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4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43화(143/388)
143화. 외과 춘계 학술대회 (3)
그날 저녁.
컨벤션 센터 앞에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아신 병원 소속의 의료진들로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그들 앞을 지나가는 대형 버스.
한 대, 두 대, 다섯 대, 열 대.
버스는 줄지어 이동했다.
삼선 병원부터 카톨릭.
일화, 백선, 창선 병원까지.
많은 인력이 경주를 찾은 만큼 버스를 대절했고.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하지만 아신 병원 소속 의료진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기나긴 행렬의 끝에 누군가 말했다.
“버스를 대절했으면 되지, 왜 택시를 타자는 거야.”
“그러니까 택시비가 더 들겠다.”
“우리도 그냥 힐튼 호텔로 하지. 왜 분원 근처에 싸구려 숙소로 한 건데.”
“아, 진짜 이거 아껴 봤자 얼마나 아낀다고. 작년까진 안 그랬잖아.”
진혁을 제외하곤 전부 레지던트인 상황.
다들 한참 불만을 토로했다.
사실 그들의 불만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인적 교류의 장이나 다름없는 학술대회.
24시간이 모자라듯 일하는 이들에겐 휴가나 다름없었고.
필수 학점을 이수하고, 어르신을 모시며 의전도 해야 했지만, 단련이 된 만큼 어려워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작년처럼 즐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야야, 운영과장님 오신다.”
운영과장이 같이 동행했다는 게 문제였다.
뭐, 그의 동행에 명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가끔 통 큰 기부를 하기도 하고.
행사비마저 펑펑 써 버리는 오지호를 단속하기 위해 같이 내려온 거니까.
불만 어린 표정을 보며 우용만이 안경을 치켜 썼다.
“버스 대절보다 택시가 더 저렴합니다. 9%의 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죠.”
“2박 3일인데, 어떻게 택시가 더 저렴할 수 있는지…….”
“……?”
“인원이 인원인 만큼 버스를 대절하는 게 더 저렴하지 않았을까요.”
유진태의 용감한 질문.
우용만의 표정이 굳자, 유진태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습니다만.”
“하하…….”
어색해질 대로 어색해진 공기.
심평원이 수가를 삭감할 때면 유진태도 우용만과 면담을 해야 했고.
택시를 기다리는 이들 중에 안 그런 이가 없었다.
얼어붙은 공기를 깬 건 우용만이었다.
“택시 한 대에 3명이 타면 버스 대절비랑 같지만, 4명씩 타면 9%의 시내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혹시 고작 9%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안 그래도 병원 재정이 어렵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우용만의 지적에 다들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보조석에 1명, 뒷자리에 3명이 낑겨 탄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용만의 태도를 보아하니 저녁 메뉴조차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 * *
그렇게 도착한 삼겹살집.
메뉴는 냉동삼겹살이었고.
술도 시켜 주지 않았기에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게다가, 우용만까지 진혁의 앞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으니 분위기는 더욱 엄중해질 뿐이었다.
– 차라리 돈을 주면 안주랑 술을 시킬 텐데.
– 내 말이.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 죽겠다. 죽겠어. 빨리 가라고. 사비 각출하게!
소리 없는 아우성의 향연.
이를 눈치챈 게 분명했지만, 우용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게 다들 힘없이 냉삼만 뒤적이고 있을 때.
우용만이 말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어느 과에 어플라이할 겁니까? 오늘은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진혁에게 쏠렸다.
* * *
사실 진혁은 GS 소속 레지던트들과 꽤 친분을 쌓은 상태였다.
방송을 핑계로.
혹은 라이브 수술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게 아니라면 협진 수술을 방송에 내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GS 수술실에 꽤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장시간 수술 후 먹는 커피는 항상 즐거웠고.
개인 시간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도 조절할 수 있었고.
의도적인 배려일지도 모르지만, 오태상 같은 부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뭐, 그뿐이 아니었다.
한번 CS를 흉내 낸 GS는 매번 우당탕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려왔고.
진혁 또한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잠깐 주변을 쓱 하니 둘러본 진혁이 대답을 고심하자, 우용만이 먼저 선수쳤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을텐데요.”
“…….”
“성형외과는 절대 안 됩니다. 대장항문외과도 마찬가집니다.”
개업이 가능하거나 환자를 유인할 수 없는 과는 안 된다는 말.
우용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던 진혁이 씨익 웃었다.
“일단 GS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순간 좌중이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GS는 안 된다니.
전공을 정하는 건 본인 선택이라지만.
기대가 큰 병원장이나 외과장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가지 않았고.
다들 큰일 났다고 여겼다.
그런 그들을 본 진혁이 희게 웃었다.
“한번 전공을 정하면 앞으로 4년을 근무해야 할 텐데요. 냉동 삼겹살만 먹을 거 같아서 조금 그렇습니다.”
전공을 물어보기 전에 메뉴를 바꿔 달라는 시위.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속으로 진혁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용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모습에.
“진단검사의학과나 정신의학과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상 계열도 생각한다는 말을 했지만, 우용만의 표정은 여전했다.
장난질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진혁이 방법을 바꿨다.
“술기 경연 상금도 있던데, 미리 가불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상금으로 먹는다고 치면 될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순간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역시! 우리 막내다!!”
“소고기 시켜!! 야! 소고기다!!”
“이모~ 여기 소주도 주세요!!”
“진혁아!! 너밖에 없다!!”
한순간에 바뀐 분위기.
김석준이나 최인호와 달리 다들 진혁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메뉴를 시켰다.
갑자기 시장통으로 변한 음식점 안에서 우용만이 물었다.
“우승할 자신은 있습니까?”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요. 다 풀고 오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
아니, 다 뒤집어엎어 버리겠다는 말이었다.
* * *
흥겨운 1차가 끝나고 어느덧 2차.
허름한 선술집 안에는 오지호와 외과장인 최재원, 그리고 우용만이 앉아 있었다.
물론, 세 명이 진혁을 에워싸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허허, 여긴 이게 제 맛이야. 더 먹어. 더.”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허허, 이것도 먹고.”
“감사합니다.”
오지호는 아기새한테 먹이를 주는 어미새처럼 연신 진혁을 독려했다.
그는 진혁이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 허허, 훌륭한 인재를 두셔서 부럽습니다.
– 걱정이 없으시겠습니다.
– 그 친구가 진짜 천재라지요?
보문단지에 있는 한정식집에서 들었던 얘기들.
김석준과 달리 다른 병원의 외과장들은 오지호한테 연신 부럽다는 말을 쏟아 냈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오지호도 연신 허허거릴 수 있었다.
오지호의 표정을 살핀 진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왜? 할 말이라도 있나?”
“좀 불편한 얘기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허허.”
오지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 자신의 행태를 반성했다.
성형외과는 갈 마음이 없다는 확답을 들은 지 오래였건만, 너무 마음 표현을 안 했으니 저리 거리를 두는 거라 여겼다.
“편하게, 편하게 말해도 돼.”
“아닙니다.”
“허어, 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뭐가 있다고.”
외과장인 최재원까지 거들자, 진혁이 그간 있었던 일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얘기.
오지호가 술이 다 깬 표정으로 물었다.
“육선재 의원이 아직도 자넬 노린다?”
“그뿐이 아닙니다. 부원장님도 제 동태를 수시로 파악하는 거 같습니다.”
“으음?”
“그게…….”
또다시 시작된 설명.
오지호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감히 레지던트한테 전화해 인턴의 동태를 파악하다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행동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
진혁이 본론을 꺼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조금 그렇습니다만…….”
“어허, 편하게 하래도!”
“사실 원내에도 적이 많은 상황입니다. 내과 계열이 전부 저를 벼르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CS마저…….”
“CS는 왜?”
“알게 모르게 절 챙겨 줬는데, 왠지 타겟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다시 포문을 연 진혁의 설명이 계속됐다.
그 결론은.
“한동수 교수가 걱정된다?”
“예, 의료 분쟁 조정 위원회가 열리든, 윤리 위원회가 열리든 불리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교육 차원이라지만, 레지던트가 집도했다는 사실이 그만큼 크다는 말.
안 그래도 내심 걱정하고 있던 이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 * *
최재원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흉부외과장을 따로 만나서 언질을 주시지요.”
“허어, 이미 해 봤습니다.”
“어떻게 대답하던가요.”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하더군요.”
“하긴 그러고도 남을 양반이지요.”
문제가 생기면 옷을 벗겠다는 말로 퉁쳤다는 뜻.
오지호가 혀를 찼다.
“강제로 막을 수도 없고. 이걸 참.”
“강제로 막으면 부원장님이 운영회의를 소집할 겁니다. 애초에 이런 일을 승인한 행동 자체를 문제 삼을 양반입니다.”
“허허,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오지호가 기막힌 얼굴로 소주를 들이켜자, 진혁이 나섰다.
“어차피 물릴 수도 없는 일이라면…….”
“허어, 편하게 말하라니까!”
“어시를 서는 교수의 숫자를 늘리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안 그래도 몇 달 동안 집에 가지도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레지던트도 힘들겠지만, 교수들의 피로 또한 극에 달해 있을 겁니다. 특히 한동수 교수는…….”
진혁이 말꼬리를 흐렸지만, 오지호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안 그래도 운영회의에 대참하면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한동수였다.
“교수를 추가로 뽑자?”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든 진혁이 침묵하자, 최재원이 이를 거들었다.
“아무나 뽑아선 안 됩니다. 미친 짓거리에 기꺼이 동참할 만한 이를 뽑아야 합니다.”
“그런 이들이 있겠습니까.”
“뭐, 따로 수당도 챙겨 주고. 연봉도 세게 불러 봐야겠지요.”
“허허.”
결국 돈이 문제라는 말.
삼인방의 시선이 다들 우용만을 향했다.
인건비는 고정비나 다름없었고.
한정된 예산 속에서 전용을 해야 했기에, 운영과장이 무작정 반대하면 귀찮아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용만의 태도가 이상했다.
“이놈들이 감히!! 내 새끼를!!!”
부원장과 육선재의 행태에 분노한 그는 눈이 이미 훼까닥 뒤집혀 있었다.
“두고 보십쇼!! 제가 반드시 낚아 오겠습니다!!”
“술 취했다고 지금 아무 말이나 내지르는 거 아닌가?”
“멀쩡합니다.”
“그으으으으래?”
“네!!”
우용만이 한층 붉어진 얼굴로 대답하자 다들 밝게 웃었다.
외과 계열 중 하나인 흉부외과를 지키면서도.
이진혁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으니, 당장 뭐가 문제겠는가.
되레 이제야 육선재와 부원장의 만행을 고백한 진혁을 탓하며 경주의 밤이 깊어 갔다.
* * *
그렇게 다음 날.
정장 차림의 진혁이 곧장 경주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자신을 믿어 준 이들에게 보답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