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4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49화(149/388)
149화. 외과 춘계 학술대회 (9)
불편한 정장 바지의 허리춤도 풀고.
와이셔츠의 단추마저 푼 채 흥겨움에 겨워 술을 마셨다.
하지만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해야 할까.
만취했지만 선을 넘는 이는 없었다.
한번 전공을 정하면 최소 4년.
길게는 수십 년을 함께해야 했던 탓이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유진태가 소리쳤다.
“아직 진혁이가 살아 있다! 우리가 누군지 보여 줘!”
이미 충분히 봤건만 정성욱이 움직였다.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른다.
그러고는 맥주를 살짝 탄다.
사실상 깡소주나 다름없는 소맥이었다.
진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술잔을 비우자, 레지던트들도 술잔을 비웠다.
이번엔 진혁이 움직였다.
먼저 맥주 반 잔을 따른 다음 소주잔을 넣었다.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맥주잔을 쳤다.
맥주 위에 떠 있던 소주잔이 가라앉으며 거품이 치솟는다.
처음 보는 비주얼에 놀란 건 말할 것도 없는 일.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서신대에선 이렇게 먹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맛있는데?”
“목 넘김이 부드럽긴 하네.”
쓰나미주를 처음 맛본 이들의 감탄사.
아직 모든 게 촌스러운 98년이니, 미래의 폭탄주는 그 차원이 달랐다.
싱긋 웃은 진혁이 다시 손을 놀렸다.
이번엔 평범한 소맥을 말자 야유가 터져 나왔다.
“야야, 우린 외과라고. 외과. 내과 애들이나 이렇게 먹는다고.”
“어쭈! 이게 벌써 빠져 가지고!”
“벌써 취했냐!”
맥주를 많이 탔다는 이유로 터져 나온 원성.
어깨를 으쓱거린 진혁이 젓가락을 일자로 세운 다음, 이를 쳤다.
그러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회오리주를 처음 본 것이다.
“와…….”
TV를 처음 접한 원주민처럼 신기해하는 이들.
허나 놀라긴 일렀다.
이번엔 맥주를 따른 다음 휴지로 잔을 막고 그 위에 양주를 따랐다.
그러자 금색 테두리가 만들어진다.
이른바 금테주.
다들 눈을 반짝이며 들이켰다.
물론 한마디씩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서신대는 맨날 이렇게 먹냐?”
“네.”
“그래? 이거 이름이 뭔데?”
“금테주라고 부릅니다.”
“허허.”
헛웃음을 켜는 이들.
휴지를 통과한 양주가 맥주와 섞이지 않아 금테가 만들어진 것인데, 다들 신기해했다.
빙긋 웃은 진혁이 새로운 폭탄주를 말았다.
소주와 양주를 섞은 은테주.
콜라를 넣어 만든 고진감래주까지.
그럴 때마다 레지던트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진혁도 많이 말아 본 적이 없었기에 그 비율이 엉망이었지만, 너무 신기한 폭탄주였기 때문이다.
커피를 뒤섞어 소원주까지 만들자 따로 앉아 있던 펠로우 선생님들까지 구경 올 정도.
깡소주에 양주나 타 먹고.
충성주나 마시던 이들이었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홍익인간주를 만들자 다들 눈을 반짝였다.
어느덧 다들 매료되어 있었다.
* * *
어느덧 새벽 5시.
감자탕집으로 옮겨 해장술을 마셨다.
해장술이란 게 어딨냐고 할 테지만, 원래 외과의라는 게 그랬다.
부족한 수면 시간마저 줄여 가며 술을 마셨고.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한 잔의 술로 털어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뭐, 외과의 중 15%가 알코올 의존 증세를 보인다고 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런 면에서 감자탕을 손대는 이보다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많았다.
유진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혹시 술 버렸냐?”
“네?”
“교수님들한테 인사도 돌고 왔잖아. 근데 왜 이렇게 멀쩡해?”
“아직 괜찮습니다.”
“그으으으래?”
“네.”
“야야, 잡아! 현장 검거 들어간다!”
갑자기 팔짱을 끼는 이들.
진혁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뒤, 수색이 시작됐다.
“바닥은 멀쩡한데요?”
“물 잔 확인해!”
“물 잔에 버린 거 같진 않습니다. 뼈 통도 멀쩡합니다.”
“그래? 야야, 저 휴지 뭉치도 확인해.”
“여기도 아닌데요.”
몰래 버린 술을 찾는 이들.
물티슈를 만져 보거나, 앞치마를 확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진혁이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즐거웠다.
과거엔 부족한 실력을 채운다는 생각에 이렇게 놀아 본 적이 없었다.
뭐, 사실 오랜만에 갖는 술자리라는 점도 컸다.
아버지와 반주를 기울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서 쉴 때면, 인터폰이 울렸고.
현수막을 봤다며, 와 달라고 부탁하는 동네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종종 왕진도 다녀야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엎어져 잠을 자는 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유진태 또한 탁자에 코를 박았다.
“으으, 이진혁이 너…….”
그의 마지막 유언은 간결했다.
결국, 몇몇을 제외하곤 다 죽어 버린 상황.
진혁은 쓰러져 있는 이들을 돌아보며 살짝 웃었다.
술기 경연에선 아신 병원을 대표해 다른 병원과 싸운 느낌이었다면, 아직 ‘우리 CS’였기에 이번엔 CS 대표가 된 느낌!
그래.
한동수가 봤다면 이리 말했으리라.
이게 바로 우리 CS다!
* * *
경주 컨벤션 센터.
멀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들은 사라진 지 오래.
다들 술 냄새를 진하게 풍겼고, 그들을 맞이한 건 제약사 직원들이었다.
숙취해소제를 받은 이들이 좋아라 했다.
술을 깨야 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세수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교수님들도 계실뿐더러 남은 세션마저 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빠르게 끝난 오전 프로그램.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을 가는 진혁을 보며 다들 수군댔다.
“아직 인턴인데, 진짜 대단하긴 하다.”
“야야, 그래도 마지막 경연은 아슬아슬했다고.”
“뭐, 그래도 이진혁이 이긴 건 사실이잖아.”
“말도 마라. 말도 마. 우린 끝나고 백당 서기로 했다.”
“……?”
“다들 술기 연습부터 하래. 혼나기만 했다고.”
삼선 병원 소속 레지던트가 불만을 토해 냈다.
화기애애할 술자리는 교육의 장으로 변했고.
삼선 병원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런 연유로 진혁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복잡미묘했다.
카스트 제도로 따지면 가장 말단의 수드라나 다름없는 인턴을 찬양하자니 자존심이 상했고.
그냥 무시하기엔 퍼포먼스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곧, 정산이 시작됐다.
병원당 30만 원.
내기에 참여하지 않은 병원도 있었기에 870만 원이 모였다.
그때부터 아신 병원 소속 레지던트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건 행복한 고민이었다.
“오늘도 삼선 병원 법카로 먹기로 했잖아. 그럼 이건 언제 쓰냐?”
“그러게, 너무 큰 금액인데.”
“일단 공금으로 쓰자.”
“야야, 그러다 운영과장님이 가져가면 어떻게 하려고?”
“에이, 설마 그러시겠냐.”
사용처를 두고 고민하던 이들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각 분과를 맡은 치프한테 미루기로 한 것이다.
곧, 그들이 진혁의 어깨를 쳤다.
“고생했다. 진혁아. 그런 의미로 오늘도 죽자!”
“막내한테 밀리면 되겠냐. 오늘도 조져!”
“날아라! 발렌타인!”
“어제 먹었던 홍익인간주나 먹자.”
또다시 술을 찾는 이들.
병원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인상을 팍팍 찌푸릴 테고.
잠을 자고 싶다며 징징거리거나, 누군가의 샤우팅에 쩔쩔맬 테지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 * *
어느덧 술이 깬 이들은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책 세션을 듣고 있자니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벼랑 끝 외과의사>
<전공의 부재 병원의 운영 실태>
<개업 외과의의 현실>
전부 우울한 얘기들뿐이었다.
발표를 맡은 외과 주임교수들은 소리쳤다.
– 이게 말이나 됩니까!!
– 요즘 애들은 말이야!
– 허허, 우리 때는.
시대 흐름에 뒤처진 언어의 향연.
혹자는 꼰대라고 칭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집채만 한 파도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이대로 30년만 지나면 수술할 의사가 없을 거라고.
바꿔야 한다고.
그 이유가 뭐가 됐든 이대로 망하게 둘 순 없다고.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시대의 물결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파도를 막을 수 없다는 걸.
IMF로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돈을 좇는 경향이 더 강해진 것처럼.
환자의 생명보다 돈을 좇거나 안락한 삶을 꿈꾸는 의사가 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 울부짖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CS의 운명도 생각났기에 진혁은 얼굴을 굳혀야 했다.
해결 방안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작 생각나는 건.
정원을 지금보다 두 배로 늘리는 것.
해서 비인기과의 업무 강도를 낮추고.
경쟁을 촉발시켜 피안성에 가더라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누가 듣는다면 칼을 던지리라.
그 전에 건보 재정이 파탄 날 거라고.
이건 다 원가보다 못한 수가 때문이라고.
* * *
이번엔 오지호가 발표자로 나섰다.
“우리 아신 병원엔 의료 분쟁 조정 중재 위원회가 설치돼…….”
오지호 또한 열변을 토했다.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
환자도 좋고 외과의도 좋을 거라며 열변을 토하는 그를 진혁이 빤히 지켜봤다.
김석준을 놀리던 모습은 사라진 채 한없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오지호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시작된 다음 세션.
<다분과 수련 전문의 양성, 그리고 그 후>라는 주제로 외과장인 최재원이 나섰다.
“우리 외과의들은 환자의 건강과 인생이라는 무거운 짊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학문적 발전과 임상 수준 향상을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신 병원은…….”
요는, 일부러 통합 외과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독립된 과로 존재하는 다른 병원과 달리 아신 병원은 분과 체계를 택하고 있었고.
간담췌를 비롯한 8개의 분과를 돌며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고.
세부 전문의가 될 기회를 줘 ‘다분과 수련 전문의’를 양성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신 병원은 더블 보드 획득을 적극 권장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환자를 위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진혁을 빤히 보며 발표하는 최재원.
그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다.
아니, 그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오지호를 비롯한 외과의들은 말하고 있었다.
일단 GS를 전공하라고.
해서 다양한 분과에서 경험을 쌓고.
네가 원하는 바이탈과로 가라고.
그게 환자를 위한 일이라고.
진혁은 말없이 그의 발표를 들었다.
사실 아직 고민 중이었다.
ER은 워라밸이 보장됐기에 그 나름의 장점이 있었고.
CS는 그 자신이 ‘우리’라고 생각할 만큼 애정이 깊었다.
또한, 한동수 문제도 아직 완벽한 해결은 아니라고 여겼다.
미친 짓에 동참할 교수급을 구하는 것도 힘들 테지만, 봉직의를 새로 구한다 한들 부족하다고 여겼다.
스크럽을 서는 교수를 신규 채용한다고 해서, 의료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어차피 수술은 집도의가 하는 것.
긴장감과 중압감에 함몰된 누군가가 혈관을 잘못 건드린다면 손 쓸 틈도 없이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테이블 데스가 많은 CS가 아니던가.
진혁은 한참 말이 없었다.
* * *
어느덧 끝난 연찬회.
서울에서 다시 술자리를 갖기 위해 다들 움직일 때였다.
명세 병원 레지던트인 이덕화가 자신을 찾자, 진혁이 먼저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재미로 한 건데요. 저 근데 『영닥터』 아시죠?”
“네.”
“조금 이상한 게 있더라고요.”
“……?”
“Dr. Colby라는 놈이 계속 도배글을 올리는데 <이진요>에 가입해야 한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더라고요.”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덕화의 설명이 계속됐다.
<이진혁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는 단체의 줄임말이라는 걸 전해 들은 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할 일 없는 사람이 참 많은 거 같다며.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커질 거라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