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5화(15/388)
15화. 프리인턴 교육 (6)
시간이 흘러 다시 가슴을 닫아야 할 때.
고비를 넘겼기에 다들 한층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수술실에 있는 내선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릉!
전화를 받은 스크럽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과장님, 3번 수술실에서 호출입니다. 블리딩(출혈)이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지봉이 순간 멈칫거렸다.
마무리를 맡기고 가기엔 이경태가 못 미더웠기 때문이다.
아직 인턴 교육도 못 받은 이진혁 또한 믿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술 중에 걸려 온 호출.
오죽 다급하면 전화를 했을까 싶었다.
“어이. 이경태!”
“네, 과장님.”
“제대로 수처해.”
“알겠습니다.”
“이진혁이 너는 끝나고 바로 가지 말고. 나 좀 보고 가고.”
“네. 교수님.”
그 말을 끝으로 최지봉이 수술실을 나서자, 이경태가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아. 숨도 못 쉬는 줄 알았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병원장님 핏줄만 아니었어도, 들이받았을 겁니다. ER(응급실) 레지던트가 CS 수술에 들어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네? 병원장님 아들이요?”
“모르셨습니까? 병원 물려받으시려고 서신대에서 오신 거잖아요. 아씨. 괜히 긴장해서 혼나기만 했네요.”
순간 진혁의 눈이 커졌다.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탓이다.
서신대 병원에서 수련할 때는,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가 없었고.
조금 정신을 차릴 때쯤에는, 최지봉이 췌장암으로 죽었다는 것만 들었었다.
‘그래서 병원을 옮기셨던 건가.’
상념도 잠시.
이경태가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마무리 좀 부탁드릴게요.”
“네? 제가요?”
“그럼, 여기 누구 있어요?”
“아까는 다른 병원 의사라고…….”
“저 괜히 욕먹기 싫습니다. 나중에 최 과장님이 뭐라고 하시면 제자분이 했다고 해야죠. 이래서 로얄(병원 고위직 자녀)이 싫다니까요. 하…….”
CS 소속도 아닌데 욕을 먹은 게 보통 억울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곧, 진혁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하게.
한 땀 한 땀.
니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야. 손 좋으시네요.”
“아, 네.”
수처를 하면서 대답까지 하는 진혁.
잠시 후, 진혁이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 * *
수술이 끝난 후 개수대에서 손을 씻은 진혁은 최지봉에게 인사를 한 뒤, 곧장 호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수술 캡과 마스크를 벗은 뒤, 탈의실로 향할 때였다.
같이 수술했던 스크럽 간호사가 짧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어!”
“?”
“잠깐만요 선생님. 얼굴이 낯이 익은데요.”
“네?”
“저희 어디서 보지 않았어요?”
“…….”
“아! 신문! 신문에서 본 거 같아요!”
“아…….”
얕은 침음성을 토해 낸 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곧, 그녀가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해 왔다.
“맞네. 맞아! 아신 병원 인턴이요!!”
인턴이라는 말.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라고 지시하던 이경태의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다.
곧,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목소리.
말도 안 된다는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러자 진혁의 표정이 파리해졌다.
‘으음…….’
말문이 턱 하니 막혀 오는 상황.
진혁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닮은 사람입니다. 닮은 사람.”
“그, 그렇죠?”
“그럼요. 아직 2월인데요.”
“그러니까요. 하하. 아니겠죠. 수술 도구도 외우지 못할 텐데…….”
이경태가 말꼬리를 흐리며 인지 부조화적인 상황을 스스로 납득해 가던 그때.
뒷정리를 마친 간호사들이 몰려들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뭔데 그래요.”
“같이 좀 웃어요.”
그러자 진혁을 알아본 스크럽 간호사가 제 옆에 있던 간호사를 툭 쳤다.
“자기, 그때 동해호텔 기사 봤어? 그때 그 아신 병원 인턴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아니야?”
“어!!!”
“어라. 진짜 그런데요?”
“어어어!!!”
수군거림이 커지자, 진혁이 다시 손을 휘저었다.
“그냥 닮은 사람이라니까요.”
“아닌데. 진짜 똑같은데.”
“아니라고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이 탈의실로 도주했다.
최지봉 교수에게 인사를 남기기는커녕, 졸지에 쇼생크 탈출을 찍어야 할 판이었다.
* * *
기껏 탈의실로 도망쳤건만, 이경태가 당장 쫓아 들어왔다.
남자 탈의실이라서, 여자 간호사들이 쫓아오지 못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가 눈을 뻐끔거렸다.
“아니죠? 진짜 아닌 거죠?”
“닮은 사람이라니까요.”
“으음.”
진혁은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은 뒤, 여전히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이경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저는 이만. 약속이 있어서요.”
그렇게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며 최지봉이 들어왔다.
탈주가 막힌 진혁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벌써 끝나신 겁니까?”
“출혈 부위만 찾아 주고 나왔다.”
기존 인력에게 다시 넘기고 왔다는 말.
최지봉의 시선이 이경태에게 향했다.
“어이. 이경태!”
“네, 과장님.”
“포스트 옵(Post op, 수술 후 케어)은?”
“네?”
“포스트 옵도 안 하고 여기서 왜 노닥거리고 있어! 사람 불러서 환자만 회복실로 밀어 넣으면 다야!”
최지봉의 불호령.
순간 이경태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과장님, 저는 ER 레지던트라고요!!’
하지만, 그는 병원장의 아들.
끽소리도 낼 수 없었던 이경태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킵하러 가 보겠습니다.”
“우리 애들 나올 때까지만 킵하고 있어.”
“네.”
후다다닥.
이경태가 재빠르게 탈의실을 나서자, 진혁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어이, 이진혁이.”
“네?”
“간호사들이 재미난 소리를 하던데?”
“?”
“마무리를 네가 했다며.”
“!”
쇼생크 탈출에 나온 주인공이 16년 동안 땅굴을 팠다는 걸 잊고 있었다.
* * *
원주 성심 병원 앞 곱창집.
속이 가득 찬 곱창이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자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왜? 아직도 떨떠름해?”
“그건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 가 봐야 술밖에 더 먹냐. 거기서 먹으나 여기서 먹으나 매한가지다.”
“예.”
오크밸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붙잡힌 상황.
사실, 최지봉의 말이 맞았다.
이미 오후 수업마저 끝난 시간.
지금쯤이면 한참 술을 먹으며 친목을 다지고 있을 터였다.
진혁이 술을 들이켠 뒤, 곱창을 오물거렸다.
그러고는 냉큼 술병을 부여잡았다.
“교수님, 한 잔 올리겠습니다.”
“교수님은 무슨. 이제 과장이다, 과장.”
“……!”
“왜? 어색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색합니다. 계속 서신대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일단 한 잔 따라 봐.”
“예.”
술을 따르기 무섭게 바로 입에 털어 넣는 최지봉.
그를 따라 진혁도 술을 마신 뒤, 재차 말을 꺼냈다.
“갑자기 병원을 옮기실 줄 몰랐습니다. 저한테 CS에 오라고 하셨는데……. 사실, 교수님 밑에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런 놈이 아신 병원을 가?”
“!!”
“왜 아신 병원에 갔냐니까.”
“부모님 옆에 있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 뭐가 죄송해? 나도 그런데.”
“네?”
“나도 그렇다고.”
최지봉의 설명은 한참 계속됐다.
병원장인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
형제 중에 자신만 의사였기에 부모님도 모실 겸 원주로 오게 됐다는 얘기였다.
곱창을 오물거리던 진혁이 되물었다.
“사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또 궁금한 게 있어?”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
“?”
“손이 아주 좋다고, 참관할 때마다 저를 이뻐해 주셔서요. 그래서 CS를 지원…… 아니, 생각했습니다.”
CS를 지원했었다는 말을 급하게 수습했다.
그때는 CS를 지원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고민 중이기도 했고.
진혁이 내뱉은 뜬금없는 질문에 대한 최지봉의 답변은 가관이었다.
“그거 내 전략이야.”
“네?”
“내 전략이라고, 전략. PK 때부터 공들이는 거.”
“!!”
“남들은 인턴 때부터 시작하잖아. 원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배부른 법이다.”
“그, 그래서 화를 한 번도 안 내시고…….”
“그래. 참느라 죽을 뻔했다.”
“와.”
진혁이 멍한 표정으로 최지봉을 바라봤다.
짐작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이었다.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 하고, 참관도 빈번하게 권했던 이유가 타겟이었기 때문이라니.
최지봉도 한동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그 방법은 달랐지만 말이다.
‘한 명은 은밀하게, 한 명은 아주 대놓고 하는 건가.’
진혁이 쓰게 웃자 최지봉이 다그쳤다.
“뭐 해. 술잔 비었어!”
“네, 교수님.”
“교수님 아니라니까.”
“한 번 교수님은 영원한 교수님입니다.”
뭐 이유야 어쨌든 자신의 은사.
진혁이 다시 넉살을 부렸다.
그렇게 한참 술잔을 기울인 뒤.
최지봉이 진지한 얼굴을 했다.
“어찌 됐든 CS로 가는 거 아니야?”
“네?”
“아까 수처한 거. 따로 연습했다고 했지? CS에 오고 싶어서 연습했다며. 아니야?”
“맞습니다. 매일 연습했습니다.”
“수술 도구도 그래서 외운 거고?”
“네,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급조한 핑계.
직접 환부를 확인하며 이미 취조하듯 물어봤던 최지봉이 다시 물어보기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물론, 최지봉의 반응은 이경태와 달랐다.
수처하는 속도를 직접 본 건 아닌 상황.
그저 제대로 마무리를 했구나!
뭐,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CS로 갈 거냐는 함의.
최지봉이 앞으로의 진로를 묻자 진혁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민 중입니다.”
“고민은 무슨. 그 손 놀리면 천벌 받는다.”
“!”
“아무나 써전이 되는 게 아니야.”
“!!”
“눈이 안 좋아서, 손이 떨려서, 센스가 없어서 되고 싶어도 못 되는 게 써전이라고. 그러니까 고민할 것도 없어.”
결국, 도돌이표.
CS로 오라는 말이었다.
최지봉은 그야말로 일편단심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CS를 전공하길 바라는 마음뿐인 것이다.
어딜 가나 CS 소속 의사들의 마음은 똑같은 게 아닐까.
* * *
그 시각, 이태희는 정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동기들과 술을 먹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진혁이 걱정돼 그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탓이다.
‘대체 왜 이렇게 안 오는 건데!!’
사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레지던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는데 뭐라 책망한단 말인가.
다들 금방 돌아올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 네 시간.
한참이 지나도 진혁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오후 수업 내내 자리를 비웠다.
그때부터였다.
교육수련부에서 차출된 레지던트들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그냥 환자를 인계하고 돌아오면 되는 상황.
진혁이 어디론가 도망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직 교육도 받지 않은 인턴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전 내내 대놓고 졸 만큼 수업 태도도 좋지 않았던 이진혁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다 로비로 돌아오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합숙 교육을 맡은 레지던트 장길만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태희 선생님. 아까 이진혁 선생하고 같이 있었다고 했죠?”
“같이 있던 건 아니고 멀리서 봤습니다.”
“그래요? 흐음.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차마 기자를 사칭했다는 걸 밝힐 수 없어 둘러댄 말.
장길만의 얼굴이 심각해 보이자, 이태희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곧 들어올 거예요. 삐삐도 안 보고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게 아니라……. 아니다. 됐어요.”
“?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아까 충돌이 좀 있었나 봐요. 혹시 못 봤어요?”
“아, 저는 구급차가 온 것만 봐서요.”
아무것도 못 봤다는 거짓말.
장길만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이슈가 좀 있었나 봐요.”
“이슈요?”
“높으신 분이 부원장님께 전화해서 따졌답니다.”
“!!”
“부원장님이 어떻게 된 거냐고 저한테 전화까지 하셨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설명이었지만, 이태희는 달랐다.
국회 의원이 내지른 고성이 떠올랐던 탓이다.
– 어디 소속인지 알아봐!!
보좌관을 닦달하던 그가 진혁의 소속을 확인했고, 결국 항의 전화까지 한 모양이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징계를 내릴 거 같긴 한데.”
“네? 징계요?”
“뭐, 정확한 건 저도 모르죠. 일단 이 선생하고 얘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연락이 안 되니까요.”
“아…….”
“밤도 늦었는데 먼저 올라가 봐요.”
“네, 선생님.”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네는 이태희.
하지만, 장길만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어디 가요? 숙소로 가는 거 아니에요?”
“밖에 뭘 놓고 와서요.”
다시 호텔 밖으로 나온 이태희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