 때문에 받았고.
지금껏 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검증 요구에 강의를 녹음할 생각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지금 내 말을 녹음한 겁니까!”
“글쎄요.”
“동의 없이 녹취하는 건 불법입니다!”
“…….”
진혁이 대답 없이 웃기만 하자, 최인호가 손을 놀려 녹음기를 낚아챘다.
사색이 된 채 버튼을 마구잡이로 누르는 그.
진혁이 나직이 속삭였다.
“아직 녹음 안 했습니다.”
“……?”
“충전하는 걸 깜빡했지 뭡니까.”
“……!”
꼴이 우스워진 최인호가 당황해했지만, 진혁은 여유 있게 녹음기를 회수했다.
그렇게 시작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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잽을 맞고 크게 얻어 터진 최인호는 말이 없었고, 진혁 또한 강연에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왜 이렇게 성격파탄자가 많은 걸까.
뭐, 한평생 공부만 하고 사회생활을 제대로 안 해 봐서 그렇다지만.
최인호 정도라면 종합 병원 봉직의로 그 경력이 꽤 길지 않던가.
한참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또한 숙명 같은 일일지도 몰랐다.
가짜 능력이 진짜로 포장된 순간 시기 질투는 영원히 따라올 테고.
뱀심을 부리는 이들이 계속 시비를 걸어올 게 분명했다.
아니, 그건 그렇고 진짜.
혹시 군대를 안 가서 그런 건 아닐까.
아, 너무 꼰대 같은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